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노무현재단의 개소식에 다녀왔습니다.
늘 그렇듯 동지들의 웃음 속에서 다시 한번 희망을 봅니다.
재단님들이 떡과 사과까지 챙겨주셔서 사과 한 개를 건물 경비 아저씨에게 드려
차칸 노무현재단 회원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소나무7783님은 저를 구석으로 끌고가 존경과 사랑, 금일봉을 넣어주셨습니다.
존경은 화이트로 지우고 사랑과 금일봉만 고맙게 받아 유익하게 쓰겠습니다.
조금 지난 걸봉일기를 용감히 올려 이 졸필이
성공적인 대통령님 4주기 행사의 불쏘시개가 되길 희망합니다.
[구룡역 - 판교역]
문밖을 나서고 나서야 내가 뭘 잘못 했는지 깨달았다. 바람이 차고 셌던 것이다. 모자를 챙겨 말아 잠깐 고민하다 배낭 가벼운 쪽으로 택하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아직은 분당선과 신분당선이 조금 헷갈리지만 두 신설 노선은 등산화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의지만 있다면 서울에서 못 갈 곳이 없게 만들어주었다. 토건족들에게 고마운 유일한 도시기반시설이다. 오늘 예정노선은 구룡역에서 대모산을 지나 범바위산, 인릉산까지 산행 후 도보로 판교역까지였다.
10시 40분에 구룡역에 도착하니 아홉 용은 어딜 가고 조개 캐는 아낙이 반긴다. 개울 같은 곳에서 웬 조개? 원래 도곡역부터 출발해야 정직했지만 첫 날 왕복구간을 걸었기에 중늙은이에게 양해를 구했다. 한 정거장 정도의 전철편의를 봐줘도 좋다고 허락한다.
쌀쌀한 바람을 동무 삼아 개포동 주공아파트를 따라 걸었다. 가뭄에 콩 나듯 걸려 있는 태극기를 보고 새삼 오늘이 3.1절임을 깨닫는다. 집안을 대표하여 유관순 열사께 사죄의 묵념을 올렸다. 걷다보니 문득 우측으로 양재대로를 끼고 구룡터널쪽으로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머 뜨거라 좌측으로 꺽어 올라가니 8차선 대로가 강물처럼 앞을 막고 있다. 나의 갈 길은 건너편이니 여튼 건넜다. 위험은 나의 몫, 군자대로행 고수.
산길 초입에 '구룡마을은 (서울 최대의 집단) 무허가 판자촌이므로 부동산 거래에 각별히 주의하라'는 강남구청 구청장님의 자상한 훈시가 쇠판떼기 위에 인쇄되어 있다. 길을 따라 산으로 들어가는데 두 갈래의 갈림길이 나온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훈수에 따르자면 사람이 적게 다닌 길을 택해야 하는데 둘 다 바닥이 빤질빤질하다. 마침 허우대가 멀쩡한 총각이 나타났다. 그에게 물으니 이 길은 어디로 가든 구룡산으로 간단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이 헛힘 쓰는 건데ㅜㅜ. 어쩔 것이냐, 가야지. 지금 이 상황에서.
젊은이가 뒷산 산책은 안 해봤나 보다. 구룡산과 대모산 입구라고 적힌 착한 바위가 눈에 띄었다. 왜 안 그러겠는가, 두 산 다 한 능선의 자식인데.
대모산 정상에 서니 12시 10분이다. 10시 방향으로 잠실야구장이 보인다. 등산객이 크게 붐비지 않고 적당히 녹은 산길도 걷기에 편하다. 정상을 지나 두 개 정도의 이정표를 지났는데 중간 목표 헌인릉의 표지판이 보이지 않는다. 우측으로는 계속 철조망이 둘러져 있고. 조금 불안해서 옆에서 쉬고 있는 남자에게 거기로 가는 길이 있냐고 물었다. 없단다. 다 철망으로 막아놓아서 수서역으로 가야 한단다.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코스라 김이 빠졌다. 하지만 결국 헌릉으로 넘어가는 팻말을 찾았다. 비록 팻말이 가리키는 방향이 모호했지만. 20여분간 내려가는데 그쪽에서 올라오는 사람은 딱 한 명있었다.
