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주-시루봉(893m-779m : 충주)
*일 시 : 2004. 8. 29(일), '도을'산악회(41명), 날씨(맑음)
*코 스 : 학소대-덕주산성-주능선-702봉-750봉-덕주봉-능선삼거리-855봉-859봉-삼거리
갈림길-시루봉-삼거리가림길-문수동폭포-병풍폭포-수곡용담-억수휴게소
(오전 9시 30분 ~ 오후 4시 24분 완료 → 총 6시간 분 56소요)
새벽 6시 30분.
동교동 전철 2호선 홍대역을 출발한 버스는 사당역을 거쳐 중부고속도로-내륙고속도로에 들었다. 지난주와 같은 중부내륙고속도로와 괴산IC-597번 도로를 타고 기룡목재를 넘어 수안보에 들어선다. 새재로 가는 3번 舊도로 따라 약 1.5Km 南行하다가 만난 첫 번째 삼거리에서 미륵리 방향 597번 도로를 따라 좌회전이다. 우측 복거리 마을농가 울타리에 호박넝쿨처럼 무성한 주황색 능소화가 청아한 아침을 일깨운다.
능소화!
서양에서는 꽃 모양이 트럼펫을 닮았다하여 '트럼펫 클리퍼(Chinese trumpet creeper)'라고 부른다. 또 옛날 양반집 정원에 많이 심었다고 하여 '양반꽃'이라 불렀으며, 하룻밤 임금의 총애를 받고 잊혀진 구중구궐에 갇힌 한 여인이 죽어서 핀 꽃이라는 디오니소스적 전설도 남아있다. 주황색 꽃잎의 고고한 기품을 지키며 무리지어 탐스럽게 피어난 능소화는 동백꽃처럼 만개했을 때 색깔과 그 모양을 지닌 채 낙화한다. 능소화를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은 가슴에 품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는 여인의 고운 자태처럼 쉽게 잊을 수 없다.
석문동-뫼약동을 차례로 지나는 도로변의 빨간 사과과수원 밭에서 뿜어나는 향기가 차창을 뚫고 진하게 느껴져 왔다. 어찌됐건 금년 과일농사는 秀作이다. 과일 맛도 그렇거니와 생산량도 전년과 대비가 안 된다.
오전9시 19분.
사문리 매표소를 통과하여 안말에서 버스는 송계계곡 동달천을 따라 북향이다.
만수휴게소-물레방아휴게소를 지나 얼마후 덕주사 입구 월악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9시 30분이다. 하차 전 박회장의 산행안내가 다소 訥辯이었지만 들머리부터 덕주봉 진입이 무난할까 염려가 됐다. .
한적한 오전, 계곡의 가을냄새가 물씬하다.
<덕주사 입구 → > <덕주사 1.1Km, 영봉 5.8Km>
자연석에 새긴 덕주사를 가리키는 표지와 이정표를 일별하며 배낭 끈을 추스렸다.
하차하기 무섭게 동쪽으로 난 덕주사 입구 소로로 좌측으로 접어들었다. 예보와 달리 태풍의 진로가 바뀐 것은 퍽 다행이었다. 뜬구름이 보이는 전형적인 한국의 가을 하늘은 맑디맑다. 우측 경주김씨 묘소와 좌측의 월성식당((651-6478)을 끼고 오르는 시멘트 포장도로는 이미 殘暑가 남은 열기로 뜨겁게 변해있었다. 흥건한 땀이 등에 배어났다.
덕주사 입구 매표소 부근엔 이곳 특산물인 천연 기념물 제138호 모감주나무 보호림 군락이 있다. 특이한 잎새와 사각형 통으로 맺은 열매가 마치 佛燈처럼 어지러이 매달려있다. 무성한 모감주나무는 집 앞뜰이나 주변에 심어 두면 좋은 관상목이다.
모감주나무(2002년 3월 31일자 '만수-덕주봉' 산행후기에 실었던 일부를 옮김).
