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가톨릭 신학] 교회와 성체성사와 마리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성모 신심은 유명합니다. 교황 즉위 후 교황 문장(文章) 중심에 십자가와 함께 마리아를 뜻하는 ‘M’자를 새겼습니다. 본인 소명을 ‘또뚜스 뚜우스’(Totus Tuus, 온전히 당신 것)라 정한 것도 자신을 성모님께 봉헌하기 위함입니다. 교황은 재임 중 활발한 사목 활동을 하셨고, 많은 교회 문헌을 발표하셨는데, 성체성사 관련 문헌이 2003년 반포한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Ecclesia de Eucharistia vivit)입니다.
성체성사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 회칙은 제1~5장까지 성체성사의 유래, 교회와 관련성, 성체성사가 교회의 핵심임을 설명합니다. 마지막 제6장은 성체성사와 성모님의 관계를 다룹니다. 회칙은 교회와 성체성사와 성모님 사이의 깊은 관계를 설명합니다. 비록 성찬례가 제정된 성목요일 밤 성모님에 관한 언급은 없지만, 예수님 승천 뒤 성령 강림을 기다리는 첫 공동체에서 기도하던 사도들 가운데 성모님이 함께하셨음은 당연하고, “빵을 나누어 먹는 일에 전념한”(사도 2,24)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성찬례에 성모님은 분명 함께하셨습니다.
이 회칙은 성모님을 ‘성체성사의 여인’이라 칭합니다.(53항) 성모님이 초대 교회의 성찬례에 참석하신 것은 물론, 성체성사의 첫 시작부터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이 순결한 당신의 태를 하느님 말씀의 강생을 위해 봉헌하심으로써 성스러운 예수님 몸을 당신 안에 모셨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모시는 모든 신자 안에 일어나는 일을 성모님이 당신 안에 먼저 받아들이셨습니다. 성모님은 사람이 되신 말씀을 잉태하셨기에, 이 회칙은 성모님을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 ‘역사상 최초의 감실’이라 합니다.(55항)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루카 22,19).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 몸은 성모님이 당신 태중에 잉태하셨던 몸입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몸을 잉태하셨고, 초기 교회 성찬례에 참석하셔서 다시 몸 안으로 성체를 받아 모셨습니다. 성모님이 성체를 받아 모신 것은 당신의 심장과 하나였던 그 심장을 다시 당신 태중에 받아들이고, 십자가 아래서 겪으셨던 일을 다시 체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56항)
가톨릭교회는 성모님께 최상의 호칭과 최고의 존경을 드립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평생 동정, 원죄 없이 태어나셨고,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분! 하지만 성모님 삶을 묵상해 보면 삶이 그리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왜 마리아를 ‘고통의 어머니’라 부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생애는 고통과 슬픔이 가득했고, 그분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 잉태 순간부터 예수님이 살아계시는 동안,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못 박혀 돌아가실 때까지 성모님의 삶은 하느님 말씀을 따르기 위한 신앙과 순종의 시간이었습니다. 성체성사의 신비는 성모님처럼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것입니다.
[2025년 1월 5일(다해) 주님 공현 대축일 서울주보 5면,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