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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恨)은 한으로 끝날 수 있다. 그건 자학적인 증세일 뿐이다. 우선 위정자가 갈등을 치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위정자가 갈등을 부추기면 곤란하다. 위정자는 갈등의 소지를 헌법정신에 따라 절제있게 단절할 필요가 있다. 아닌 것은 아니다. 그 때일수록 공정한 정신이 필요하다. 국민은 자학하는 분위기를 조속히 처리하도록 위정자에게 촉구한다. 그리고 일본의 문화와 미국의 도움을 함께 게재한다.
경제가 어렵다. 가계 부채가 3000조 원이나 된다. 자살행위가 이어진다. 산불, 공장소실, 자살의 정도가 심해진다. 가계 부채의 돈이 주로 주택담보대출로 이뤄졌다. 386 운동권 세력은 민주공화주의 국민을 어떻게 대했는지 그 성적표를 받은 것이다.
서울신문 이보희 기자(2023.03.18.), 〈인천서 일가족 5명 참극…“가장, 아내·자녀 셋 살해 후 극단 선택 추정”〉, 아버지라고 자식과 부인의 생탈권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 그런데 한이 만든 비극이다. “인천 한 빌라에서 일가족 5명이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8일 인천 미추홀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37분쯤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빌라에서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112에 접수됐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소방당국은 집 안에서 40대 A씨 부부와 어린 자녀들을 포함한 일가족 5명이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 A씨는 방 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고 그의 아내와 자녀 3명은 다른 방에 함께 쓰러져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의 친척은 A씨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자 집으로 찾아갔다가 쓰러져 있는 일가족을 보고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아버지 A씨가 자녀 3명과 아내를 흉기로 살해한 후 자신도 흉기로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에 대해 말이 많다. 헌법정신은 자유주의, 시장경제로 규정한다. 이들 코드에 맞으면 동맹이다. 일본과의 강제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에서 일단락이 난 것이다. 그 배상금으로 고속도로, 포항제철 등을 건설했다. 그 혜택을 전 국민이 누리고 있다. 그리고 그 때의 사정은 학술논쟁에서 거의 진실이 밝혀졌다. 그 후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정교하게 외교문제를 풀고, 위안부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했다. 그걸 문재인 씨가 다시 끌고 온 것이다. 법원은 과거 판례를 뒤엎고, 정치권에 손을 들어줬다. 이는 외교적 수치이다.
일본과의 과거사로 남겨진 것은 ‘부산 문형동 금 도굴사건’정도이다. 그것도 현장검증을 하면 끝난다. 법원은 문재인과 관련된 사건을 막고 있다. 또한 ‘강제징용 문제’도 대법원이 다시 끌고 왔다. 정치권력과 혼숙하고 있는 법원은 어느 나라 법원인지 의심을 하게 된다. 법원이 갈등제조기인 셈이다.
경향신문 사설(03.17), 〈가해자에 ‘면죄부’ 준 윤 대통령, 외교참사 어찌 책임질 텐가〉,
“윤석열 대통령이 1박2일 일본 방문을 마무리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방일을 통해 한국이 얻은 것은 별로 없고 잃은 것은 너무 많다. 윤 대통령은 일본의 식민지배 당시 불법적 강제동원에 면죄부를 주면서도 성의 있는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양국이 성과라고 발표한 조치들도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강제동원 피해 배상과 관련해 ‘일본 전범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현 단계에서 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일본은 전범기업의 배상 참여를 약속하지도, 피해자들에게 ‘사과다운 사과’를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본에서 윤 대통령 결정을 두고 ‘용기 있는 결단’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 일본인 57%가 한국 해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비슷한 비율의 한국인들이 이 해법을 두고 “굴욕적”이라며 분노하는 것과 대비된다. 일본은 숙이고 들어온 윤 대통령을 향해 더 많은 걸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기하라 세이지 일본 관방 부장관은 “기시다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한국이 2015년 합의로 위안부 문제를 더 이상 제기하지 않고 소녀상을 철거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외교부는 위안부 합의가 유효한 합의이며 존중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합의는 많은 피해자들이 수용하지 않아 무력화됐는데, 정부가 일본 요구를 들어주겠다며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 일본은 독도가 자국 영토라는 주장도 꺼냈다.”
