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 속에 피는 동백의 꽃가루는 누가 옮기는 걸까요? 뜻밖에도 벌·나비 등의 곤충이 아니라 텃새입니다. 남부 해안이나 섬에 서식하는 동박새가 그 주인공이죠. 꿀을 유난히 좋아하는 동박새는 귀엽고 앙증맞은 몸으로 동백나무 꽃가루를 이리저리 옮기며 중매쟁이 노릇을 합니다.
남부 지방에서는 혼례식 초례상에 송죽 대신 동백나무를 주로 꽂았습니다. 사철 푸른 동백잎처럼 변하지 않고 오래 살며 풍요롭기를 바라는 뜻에서였지요. 시집가고 장가갈 때 아이들이 동백나무 가지에 오색종이를 붙여 흔드는 풍습도 이런 축복의 뜻을 담은 것입니다.
이수복 시 ‘동백꽃’에는 축복보다 눈물이 먼저 아롱거립니다. 친정 부모 형제와 정든 집을 떠나 출가하는 것만으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그 속에 녹아 있지요. 그 이유는 바로 ‘훗시집’에 있습니다.
처녀가 총각과 결혼하는 게 아니라 남의 집 후처나 재취로 가는 훗시집이니 어찌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홍치마에 지던/ 하늘 비친 눈물도/ 가녈피고 씁쓸하던 누님의 한숨도” 그래서 더 애잔하게 다가옵니다.
동백은 질 때 봉오리째 뚝 떨어지지요. 그 낙화의 눈물이 누님을 울리고, 누님은 그 꽃 때문에 또 눈물짓습니다. 시인은 그런 아픔의 깊이를 오늘토록 모른다며 짐짓 딴청을 부리지만 그 속 깊은 마음 때문에 우리 가슴이 더욱 먹먹해집니다.
이런 분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요? 서정적인 시어와 부드러운 운율에서 나옵니다. 미당 서정주는 1954년 <문예>지 3월호에 이 시 ‘동백꽃’을 추천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상(想)에 헷것이 묻지 않은 게 첫째 좋고 그 배치와 표현에도 성공했으려니와 요즘 시단 시인의 대부분이 뜻면을 찾다가 시에 감동이나 지혜의 움직이는 모양을 주어야 할 것까지를 잊어버리고 천편일률로 ‘이다’ ‘이었다’ ‘하였다’만 되풀이하고 있는 실상에 비해 자기 시의 몸놀림이나마 뜻과 아울러 같이 가져보려고 노력한 점도 요새 일로서는 귀한 작품이다.”
(이하 생략/아래 '원본 바로가기' 참조)
〈고두현 /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Cello Sonata No. 1 in E Minor, Op. 38: II. Allegretto quasi menuet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