황금의 비가 쏟아진다는 뜻의 골든레인트리(Golden Rain Tree)란 영어이름을 가진 화려한 금관 冠飾을 자랑하는 황금빛 꽃 모감주나무는 異名으로 '묘감주나무, 염주나무' 등으로 불리고 있다. 왕관을 장식하는 깃털처럼 고고하고 우아한 황금빛깔 노랑꽃들은 수정이 끝나면 세모꼴 초롱을 닮은 앙증맞은 열매가 따가운 태양을 뒤로하고 가을을 향해 달려가며 그 크기를 부풀려간다.
그 크기는 갓난애의 고사리 싹 머리같이 움켜진 주먹만한 하며 마치 釋誕節에 종이로 만든 佛燈처럼 얇은 껍질이 셋으로 길게 갈라진다. 그 안에는 새카만 종자 세 개가 있다. 굵은 콩 크기의 윤이 나는 씨앗은 익으면 돌처럼 단단해지는데 이것이 염주의 재료로 쓰인다고 한다. 그리하여 모감주 열매의 다른 이름을 <金剛子>라고도 한다. 염주재료로 쓰이는 것으로는 피나무 열매, 무환자나무 열매, 율무, 수정, 산호, 향나무 등이 있으나 그 중 큰스님들이 지닐 수 있을 만큼 귀한 것은 모감주 열매로 만든 염주라고 한다.
한방에서는 말린 모감주나무 꽃잎을 요도염, 장염, 치질, 안질 등에 이용한다고 한다.
옛날 중국에서는 왕에서 서민까지 묘지둘레에 심을 수 있는 나무를 정해 주었는데 학덕이 높은 선비의 묘지에는 모감주나무를 심게 했다고 한다. 落葉性 闊葉 亞喬木으로 단아하게 뻗은 가지, 황금 깃처럼 화사하게 핀 금빛 꽃, 佛燈같이 연 노란 색을 띄운 고운 열매 집과 까만 열매, 연 노란 단풍 등 사철 아름다움을 지녀 관상용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월악산.
1,000m 안팎의 峻峰들이 12개나 솟아있는 월악산은 1984년 12월 31일 우리나라 17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바 있다. 연간 100만 이상 탐방객이 몰려드는 월악산은 단풍 철에 집중적으로 인파가 몰린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곳은 한반도의 中原에 해당되는 행정적, 군사적 요충지로 삼국시대 이래 各國의 각축장으로, 또 문화중심지로 내려왔다. 행정구역상 국립공원 상당부분이 제천시 관할이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충주시에 인접해 <충주 월악산>으로 더 알려져 있다.
지질학상 월악산 주봉인 영봉을 중심으로 이 일대는 석회규산염암이, 그 외 대부분 지역은 흑운모화강암이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곳과 비교해 수직에 가까운 암벽이 크게 노출되어 '바위공원'이라 불린다. 120여종 이상 동물이 서식하며, 한수면 송계리 망개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37호로 지정되었고, 월악산 전지역에 자생하는 수령 300년의 모감주나무(염주나무)는 천연 기념물 제138호로 지정되어 있는 것을 비롯해 약 500여종 이상 식물 분포를 보이는 자연 생태계의 보고다. 1990년대 세 차례에 걸쳐 放飼한 산양이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번식의 성공을 보여 다른 지역의 시범이 되고 있다.
산악회 안내문에 실린 내용 일부다.
덕주봉은 월악산 枝峰들 중에서 가장 늦게 개발된 코스다. 덕주사로 들어가며 우측에 보이는 뾰족뾰족한 암릉으로 연결된 능선이 덕주봉이며, 월악산 정상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오염이 안된 덕주봉 코스가 숨어있다.
단풍나무, 느티나무, 일본목련나무가 보인다. 덕주사 입구에서 약 150m 진입해 만나는 월악산장 앞을 지나자마자 매표소 입구 우측 너른 둔덕이 바로 들머리다. 옛 날 주민들이 '고무서리'계곡으로 넘나들던 지름길로 이용되던 길이다.
들머리 길섶에는 푸르다못해 검은 색깔을 띤 '선피막이'가 무성하다.
