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0년 겨울
11월
리스본에서 엔리케가, 발렌시아에서 알폰소가 각각 군대를 이끌고 무어를 공격하기 위해 출발했다. 무
어 역시 여름에 엔리케가 레콩키스타를 천명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군대를 모아서 수비를 굳건히하고 있
었다.
첫 전투는 코르도바 인근 산악지대에서 벌어졌다. 엔리케군의 탐색대와 무어군이 조우한 것이었다. 탐
색대는 다음 숙영지를 물색하기 위해 소수의 부대만으로 이루어진 부대였는데, 갑자기 나타난 무어군을
보고 대열을 정비했다.
"숫적으로 불리합니다. 후퇴 명령을... 아무래도 여기는 무어인들의 지역이다보니 우리의 움직임을 읽
힌것 같습니다."
한 기사가 말하자 산쵸는 고개를 저었다.
"로드리고 자네 말이 맞는듯 허이. 그러나 그냥 후퇴하면 사기가 떨어질 것이 뻔해. 물론 싸우지도 않은
거긴 하지만 기왕이면 승리하고 돌아가는게 좋지 않을까? 기왕에 우리 포르투갈기사대의 힘도 보여줄
겸 말이지."
"하하, 하긴, 아직 무어인들은 우리 포르투갈기사대의 저력을 모른다고 하더군요. 칼레1)의 꼬맹이들이
싸워봐야 별거 있겠냐고 말입니다. 하하."
산쵸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여유롭게 있을수는 없었다. 무어군이 포르투갈군
탐색대를 향해 한발짝 한발짝씩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위치상으로는 포르투갈군이 우세했다. 포르투갈기병대는 산쵸가 "차지!" 라고 외치자 랜스를 정면에 향
하게 하고는 언덕 아래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양군은 맞부딪쳤고, 무어군 병사들은 포르투갈 기사
대의 랜스에 찍혀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접근전이 벌어지게되자 포르투갈 기사대는 랜스를
버리고는 검을 들어 접근전에 임했다.
그러나 결국 수적 열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기사대들은 패주하기 시작했다. 지휘관 산쵸는 끝까지 자리
를 고수하라고 외쳤으나 그것은 소용이 없었다. 쇄갑기사대 한부대는 적들에게 에워싸이더니 잠시도 못
버티고 후퇴하기 시작했으며, 포르투갈기사대 한부대도 기사단원이 몇명 전사하자 겁에 질려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추격하는 기병대들에 의해 전원 몰살당하는 참상을 겪었다.
"자리를 고수하라! 뭉쳐있도록 하라! 뿔뿔히 흩어져있으면 안된다!"
산쵸는 자신이 이끄는 기병대에게 외쳤다. 기사단원들은 산쵸의 말에 밀집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무
어군이 달려왔고, 기병대는 이들과 맞서 싸웠으나 이윽고 무수히 많은 기사대원들이 말 아래로 쓰러져
갔다. 결국 산쵸는 후퇴명령을 내렸다.
포르투갈군과 무어군 사이의 서전은 무어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 소식을 들은 엔리케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산쵸! 말 좀 해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죄송합니다, 전하. 몸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습니다."
산쵸 역시 여러군데에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상처가 심한지 붕대를 새로 감은지 얼마 안되었지만 금새
피가 묻어나와 그의 몸을 적시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땀으로 얼룩져있었다.
"후우..."
엔리케는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자리에 털썩 앉았다. 다른 지휘관들도 자리에 앉았다.
"...나라면 약간의 굴욕은 감수하더라도 후퇴했을거야. 야영지 탐색은 다른 조도 있지 않은가?"
"그렇긴 합니다만"
"자네의 공명심으로 수많은 기사단원들이 죽었네! 그들은 자네들과 같은 귀족집안의 자제들이야!"
"........................"
"데리고 간 단원들이 아직 전투경험이 없는 단원들이었다는 것 쯤은 감안을 했어야하는거 아닌가!"
"....................."
산쵸는 말이 없었다. 엔리케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손을 흔들어 산쵸에게 물러가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산쵸는 침통한 표정으로 엔리케에게 예를 취한후 물러갔다.
"후우..."
엔리케는 한숨을 내쉬었다. 엔리케군은 엄밀히 말하면 전투부대는 아니었다. 구성원들은 대부분 캐터
펄트를 움직이는 공병들로 구성되어있었고, 전투원들은 수비를 위한 최소한의 병력으로만 이루어져있
었다. 그러나 무어군이 이것을 알아채리지 못하도록 전원이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무어군이 알아채서
대군을 이끌고 공격이라도 해오는 날에는 전멸은 각오해야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 자가 전
투를 치루고, 더군다나 군대는 전멸당하다니. 엔리케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진중의 공기는 무거워졌
고 지휘관들은 땅만 보는 자, 힐끗힐끗 눈치를 보는 자 등 다양했다.
