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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연과 악연
김 난 석
화산이 들어 올린
자그마한 섬
왈리라 불리더니 발리라 하네
물에 떠있는
절벽 신전(神殿)
사위는 푸르기만 늘 푸르기만
돌아 나오는 아낙들
동고리 이고
적도열기 허리에 두른 말레이폴리네시안이여!
남태평양 인도양 넘나드는 곳
그곳이 고향이어선지
웃음도 넘실
동고리에 담긴 꽃들
신전에 바치고
돌아가다 또 한 줌 산천에 바치고
절벽 아래 파도소리 숨 가쁘지만
사람들과 자연과 신들의 조화
사는 게 그것 말고 무에 있으랴
발리 하이 발리하이
멀고도 가까운
지상 낙원이여! / 졸시 ‘발리 하이’ 전문
* 하이 : 遐邇, 원근(遠近)의 다른 말
* 왈리 : Wali, 제물, 제전, Bali 의 원말
십여 년 전에 타계한 구도의 시인 구상은 시 <꽃자리>를 통해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 노래했다. 삶의 근간이 살아있음이라 할 때 좋으나 궂으나 살아있는 이 순간이 화양연화라는 것이다. 과거는 흘러간 기억이요 미래는 내다보는 바람일 뿐이다. 바로 이 순간순간이 삶의 근간이 아니겠는가. 가시방석이든 꽃방석이든 가릴 것 없이 앉아있는 이 순간이 반갑고 고마워 기뻐하자는 것인데,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송가 ‘카르페 디엠’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리라.
방석은 그것이 어느 것이든 씨줄과 날줄로 엮여야 된다. 불가(佛家)에선 이를 인연설로 풀이하지만 인(因 )은 씨요 연(緣)은 물이니 씨가 물을 만나야 싹을 틔우듯 우리의 삶도 이치가 그런 것이어서 홀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가끔은 이웃으로부터 “왜 살아야 하느냐?” 란 말을 듣는다. 그러면 삶이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니 일단은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에 이르기도 한다. 가끔은 또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느냐?” 란 말도 듣는다. 그것은 가치관의 문제이니 스스로 알고 깨달아서 그 무엇은 각자가 찾고 정립해야 할 일이란 생각에 이르고 만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문제에 이르게 되는데, 이럴 때면 ‘더불어’ 란 수식어를 동시에 생각하게 된다. 그 대상은 정물일 수도 무정물일 수도 있겠지만 정물 중엔 나와 같은 사람을 제일 먼저 생각하게 마련이다.
흔히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한다. 세계인권선언에 내포된 의미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너와 내가 똑같은 권리 의무 내지 독립된 인격주체라는 걸 말하는 것이리라. 따라서 정당한 권리 의무 외에 상대방에게 어떠한 것도 강요하거나 제약할 수 없으며, 단지 그런 틀 안에서 자신의 행위를 제어해나갈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중국 위나라의 자공이 공자에게 “평생에 지켜야 할 한마디 말이 있느냐” 고 묻자 공자는 “내가 원치 않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해서는 안 된다(己所不欲 勿施於人)” 고 했다.(논어 위령공 편) 서양정신의 두 기둥이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 할 때 그 한 축이 되는 성경에선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장 12절)” 했으니 동서양의 이 두 지혜를 한데 놓고 보면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의 한계와 해야 할 일의 한계가 이론(異論) 없이 명확하게 드러나게 된다.
행위의 도덕성을 근거 짓는 최고의 원리를 도덕법칙이라 할 때 칸트는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최고의 가치를 지닌 단언적 지상명령으로서 “그대가 하고자 의도하는 것이 동시에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도록 행하라” 했다.(칸트의 정언명령) 위에 든 동양정신과 서양정신의 도덕률이 이 정언명령에서 만나고 있음을 볼 때 양의 동서나 시대의 고금을 통틀어 남의 독립적 인격권을 해하지 않는 행위규범이 명확해짐을 알 수 있게 된다.