'나도개별꽃'이 뜨인다. 날씨를 예보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진분홍색·흰색·보라색 꽃을 피우는 이 녀석의 꽃잎이 닫혀있으면 비가 오거나 구름이 낀 날씨이고, 꽃잎이 활짝 열려있으면 맑은 날씨가 예보한다. 어디 이 녀석뿐인가. 식물은 이처럼 날씨뿐 아니라 그 해의 凶豊은 물론 환경오염을 측정해 환경지표식물로 대접받는다. 핵발전소 주변에 심은 달개비는 꽃 색깔을 변색시켜 원자로의 핵 오염실태까지 알려준다. 우리들이 평소에 무관심하게 흘리고 지나친 식물의 신비를 하나하나 벗기게되면 자연에 대한 새로운 흥분과 접근에 놀란다. 오늘의 일기예상을 주는 나도개별꽃은 가을을 더욱 가깝게 부르는 오늘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壯年의 두을산악회 선두리더가 이끄는 일행들이 우측둔덕 들머리지점을 향해 오르는 것을 목격한 공단관리직원이 작은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며 극구 만류다. 덕주봉 능선은 등산금지구역이다. 출발 전부터 예감한 사연이지만 현실화됐다. 그러나 산행 매니아들 사이엔 비공식적인 숨겨진 코스를 선택하고 있다. 초면의 산악리더에게 제2 코스를 알려줬다. 덕주사를 향해 잠시 오르면 학소대 옆 덕주산성 안쪽을 끼고 올라가는 루트다. 우측 덕주계곡의 맑은 물살이 일군 沼가 가을하늘만큼이나 청명하고 시원하다.
9시 45분.
쪽동백, 산죽, 느릅. 물푸레, 비목, 굴참, 졸참나무 숲을 따라 포장소로를 잠시 오르면 이내 학소대와 덕주산성이 나온다. 선두에서 산성 안쪽을 감고 돌며 들머리를 안내하고 이후는 리더에게 맡겼다. 이 지점부터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다. 시작부터 돌 너덜길을 따라 급박한 오르막이다.
9시 55분.
숲 사이로 좌측 산록에 덕주사가 보인다.
땀은 왜 그렇게 주책없이 소나기가 되어 흐르는지.....
일부 붕괴된 산성지대를 지나면 암릉지대다. 산악회가 매어놓은 로프를 타고 올라가는 다소 까다로운 지점이 몇 군데 있었다. 암벽 표면에 무성하게 번식하는 '부처손'이 건강하다. 누리대, 취나물, 뚝갈이 오는 가을을 장식하며 소담한 꽃향기를 발산한다.
10시 13분.
흘린 땀의 代價만큼 기어이 덕주봉 주릉인 암릉에 올랐다.
昨醉미성인 S씨의 행보는 걱정이 안될 정도다. 행보가 예전에 비해 飛虎다. 본인은 술기운으로 비몽사몽간에 올라섰다는 코믹한 변명이다. 좌측 어깨 높이로 월악산 능선이 이어진 끄트머리에 얹어진 영봉의 암봉이 마치 후지산 머리처럼 다가왔다. 우측 능선에 높이 40m에 이르는 왕관바위가 마주 보이는 전망바위다. 산성 옆구리를 들머리로 통과한 탓으로 왕관바위는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수렁보다 깊숙한 덕주골 계곡과 덕주사 전경이 아담한 자태가 보이는 702봉 암벽아래다.
잠깐이면 밟힐 것 같은 근거리로 다가온 덕주사를 조망하는 맛도 덕주봉 능선에서 가져보는 施惠다. 문득 뒤돌아 내려온 능선을 잠시 복습하듯 대견스런 눈으로 훑어봤다. 촛대같이 예리한 列石 봉우리들은 骨山의 풍취를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월악산의 白眉다. 702봉 아래에서 우측으로 迂回하여 올라가는 오르막에 잠시 땀을 떨구었다.
10시 13분.
