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는 뇌의 ‘근력’을 길러준다 / 오철우
문자가 발명되고 쓰기와 함께 읽기의 방식도 시대마다 달랐다. 읽기의 역사를 다룬 책(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423849)에 따르면, 처음에는 대체로 소리 내어 글을 낭독했으나, 중세 대학이 출현한 이후 마음속으로 읽는 묵독이 널리 퍼졌다. 19세기 말 신문과 잡지가 번성하자 한번 읽고 마는 소비형 독서가 등장했고, 20세기 말 인터넷 시대에는 필요한 정보를 골라 읽는 검색형 읽기가 늘었다. 요즘에는 글을 대신하는 영상 콘텐츠와 인공지능의 검색·요약이 늘면서 읽기 능력이 퇴화한다는 우려도 나온다(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274124).
많은 이들은 여전히 읽기가 생각과 마음을 기르는 중요한 정신 활동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읽기는 다양한 뇌 영역을 활용하며, 독서 경험이 뇌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스웨덴 룬드대학의 음성학자 미카엘 롤 교수는 국제학술지 ‘대뇌피질’(Cerebral Cortex)에 실린 논문(https://academic.oup.com/cercor/article/36/8/bhag125/8768725?login=false)에서 성인 1068명(쌍둥이 380명 포함)의 고해상도 뇌 영상과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 읽기 능력이 시각, 청각, 그리고 음성과 의미를 연결하는 뇌 영역이 어울리는 데서 비롯함을 다시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실 읽기는 뇌과학에서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 능력이다. 쓰기와 읽기는 긴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발명품이기에, 뇌에는 읽기의 전용 영역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https://hms.harvard.edu/news-events/publications-archive/brain/reading-brain)로는 눈으로 점, 선, 모양으로 식별하는 문자를 음성으로 연결하고, 다시 음성을 의미와 연결하면서 읽기 과정이 이뤄진다. 이렇게 보면, 글을 배울 때 소리 내어 읽기는 문자와 음성을 연결하는 뇌 경로를 구축하는 훈련인 셈이다.
많은 뇌 영상과 데이터를 분석한 이번 연구에서는 좀 더 자세한 내용이 밝혀졌다. 특히, 읽기 능력과 관련한 뇌 영역의 구조 특성에 당연히 유전자의 영향이 크지만, 뇌 영역의 두께나 미세한 구조는 후천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읽기 능력을 좌우하는 뇌 신경망도 운동으로 근력을 기르듯이 독서 경험으로 강화할 수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저자는 비영리 매체 ‘컨버세이션’에 쓴 글(https://theconversation.com/the-brain-isnt-hardwired-to-read-heres-how-we-pull-it-off-and-why-some-are-better-at-it-than-others-289919)에서 자신이 만난 난독증 물리학자의 사례를 들려준다. 그는 시각과 청각을 연결하지 못해 문자를 보고도 음성으로 변환하지 못하는 난독증을 지녔지만, 충분한 읽기 능력을 갖춘 물리학자로 활동했다. 롤 교수는 많은 훈련과 경험으로 그의 뇌에서 문자의 시각 정보를 음성의 도움 없이 바로 의미와 연결하는 새로운 읽기 경로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청각장애인도 마찬가지로 음성을 거치지 않고 문자를 의미와 직접 연결하는 뇌 경로를 강화하고, 때로는 문자를 수화 언어로 번역해 읽기 능력을 증진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은 촉각을 이용해 문자를 읽는데, 놀랍게도 어릴 때 시력을 잃은 경우에는 뇌의 시각 담당 영역이 활성화하기도 한다.
이처럼 읽기는 감각 능력과 경험에 따라 다양한 뇌 경로를 활용한다. 저자는 읽기의 기회가 줄어든 요즘 시대에도 이 놀라운 뇌 신경망을 단련하는 일을 스스로 멈추지 말라고 조언한다. “우리는 우리 뇌를 더욱 아름다운 형태로 빚어야 합니다. 어떻게? 바로 독서입니다.”
오철우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수정 2026-09-08 17:13 등록 2026-09-08 17:12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768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