수년간 면벽정진하기로 유명한 성철스님은 그의 오도송(悟道頌) 첫 머리에서 평생 사람들을 기만하는 데에 광분했다 한다.(生平欺狂男女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삼천 배를 한 뒤에야 친견을 허락했다든가 많은 법문을 전하면서 이래야 저래야 한다 했을 테니 그를 뉘우친 건 아닐까. 물론 사람답게 잘 살아야 한다는 취지이겠으나 삶의 가치관은 각자의 몫일뿐이요, 단지 더불어 살아나감에 있어 지켜야 할 최고의 덕목은 고유하게 따로 있는 것이라 한다면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걸 남에게 강요하거나 내가 이웃에게 바라는 걸 먼저 하지 않고 바라기만 한다면, 그리고 내가 의도하는 게 남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것이라면 옳지 않다는 걸 알아차려야 하리라.
천구백칠십 년대 중반이었나 보다. 장인어른이 내게 이르기를 아내와 함께 꼭 발리를 다녀오라 했다. 당시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헤아리지 못했거니와 공무원 초임시절이라 해외여행은 생각도 못할 때였으니 그냥 기억에만 담고 지내왔었다. 나에겐 지금도 선생님이라 부르는 몇 안 되는 초등학교 교사시절의 제자가 있다. 그 중 지금도 따르는 두 제자가 있으니 그들은 부부이기도 하다.
부부생활이란 게 늘 행복할 수만은 없는 것이니 내게도 아픈 상처가 남아있다. 평생 공직생활해서 모은 돈을 아내에게 맡겼더니 아내는 그 돈을 더 늘리려 했던지 주식시장의 큰손이라 할 장모님에게 증식을 부탁했었다. 그 일이 잘 되었으면 좋으련만 장모님은 맡은 돈을 증식시키다 모두 인출해 어느 공공기관에 기부하고 나머지는 아들에게 물려준 뒤에 갑자기 운명하셨다. 자지러진 아내는 그 돈을 찾을게라고 동분서주해봤지만 법이란 게 우리 사정만 들어줄리 있으랴. 그게 벌써 4년여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처가와 왕래를 끊는 등 내겐 아픈 상처로 남아있다.
안정된 공직생활을 할 때였다. 부부제자 중 남편이 찾아와 갑자기 돈이 필요하게 되었다 했다. 마침 내게 여유자금이 있었던지라 그걸 모두 빌려줬다. 뒤에 알고 보니 그 돈을 자기 아내에게 잠시 맡긴 사이에 그 아내가 주식거래 하다가 모두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 당황한 나머지 아내가 혼자 찾아와 하는 말이, 남편이 알면 큰일이라면서 무엇이든 선생님이 시키는 일은 다 하겠으니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참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차분히 달래서 돌려보내고 그 남편을 불러내어 긴 이야기를 나눴다. “네 아내와 나를 모두 버릴 것이냐, 아니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것이냐?” 그래서 내가 퇴직한 뒤 매월 일정액을 나에게 보내기로 하고 그 약속을 지키고 있는 제자들이다.
내 아우는 최종학력이 국졸이다.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두 다리 잃고 돌아온 숙부님에게 보내져 수발을 하게 되었으니 학업은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게 애처로워 부모님 돌아가신 뒤에 나는 유산 모두를 아우에게 물려줬더니 이게 웬 횡재냐며 탕진하기 시작하다가 어떤 여인을 만나 가출까지 자행했던 것이다. 생활비가 끊긴 제수씨가 울고불고 야단이었는데 어머니 상례(喪禮) 부조금을 모두 생활비로 넘겨주면서 “돈 떨어지면 돌아오게 되었으니 참고 기다려보자.” 고 달랬었다.
내 장인어른이 좋다 하시던 발리 여행이 내게만 좋은 건 아닐 것이다. 또 모든 건 다 때가 있는 법이니 우물쭈물하다 보면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 내 그럴 줄 알았다.’는 꼴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내 아내와 처가에 아직도 서운한 마음은 남아있지만 희수(77세)를 맞자마자 우리 내외와 내 아우 내외와 내 제자 내외를 불러 함께 발리 여행을 해보리란 생각을 하게 되었었다. 하지만 사정상 제자 내외를 제외한 우리 형제 내외만 한 이레 둘러보고 못난 시 한 수 지어봤지만 역시 사람이 살만한 곳이 되려면 절대자와 자연에 대한 경외심 외에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함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건 또 멀고도 가까운 일이기도 하리라.(2019. 1. 10.)
