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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변죽 울리기[제4구간]
☞ 지경고개/지내고개-영축산-신불산-간월산-배내봉
-배내고개-능동산-가지산-상운산-운문령-외항재 ☜
- 낙동정맥의 백미 : 영남알프스 종주 -
♣ 산행개요 ♣
◆ 산행지 : 낙동정맥 제4구간[지경고개-외항재]
◆ 일시 : 2005. 11. 13.(일)[당일산행]
◆ 날씨 : 맑음
◆ 종주경로 : ☞ 지경고개/지내고개(150m) → 영축산(1,081m) → 신불산(1,159m) → 간월산(1,068.8m) → 배내봉(966m) → 배내고개(735m)/69번지방도 → 능동산(983m) → 석남고개(750m) → 가지산(1,240m) → 상운산(1,114m) → 운문령(630m) → 외항재(450m)/921번지방도 ◀
◆ 산행코스/시간 :
□ 04:40 지내고개/삼남목장입구/산행시작
□ 06:05 대피소/매점
□ 06:19 4각양철통 약수
□ 06:31 바위 전망대
□ 06:45 독수리바위
□ 06:56 영축산(1,081m) 정상표지석/[→신불산 2.95km]
□ 07:34 신불재
□ 07:48 신불산(1,159m)/삼각점
□ 08:00 신불산 출발
□ 08:07 파래소폭포 갈림길
□ 08:28 간월재
□ 08:40 헬기장/전망대
□ 08:51 간월산(1,068.8m)
□ 09:01 간월산 출발
□ 09:25 바위전망대
□ 09:38 암봉 전망대
□ 09:55 암봉
□ 10:02 배내봉(964.9m)/삼각점
□ 10:10 송곳산 갈림길
□ 10:28 배내고개/69번지방도/중식
□ 11:00 배내고개 출발
□ 11:29 억새능선 헬기장
□ 11:32 능동산 3거리
□ 11:35 능동산(983m)/삼각점(언양312)
□ 11:43 능동산 3거리 복귀
□ 12:00 813.2m/삼각점(언양450)
□ 12:29 3거리/석남터널/[←능동산 3.3km, →가지산 2.7km]
□ 12:34 4거리 안부/석남고개(밀양재)/[→가지산 2.5km]
□ 12:55 낮잠 후 출발
□ 13:00 석남사 입구 갈림길
□ 13:07 대피소/매점
□ 13:13 안부/급경사 오르막 시작
□ 13:21 능선분기점/[→가지산정상 1.3km]
□ 13:43 가지산 전위 암봉(1,168m)
□ 13:52 제일관광농원 갈림길/[↖제일관광농원 3.2km, →가지산정상 350m]
□ 14:05 가지산(1,240m)/삼각점(언양11)/[→쌀바위 1.3km]
□ 14:15 가지산 출발
□ 14:33 헬기장
□ 14:41 쌀바위
□ 14:48 대피소/매점/[→운문령 3.5km]/8분 휴식
□ 15:15 봉우리
□ 15:24 헬기장
□ 15:34 상운산(1,114m)
□ 15:43 암봉 전망대
□ 15:59 도로통과
□ 16:09 석남사 갈림길/[↗석남사 2km, ↘가지산정상 4.2km]
□ 16:17 헬기장
□ 16:19 운문령/69번도로
□ 16:30 옛 헬기장터
□ 16:54 894.8m/삼각점(404)/문복산 갈림길/우측 내리막
□ 17:08 790m/좌측 능선 내리막
□ 17:18 포장도로
□ 17:29 와항리/921번지방도/산내 암소고기전문집 단지
□ 17:49 외항재
◆ 산행거리 : 약 30km
[지경고개-4.8km-영축산-3km-신불산-2.2km-간월산-2.8km-배내봉- 1.2km-배내고개-1.2km-능동산-3.5km-석남고개-2.3km-가지산-2.6km-
상운산-2.4km-운문령-3.5km-외항재]
◆ 산행시간 : 13시간 10분(휴식&낮잠 등 포함)
◆ 형태 : 산정무한과 합동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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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山과 詩 ♥
빈 들판에서
무심한 구름 한 점 쳐다보고
문득 들꽃들의 생명력을 떠올린다
미물이 잔뜩 엉키어
땅 속 스멀거리는 하찮은 것들도
저 푸른 하늘에 떠 있는 한 떼의 우수가
영과 욕을 분리시키는 깃발을 올리고
너를 내 안에서 곰삭게 할
갖은 첨가물을 반추시킨다
때로는 가지런히 사랑의 질서가
뒷동산 바람이듯 내 몸과 섞이고
어느 덧 빈 들판에서 떠 가버린 구름자리
나 혼자임을 알았을 때
내 혼미를 누가 깨우는 환청
나도 발걸음 돌리는 어느 한 시대
그 황량을 삼키는
무한의 자유
떠도는 나
- 김송배, “비어 있음에 대하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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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 제4구간 : 영남알프스
나의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 제4구간은 지경고개에서 영축산-신불산-간월산-배내봉-배내고개-능동산-가지산-상월산-운문령-외항재로 이어지는 30여km의 긴 구간이다. 원래의 일정으로는 지경고개-배내고개 구간[4구간]과 배내고개-외항재 구간[5구간]으로 나누어 2차례 산행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한 구간만으로는 거리가 짧아 두 구간을 몰아서 한꺼번에 주파해보기로 한다.
이번 구간은 낙동정맥의 백미인 소위 영남알프스구간을 지나는 구간이다. 정맥이 아니라도 이 나라 산꾼이라면 영남알프스의 억새평원을 떠올리며 한 두 차례는 산행지로 삼았을만한 구간이다. 영남알프스는 울산 울주군 상북면과 경남 밀양군 산내면, 경북 청도군 운문면 등 3개 시도에 모여 있는 가지산(1,240m), 운문산(1,188m), 재약산(1,189m), 신불산(1,208m), 영축산(취서산/영취산, 1,081m), 고헌산(1,032m), 간월산(1,083m) 등 해발 1,000m 이상의 7개 산무리(山群)를 말한다.