702봉을 지났다. 우측 깊숙하게 패인 고무서리 계곡에서 불어오는 골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계곡을 내려다보는 쾌감도 혼자서 감당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다. 정면으로는 덕주봉과 그 우측으로 만수봉이 살며시 머리를 쳐들고 있다. 시계방향으로 용암-박쥐-마패-북바위산-용마봉-월악 영봉이 원을 그린다.
가을 매미소리가 요란하다. 어떻게 들으면 죽음을 앞둔 최후의 절규나 斷末魔로 들려 안쓰러운 마음이다. 무릇 모든 생물의 최후가 저러할진대 달리 생각할 겨를이 있겠는가. 어제 조선일보 '날씨이야기'의 이위재 기자가 소개한 가을매미이야기가 실감나게 닿는다.
조선 후기 여류문인 강정일당이 남긴 <聽秋蟬>(가을에 우는 매미)이다.
萬木迎秋氣(만목영추기) 어느덧 나무마다 가을빛 물 들어가고
蟬聲亂夕陽(선성난석양) 석양에 어지러운 매미소리들
沈吟感物性(침음감물성) 제철이 다하는 게 슬퍼서인가
林下獨彷徨(임하독방황) 쓸쓸한 숲 속을 홀로 헤맸네
석양의 매미가 아닌 한낮의 매미요, 홀로가 아닌 山친구들과 함께 거니는 지금이 조금 다른 입지다. 가을은 이렇게 매미울음과 같이 우리들 곁을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다. 매미 울음소리를 지척에서 들을 땐 100db이다. 주거지역 소음한계가 55~70db인 것을 감안하면 그 소음정도가 어떠한가를 알만하다.
소리의 세기는 진동하는 물체의 진폭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진폭이 클수록 소리가 세며, 진폭이 작을수록 소리가 약하다. 소리의 세기의 단위로는 dB(데시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여러 소리들의 세기와 영향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0 db 가청 한계
10db 나뭇잎 소리
20db 방송국 스튜디오
30db 도서관 매우 조용
40db 심야의 주택가 야간 소음 기준
50db 일반 주거 지역(주택가) 주간 소음기
60db 에어컨(6m 거리) 고성 대화(1.2m)
70db 고속 도로(15m 거리) 전화 통화 곤란 80번화가의 교통 소음
90db 대형 화물 트럭(15m 거리) 청각 장애(8시간)
100db 기차의 기적 소리(20m 거리)
110db 자동차 경주
120db 제트기 이륙(60m 거리) 목소리 최대치
인간의 청각능력의 한계의 최저와 최고치는 0db과 160db이다. 최저치는 너무 작아서, 최고치는 너무 커서 가청능력을 상실한다. 예를 들자면 인간이 지구가 자전·공전을 하는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어디 인간의 오감이 이것뿐이겠는가.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오감과 6감을 盲信한다. 이 점 또한 우리들의 한계일 성싶다.
계속해서 세미 크라이밍 지대를 세 차례 거쳤다. 암릉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好機다. 그 때마다 긴 로프가 마련되어 있는 암릉지대인데 雪中산행과 우중산행 때, 또는 노약자에겐 다소 부담이 되는 코스다. 머리에서 등을 거쳐 허리-허벅지 종아리로 흐르는 땀의 落水로 이미 양말은 축축해진 상태다.
10시 46분.
뒤돌아 본 덕주골과 송계계곡이 확연하게 조망된다.
박쥐봉-북바위산-석문봉-용마산-수리봉 일대 능선이 병풍을 두르고, 하늘재에서 돌올한 백두대간 능선이 그윽한 마루금이다. 그 서늘한 푸른빛이 초가을과 무척 어울린다는 생각이 다. 북쪽으로는 충주호 일부가 산록사이에 떠 있다. 마치 山庭호수처럼 말이다.
11시 06분.
750봉에 올랐다. 사방은 충청도 특유의 아기자기한 세밀함과 세련미가 보이는 능선과 골짜기가 절경이다. 암반 위에 올려진 노송들은 그림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런 풍류를 안긴다. 일행들을 기다리는 긴 시간을 흘렸다. 우측 고무서리골의 상승바람이 더위와 관계없이 더없이 소슬하다. 다시 지루한 능선의 완만한 오르막이다. 숨가쁘게 올려쳤던 능선에 비교하면 수월하다는 생각이다.