지난해 나의 형제 내외와 제자 내외가 함께 나들이를 해보리란 계획을 세우고 이른 새벽 인천공항에서 만나 수인사를 할 때는 한껏 마음이 부풀어 올랐었다. 이어서 출국수속을 하려는 찰나에 여 제자가 악! 하며 자지러지는 것이었다. 화장대 위에 올려놓은 여권을 잊고 나왔다는 것이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서로 생각을 모으다가 집에 있는 며느리에게 전화해 가져오라 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초조했던지... 결국 제 시각에 도착치 못해 우리 형제 내외만 출국하게 되었다. 남편이 아내에게 얼마나 치도곤을 칠지 상상이 가는지라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여행을 다시 하자 약속하고 달랬는데 벌써 한 해가 지나 내일이 그 약속을 이행하는 날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세월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 하고 어떤 사람은 세월이 지겹게 지나간다고 하는데 그동안의 나는 내일을 기다리며 세월의 두 흐름을 한꺼번에 느끼며 지내왔다고나 할까보다.
(2020. 1. 5.)
세 집이 발리를 다녀오리란 계획은 제자의 실수로 우리 형제 내외만 다녀왔기에 다시 마음먹고 일정을 꾸며 세 집 내외가 연 초에 일본 오키나와를 다녀왔다. 이로 인해 마음의 짐이 벗겨져 한결 후련한 심정이었다.
허나 이것도 잠시, 나의 공직생활 저축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에서 패소하여 참담함을 견디며 잊을 만 하게 되자 이번엔 처남으로부터 재판 패소에 따른 소송비용 청구서와 함께 재산 압류최고서가 날아왔으니 이걸 어쩌랴. 거기에 더해 제자가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되었으니 후련함은커녕 심란하기 이를 데 없으니 인간만사 새옹지마라 치부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배우자를 만나는 것도, 그로 인해 처가와 연을 맺는 것도, 사제의 연을 맺는 것도 선연으로 시작해 선연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어떤 경우엔 선연으로 만나 선연으로, 선연으로 만나 악연으로, 어떤 경우엔 악연으로 만나 악연으로, 악연으로 만나 선연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악연이 아닌 선연이라 하더라도 쉽게 쉽게 살아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렵게 어렵게 살아가면서 연민의 정에 의해 가슴앓이하기도 하니 이래저래 인간만사 새옹지마라 치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카페에서 글과 댓글을 주고받다가 인연이 되어 어제는 어느 회원이 부인을 대동하고 나를 찾아온다는 거였다. 이 더운 여름날 지하철을 이용하면 좋으련만 승용차로 온다는 거였는데, 잠실 롯데월드몰에서 만나자지만 그 복잡한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어렵거니와 주차요금은 또 얼마나 부담이 되랴. 그래서 인근 내 집 주차장으로 오라 했다. 또 내 집 주차장에 왔으면 내 집으로 들어오라 해야 하겠지만 아내는 늘 출타중이니 차만 주차시키고 롯데로 갔다. 이것 말고 다른 회원이 롯데에서 합류해 담소하면서 냉면 한 그릇씩 먹고 더위를 식혔다.
차 한 잔 하자기에 음악다방으로 옮겨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힐끗힐끗 올려다보기도 하고 너스레를 떨어보기도 하고, 또 이야기도 들어보려니 나 홀로 바라보고 듣는 두 부부의 모습과 이야기가 너무 다정스러워 샘까지 나려했지만 내가 재키를 데리고 살던 오나시스를 부러워할 것도 아니요 빌게이츠의 재력을 부러워할 것도 아니요 칠십 후반에 대권을 거머쥔 바이든을 부러워할 것도 아니니 그저 내 분수 안에서 안분지족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지만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그렇게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안도감도 드는 것이다. 이렇게 펄펄 끓는 더위에 나의 이웃들이 그저 행복하게만 살면 나에게 까슬까슬한 말이나 손가락질도 아니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지난 나의 이야기를 위에 꺼내놓고 오늘도 더위에 마음을 담금질해본다.