혹자는 영남 7산에 간월산 대신에 문복산(1,014m)을 포함시키기도 하는데 이 산은 영남알프스의 산무리와는 북쪽에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이 산무리 중 운문산과 재약산을 제외하고 고헌산-가지산-(능동산)-(배내봉)-간월산-신불산-영축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바로 낙동정맥 줄기이다.
이 지역의 산무리가 유럽의 알프스와 풍광이 버금간다는 뜻에서 영남알프스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충북알프스, 알프스스키장 등 곳곳에 알프스라는 이름이 널려 있어 나로서는 이 나라의 산줄기이름에 굳이 외국의 산이름을 차용하는 것에 대하여는 거부감이 많다. 누가 먼저 영남알프스로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마땅히 부를 이름이 없다면 ‘영남(으뜸)산마루’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는 일단 人口에 회자(膾炙)되는 대로 영남알프스라는 말을 쓰기로 한다.
영남알프스의 산무리 중 낙동정맥 구간에 위치하고 있는 산 중 신불산과 가지산은 한국의 100대 명산에도 들어있다. 신불산(神佛山, 1,209m)은 영남알프스 산군에 속하는 산으로 능선에는 광활한 억새와 바위절벽 완만한 지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작천계곡, 파래소 폭포 등이 있고 군립공원인 점 등을 고려하여 한국의 100대명 산으로 선정되었다.
한편, 가지산(加智山, 1,240m)은 영남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수량이 풍부한 폭포와 아름다운 沼가 많고, 천연기념물 224호인 얼음골과 석남사가 소재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 선정된 산이다.
가지산도립공원 석남사지구의 가지산과 운문산은 음기(淫氣? 陰氣?)가 센 산이어서 그 산의 언저리에서는 도를 깨치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다. 가지산과 운문산에서 10년 공부를 마치고 도를 깨달을 즈음이면 꼭 정체 모를 미모의 여인이 나타나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이곳에서 남자는 도를 닦기가 쉽지 않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가지산 동쪽에 있는 석남사와 운문산 자락에 있는 운문사는 모두 비구니들의 도량이고, 禁男의 蘇塗이다.
경상남도는 가지산-능동산 일원(석남사지구), 영취산 남사면(통도사지구), 정족산 및 천성산 일원(내원사지구)을 가지산 도립공원으로 지정해놓고 있는데 도립공원을 떠돌이처럼 세 군데로 나누어 지정하는 예는 보기 어렵다. 한편, 경남 울주군은 신불산 일원을 신불산 군립공원으로 지정해놓고 있다. 이럴 바에는 아예 영남알프스 산무리를 통째로 통합하여 관리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든 영남알프스 구간은 도립공원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일반인들의 애호를 받는 명산 줄기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이 구간을 2003년 가을에 배내고개에서 남쪽으로 간월산-신불산을 거쳐 영축산에서 통도사로 하산했던 일이 있고, 밀양 표충사에서 재약산-천황봉(사자봉)-능동산-가지산을 거쳐 애랫재에서 운문산까지 진행해본 적이 있으나, 이번에는 낙동정맥종주 일정에 맞추어 다시 만추의 계절에 영남알프스 남북능선 종주에 나서보기로 한다.
이제 가을도 깊어가고 단풍과 억새의 물결이 우리 산하를 일렁이고 있다. 단풍은 결국 일교차에 따른 나무의 스트레스의 산물이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나무일수록 빛깔이 산뜻하다는 그 패러독스! 단풍으로 타들어가는 산도 좋지만 시리도록 흰 억새꽃이 만발한 억새평원도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화려한 단풍보다도 은은한 억새의 물결이 늦가을과 어울린다.
이제 시절은 흘러 억새꽃도 지고 억새줄기만 앙상하게 남아있을 시간이다. 어쨌든 스쳐지나가는 듯이 빠른 가을을 놓치지 말고 이번에 다시 누런 갈색으로 축제를 벌이는 영남알프스 억새평원을 거닐면서 늦가을의 정취를 듬뿍 느껴보기로 하자.
2. 다시 현지에서 이어가는 낙동정맥
2005. 11. 13. 일요일 찜질방의 열기로 새벽 1시부터 계속 잠을 깬다. 처음으로 찜질방이라는 곳에서 잠을 자보는데 더워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화끈한 열기 때문에 목이 말라 2층에서 1층으로 물을 마시러 다니다보니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쉬는 것도 아니었다. 목욕탕에서 열탕에 몸을 담그고 시간을 보내다가 새벽 3시부터 배낭을 정리하고 산행준비를 하였다.
새벽 4시에는 식사를 하고 출발하기로 했던 터라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모두 일어나 목욕을 하고 짐을 챙겨 찜질방을 나와 인근의 해장국집으로 간다. 오르고파님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고생을 한 듯하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눈이 감겨오고 어디 가서 잠이나 푹 잤으면 좋으련만 도대체 정맥이 뭐 길래 새벽부터 이 고생이람!
해장국집에서 해장국 한 그릇을 억지로 쑤셔 넣고 편의점으로 가서 김밥과 과일 등 간단한 간식거리를 구입한다. 이곳은 통도사 관광지라 그런지 밤새 영업을 하는 곳이 많다. 영남알프스의 구간에는 곳곳에 매점이 있으므로 필요할 때는 그곳을 이용하면 된다. 불러둔 택시로 산정무한님과 나는 지내고개로 가고, 밤안개님과 오르고파님은 배내고개로 떠난다. 서로의 장도를 기원하며!
택시는 10여분 만에 통도환타지아를 거쳐 지내고개에 도착한다. 지경고개에서 지내고개까지 1km 정도 정맥길을 생략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거리는 정맥길이 아니라 무시하고, 지내고개에서부터 제4구간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지내고개는 경남 양산시와 울산광역시의 경계지점이다.
