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 지리지
우리나라 최초의 전국적인 성씨 관계자료인 이 문헌에는 전체 250여성 가운데 이미 소멸된 망성이 포함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
1486년(성종 17)에 편찬된 이 문헌에는 세종 이후에 귀화한 성과 《세종실록》 지리지 소재 성씨(망성 포함)를 모두 수록한 결과 277성이나 포함되어 있다.
《도곡총설 陶谷叢說》
영조 때 이의현(李宜顯)이 편찬했는데, 298성이 수록되어 있다.
《증보문헌비고》
고종 때 발간한 이 책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존재했던 고문헌에 있는 것을 거의 망라하였기 때문에 무려 496성이나 수록되었다. 여기에 한성화 이전의 고유명자(固有名字)와 이미 소멸전 역대의 망성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후대까지 존속된 성의 숫자는 15세기 지리지 소재 성수대로 대략 250성 내외였다.
송나라 소사(邵思)의 《성해 姓解》에 의하면 한자성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는 2,568성이나 되며, 우리의 성에 해당되는 일본의 씨(氏)는 그 종류가 10만에 가깝다 하니, 중일 양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성종은 많은 편이 아니다. 더구나 250여성 가운데 김·이·박·최·정씨 등 5대성이 전체 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성씨에 대한 전체조사가 최초로 실시된 시기는 1930년도인데 이때 전국에 250성이 있음이 국세조사에서 밝혀졌다. 8·15광복 후 최초의 성씨조사는 1960년도 인구센서스의 부대조사로 실시되었는데, 30년 전의 조사보다 8종이 많은 258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정부수립 이후의 조사는 북한지역이 제외된 남한만의 조사라는 데서 1930년도의 조사 결과와는 정확한 비교가 될 수 없다. 남북분단에 따른 대규모의 인구이동으로 인하여 남북한의 성씨 구성에도 변동이 컸다. 남한지역에만 사는 성씨가 있는가 하면 북한에만 있는 성씨도 많다.
1985년 11월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이 인구센서스를 실시하면서 성씨와 본관을 조사한 결과 1975년도의 247성에 비하여 25성이 새로 추가되어 272성에다 본관은 3,435개로 나타났다.
이 때 나타난 인구 100명 미만의 희귀성씨 40여 개는 호적 기재 착오로 인한 경우와 고아출신이 입적하거나 외국인의 귀화 때 생겨나는 등 최근에 만들어졌다.
이 조사에서 나타난 10대 성씨의 본관수를 보면 김씨가 285, 이씨 241, 박씨 128, 최씨 127, 정씨 122, 강씨 33, 조(趙)씨 56, 윤씨 44, 장(張)씨 63, 임(林)씨 60개로 각각 집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