11시 42분.
2002년 3월인가 한솔산악회 산행(용암-만수-덕주봉) 당시 덕주봉을 내려오며 만끽했던 풍광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남겼던 지점인 계단처럼 생긴 2단 암반이다. 양경태-이혜명-김창돈씨와 들던 蔬食(삼겹살과 양경태씨 전유의 술)이 생각나자 금새 공복감이 엄습한다. 그때는 무척 날씨가 싸늘하고 고약했었다. 두 번째로 만난 2단 암반지대를 지나면 고사목이 누워있는 암릉이다. 초가을 바람은 30도의 태양 빛을 녹인다. 山구절초, 누릿대가 보이는 어른 키 높이의 산죽 숲 능선이다. 다시 긴 휴식을 가졌다. 先登한 장년일행들이 쉬어가라는 권고다. 다시 동료들과 합류한 직후 자리를 털었다.
덕주봉 정상에 오른 시각은 12시 15분이었다.
예상보다는 다소 늦은 시각이다. 동료 K씨의 행보가 다소 처진 탓이다.
정상 공간 중앙에는 가슴 높이의 돌무더기가 쌓여있다.
<덕주봉 893m, 00산악회>
소나무에 아크릴 판으로 만들어 걸어놓은 정상표지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겼다.
우측에 펼쳐진 병풍처럼 둘러친 흰색 수직 암벽들이 호위병 같다. 월악의 속살은 더욱 화려한 빛이다. 월악산 국립공원 가장자리 모서리에서 主峰을 받쳐주는 枝峰들 중 가장 늦게 알려진 덕주봉 능선은 오염이 가장 덜된 깨끗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서쪽으로는 뫼약동을 경계로 백두대간 지점인 마패봉이 내려오다가 다시 솟아 북바위산-석문봉-수리봉 줄기가 남북으로 뻗어 월악 주릉을 연꽃잎처럼 호위한다. 우측으로 월악산 등줄기가 곳곳에 박힌 수직암벽을 기둥 삼아 아름다운 자연미를 연출한다. 960봉과 영봉 줄기가 살아 움직이는 자벌레처럼 꿈틀거린다. 눈이 시리고 영혼이 아릴 만큼의 화려한 월악의 속살을 한눈으로 본다는 사실에 고마울 뿐이다. 한적한 덕주봉을 찾는 이들에게 안겨주는 월악의 시혜다. 준비한 蔬食을 나눠 먹는 기쁨을 무엇과 비교할 텐가. 2002년 3월 31일에 겪었던 기억들 모두가 刃創처럼 되살아난다.
월터 새비지 랜더(Walter Savage Landor 1775~1864).
<그의 일흔 다섯 살 생일에 부쳐>(on his seventy-fifth birthday)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죽음을 앞둔 어느 勞철학자의 말' 일부 시구라도 깔아 둘만한 지점이다.
Dying Speech of am Old Philosopher
I strove with none;
for none was worth mt strife;
Nature I loved, and next to nature, art;
I warmed both hands before the fire of life;
It sinks, and I am ready to depart.
나는 그 누구와도 싸우지 않았노라.
싸울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가 없었기에
자연을 사랑했고, 자연 다음으로는 예술을 사랑했다.
나는 삶의 불 앞에서 두 손을 쬐었다.
이제 그 불길 가라앉으니 나 떠날 준비가 되었노라.
자연과 인간을 사랑하고, 그런 인간이 만든 예술을 사랑하고 후회 없이 떠나는 시인의 여유를 조금이라도 歆饗하자. 그런 평화로운 이 시간을 소유함을 행복으로 알자.
山竹 군락지가 때맞춰 불어오는 소슬한 바람과 햇살에 비쳐 흥청거리는 初秋냄새가 흥건하다. 다시 시작되는 암릉구간을 지나면 산죽과 잡목 숲이 하늘을 가린 얕은 오르막이 나온다.