3. 독수리의 산 : 영축산(靈鷲山 : 1,081m)
♠ [04:40] 지내고개 출발
지내고개인 삼남목장입구에서 제4구간 산행을 시작한다. 좌측에 취서산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지내고개의 표고가 150m 정도 되므로 표고 1,081m의 영축산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두어 시간 만에 900여m의 표고차를 극복해야 한다. 이런 된비알 구간은 밤중에 무작정 오르고 볼 일이지 벌건 대낮에 가다가는 앞에 우뚝 버티고 서 있는 봉우리에 주눅이 들어 심리적으로 위축될 우려가 있다.
삼남목장의 출입금지 쇠줄을 넘어 랜턴불빛을 비추며 진행을 하다보니 삼남목장 철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초장이라 그런지 길은 잘 나있고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는 길이라 별 무리없이 올라간다. 산정무한님이 랜턴불빛으로 표지기를 확인하면서 제대로 길을 찾아가고 있는 터라 나는 안심하고 뒤따른다.
밤하늘은 초롱초롱 별들의 잔치판이 벌어지고 있고, 은하수의 은빛물결이 하늘을 수놓고 있다. 땅바닥은 단단히 굳어있고, 길가에는 나풀거리는 억새의 정경이 펼쳐지고 있다. 소나무 숲길과 임도를 왔다 갔다 하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캄캄한 밤중이라 어디가 어딘지 정확히 모르지만 표지기가 등대역할을 하고 있어서 묵묵히 표지기를 확인하며 진행한다.
점점 경사도가 심해지는 오르막을 오른다. 지내고개에서 출발한지 30여분 지났을 무렵 배낭을 벗어놓고 솔숲으로 들어가 몸단장을 하고 나니 한결 몸이 가볍다. 그런데 몸단장을 끝내고 능선으로 복귀하여 랜턴을 이리저리 비추며 배낭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아 잠시 우왕좌왕한다.
이리저리 불빛을 비추며 간신히 찾은 배낭을 둘러매고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는데 이제는 산정무한님이 몸단장을 하겠다고 한다. 혼자 오르막을 올라 적당한 자리에 산정무한님이 오기를 기다리며 수북이 쌓인 낙엽 위로 드러눕는 순간 그냥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 다시 산정무한님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보이는 것도 없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냥 정처 없이 치고 오를 뿐이다. 오르막을 올라서면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가로질러 소나무숲 속 능선길 오르막을 올라서면 다시 임도가 나오는 과정이 수차례 반복된다.
새벽 6시가 넘어가면서 주위의 물체를 알아볼 수 있을 즈음에 매점이 있는 전망대로 올라선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이 대피소가 취서산장인 모양이다. 통도사 방향을 바라보니 어떤 골프장 같은 데서 야간경기를 하는지 대낮같이 불을 환히 밝혀놓고 있다. 대피소에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대피소 앞 텐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이 대피소 왼쪽으로 돌아 바위 옆으로 올라 이제는 본격 산길을 올라간다. 4각 양철통에서 약수가 나오는 곳에서 양철통 뚜껑을 열어 물을 떠 마셔보니 생각보다 물맛이 좋다. 너덜오르막을 올라 거대한 바위 전망대에 서니 앞에 우뚝 선 바위가 독수리의 모습 그대로다. 독수리가 날개를 펼칠 태세를 하고 먼 곳을 응시하며 비상(飛翔)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바위의 형상도 독수리의 날개 깃털과 같은 모습이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이 독수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는 못하지만 이 산 이름에 독수리 ‘鷲’자를 쓰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바위 전망대에서 바위 능선으로 오른 다음 좌측으로 밑에서 볼 때 독수리와 같은 모습의 암봉 위로 올라가 본다. 아직 일출 직전이나 사위는 훤한 기운으로 감돌고 있다. 찬 바람이 몰아치는 바람에 한기를 느껴 바람막이 바위에 기대어 땀으로 젖은 윗옷을 갈아입고 조끼도 껴입는다. 이 와중에 산정무한님은 바지를 내리고 거풍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 1,000m 이상의 고도에서 새벽 찬 바람으로 남자의 아랫도리를 쐬면 無病長壽, 萬壽無疆, 極樂往生…
영축산 독수리바위에서 일출의 기운을 받으며 거풍 중인 산정무한님.
♠ [06:56] 영축산 정상(1,081m)
독수리 바위에서 건너와 돌탑을 지나 바위 덩어리인 영축산 정상으로 간다. 연짱 산행임에도 불구하고 지내고개에서 영축산까지 2시간여 만에 별 무리 없이 올라올 수 있었던 것에 안도한다. 사실 처음에는 영축산까지 고도 900여m를 극복하는 것이 힘겨울 것으로 예상했었다. 이 고도차 때문에 오르고파님은 배내고개에서 영축산 방향으로 역주행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영축산 정상의 산정무한님
영축산 정상 표지석에는 해발표고가 1,059m로 되어 있다. 그런데 지도상에는 1,092m로 되어 있는 것도 있는데 정확한 표고는 1,081m라고 한다. 내가 2년 전에 왔을 때에는 표고가 1,075m로 표기된 영취산(취서산) 烏石 표석이 있었는데 이 표석을 들어내고 새로 화강석 표석을 세우면서 표고를 1,059m로 표기하고 산이름도 영축산(靈鷲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영남알프스의 산 중에는 표고가 일치하지 않는 산들이 많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이 산을 취서산(鷲棲山)으로 표기하고 있고, 지도에는 영축산으로 나와 있는 것이 많은데, 통도사에서 영취산으로 부르는 바람에 산이름이 취서산 또는 영취산 등으로 불려지기도 하는 산이다. 취서산은 독수리가 사는 산이라는 뜻이다. 산경표나 대동여지도에는 취서산(鷲栖山)으로 되어 있다. '鷲'자가 옥편에서는 ‘독수리 취’로 되어 있으나, 불교에서는 ‘축’으로 발음한다. 멀리서 바라보는 영축산은 독수리가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며 날개를 펴는 형상이다.