내려가는 길에 골다공증에 걸린 채 수명을 다한 나무를 만났다. 그 많은 나무에서 홀로 선택을 받은 자, 수 백년 긴 긴 세월, 뿌리박힌 끈질겼던 인연, 다 부질없다 내려놓고 떠나가셨네.
산길이 갑자기 끝나고 이정표가 이름표처럼 붙어 있는 철망 커튼이 나왔다. 당연히 좌측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시선이 닿는 곳 좌우 어디에도 건널목도 토끼굴도 없다. 대충 예습한 자충수. 우좌지간 저 방음벽을 돌아가봐야 방법이 나올 것 같다. 주택공사 아파트 앞에서 왕복 8차선 도로를 건넜지만 범바위산을 찾을 수가 있나. 산으로 올라가는 길 자체가 없다. 머릿속의 지도를 끄집어내면서 무조건 성남IC 반대쪽으로 보도를 따라갔다. 다시 아파트 집단이 나오고 그 뒤를 에워싼 산이 나타난다. 아파트 뒷길로 조금 걸어들어가니 우측 산으로 올라가는 포장도로가 나온다. 기억에 없는 조개종의 법수선원이라는 간판이 나온다. 하긴 이 머리에 기억이 있겠냐. 메모지지. 도로 옆으로 산이 따라가고 있지만 절까지 가서 뒷산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길이 좌측으로 꺽이고 있으니 남으로 이어지겠다는 희망 섞인 추측이 날 이끈다.
5분 정도 올라가니 돌 동자승이 복전함을 앞에 놓고 해맑게 웃으며 반긴다. 더 큰 미소로 답해주고 뒷산으로 오르는 길을 찾으려 머뭇거리는데
어쭈, 이 짐승이 낮은 베이스로 그르렁 거린다. 처음에는 돌연변이 사자인줄 알았다. 오금이 저려 있는데 이내 넉넉한 살집의 스님이 나오길래 ‘이 개 물어요?’라고 인사를 대신했다. 안 문다는 말에 안심하니 중국산 뭐라고 하는 개 소개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스님의 도움은 딱 거기까지. 절 뒤에 길도 없다 하지, 범바위산도 인증산도 모르시겠단다. 뭔 불법(佛法)이라도 물어봐야 하지 않겠나 심사가 불편할 때 그의 친구인 듯한 더 인상 좋은 사람이 나와서 자기도 모른다고 합창하였다. 단 판교역은 서남쪽으로 죽 가면 분명히 나온다면서 ‘그건 내가 맹세코 장담한다’고 호기롭게 말씀 하셨다.
인상과 풍채 좋은 세 스님을 내버려두고 내려오다 옆 산으로 올라가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따듯한 보리차를 마시고 한 대 피우고 내려오는데 아주머니가 두 아이와 가벼운 복장으로 올라온다. 동네분인 것 같아 혹시 이 산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인증산’이란다! 그럼 범바위산을 아시냐고 물으니 그건 모르신다. 확인차 판교역은 아시냐고 물으니 ‘호호, 제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라며 정말 수줍게 대답하신다. 호호... 결국 세곡사거리로 그리고 거기에서 성남방향으로 도보행군은 시작되고.
14:00경에 군대 있을 때 팀스프리트 훈련에 참가하느라 작대기 하나 달고 찾았던 서울공항을 만났다. 감회가 새롭다. 그건 악몽이었다. 일주일 분 식량을 채운 배낭에 소총, M60 기관총 몸통, 주낙하산, 예비낙하산을 착용하고 비행기 타러 한 30분 걸었던, 그것도 악악 군가를 부르며 개폼에 쩔어 걸었던 비행장. 말이 좋아 낙하였지 그냥 비행기에서 강원도 강릉 논밭으로 내팽겨져 굴러떨어져 나왔었지. 어떤 식으로든 최소한의 피해로 잠실의 초고층롯데백화점과 교통사고가 일어나길 .... 지금 이렇게 단촐히 걸어도 참 긴 길이다. 무한대로 뻗어있는 가로수에 한 그루당 2개씩 꽃힌 태극기가 얼른 찢어져라 힘차게 펄럭인다.
