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 최정환씨, 이덕인씨, 박승학씨, 이동재씨등은 모두 생존권을 요구하며 싸우던 과정에서 죽어간 사람들이다. 이들 죽음은 몇몇 장애인단체의 조직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싸움의 과정이 대부분 전노련 등 다른 빈민단체들과의 연대로 확대 전개되면서 장애인계 고유의 자기 목소리와 요구를 집약적으로 알려내지 못했다. 결국 당사자들 혹은 가족에게 보상금이 주어지는 것으로 마감되어 왔다.
장애인 생존권 문제는 장애인문제 중에 가장 본질적이고, 오랜동안 잠재되어 왔던 것임에도 이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과 내용없이 사건이 터졌을 때 일시적으로 대응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장애인 복지 정책과 관련한 정책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사건 이후 장애인 운동 과정에 내용적으로 연결시켜 내지도 못했다.
또한 이런 싸움에 대한 대응이 매번 관련단체 중심으로만 이루어져 생존권문제를 전체 장애인의 문제, 보다 책임있는 장애인 복지 부재의 문제로 폭넓게 알려내지 못했다.
생존권과 관련해 그나마 일상적으로 고민하는 영역인 장애인 고용문제와 관련해서 빈민장애인의 생존권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 정책대안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사실 장애인 고용의 문제는 직업을 갖고 안갖고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권의 문제이므로 노점, 가판대 등도 당연히 고용의 한 영역으로 함께 고민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의무고용율2%만 고용문제가 아닌 것이다.
또한 현재 시행되고 있는 빈민장애인을 위한 생존권 지원 시책에 대해 제대로 알고, 그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여, 현행 시책의 올바른 시행을 촉구하고 새로운 제도를 제시, 시행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이 일부 장애인단체만의 것이 아니라 장애인계 전체가 대응해야 한다. 단체별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문제를 풀어나갈 것이 아니라 전체가 합의할 수 있는 보다 체계적인 내용을 마련하여 집단적인 움직임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 방식만이 장애인 생존권 문제를 정책적인 차원에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토대로 작용할 수 있다.
□ 1993년 8월 10일 공무원이 장애인 폭행
가평지역에 야시장을 벌이려는 지체장애인협회(지장협) 회원들과 공무원이 마찰을 빚게 되는 과정에서 공무원이 장애인을 심하게 폭행하는 일이 발생
지장협은 8월 27일 여의도에서 "장애인 폭행 규탄 및 인권 쟁취 결의대회"를 갖고 장애인 생존권 보장을 요구함.
□ 야시장 단속 성북구청과 장애인 충돌
전국장애인연합회가 성북구 정릉동에 야시장을 열었는데 성북구청에서 불법가건물로 단속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남. 성북구청이 1995년 1월 16일 새벽 4시경에 철거를 강행하면서 장애인을 폭행했고 매상금 80여만원과 휠체어 등을 도난당함. 이 과정에서 장애인 한 명이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되기도 함.
전국장애인연합회는 지금까지 야시장은 각 구청에서 묵인해 왔던 것인데 성북구청이 무리하게 단속함을 주장하며 장애인 생존권 보장을 요구했다.(95.1.20(2))
□ 1995년 3월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씨 분신
1급 지체장애인인 최정환씨가 3월 8일 폭력적인 노점단속에 항의하며 서초구청에서 분신하였다. 최씨는 서초구청의 노점단속반원에게 빼앗긴 스피커 등을 돌려달라고 항의하다 이를 거부당하자 분신을 하고 4백만 장애인을 위하여 복수해달라는 말을 병원으로 이송 중에 하였다(장애인복지신문 95. 3. 10. 1면). 최정환씨는 강남병원에서 21일 사망하였다. 비대위는 연세대서 장례식을 장애빈민장으로 거행하기로 하고 장례위로 전환하고 관련자 처벌과 장애인생존권 확보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기로 하였다(장애인복지신문 95. 3. 24 1면). 그러나 운구이동중 시신을 경찰에 빼앗기고 운구 없는 상태서 영결식을 하였다. 시청에서의 노제는 무산되었지만 연세대에서는 2천여명이 격렬한 시위를 하였다(장애인복지신문 95. 3. 31. 1면)
당시 전노련, 전장협 등 25개 단체가 모여 비상대책위를 구성하여 활동하였으며 서초구청장 해임, 중증장애인 생계보장, 내무부장관, 서울시청장 퇴진 등을 요구했었다.
□ 노점상 철거 항의 장애인 5명 구속
서울시 중구와 성동구 관내 장애인 노점상 20여명이 1995년 8월 26일 오후 3시 노점상 일제 철거에 항의해 성동구청에서 관할 구청장 면담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 공무집행 방해와 집기 파손 혐의로 이들 중 5명이 성동경찰서에 구속되었다. 장애인 노점상들은 이날 밤 성동경찰서를 방문, 구속 장애인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장애인복지신문 95. 9. 29. 1면, 9. 4. 11면)
□ 1995년 10월 이덕인씨 의문사 사건
최정환열사 이후 전노련과 전장협은 "장애인자립추진위원회"(영세장애인에게 상대적 노점 허가지역의 노점자리를 확보, 생계에 도움을 주는 사업을 중심으로 하며, 전노련의 경우 조직강화를 꾀하기 위한 기구)를 구성하여 서울 청계천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노점을 하게 되었다.
인천 아암도도 그 중 한 곳으로 인천지역의 장애인 몇 사람이 함께 장사를 하게 되었으나 인천시의 무자비한 철거 탄압으로 10여미터의 망루를 지어 싸우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11월 28일 실종되었던 이덕인씨가 온 몸이 밧줄에 묶이고, 멍든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당시 경찰은 수영으로 도망가려하다가 익사한 것으로 주장하며 시신을 탈취, 강제부검을 실시하는 등 계속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사인에 대한 진상규명과 폭력철거반 해체, 인천시장 퇴진 등 책임자 처벌, 빈민생존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항의 집회, 병원사수 싸움, 진상조사위 구성 등의 싸움을 벌였으나 11월 28일 시신 발견 후 96년 4월 장례식까지 무려 5개월간 많은 구속자를 만들고 뚜렷한 성과없이 끝났다.
□ 구청단속 항의에 장애인 분신자살 기도(1996년 7월 28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해안도로에서 노점을 하던 장애인 이동재씨(하반신마비, 휠체어), 구청의 노점단속에 항의하며 분신
부산장애인단체연합회 차원에서 대책위를 구성, 영세 장애인 생존권 문제를 제기함.
당시 중태였으나 사망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