양산시는 통도사 일주문에도 ‘영취산문(瀛鷲山門)’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그 동안 ‘영축산’과 ‘영취산’, ‘취서산(鷲棲山)’과 ‘축서산’ 등 4가지로 쓰여 혼선을 빚어왔던 이 산의 명칭을 ‘영축산’으로 통일하기로 하고 정상표지석도 영축산으로 고쳐서 박아놓았다. 그 이유는 “석가모니가 인도에서 법화경을 설파했던 곳이 ‘영축산’이며, 신라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할 때도 이 이름을 본 딴 것으로 전해지므로 영축산이라는 명칭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 산이름이 영축산으로 굳어지는 듯하므로 나도 영축산으로 부르고자 한다.
영축산에서 북쪽의 신불산으로 뻗어가는 정맥길은 완만한 억새능선길이나, 남서쪽의 시살등 방향으로 첨탑처럼 날카롭게 하늘금을 이루고 있는 능선을 볼 수 있는데 이 능선을 영축지맥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이곳은 평원지대의 영남알프스와는 이색풍경을 연출한다.
영축산에서 시살등-염수봉-금오산-구천산-만어산-청용산-매봉산을 거쳐 밀양강으로 맥을 다하는 45.8km의 산줄기를 ‘영축지맥’으로 부른다. 나는 2년 전에 영축산에서 시살등 방향으로 암릉을 타고 가다가 함박등이라는 곳에서 백운암과 극락암을 거쳐 통도사로 하산했던 일이 있다. 통도사 인근에는 부속 암자들이 엄청 많다.
4. 억새 벌(伐) : 신불산(神佛山 : 1,209m) 신불평원
♠ [07:00] 영축산 출발
이정표상 영축산 정상에서 신불산까지 2.95km의 거리고, 이제 광활한 억새평원인 신불평원이 펼쳐진다. 영축산에서 내려서서 신불산으로 향하는 길에서 동쪽으로 일출의 광경을 목도한다. 붉은 일출이 억새평원을 벌겋게 물들이고 있다. 억새평원을 걷는 것은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는 것처럼 탁 트인 기분을 느끼게 한다. 신불산 방향을 바라보니 백두대간의 선자령에서 시작되는 삼양축산목초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영축산에서 북쪽 방향을 향하여 신불산까지 가는 길은 억새밭 사이로 길이 잘 나 있고, 신불산의 펑퍼짐한 봉우리가 바로 눈앞에 보이므로 부담없이 마음을 비우고 걷는 길이다. 이곳 세상은 온통 갈색 군무가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면서 오는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억새꽃은 이미 바람에 다 날아갔고 갈색 억새 줄기만이 ‘산장의 여인’처럼 쓸쓸하고 처연한 모습이다.
이 동네의 산들은 큰 나무나 숲이 없이 민둥산의 모습이고, 裸身을 들어낸 모습이 보통의 산들과는 다르다. 모름지기 산이라면 나무와 숲으로 풍성해야 하거늘 이쪽의 산들은 누드처럼 모두 홀랑 벗고 자신을 들어내는 모습이다. 그러고 보면 나무와 숲만이 산을 만드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넓은 산정의 평원이 억새와 간간이 보이는 키작은 소나무와 잡목뿐이다.
억새능선을 따라 신불산으로 가는 길 좌측으로는 광활한 평원이고 우측으로는 낭떠러지를 형성하고 있다. 반대방향에서 오는 사람들과 많이 지나치나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은 없다. 뒤돌아볼수록 시살등 능선이 자꾸 눈길을 잡아끈다. 1,045m봉을 지나면서 신불재로 내려가는 내리막과 신불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침햇살을 받은 신불산 등성이가 불그죽죽한 모습의 화염산을 연상케 한다. 신불공룡능의 모습도 들어온다.
신불재에서 신불산으로 오르는 길
영축산과 신불산 사이의 잘록이 안부인 신불재에 내려서면 좌측으로는 신불산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 조금만 가면 신불대피소와 약수터가 있다. 날씨가 차가와 물소비가 거의 없어 약수터는 확인하지 못했다. 신불재에서 신불산정상까지는 15분 정도만 올라가면 된다.
♠ [07:48] 신불산(1,159m)
영축산에서 50분도 채 걸리지 않아 신불산 정상에 오른다. 신불산 정상 초입에는 2000년 새천년을 맞아 삼남면민의 이름으로 빗돌 표석을 세워두웠고, 정상에는 돌탑과 정상석, 삼각점이 있다. 무인중계시설 옆에는 간이매점도 있다. 신불산(1,208.9m)은 영남 알프스에서 가지산(迦智山 1,240m)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영축산이 암봉과 암릉의 험준한 산세로 솟아오른데 비해 신불산은 육산으로 두루뭉실한 언덕을 형성하고 있다.
신불산의 神은 神聖地라는 뜻이고, 佛은 광명을 의미하는 ‘밝다’는 뜻으로 佛은 부처님의 뜻이라기보다는 불(火) 또는 벌(伐)을 뜻한다고 되어 있다. 영남알프스 산무리들의 정상은 넓은 산상 벌(伐) 또는 야(野)를 형성하고 있어 불(火)의 이름이 붙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신불산 정상 표지석에는 지도상의 표고와 같이 해발표고가 1,209m로 되어 있는데, 삼각점(언양 24)상에는 높이가 1,159m로 되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신불산의 높이에 대한 논란이 있자 정밀측정결과 1,159m로 확인하여 최근 지형도에서부터 이를 반영하고 있다.
신불산 정상에서 영축산에서 이곳까지 이어지고, 앞으로 간월산-배내봉으로 이어지는 정맥줄기를 조망해본다. 멀리 가지산의 모습도 들어오고, 좌측으로 재약산과 천황산(사자봉)으로 이어지는 줄기도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사방을 조망해보면 영남알프스의 산무리들이 그저 평범한 산무리들이 아님을 알게 된다.