독도문제는 다른 문제이다. 그건 하루 이틀 끝날 것도 아니다. 어느 대통령도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이다.’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그게 18일 시위현장으로 이어졌다. 민주당 정치인들, ‘촛불행동’과 ‘건설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300〜400백명 건설노동자들은 키기 작도, 얼굴이 우리 국민과 다른 노동자가 많았다. 경찰은 그들을 정밀 조사할 필요가 있다. 불순세력이 있으면 발 빠르게 속아낼 필요가 있다.
천지일보 김민희 기자(03.18), 〈“한일 정상회담, 이완용이 웃어”… 규탄 집회서 비판 ‘봇물’〉, “한일 정상회담 결과와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외교를 비판하는 규탄 집회가 18일 열렸다. 시민단체들과 야당 인사들은 “을사늑약 때로 역행” “경술국치에 이은 ‘계묘국치’” “매국노 이완용이 웃었다” “그랜드 퍼주기식 조공 외교”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망국적 한일 정상회담 규탄 3차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 등 야권 인사들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전희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친일파가 나라를 팔아먹었던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에 이어서 무려 110년이 지난 2023년 3월 16일을 ‘계묘국치’라고 가르치게 생겼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일본에 구애하며 대일 외교를 펼쳐온 윤석열 정부가 만든 결과들이 경술국치에 버금가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라고 꼬집었다. 전 위원장은 “최대 매국노 이완용이 웃었다”며 “정말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말했다. 백휘선 평화나비네트워크 대표는 시민 대표로 나와 “한일 정상회담에서의 선택은 미래가 아닌 118년 전 우리의 외교권을 일제에 침탈당했던 을사늑약 그때의 시간으로 역행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백 대표는 “강제징용 해법안을 조속히 철회하고 역사를 부정한 자신의 선택에 대해 사죄하라”고 촉구했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와 박홍근 원내대표가 1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강제동원 해법 및 한일정상회담을 규탄하는 3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야당 인사들도 나와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힐난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정권은 피해자의 명시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위변제를 강행하고 있다”며 “아무리 불법이라도 아무리 위헌적이라도 아무리 상식에 반하더라도 일본의 비위만 맞출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굴욕적 태도”라고 비난했다...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는 “일본의 침략 범죄를 정당화하는데 들러리 서고 일본이 내민 청구서까지 들고 온 사람을 어떻게 대한민국 대통령이라 인정할 수 있겠느냐”며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보수도 자유도 민주주의도 아닌 친일 매국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03.18), 〈김태효 “日사과 지금까지 20여차례… 기시다도 2015년 사과문 낭독”〉,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외무상 재임 중이던 2015년 한국 정부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의 뜻을 공식 표명하는 모습이 한국 KTV에 방영되고 있다. 이어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일본의 내각총리대신 자격으로,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일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합의가 극적으로 타결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 합의에 따라 세운 '재단법인 화해·치유재단'을 2017년 해산하고 재단사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하면서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무력화했다. 이후 한일 관계는 초계기 사건, 수출규제, 죽창가 논란 등이 불거지며 악화일로에 빠졌다. /KTV 화면 캡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외무상 재임 중이던 2015년 한국 정부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의 뜻을 공식 표명하는 모습이 한국 KTV에 방영되고 있다. 이어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일본의 내각총리대신 자격으로,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일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합의가 극적으로 타결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 합의에 따라 세운 '재단법인 화해·치유재단'을 2017년 해산하고 재단사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하면서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무력화했다. 이후 한일 관계는 초계기 사건, 수출규제, 죽창가 논란 등이 불거지며 악화일로에 빠졌다. /KTV 화면 캡처.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18일 “우리 외교부가 집계한 일본의 우리에 대한 공식 사과가 20차례가 넘는다”고 밝혔다.”
