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 그 미녀 수녀님 생각 ........마 광수
내가 스물두 살, 대학원에 다닐 때의 일이다.
그때 나는 연세대학교 부설기관인 <한국어 학당>에서 강사 일을 맡아,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내가 맡은 클라스의 인원은
15명쯤 되었고 한 학기 수업기간은 10 주였다.
모든 학생들이 외국인이라 나는 처음에 무척 수줍음을 타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나중에는 일종의 엑조티시즘(exoticism)을 맛볼 수도 있어 차츰 재미가 붙었다.
그때 내가 가르친 학생 가운데 이탈리아에서 온 아주 젊은 수녀 하나가 있었다.
이름이 아마 '마리아 싼토로'였던 것 같다.
그때가 여름인지라 까만 수녀복이 아니라 베이지색 수녀복을 입고
언제나 단정한 자세로 앉아 내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나는 한 학기 동안 줄곧 마리아 수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너무나 청순하고 천사같이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원래 나는 화장을 짙게 하고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이른바 '야한 여자'를 좋아한다. 그런데도 그때 마리아 수녀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그녀의 얼굴이 화장을 전혀 안 했는데도
정말 그림같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특히 희디흰 피부 빛깔이 너무 고왔다.
백인들이라고 해서 모두 피부가 희고 예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마리아 수녀의 얼굴 피부는 정말 유리알처럼 매끄럽고
투명하리만치 흰 빛을 지니고 있었다. 입술은 연지를 칠한 듯 붉고, 눈은 호수처럼 맑았다.
특히 그녀의 마음씨가 정말로 고왔기 때문에 나는 더욱 강한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웬만큼 흰 피부를 가진 여자는 그런대로 꽤 많지만,
‘백설탕같이 희디흰 피부’를 갖고 있는
여자를 찾아보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마리아 수녀의 피부는 정말 백지장처럼 창백하고
눈(雪) 내린 달밤처럼 교교(皎皎)하고
백설탕처럼 희었다. 그리고 몹시도 매끄러웠다.
여자의 ‘흰 피부’하면 흔히 백인 여성의 피부를 연상하기 쉬운데,
백인 여성들 대부분은 흰 피부가 아니라
‘불그죽죽한 피부’를 갖고 있다. 그리고 피부 표면이
곱게 매끄럽지 못하고 사지(砂紙)처럼 거친게 보통이다.
그리고 거친 잔털이 부숭부숭 많이 나 있어
징그러운 느낌을 줄뿐더러 냄새도 좋지 않다.
이른바 ‘비단결처럼’ 매끄럽게 고운 피부로 말하면
사실 흑인 여성을 당할 수 없다. 하지만
그네들은 너무나 못생겼다. 특히 망치로 찍어누른 듯한 넓적한 코가 그렇다.
거기에 비하면 한국 여자들의 얼굴은 상당히 괜찮게 생긴 편이고,
피부의 색이나 매끄러움이 백인 여성들과 엇비슷할 때가 간혹 있다.
하지만 ‘희디흰 피부 색’과 ‘비단결같이 매끄러운 살결’이 합쳐진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마리아 수녀의 피부는 백인들 가운데서도
극히 찾아보기 어려운, 그야말로 우유빛과 치즈빛을 한데 합친
'대리석'같은 피부였다. 거기에 오뚝한 코와 청초하고 커다란 눈과
핏빛 입술이 합쳐져 정말로 '미녀' 그 자체의 실상(實相)을 보는 것 같았다.
한 학기 수업이 끝난 뒤에 그녀는 나를 그녀가 소속돼 있는 수녀원으로 초대해 주었다.
영등포 어딘가에 있는 수녀원이었던 것 같다. 그날은 마침 수녀원에 부속된 성당에 다니는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이탈리아를 소개하는 영화를 보여주는 날이었다.
나는 먼저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마리아 수녀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를 볼 때,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여자배우로 육체파 미녀
'지나 롤로부리지다'가 나왔는데, 마리아 수녀가 아주 티없이 순진한 음성으로
나에게 "저 여자 참 예쁘지요?" 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전혀 질투심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고, 또 화려한 배우 생활이 부럽다는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야하게 화장했다고 언짢아하는 기색도 없었다.
나는 지나 롤로부리지다의 선정적인 육체미에 솟구쳐오르는 성욕을 느끼며
군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었던지라, 마리아 수녀의 지순(至純)한
심정에서 우러나온 말에 무척이나 부끄러워지는 나 자신을 느꼈다.
그 이후로도 가끔씩 서로 편지 연락을 했는데,
광주의 어느 수녀원으로 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는 소식이 끊겼다.
흔히 '조각같이 완벽한 미녀'라는 말을 쓰는데, 나는 마리아 수녀의 얼굴을 보고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왜 그녀는 하필 수녀가 되었을까?
나는 그것이 무척이나 안타까웠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조심스레
훔쳐보며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한국말을 가르치던 그때가,
흡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마음속에 새삼 선명하게 떠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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