한 낮인 12시 41분.
만수봉에서 북쪽 아래 250m 지점인 능선삼거리 갈림길이다. 우측은 만수봉으로 향한 얕은 오르막이고, 좌측은 영봉으로 내려가는 삼거리다. 후미를 기다리기 위해 휴식하는 마음이 꽤 무덮다. 8월의 마지막 땀을 모두 이곳에 털어 내야 할 오늘이다. 3년 전엔 이곳에 <No trail>이란 지시표와 로프로 막았던 덕주봉 능선입구엔 대신 <덕주봉 ↑> <영봉 →> 이라 표시한 작은 아크릴 판 표지가 걸려있다. 그렇게 또 한참을 기다린 끝에 일행들과 합류했다.
<만수봉 0.6Km↔만수교 3.7Km> <월악 06-07>
영봉을 향한 능선에 세워진 이정표다.
멀리 용하구곡과 수문동계곡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馬肥처럼 살찌우는 바람이다. 얕은 경사의 오르락과 내리락의 반복이다. 들머리에서 숱하게 깔려있던 며느리밥풀꽃의 변종인 흰색며느리밥풀꽃을 발견하곤 얼른 카메라에 넣었다.
12시 55분.
855봉에 올랐다. 여전히 불어주는 계곡의 바람은 오늘의 피로를 건지라는 부처의 배려로 생각했다. 잡목이 하늘을 가린 능선을 걷는 통쾌함을 무엇과 비교하랴.
1시 16분. 뜨거운 한낮의 태양이 꽂히는 859봉이다.
사방이 트인 민대머리 정상은 뜨겁게 달궈진 바위들이 8월의 열기를 뱉어내고 있다.
지난 여름은 꽤나 더웠다.
지난 5월 22일자 보도에는 혹한의 대명사였던 시베리아가 관측사상 최고 기온인 33도까지 올라가는 酷暑를 자랑한 5월 20일의 일기가 거짓말처럼 들려왔다. 1주일 전까지 두툼한 외투를 입고 다니던 시민들이 반 팔과 반바지차림을 차리고 활보하니 기상천외의 진풍경이 아니겠는가. 노보시비르크 기상국은 '이상고온현상으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스텝지역에서 형성된 강력한 고기압의 유입으로 빚어진 현상'이라고 했다. 당일 모스크바 기온도 영상 10도였다니 北上한 금년의 더위가 비교할만하지 않은가.
1시 16분. 859봉에서의 긴 기다림이다.
일행 중 50대 여인이 후미에서 뒤뚱거린다. 애써 全코스에 참여한 그네의 열정은 이해되지만 오늘 행보로는 다소 무리라는 생각이다. 그네와 동행했다는 사람과의 격차도 심각하게 멀어졌다. 남의 이야기로만 보이지 않았다.
약 20분간에 걸친 기다림 끝에 동료일행과 합류했다.
이내 갈길 바쁜 우측 시루봉 능선을 향해 일어섰다. 통행인적이 드문 탓인지 능선코스가 선명하지 않다. 거의 원시림에 가깝다. 이런 코스에 익숙한 본인으로선 재미있는 일이겠지만 동료들에겐 다소 부담이 되리라 생각했다.
오후 2시 14분.
산죽이 깔린 안부에서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했다. 한 땀을 다시 뱉어야 할 계제다.
선두리더의 발길흔적을 따라 가는 능선은 가끔 행로가 선명하지 않아 동료들의 리드를 도와야했다. 리본이나 기타 지시표 준비가 안된 산악회사정이 얼른 이해하기엔 다소 뜨악했다. 옆구리에 기고 올랐던 영봉은 어느새 뒤꼭지로 밀려나더니 자취마저 사라졌다.
2시 22분.
시루봉을 7~8분 거리에 둔 삼거리다. 이 지점에서 시루봉을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 좌측 남쪽 수문동계곡으로 내려가게 된다. 중간 리더가 삼거리에 서서 일행의 행로를 안내하고 있다. 동료들과 한 발치 먼저 시루봉에 향해 올라갔다.