"알폰소는 어떻게되가고있다더냐."
"예정대로 출발했으면 지금쯤 저희와 비슷한 위치에 있을것입니다."
"흠... 서로 반대방향이니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느냔 말이야. 너무 위험한 작전이야."
그러면서 엔리케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아무도 못들을 정도로.
"스페인까지 우리 땅이면 원활하게 무어를 공격할 수 있었을텐데... 구실이 없단 말이지..."
한편 알폰소는 무어군의 이렇다한 저지를 받지 않고 유유히 코르도바를 향해 남하하고 있었다. 그는 왜
반격이 없는지 이상해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에게는 지난 10 여년간 그와 생사를 함께해온 정
예의 병사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12월
마침내 엔리케군과 알폰소군이 코르도바 근처에서 합류했다. 알폰소는 엔리케의 진영에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아버님, 소자 도착했습니다."
"하하, 계획대로 진행되어 참으로 기쁘구나."
"네, 그렇습니다. 헌데 별다른 피해는 없으셨는지?"
"하하, 말도 말아라. 아주 혼날뻔했구나."
"하하, 그렇습니까."
"뭐,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작전은 성공한것 같아. 무어의 수도인 이곳 코르도바만 함락을 시키면 무
어로써는 타격이 심할테지. 그라나다가 마지막 보루가 되겠지만 경제의 요충지는 이곳이니 재정에 심각
한 타격을 줄 수 있을것이야."
알폰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렇지요. 그리고 그라나다까지 점령하면 레콩키스타는 비로소 완료되는 것입니다."
그러자 엔리케의 표정이 반가움을 나타내는 것에서 재미있다는 것으로 변했다.
"완료? 알폰소 왕자, 정녕 그라나다까지 점령하면 레콩키스타가 완료될거라 생각하시는거요?"
그러자 이번에는 알폰소의 표정이 신난다는 것에서 점점 굳어져갔다. 아버지 엔리케가 그냥 '왕자'라고
부르지 않고 '알폰소 왕자'라고 부를 때에는 반드시 무엇인가 트집이 있기 때문이었다. 또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알폰소는 역전의 용장이었으나 아버지 앞에서는 한없이 자신감이 없어지는 사내였다. 그의
마음을 알았는지 엔리케는 이번에는 부연설명을 했다. 보는 눈이 많다는 것도 한몫 했다.
"레콩키스타는 그라나다를 점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것이다. 우리는 예루살렘을 탈환할 것이야."
그러자 사람들의 이목이 엔리케를 향했다. 예루살렘 점령? 어떻게? 드디어 실성하셨나? 50 밖에 안되
신 분이?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다는듯이 엔리케는 콧수염을 여유있게 만지면서 말했다.
"우리는 아프리카를 횡단하여 이집트를 정복하고, 예루살렘에 입성해야 할 것이야."
사람들은 그저 가만히 있기만했다. '그들의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는 이베리아반도에 한정되어 있
었다. 그런데 엔리케는 그보다 넓게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엔리케는 '자신의 레콩키스타'에 대
해 지금까지 한마디의 말이 없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충격 반, 두려움 반으로 엔리케를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이렇다하게 뭐라 말하는 사람이 없자 엔리케는 이럴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해산을 명령했다. 몇일 후 코르도바를 공격할 것이니 푹 쉬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가들은 엔리케의 말에 대해 욕심이 더해진거라고 해석한다. 애초에 엔리케 역시 레콩키스타를 이베
리아반도에만 한정해서 생각했을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알폰소가 예상외로 10년만에 발렌시
아, 바르셀로나, 팔마를 점령하여 이베리아반도의 절반을 영유하게되자 아프리카, 더 나아가 예루살렘
까지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가 그라나다까지 점령한 이후 스페인과의 동
맹을 깨고 스페인을 공격한 것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며칠 후.
포르투갈군이 코르도바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엔리케군과 알폰소군은 합하여 호2) 5천이라고 했는데,
사가들은 대략 3천 정도이지 않았을까 추산하고 있다. 그에 맞서는 수도방위사령관 무스타파가 이끄는
방어군은 2천이었다. 승부는 치뤄보기도 전에 판가름이 나있었다.
엔리케가 코르도바에 도착하여 성을 바라보니 높게 우뚝서있는 모스크가 인상적이었다.