5. 평원이 있는 신성한 산 : 간월산(肝月山 : 1,068.8m)
♠ [08:00] 신불산 출발
신불산에서의 조망과 휴식을 마치고 간월산을 향하여 출발한다. 편안하게 걷는 길이다. 이렇게 시원한 평원지대를 걷다보니 이곳은 억새산행지로서 뿐만 아니라 한겨울 심설산행지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좌측으로 파래소로 가는 길이 있는 봉우리에서 정맥길은 우측으로 꺾인다. 이 봉우리에 웬 벤치 하나가 놓여있다. 이곳에서 내려서서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를 지나 간월재까지 그냥 떨어진다. 멀리 간월재로 이르는 도로상에는 자동차들이 빼곡히 주차된 모습이 보인다. 내리막길 좌우로는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각목재로 계단을 만들어놓았다. 전방 우측방향으로 보이는 간월공룡능선이 꽤 암팡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간월재에서 간월산으로 오르는 길
인부들이 각목재를 지고 올라와 계단보강작업을 하고 있다.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의 잘록이 안부인 간월재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마룻바닥 같은 이동통로를 만들어놓았으며, 미끈한 돌탑도 세워져 있다. 간월재 우측으로는 등억폭포로 가는 길이다. 간월재에서 바로 직진 오르막을 오른다.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는데 중간중간에 전망대 설치작업을 하고 있다. 헬기장이 있는 공터 전망대를 지나 계속 오르막을 올라서면 간월산이다.
♠ [08:51] 간월산(1,083m)
신불산에서 간월산까지 2.2km의 거리에 시간은 50분 정도 소요되었다. 바위봉우리 위의 정상표지석에는 표고가 1,083m로 되어 있다. 지도에는 간월산의 표고가 1,068.8m로 나와 있는 것도 있다. 간월산 암봉 위에서 10분간 휴식을 취하면서 앞으로 진행할 배내봉과 멀리 운문산과 가지산을 조망해본다.
간월산이 한자로 肝月山으로 되어 있어 무슨 뜻인가 찾아보니 ‘肝’은 우리민족이 오래전부터 써 오던 신성이라는 뜻이고, ‘月’은 평원을 의미하는 벌의 뜻으로 ‘肝月山’은 평원이 있는 신성한 산이라는 해설이 있다.
6. 영남알프스의 중심 : 배내봉(966m)
♠ [09:01] 간월산 출발
간월산 정상 북쪽으로는 표지기들이 많이 걸려있는 것이 정맥길임을 암시한다. 간월산에서 내려서서 잡목능선을 따라 오르막을 올라서면 전망바위가 이곳에서 내려서서 다시 올라서면 암릉길이 이어진다. 다시 봉우리 전망대에서 살펴보니 우측으로는 낭떠러지다.
산철쭉과 잡목이 태클을 하는 완만한 능선에서 억새능선으로 바뀌고 간월산을 출발한지 1시간 만에 배내봉에 오른다.
♠ [10:02] 배내봉(964.9m)
배내봉에 올라보니 사방으로 영남알프스의 산무리들이 펼쳐지는 것을 보니 이 봉우리가 바로 영남알프스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영축산에서 신불산을 거쳐 간월산에서 배내봉으로 이어져 온 산줄기가 요동치듯 일렁이고 있고, 가지산에서 고헌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줄기와 또 광활한 억새평원인 사자평을 품고 있는 재약산에서 천황산(사자봉)-능동산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모두 첩첩 산그리메를 이루며 영남알프스의 멋진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배내봉에서 바라보는 영남알프스 신불산과 간원산
이 배내봉이나 능동산은 해발표고가 1,000m에 약간 미달되어 다른 1,000m급의 산들과 같이 영남7산에는 포함시키지 않고 있지만 높이를 떠나 이 봉우리들이 훌륭한 전망 봉우리임에는 틀림없다. 헬기장이 있는 배내봉 정상은 영남알프스의 다른 산들보다 넓은 공터로 이루어져 있어 사방으로 확트인 조망을 즐길 수 있다.
배내봉이라는 봉우리 이름은 배내마을에 있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배내마을은 재약산-천황산-능동산 줄기와 배내봉-간월산-신불산 줄기 사이에 아득히 자리를 잡고 있는 이천리(梨川里)의 우리말 이름이다. 원래 이곳은 배냇골이라 불리던 이름을 梨川里라는 한자어로 로 고쳐 부르고 있는 것 같다. ‘배내’라는 말이 산에 돌배나무가 많다는 뜻보다는 어머니 뱃속처럼 아늑한 계곡이라는 뜻으로 보인다.
7. 숨고르기 : 배내고개
♠ [10:05] 배내봉 출발
배내봉에서 북쪽 방향으로 완만한 능선을 따라 내려서다 5분 거리에 있는 송곳산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꺾여 내리막으로 내려서야 배내고개로 갈 수 있다. 이정표에는 이곳에서 간월산까지는 2.5km, 송곳산까지는 3.5km로 되어 있다.
배내봉에서 25분 정도면 배내고개로 내려갈 수 있다. 내려가는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있는지 길바닥이 홈이 패일 정도로 움푹 들어가 있고 돌멩이와 자갈들이 튀어나와 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배내고개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다.
♠ [10:28] 배내고개/69번지방도
드디어 69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배내고개에 도착하여 영남알프스의 한 마디 구간을 마무리한다. 지경고개/지내고개에서 배내고개까지 14km의 거리를 오는데 널널하게 5시간 4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따라서 지경고개에서 배내고개까지로 구간획정을 하는 것은 너무 거리가 짧아 배내고개에서 외항재까지의 구간을 거푸 이어가기로 한다. 5시간 산행을 하려고 서울서 무박으로 오고가면서 그 배의 시간을 투자할 이유가 없다.
덕칠이팀은 지경고개에서 배내고개까지의 구간거리가 짧아 정맥길은 아니지만 이 구간에 덧붙여 능동산에서 천황산(사자봉)-재약산(수미봉)까지 돌아서 표충사로 하산하는 일정을 잡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라도 일정조정을 할 필요가 있다.
