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나의 선생님
임 효 순 *나주중학교 교사/전 순천선혜학교 근무
선생님께 지금 제 앞에는 빛 바랜 원고지에 "파랑새를 읽고 나서"라는 독후감과 "이슬비"라는 동시, "산"이라 제목 붙어진 산문이 놓여 있습니다. 칸칸이 큼직하게 씌인 초등학생의 서툰 연필글씨에 곳곳에 보라색 펜으로 그어진 수정 문장과 기호. 퇴색된 종이의 누런 빛과 원고지 몇 매를 함께 묶느라 칼집을 넣어 접어진 부분이 힘겹게 매달려 있는 것, 너덜거리는 원고지의 귀퉁이 부분 등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 줍니다. 얼마 전 건네주신 저의 초등학교 때의 글짓기 작품들이죠. "세상에 어떻게 여태껏 이런 걸 보관하셨어요. 저도 못 가지고 있는 것을. 이사를 다녀도 여러 번 다니셨을텐데..." 저는 놀랍고도 감탄스러운 마음으로 받아 들었습니다. 제 인생에 선생님께서 처음 등장하시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자니 30년 전 기억의 수직선상에서 아주 앞부분으로부터 시작이 되는군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광주대성초등학교 5학년 글짓기 반에서 배운 원고지 사용법, 맞춤법 등은 대학에 가서 교양작문을 배우면서까지 선생님을 내내 기억하게 했습니다.. "잊지 못할 선생님"으로 제 기억 속에 자리잡고 계셨던 선생님을 다시 만나 뵐 수 있었던 것이 1988년이었지요. 특수교사 자격 검정시험이 있었을 때인데 그 당시 도교육청에서 특수교육 업무를 담당하시던 선생님께서는 저의 시험원서를 보시고 저에게 격려의 글과 함께 공부에 필요한 도움이 되는 자료들을 제 근무처로 보내 주셨습니다. 그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요즈음 TV 프로그램처럼 장면들을 각색하여 볼 수 있었더라면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었을 거예요. 이렇게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저는 만남과 인연이라는 알 수 없는 고리들과 섭리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89년 제가 특수교육으로 전과하여 제 교직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 이후로 선생님께서는 저의 행로에 여러 번 매듭이 되고 분기점이 되어 주셨습니다. 특수교육의 당위성에 대해 지나는 바람에도 쉽게 흔들릴 때, 교육 현장이 나의 이상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섣불리 실망하고 좌절할 때 여러 가지 방법으로 힘을 실어 주시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부추겨 주시고 자상한 안내자 역할을 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제가 연고도 없이 생소한 대구대학에 가서 특수교육을 다시 공부할 수 있었겠어요. 선생님께서 등대 역할을 하지 않으셨다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교육과 권익을 어떻게 지금껏 소리 높여 이야기하였겠어요. 특수교육을 하면서 인간의 다양성과 존엄성을 서서히 느껴가고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속 좁은 편견에서 다소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도 선생님과의 만남이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교사연수회 때, 선생님의 강의를 듣게 되면 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보람, 자기 모순, 현장에서 겪는 갈등, 살아 온 날에 대한 반성, 살아갈 날에 대한 전망을 숨김없이 털어놓은 것처럼 후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세월이 흘러 선생님께서 정년퇴임을 하신다니 뭇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예기치 않았던 낯설고도 엉뚱한 일이 갑자기 일어난 것처럼 생경합니다. 허전함과 자신 없어짐을 어찌할 수 없군요. 하지만 다른 차원에서 우리의 교육계에 빛이 되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사회의 건강한 정신과 살아있는 목소리가 되어 어느 곳에서든 후광이 되어주시겠지요. 그것이 저로서는 위안이고 제 스스로 확신하고 싶은 대안이랍니다. 선생님,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셔요.
2001. 02. 05 제자 임 효 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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