서울공항 제1정문 앞의 부조물이다. 새들 쉬어가라고 숲과 폭포, 계곡을 깍아놓았다. 이게 부칸에서 남파한 간첩의 작품인줄 알았다. 얼마전에 TV에서 비행기 외피에 사용하는 강판과 특수 처리된 유리의 강도를 시험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강도 시험에 사용하는 도구는 쇳덩이로 된 추가 아니라 놀랍게도 발가 벗겨진 닭, 요리되기 직전의 생닭이었다. 항공업계의 관행이라던가. 비행장의 새떼는 비행사들의 천적 아니던가. 다시 한번 쥐바기 정부가 허가한 잠실 초고층 롯데빌딩을 상기한다. 어떻게든 최소한도의 인명피해로 망가지길 ...
조금 더 가니 고등동 등자리라는 마을이 나타났다. 다음 지도를 보며 오늘 행군을 준비할 때 사실 인릉산을 ‘인중산’으로 읽었고 등자리를 ‘등자지’라고 읽었다. 내 눈의 상상력에 나도 놀랐다. 남아 있는 몇 개의 건강한 신체 부위에 잠시 사의를 표한다.
다시 한 시간을 더 걸으니 국가기록원(나라·대통령 기록관) + 세종연구소가 나왔다. 또 감회가 없을 수가 없다. 당신이 키웠으나 미친개로 돌변하여 주인을 물어뜯는 악행을 자랑한 기관 아닌가.
두 시간을 걸어도 어찌 판교역은 물론 전철역이란 간판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슬슬 발바닥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마침 길거리에서 처음과 같이 다시 한 사람 청년을 만났다. 시작과 끝에 만나는 자들의 인상이 다 좋다는데 감사한다. 판교역을 물으니 ‘그냥 게에에에속 쭉쭉 가시다가 마지막 T자 길 못 미쳐 왼쪽에 있습니다’하고 알려준다. 20여년 전에 용인천주교 묘지에 다니던 길이었다. 당시에는 분당길이 비포장도로여서 이쪽으로 다녔었지.
이렇게 변했다. 얼마전까지 판교신도시 신도시 하더니 정말 빈말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오피스 빌딩들이 (건물이라고 말 하면 뭔가 없어 보일 것 같은 분위기다) 차분한 파란색 톤으로 통일 되어 상당수의 블럭 위에 세워져 있었고 아직도 공사는 진행중이었다. 그러나 로또라던 이곳의 집값이 과천보다 더 빠졌다나 어쨌다나 ...
양 허벅지에 쌓인 젖산이 나 좀 어떻게 처리해줘, 아우성 칠 때쯤 육군사관학교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화랑공원이라는 공원이 떡허니 나타났다. 화랑공원이라서 그런가. 입구 설치물들이 곧 죽어도 오와 열이네. 그냥 가시라 떠미는 것 같아 ‘안 그래도 간다, 이 ㄴ아’ 하면서 바로 왼쪽으로 꺽어 건널목을 건넜다.
두 번째 블록 중간의 횡단보도를 건너니 3.1절 하루의 목적지였던 판교역이 공사판 판넬 뒤에서 나타났다. 15:56. 거기에서 집까지 두 번 전철을 갈아타고 오는데 걸린 시간은 단 25분.
판교역 역사 안의 조형물이다. 너무 피곤했나. 작품 옆에 뚝 떨어져 있는 작가의 이름과 작품명을 기록하지 못 했다. 타일로 밀짚 질감을 만들어보였다. 판교의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일까. 원래 판교(板橋)는 널판지로 만든 다리로, 보다리, 농다리, 평석교로도 불린다고 한다. 옛날부터 강가에 널빤지로 다리를 놓으면 '널다리', '너더리' 등으로 불렀는데, 이를 뜻에 맞게 한자로 표기하면 판교(板橋)가 되며 지명으로 많이 쓰인다고 한다 (위키백과에서). 현대적 감각에 맞게 테크노 빌리지의 판교를 표현한 것이리라. 그래도 내 다리, 오늘 수고 많았네.
16.7km를 걷고 이 정도 분량의 글을 썼다. 100km 걸으면 아주 책 한 권을 쓸 기세다.
16.7km/19.8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