배내고개에는 최근에 대형 주차장이 마련되었고, 간이매점들도 많이 들어서 있다. 69번 도로로 우측으로 약간 내려간 지점에 있는 매점인 이모집에 들어가 숨고르기를 하기로 한다. 식수를 보충한 후 산정무한님과 함께 라면에 아침에 구입한 김밥을 말아먹고 2구간 連結酒로 막걸리 두 잔씩을 마신다. 밤안개님이 어디쯤 갔을까 알아보기 위하여 전화를 했으나 불통이다.
8. 영남알프스의 軸 : 능동산(陵洞山, 981m)
♠ [11:00] 배내고개 출발
배내고개에서 30여분간의 점심 및 휴식을 마치고 능동산으로 향한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가면 능동산으로 오르는 들머리에 표지기들이 많이 걸려있다. 급경사 오르막을 지그재그로 오른다. 날씨는 늦가을 날씨답지 않게 덥고, 점심으로 많이 먹었는지 몸이 무거워 오르막이 힘겹다. 넝쿨과 억새밭이 계속 이어지다가 참나무숲으로 바뀐다.
배내고개에서 30여분 거리에 있는 헬기장에서 올라서면 능동산3거리에 이르고 정맥길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야 하고 능동산은 직진하여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능동산은 이 3거리에서 2-3분 정도면 올라갈 수 있다.
♠ [11:35] 능동산(983m)
능동산은 정맥길에서 약간 비켜나 있지만 올라보고 오기로 한다. 정상에는 표지석도 세워져 있고 돌탑도 있으며 삼각점(언양 312)도 있다. 능동산 정상(981m)은 높이가 1,000m에 이르지 못하여 배내봉과 같이 아쉽게도 영남 7산에도 끼지 못하고 홀대받고 있는 산처럼 보인다.
능동산에서 바라보는 영남알프스 :하늘금을 이루고 있는 것은 영축지맥
이 산 이름이 陵洞으로 되어 있는데 언덕이나 구릉이 있는 골이라는 뜻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능동산에서 계속 진행하면 천황산과 재약산으로 갈 수 있다. 2003년 늦가을에 지금은 탱크님이 된 백의호님 등과 함께 표충사 집단지설지구에서 1박하고 재약산-천황산을 거쳐 이 능동산에 오른 다음 가지산에서 아랫재를 거쳐 운문산으로 갔던 일이 떠오른다. 백두대간 첫 구간에서 다시 탱크님을 만나 산에서 만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능동산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능동산은 재약산과 천황산을 거쳐 능동산으로 이어진 능선과 능동산에서 가지산으로 뻗어가는 능선, 그리고 배내봉에서 능동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3각 능선의 軸을 이루는 봉우리라 할만 하다.
9. 석남고개 : 달콤한 午睡
♠ [11:43] 능동산 3거리 복귀
능동산에서 다시 3거리로 내려와 정맥길을 따라 가지산 방향으로 간다. 3거리 우측(능동산을 바라보고) 내리막으로 표지기들이 잔뜩 붙어있다. 이곳에서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서는데 이제 억새의 풍광은 사라지고 참나무와 잡목들의 군락지대가 이어진다. 내리막에서 오른 봉우리에서 완만한 능선길을 가다보니 삼각점(언양 450)이 있는 813.2m봉이다.
이 봉우리 이후 석남고개까지는 거의 평탄한 길로 뜀박질을 해도 될 정도의 길이다. 좌측으로 우뚝 버티고 서 있는 가지산의 위용이 기를 질리게 한다. 정오를 넘어가면서 어젯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피로감이 몰려오면서 눈이 슬슬 감겨온다. 산철쭉지대를 지나고 석남터널이 지나는 3거리에 이른다. 이정표에는 능동산에서 이곳까지는 3.3km이고, 이곳에서 석남터널은 0.4km, 가지산까지는 2.7km로 되어 있다.
♠ [12:23] 석남고개
석남터널 3거리에서 내리막으로 내려서면 4거리 안부인 석남고개이다. 능동산에서 3.5km 떨어진 석남고개는 밀양재라고도 하는데 밀양재 밑에는 밀양과 울산을 연결하는 석남터널이 있다. 돌탑이 있는 곳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좌측으로는 석남터널(밀양)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살티마을로 가는 길로 되어 있다.
졸음을 참지 못하고 돌탑을 지난 지점의 낙엽더미 위에 드러눕자마자 그냥을 잠으로 빠져든다. 20여분 후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나 보니 산정무한님도 같이 자다가 일어난다. 산정무한님에 의하면 내가 코까지 골면서 정신없이 잠을 자는 것을 보고 자기도 잠이 들었다고 한다. 20여분 동안 물침대보다도 더 푹신한 낙엽더미 위에서 참으로 달콤한 잠을 잘 잤다. 사실 이 잠 때문에 나머지 구간을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10. 영남알프스의 으뜸 : 가지산(加智山, 1,240m)
♠ [12:55] 석남고개 출발
잠에서 깨어나 바로 가지산을 향하여 출발한다. 석남고개에서 가지산 정상까지는 2.5km. 바로 올려치기를 해야 하는 급경사의 길이다. 석남고개에서 5분쯤 올라가면 우측으로 석남사 방향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7분쯤 오르막을 올라서면 매점을 겸하고 있는 대피소가 나온다.
일요일에 가지산을 찾은 남녀노소 사람들로 등로는 북적인다. 참나무숲 속의 자갈길이이어진다. 이 동네 사람들은 서울사람이 북한산을 찾듯 가지산을 즐겨 찾는 모양이다. 매점에서 5분쯤 거리에 있는 안부에서 급경사의 된비알이 시작된다. 오래된 통나무계단 오르막을 올려쳐야 한다.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이 로프의 도움으로 힘겹게 오른다.
