퇴직한 남편을 비에 젖은 낙엽 에 비유 한다
일과 직장에 청춘을 바친 가부장적인 남편들이 퇴직 후, 비에 젖은 낙엽이 빗자루에 달라붙듯 아내에게 붙어 다닌다 " 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젖은 낙엽' 신세가 된 남편들은 이사 갈 때 버려두고 갈까봐. 아내의 애완견을 끌어안고 차에 먼저 탄다는 얘기가 있다. 우리를 쓴웃음 짓게 하지만 흘려 들을 수 만은 없다.
아무개 일번지 주부는 최근 두통과 위통에 시달리고 있다. 일밖에 모르던 남편이 퇴직 후 시간이 많아지자. 24시간 따라 다니며 나름대로 가꿔온 내 삶에. 뛰어들어 귀챦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평생 직장은 옛말이 됐고. 사오정 오륙도 같은 쓸쓸한 유행어 속에 조기 퇴직으로 이어졌다. 통계청이 밝힌 우리나라 평균 일자리 퇴직 연령은 53세다.
평균 수명은 80세를 훌쩍 넘었다. 부부는 은퇴 이후 30년을 더불어 살아야 한다. 하지만 직장에서 일에 파묻혀 지내다가 가정으로. 돌아온 남편은 아내와 지내는 법이 서툴기만 하다.
아내 역시 나름대로 가꿔온 자신의 삶에. 갑자기 끼어든 남편의 존재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50대 남자들의 술자리에 가면. "경제력을 잃고, 사회적 관계도 줄고, 집에가면" '황혼이혼' 이 기다린다 " 는 신세 한탄이 가득하다.
이를 뒷받침 하듯, 최근 서울 가정법원은. " 협의이혼중 결혼기간 26년을 넘긴. '황혼이혼' (18%) 이 가장 많다고 발표했다. 자녀들의 대학 입학을 기다렸다가 이혼도장을 찍는. '대입 이혼' 이 요즘 새로운 흐름이다.
비록 일자리에서 밀려났지만 가정의 경제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중년 남편들은 또 다른 먹거리 문제가 시급해. 가족과의 소통이 후순위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집단 대화법을 통해. 남자들이 겪는 소외감과 외로움을. 호소하여 부인과 자녀들이 귀 기울이게 해야한다.
무릎을 끓고 빌어서라도 쫓겨나지 말아야 한다. ㅎㅎㅎ 아침밥 수저 놓으면 종묘 공원에서 어슬렁 거리더라도. 아내와 자녀들이 가꿔온 삶에 빈대붙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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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은 낙옆
일본에서는 젖은 낙엽을 일컬어 ‘누레오치바’라고 부릅니다. 젖은 낙엽은 길바닥에 눌러 붙어 빗자루로 잘 쓸어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누레오치바’는 치워버리고 싶지만 쉽게 치워지지 않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일본에서는 최근 은퇴 후 집에서 머무는 노년의 남성을 ‘누레오치바’라고 부르며 젖은 낙엽과 같은 존재로 여깁니다. 더 이상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는 남성이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현실적으로 표현한 단어입니다. 물질이 신분의 가치를 평가하는 시대에서 어쩌면 당연한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비에 젖은 존재는 아니겠지만 그런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사회를 보면 인간의 가치는 갈수록 쓰레기처럼 처량한 모습으로 전락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돈이 사람을 만들고 길들이는 시대에서 늙어 생산력을 잃어버린 젖은 낙엽과 같은 사람들, 회사를 위해, 가족을 위해 젊음을 다 바친 그들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그들이 이제 기대고 쉬어야 할 곳은 가정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 더불어 사는 사회는 신분을 떠나 사람을 소중한 가치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극장에서 대체로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 영화가 끝나자마자 일어서서 나오기 때문에 주목하지 않지만, 맨 마지막에 음악과 함께 오르는 자막이 엔딩 크레디트(Ending Credit)입니다. 나는 감동적인 영화를 보면 끝까지 자리에 남아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서 마지막 여운을 더 음미합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만이 아니라 감독, 시나리오, 조명, 촬영, 소품, 의상, 음악…. 수없이 많은 이들이 배후에서 수고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만든 이들에게 나는 마음으로부터 박수를 보냅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런 훌륭한 영화가 없었을 것이니까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오늘이 있기까지 나의 오늘을 만들어준 사람들, 우리의 오늘의 삶을 복되게 만들어준 사람들의 엔딩 크레디트가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오늘의 삶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우리 부모세대가, 우리의 잘 사는 오늘 위에는 우리가 귀찮게 보고 있는 비에 젖은 낙엽 그 노인들이 있습니다.
나의 삶에도 부모님을 비롯하여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이름이 올려질 것입니다. 이렇게 늙어가는 나도 다른 누군가의 삶의 엔딩 크레디트에 올려지기를 바라지요. 그리고 이 땅의 노인들이 누레오치바가 아니라 이 사회의 엔딩크레디트의 대상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옮긴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