"역시 사백여년 무어의 역사3)는 거짓이 아니구나"
엔리케는 비록 적이긴 하지만 훌륭한 적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는 알폰소에 의해 죽
임을 당한 엘시드에 대해서도 "노선은 달랐지만 이베리아를 진심으로 걱정하던 인물" 3)이라고 평가했
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감상에 젖어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공격명령을 내렸고, 기수가 캐터펄트 모양
의 기를 올리자 캐터펄트부대가 성문과 성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엔리케군의 캐터펄트부대는 성문을 부수는데 성공했고, 이어 성문 양쪽 성벽 두군데에도 구멍을 뚫었
다. 공성병기가 없어서 대기하고 있던 알폰소군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무어군은 보루에 올라 불화살을
쏘아 캐터펄트를 공격했고, 이윽고 캐터펄트 하나가 불을 뿜으며 타기 시작했다.
캐터펄트부대는 보루 두군데를 모두 부쉈고, 성벽 한군데도 무너뜨렸다. 그러자 엔리케는 보병기사대
에 돌격명령을 내렸다. 혼전시에는, 특히 공성전에서는 기병대보다는 보병대가 효과적이었다.
보병기사대는 성 안으로 진입하여 무어군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무장이 잘되어있는 보병기사대에게,
사막지방의 더위로 인해 무장이 간편화되어있는, 무어군이 상대가 될리가 없었다. 이들은 보병기사대
의, 신의 의지와 뜻이 담겨있는, 도끼에 의해 하나둘 죽어갔다.
무스타파로써는 숫적 열세를 극복할 방법도 없었고, 부대간의 역량차이를 극복할 방법도 없었다.
전투는 결국 포르투갈군의 승리로 끝났다. 엔리케는 기존의 전략이었던, 여름이 오기 전에 코르도바를
점령하겠다는 전략이 성공을 거둔데에 만족해했다.
엔리케는 코르도바에 입성하여 이교도들을 학살했다. 이슬람에게 보내는 경고의 의미였다.
이제 다음차례는 천예의 요새 그라나다였다.
------------
1) 칼레(Cale)란 두오로강 입구에 거주하던 초기 정착촌의 이름이다. 기원전 200년 경 로마는 제2차 포
에니 전쟁의 승리를 계기로 카르타고로부터 이베리아 반도를 빼앗은 뒤 칼레를 정복하고 그 이름을 포
르투스 칼레로 바꿨다.
2) 한자는 呼 로 알고 있는데, 아군이 적군에게 '부풀려서'이르는 병력수이다.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은
조조가 적벽에 이르러서 손권에게 보낸 편지에서 100만이라고 떠벌린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때의 100
만은 '호 100만'인 것이다. 실제 정사에서의 조조군은 20만이라 추산된다. 또한 조조는 유수구전투때에
는 '호 40만'이라고 떠벌렸다는 기록도 있다. 실상 중국이나 우리나라는 이런 경우가 많았다. 중세유럽
은 어떠했을지 모르겠지만 대충 비슷했을 것이다.
3) 코르도바는 711년 이슬람 교도의 침입으로 파괴되었으나 756년 압브드 알 라흐만 1세가 후(後)우마
이야 왕조의 수도로 재건하였다. 10세기의 압브드 알 라흐만 3세 시대에 세계 최대의 도시로서 번영하
였으나, 그 후 11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1236년 카스티야의 페르난도 3세에게 점령당하였다.
4) 역사상의 엘시드가 이슬람과 평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던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례로 시라고사에
간 것도 권력투쟁에서 밀려서 간것이었고, 발렌시아를 자기땅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들 등이지요.
만약 엘시드가 이슬람과는 평화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면 엘시드 사후 알모라비데왕조의 군대가 발렌
시아를 포위하지도 않았을겁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레콩키스타를 추진하는 포르투갈과는 대립되는, 화
평노선을 추진했다고 설정합니다.
첫댓글 잘 봤어요 ㅋㅋ 다음연재때는 이슬람팩션으로도 쓰셧으면 좋겟네요 ㅋㅋ
드디어 립흘이 달렸군요. 감사합니다. ㅜㅜ
근데 이슬람팩션으로 해보고싶긴한데... 너무 모르는게 많아서 말이죠... 그래도 이 팩션 끝나면 해볼게요~ 무라드2세가 미래에서 소환된다... 막 이런거 써볼까 생각중입니다만 -_-;;;
히네테스부대는 잘 안 사용하시나요?
저는 단순한걸 좋아합니다. 걍 어택땅 ㄳㄳ
아,,,, 좋아하는 팩션이 당하는 건 마음이 아파서... 이번 포르투갈 편은 립흘달기가 힘든..이슬람 팩션이 아스라이 쓰러지는건..... 슬프다...T^T
아.. 아틸라님에 이어서 쏘울님까지... 다음편은 무어로 해야겠군요. ㄲㄲㄲ
이슬람하면 오스만의 예니체리~
오오 예니체리 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