8분 만에 능선분기점의 우측 오르막으로 오른다. 이곳에서 가지산정상까지는 1.3km. 역시 자갈길 오르막이 계속된다. 능선분기점에서 20여 분간 다시 오르막 경사를 힘겹게 오르면 가지산 전위봉인 1,168.8m봉에 오른다. 이 암봉에 올라서면 바로 앞에 가지산이 보이고 가지산 정상에 사람들이 개미처럼 바글바글하게 올라선 것이 보인다. 밤안개님과 통화가 되어 물어보니 외항재로 다 내려갔다는 것이고 운문령에서 외항재까지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알려주면서 힘이 들면 운문령에서 탈출하라고 한다.
전위 암봉에서 가지산까지는 22분 정도 소요된다. 암봉에서 내려선 안부지점에는 좌측으로 제일관광농원으로 가는 갈림길이고, 가지산 방향은 직진이다. 가지산에서 내려오는 산행인파 때문에 길이 막히고 정체된다. 이곳에서 가지산까지는 350m. 이곳에서 13분쯤 마지막 급피치를 내고 급경사 바위지대를 오르면 가지산 정상이다.
♠ [14:05] 가지산(1,240m)
돌투성이로 이루어진 가지산 정상에는 2개의 정상표석과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좀처럼 보기 힘든 1등 삼각점(언양11)도 박혀있다. 전국에 설치되어 있는 16,090개의 삼각점 중 11번부터 19번까지의 1등 삼각점(대삼각본점)은 189개가 있다. 가지산은 경남 밀양시, 울산시, 경북 청도군 도계에 걸쳐있는 영남알프스의 으뜸 봉우리다. 烏石 정상표석 뒷면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지리산 천왕봉의 정상 표지석의 본을 딴 “울산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새겨져 있다.
가지산 정상에서 보는 쌀바위 : 가운데 볼록 솟은 산은 문복산
가지산 정상은 사방이 확 트이고 조망이 매우 좋은 곳이다. 좌측으로 헬기장을 지나 아랫재에서 운문산(1,195m)-억산(962m)-용암봉-중산-낙화산-보담산을 거쳐 비학산까지 이어지는 33.7km의 소위 ‘운문지맥’이 뻗어간다. 지금까지 이어져온 영남알프스의 산무리들이 춤을 추듯 일렁거리고 있고, 쌀바위를 지나 상운산과 운문령을 지나 고헌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도 한눈에 들어온다. 가지산 정상 북쪽 밑에는 매점을 겸한 대피소가 있다.
가지산의 가지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가지’가 아니고 ‘加智’, 즉 ‘지혜를 더해주는’ 산이다. 가지산은 본래 까치산이라는 순수한 우리말 이름으로 가(迦)는 ‘까’의 음을 빌린 것이며 지(智)도 치의 음차(音借)로 까치의 옛말은 "가치"이고 가지산은 옛 "가치메"의 이두로 된 이름이라는 설명이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알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迦智山, 加智山, 伽智山으로 된 설과 함께 까치가 등장하는 설이 있다. 가지산의 또 다른 이름은 울주군 상북면 사람들은 ‘구름재’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자주 구름에 뒤덮이는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가지산은 지금까지의 영남알프스의 산들이 육산임에 반하여 인근의 운문산과 함께 바위산의 위용을 보여준다. 운문산 서쪽의 石骨寺나 가지산 동쪽의 石南寺에서 이 산들은 돌 ‘石’과 관련이 많은 산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대개 석산을 바위의 아름다움에 견주어 여성에, 토산을 밋밋하고 웅장한 맛 때문에 남성에 비유한다. 바위산인 설악산과 토산인 지리산을 비교해보시라. 가지산 정상의 바위는 남성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여성의 섬세함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가지산과 운문산 자락에 있는 석남사와 운문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사찰인 점도 눈여겨볼만 하다.
물론 산을 보는 주관에 따라 느낌은 다를 것이고, 남들이 산에 대하여 하는 말들은 그저 하나의 참고일 뿐이지 결국은 각자가 보고 느끼기 나름이다. 가지산을 까치산으로 느끼든지, 구름산으로 느끼든지, 먹는 가지산으로 느끼든지 그것은 느끼는 자의 자유일 뿐이다.
11. 숨겨진 산 : 상운산(上雲山, 1,114m)
♠ [14:15] 가지산 출발
매점으로 내려가서 식수 1ℓ짜리 한 병을 구입하는데 2,000원이나 받는다. 이제 가지산에서 북동쪽의 쌀바위 방향으로 간다. 이정표에는 가지산에서 쌀바위까지 1.3km로 되어 있다. 내리막을 내려가다 헬기장을 지나면 쌀바위가 발 눈앞에 다가온다. 쌀바위 암봉을 우회한 지점의 전망대 옆에는 어떤 산악인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쌀바위의 위용
암봉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쌀바위의 위용과 영남알프스의 산무리는 역시 영남알프스가 그냥 알프스의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곳 암봉에서 내려서서 돌아서 내려가면 대피소겸 매점이 있는 공터가 나온다. “새천년의 위대한 태양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 운운의 맷돌 비가 세워져 있다.
공터의 오르막 한 자락에서 남아있는 간식거리를 처치하고 상운산 방향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운문령까지는 3.5km이고, 운문령으로 가는 길 중간에 상운산이 있다. 매점 앞 임도를 따라가다가 임도를 버리고 우측 산길 능선으로 달라붙는다. 한 봉우리에서 내려서면 다시 헬기장 옆의 임도와 합류한다.
이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운문령으로 내려갈 수 있으나 정맥길은 이 임도를 가로질러 상운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이곳에서 운문령까지는 2.5km. 이곳의 임도를 가로질러 오르막을 올라서면 운문사 갈림길 능선으로 오르고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1분만 가면 숨어있던 상운산이 나타난다. 가지산에서 쌀바위까지는 사람들이 부글거렸으나 상운산으로 올라서면서 사람들도 없고 낙엽과 함께 하는 호젓한 산길이라 마음이 든다.
♠ [15:34] 상운산(1,114m)
상운산 정상에는 산이름이 한글로 된 烏石 정상표석과 한자로 된 백색말뚝이 세워져 있다. 정상의 공터는 넓지 않다. 이곳에서 보니 앞으로 진행할 방향이 아득하고 좌측으로 문복산도 보인다. 상운산의 표고가 1,114m에 달함에도 이 산은 영남알프스의 산무리 중에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 그저 그런 산이다.