한이 많은 나라. 그러나 그 울분은 미래를 위한 초석이 되어야한다. 과거 역사를 보자. 임진란(1592) 전 조선은 패거리 당파싸움이 심했다. 6·25도 다를 바가 없었다. 외적이 쳐들어 오는데, 그건 보이지 않고, 상대 죽이기에만 열중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봤다. 그러나 민주공화주의에서 반복된다면 문제가 있다. 국가의 주인은 위정자가 아니고, 국민이다. 부정선거 아니면, 그들도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
일본에 대한 교훈을 들어보자. 지인이 보낸 메일을 소개한다. 〈일본이라는 나라 ~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세계속의 강국이 되었을까 〉, “1.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귀족의 나라로 인정되는 나라다. 2. 독서 제1등 국이다. 이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일본을 배척하기엔 배울게 너무 많은 나라다. 3. 일본인은 국제사회에서 1등 국민의 대접을 받고, 품질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지는 책임 있는 국민이다. 4. 일본인들은 국가를 위해서는 자기를 희생한다. 5. 일본인들은 자기가 몸담았던 조직을 절대로 배반하지 않는다. 6. 일본인들은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래서 원자탄을 만들어 일본국민을 학살한 미국에 무릎을 꿇고 미국을 배웠다. 7. 미국을 배워서 미국을 이겼다. 8. 우리는 미국을 배워서 미국을 이기는 일본인들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일본을 증오하고 무조건 미워만 했습니다. 미워했음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습니까?
1900년대 초만 해도 약육강식 철학이 유행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일본은 강자였고, 우리는 못난 약자였습니다. 지금처럼 당파 싸움만 하다가 망한 것입니다.일본은 문호를 개방하고 과학을 수입하고 실용주의 철학을 익혔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문을 닫고 우물안 자존심만 내세우며 관념주의 말싸움에 밤과 낮을 지샜습니다. 못나서 당해놓고 우리는 잘났던 일본을 지금까지도 원망하고 증오합니다.
왕건이라는 드라마를 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6.25를 상기해 보십시오.
지난 수천 년간 우리 민족이 동족 상호간에 저질렀던 만행 중에 일본인 이상으로 가혹했던 사례들이 과연 없었던가요? 일본이 우리보다 야만적이냐 아니냐 잘났느냐 못났느냐는 지금의 일본인과 지금의 한국인들을 보면 생생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우리보다 몇배나 잘났습니다. 증오로부터는 창의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일본을 이길 수도 없습니다. 오죽 못났으면 약육강식시대에 일본에게 먹혔을까부터 참회해야 합니다.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잘난 것 딱 한 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건강 약품 하나를 만들어도 동물을 상대로 실험을 합니다. 인명은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원자탄을 만들어 그 실험을 일본인들을 상대로 했습니다. 일본인들의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겠습니까? 방사능이 무엇입니까? 그 방사능을 자식에게 대물림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당했다면 미국은 지금도 우리의 철천지 원수일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그 미움을 배움으로 승화 시켰습니다. 일본인은 잘난 미국인을 배우고, 배워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잿더미를 쓸어내면서 미국으로 건너가 공장 문 밖을 기웃거렸습니다.
그들보다 잘난 미국을 배우기 위해서 였습니다. 미국인들은 그런 일본인들을 멸시 했습니다.
"일본인들은 죽었다 깨나도 미국을 따라올 수 없다. 문을 활짝 열고 다 보여줘라".
1957년 당시 덜레스 미 국무 장관이 수많은 일본 군중을 향해 미국의 우월감을 표현했습니다. "친애하는 일본국민 여러분! 일본은 기술면에서 영원히 미국과 경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본은 지금 세계 최고의 손수건과 훌륭한 파자마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것들을 미국에 수출하려 하지 않습니까??" 감히 미국을 흉내 내겠다며 공장 문을 기웃거리는 꼴사나운 모습들을 멸시하는 연설문이었습니다.1957년에 미국에 건너간 볼품없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비웃는 말이 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세계 GNP의 54%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생산 기지가 미국에 있었고, 세계의 신제품은 모두가 "MADE IN U.S.A."이었습니다. 미국인들의 우월감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했습니다. 그들은 미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모든 제품을 쓰레기로 멸시했습니다. 이를 NIH 증후군(Not Invented Here Syndrome) 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모욕을 무릅쓰고 일본인들은 미국으로부터 줄줄이 선생님들을 불러 들였습니다. 1950년에는 그 유명한 데밍 박사를, 52년에는 쥬란 박사를, 54년에는 피겐바움 박사를 모셔다가 과학 경영, 시스템경영, 통계학적 품질관리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데밍상(Deming prize)을 만들었습니다.