첫댓글
나의 이웃이 그저 행복하게만 살면ᆢ
나에게
까슬까슬한 말 한마디
손가락질 하지 않을것인가!
어제도 깨달아
아침에 산책하면서
더불어 사는 여유를 생각해 봤거든요
이럴 때
이런 글을 만나면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요
곡즉전님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이
글에서 느껴져서
속으로
에이!
앞으론 곡즉전님 글에 댓글을
달지 말아야지 ? 했습니다 ㅎㅎㅎ
참 아름다운 인연입니다ㆍ
요즘 더워어 돈공들도 고생하겠네요.
오늘 아침 또 과분한 글을 주셔서 어리둥절합니다.
저희가 높으신 덕담을 들을만한 자격이 너무 부족해서요.
어제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뜻깊은 자리를 가졌습니다.
형님과 아우께 거듭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집사람도 대인을 두분이나 뵙고 좋은 말씀 들었다고 흐뭇해 했습니다.
저의 모친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서로 말을 해야
속을 안다고 했습니다.
어제 비록 편린이나마 석촌형님 인생역정을 듣고나서 존경심이 더욱 커졌습니다.앞으로 자주 자리 마련하여 더 많은 말씀을 듣겠습니다.
저의 빈처를 환대해주시고 격의 없이 대해주신 은혜는 두고두고 잊지 않겠습니다.
따뜻한 배려와 아낌없는 후의와
그리고 과분한 덕담. 그밖의 여러가지...제가 얻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살면서 제대로 다 보은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형님을 모시는 우리의 선연이 오래오래 지속되길 바랍니다.
거듭 거듭 감사합니다.
두 양주가 전격적으로 방문해서 놀라기도 하고 반가웠어요.
삶이라는게 가끔가끔 서로 흐뭇한 감정을 느끼는 데에 묘미가 있어요.
그게 비록 순간적이라 하더라도요.
누구는 더위에 짜증난다 하지만
피서도 그렇게 하는거지요.
한잔 사시랍니다.
석촌님.곡즉전님.
두분의 선연이 세상 끝날까지 이어지시길 바랍니다‥
보는 입장에서 참 흐믓하네요‥
오늘도 편안한 하루요~^^
그럼 동성애 아닌가?
그럼 나는 무슨 생각 하는걸까?
더위 잘 요리해요.
마음결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 그게 최선이라는 신앙으로 살면 좋겠지요.
악인은 악인끼리, 의인은 의인끼리...
중학시절에 숙어 외운다고 땀좀
흘렸는데
플럭 투게더~
@석촌 類類相從...나는 한문으로 외웠는데,
글을 읽으며 선연과 악연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 해보게 됩니다.
우리네 사람들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삶을 살아오며 많고
많은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기
마련이지요.
석촌님의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글 추천하고 갑니다. ^^~
네에 고마워요.
맨처음 사진을 보고 곡즉전님의 부인과 그 자녀들인줄...두딸과 아들,
후처를 보셨나 의아했어요.
좋게 봤다는 거네요.
한 잔 사라고 하세요.
선한 인연
좋지요.
악연은 피하는게 상수이구요.
다 운수소관이에요
부처님은 연을 맺지말라고 그리도 꾸중을 했다는데
그 연이란 아마도 악연을 말씀하신 게 아닐까 합니다
곡즉전님과의 두분의 연은 부처님도 시기할 선연의
정수라 하겠습니다,, 무더위를 날려주는 실로 아름
다운 만남이고 만인이 부러할 만남입니다
네에 운수소관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왜
勿施於人이 떠오르는지 그것이 참 아리송합니다.
석촌님~
더위에 건안하소서
글쎄요
페이지여사가 아리송한 것도
나는 아리송하고.
인연을 귀히 여겨야 하지요
그러나 악연이 될지
선연이 될지는 겪어 봐야 아는 것이니 ...
그럼에도 인간사 인연을 귀히 여겨야겠지요
건강하세요
맞아요
겪어보면 다 알지요.
己所不欲勿施於人.기소불욕물시어인.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라는 뜻으로, 자기 스스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공자(孔子:BC 552∼BC 479)의 가르침을 전하는 《논어(論語)》〈위령공편(衛靈公篇)〉
딩동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