12. 운문령으로 가는 길
♠ [15:35] 상운산 출발
어둡기 전에 외항재에 도착하기 위하여 서둘러 상운산에서 내려간다. 10여분 내려가다 귀바위로 보이는 듯한 암봉에서 좌측 내리막을 내려간다. 다시 운문령으로 내려가는 도로를 만나 숲으로 들어가고 다시 내리막 숲에서 빠져나오니 석남사로 가는 갈림길이다. 가지산에서 4.2km지점인 이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석남사로 가는 길이고(2km), 운문령으로 가는 길은 좌측 임도를 따른다.
운문령으로 가는 도로는 넓은 길이다. 흙길이 포장도로로 바뀌고 숲으로 들어간 길에서 다시 임도로 빠져나온다. 운문령으로 가는 길이 숲길과 임도를 번갈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새벽에 지내고개에서 영축산을 오를 때 임도와 숲길을 왔다 갔다 한 것과 비슷하다. 헬기장을 지나 도로를 따르면 바로 운문령이다.
♠ [16:19] 운문령/69번도로
가지산 정상에서 4.8km 떨어진 운문령은 경북 청도군 운문면과 울산시 상북면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다. 2차선 포장도로인 69번 지방도를 타고 내려가면 배내고개로 갈 수 있다. 이 도로 좌우로 차량들이 빼곡히 주차를 하고 있고, 매점들도 많다.
운문령 도로를 가로질러 산불감시초소 우측의 오르막을 올라서면 폐가 좌측으로 능선길이 이어진다. 시간으로 보아 잘하면 랜턴불빛의 도움 없이 외항재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운문령을 지나면서 호젓한 길에다 사람들의 흔적도 별로 없어 산꾼들이 다니기에는 좋은 길이다. 텅 비어 있는 오르막 산길을 오르는데 좌측으로 상운산이 거대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고, 슬슬 일몰을 준비하고 있다.
옛 헬기장 터인 봉우리를 지나 오로지 낙엽을 밟는 소리만 사각사각 들릴 뿐 천지는 고요하다. 급경사 오르막을 올라선 봉우리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섰다가 급경사의 된비알 오르막을 올려친다. 1구간 막바지에 계명봉을 오르는 것과 같은 오르막이다.
13. 마무리 : 외항재
♠ [16:54] 894.8m/문복산 갈림길
급경사의 오르막을 올라선 봉우리가 바로 894.8m봉으로 문복산 갈림길이다. 삼각점(404)이 있다. 좌측길로도 표지기가 잔뜩 붙어있는데 이쪽으로 가면 문복산으로 가는 길이고, 외항재로 가기 위해서는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서야 한다.
나리막에서 오르막을 오르면 다시 정맥길이 좌측으로 꺾이는 790m봉이다. 낙엽길 급경사의 내리막을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오후 5시가 넘어가면서 날은 어두워지고 조급해진다. 790m에서 10분간을 미끄럼을 타듯 내려가니 포장도로가 나온다.
이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내려가는데 산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없고 표지기도 포장도로를 따라가면서 붙어 있다. 우성사료 사잇길로 내려가니 921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와항마을이고, 암소고기전문집 단지가 있다.
♠ [17:49] 외항재
원래 정맥길 마루금은 마을로 내려오기 전의 포장도로에서 야트막한 야산의 능선으로 921번지방도까지 이어져야 할 것이나 마을과 농토로 마루금이 희미해져버렸고, 이런 이유로 종주꾼들도 그냥 포장도로를 따라 마을로 내려와 종을 쳐버리고 마는 것 같다.
그리고 외항재로 마루금을 잇기 위해서는 암소고기전문점이 있는 도로에서 앞에 있는 동네 야산으로 올라가 우측 능선을 타고 외항재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나 마을 도로에서 야산으로 달라붙을 만한 곳을 살펴보았으나 표지기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사람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외항재까지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구간을 마쳐버리는 것 같다.
날은 어두워지고 날머리를 확인하기 위하여 마을의 921번 지방도 우측(언양방향)으로 내려가다가 3거리에서 좌측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고갯마루에 표지기가 보이고 다음 구간 고헌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곳이 바로 외항재라는 곳이다.
날은 어둡고 언양콜택시(052-254-4545/6)로 전화하여 택시를 부르니 20여분 후에 택시가 도착한다. 처음에는 심야우등버스를 타기로 하고 언양에서 언양 불고기 맛을 보려고 했으나 잘하면 저녁 6시 40분에 출발하는 동서울행 고속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아 기사님에게 빨리 언양으로 가줄 것을 독려한다.
just로 버스시간에 맞추어 언양에 도착하여 버스표를 구입하고(20,800원) 버스가 오는 동안 따끈한 오뎅 국물로 속을 데우니 살 것 같다. 옷을 갈아입을 틈도 없이 동서울행 고속버스에 오른다. 우등고속버스라 안락하게 잠을 자다 깨어나 보니 여주 근방이고, 일요일이라 정체를 거듭하다가 밤 12시가 넘어 동서울에 도착한다.
14. 알찬 하루
오늘 새벽 4시 40분부터 저녁 6시가 될 때까지 낙동정맥의 영남알프스 구간을 거의 대부분 답파했다. 전날의 천성산 구간에 이어 연짱 산행으로 알찬 시간을 보냈다. 배내고개에서 외항재까지 15.5km의 거리를 걷는데 6시간 50분 정도 소요되었고, 지내고개에서 배내고까지를 합하면 총 정맥길 30여km를 걷는데 휴식 및 낮잠 포함 13시간 10분이 소요되었다.
어쨌든 이틀 연속으로 3구간을 몰아쳐 해치운 덕에 산행일정이 한결 여유롭게 되었다. 12월 4째주에 낙동정맥 제5구간으로 고헌산에서 땅고개까지 이어간다. 이제 정맥길은 경상남도를 지나 경상북도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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