일본이 오늘날의 품질 1등국가로 우뚝 솟은 데에는 미국인 스승 데밍 박사가 있었다는 것을 세계에 기념했습니다...(~ 모셔온 글/(k.h.s)(국평동)~)
6·25 민족상잔의 글로 부경대 하봉규 교수가 보내온 글이다. 〈워커캠프) 워커장군이 지도를 가지고 이승만대통령에게 전황과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장교들은 긴장된 모습이다. 지도에는 방어선과 전황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다. 워커 장군(자세를 바로하며)"대통령 각하, 이 방어선은 동서 90km 남북 150km이며 최후의 방어선입니다. 이 방어선을 포기하면 한국도 포기해야 합니다. 미국의 본진이 올 때까지 지켜야할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
이승만대통령(지도와 워커장군을 번갈아 바라보며)". . . .”워커장군(어깨를 펴고)"이 방어선은 낙동강과 산악지형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승만대통령(한숨을 내쉬며)” 내가 알기로 워커장군은 기갑사단장으로 이름 높은 분이지 않소. 이런 전투는 익숙치 않은 것 아니요?" 워커장군(설득하듯)”각하, 무릇 장군은 전략에 통달해야 하고 전략은 전황과 지형의 파악에서 출발합니다. " 이승만대통령(톤을 높이며)"맞아요. 장군. 그런데 우리가 지켜낼 수 있을까요? 알다시피 지난 한달여를 패퇴만 거듭하고 있잖아요." Walker 장군(자세를 고쳐잡고 확신에찬 목소리로)" 네, 각하. 저는 부하장병들에게 나는 한국을 죽을때까지 지키기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산악이 많은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진지전(참호전)을 주축으로 그리고 공군, 해병연대를 기동타격대로 활용하려 합니다. 남부해안은 한국해병특공대와 전투경찰도 지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감탄하며)"오우, 장군이 죽음으로 우리나라를 지키겠다고 하셨군요. 그리고 진지전과 기동전의 결합이라 . . .멋지군요. 마치 시저(Julius Caesar)의 알레시아 공방전을 보는 것 같군요." 워커장군(확신에 차서)"네, 대통령 각하. 낙동강을 경계로 공군에게 적의 탱크와 야포를 집중제거 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전 장병들에게 Stand or Die란 최후 명령을 내렸습니다. 시저의 당시 대회전은 지형 지물을 활용한 전략으로 5만의 군사로 34만의 갈리아병을 제압하고 평정했었습니다. " 이승만대통령(감동하며)"오, 장군의 설명을 들으니 마치 비 온 뒤 무지개를 보는 느낌이오."
워커장군(차분하게)"각하, 전투는 인원과 장비만이 아니라 전략과 의지가 결정됩니다. 저는 평시 군인(soldier)이란 단어에 die가 함께함을 강조해왔습니다. 저는 우리 군을 믿습니다. 반드시 승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승만대통령(생각난듯)"soldier에 die 가? .....역시, 2차대전의 용장 패턴장군의 불독답소. 하하"
워커 장군(차분하게)"이미 남서부전선에서 철야행군으로 적과 조우한 장병들이 최초의 승전을 알려오고 있습니다."
이승만대통령(놀라면서)" 남서부 전선에서 최초의 승전보가요.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군요"
워커장군(자세를 고치며)"네, 대통령 각하. 동부전선은 국군이 맡게됩니다. 적의 예봉이 예상되는 다부동은 가장 믿음직한 백선엽장군이 이끄는 국군 1사단이 자원해 왔습니다. 제가 고마와하지 않으면 안되게 용감하게 싸우겠다고 합니다."
이승만대통령(어깨를펴며)" 오, 백선엽장군이 그렇게 말했군요. 한국군도 용감하게 싸울겁니다." 워커장군(차분하게)"남서부 전선에서도 한국해병대, 전투경찰, 학도병 들이 미군을 돕고 있다고 합니다." 이승만대통령(숙연한 표정으로)"한국말에 용장 밑에 약졸은 없다는 말이 있어요. 이제야 희망이 보이는 군요. 나도 수많은 용감한 지원병을 전선에 보내겠소. 반드시 위대한 승리를 거두도록 하세요. 그리고 전선을 누비는 장군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한국민의 응원이 함께 할거요. "워커장군(고개를 들고)"감사합니다, 대통령각하. 반드시 이기도록 하겠습니다. 군인이 전쟁에서 죽는 것은 최고의 영광입니다."
이승만대통령(눈물을 글썽이며)"오, 워커장군.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