2시 30분.
시루봉이다. 정상이라고 얼른 알아볼 수 잇는 표지도 없다.
누군가 소나무에 걸어둔 <시루봉 779m>라고 쓴 노랑리본이 없다면 그냥 지나칠 그런 봉우리다. 시루와 비슷한 모양이라 명명한 시루봉은 전국적으로 동일한 이름을 가진 산 이름은 숱하다. 20여 그루 소나무로 둘러싸여 서, 남쪽 조망만 시원한 편이다. 나머지 방향은 숲으로 아예 보이지 않았다.
용하구곡 건너편의 하설산-매두막-문수봉이, 남쪽 멀리 꾀꼬리봉 뒤로 백두대간 줄기인 대야산으로 파노라마를 엮어간다. 간혹 뜨이는 원추리꽃을 위안 삼아 10여분 후미를 기다렸으나 기미조차 없었다. 삼거리방향으로 되 내려오는 길목에서 정상을 밟겠다는 욕심으로 땀을 흘리며 올라오는 두 동료여성을 만났다. 그네들의 집착과 용기가 가상하다고 생각했다.
2시 47분. 삼거리로 되돌아 나왔다.
일행 모두가 다시 합류해 본격적인 하산코스로 접었다.
3시 3분 남쪽으로 뻗어 내린 수문동계곡을 향한 급박한 갈 之자 내리막이다. 1시간 20분 정도면 산행이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계류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다. 시원한 물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힌다. 이내 갈증을 달랠 시간이 다가왔다.
3시 16분.
계류수가 흐르는 계곡이다. 배낭을 내리고 먼저 목을 축이고 보니 세상이 돈짝만하다.
2분 후 수문동폭포 머리맡 삼거리에 닿았다.
쓰러진 이정표를 보고 정확한 현재위치를 확인했다.
<수문동폭포 20m↓(해발 520m) 만수봉 3.8Km ↑>
용하구곡에서 가장규모가 크다는 '수문동'폭포(일명 수렴폭포)다.
높이 20m, 길이 100m에 달하는 수직절벽에서 내려꽂는 폭포는 매월당 김시습의 표현대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흰 절구공이다. 폭포수 안쪽으로는 폭 30m, 높이 12m, 깊이 15m 규모의 자연석굴은 또 다른 오늘의 보너스다. 현 위치는 충북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다.
높이 35m, 길이 100m가량의 폭포가 깊은 산의 정적을 뒤흔들어 놓으며 천연동굴위로 쏟아져 내린다. 겨울에 수문동폭포에 눈이 덮이면 천연동굴로 떨어지는 물이 얼어 얼음산이 높이 솟는데 이것은 수문동폭포만의 독특한 멋이다. 떡시루처럼 3층으로 겹쳐진 수직바위 위에서 통쾌하게 폭포가 시원하게 꽂히는 장면을 얼른 카메라에 주어 넣었다.
하류에 내려갈수록 계곡에 깔린 백옥보다 흰 암반은 성숙한 여인의 속살을 훔쳐보는 것 같은 아찔한 느낌이다. 그 고운 암반위로 흘러내리는 玉水를 바라보는 지금은 우주의 모든 시간이 정지한 그런 숨막히는 순간이다.
3시 28분.
병풍폭포에 닿았다. 충북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에 위치하는 병풍폭포는 높이 2.5m, 길이 30m에 가까운 암벽에서 落水장면은 이구아나 폭포의 축소형이다. 일행들의 포즈를 카메라에 담는 시간을 가졌다. 하류로 내려가는 계곡 변의 소로는 天上의 길이다.
3시 41분.
용하구곡의 하나인 수곡용담이다.
<수곡용담
>
맑은 물이 포말을 이루어 물접이가 마치 용이 꼬리를 튼 모양인데 묘하게 계단을 이룬 바위도 주위경관에 어울려 볼만한 곳이라는 평이다.
용하구곡.
제1곡(수문동폭포)
제2곡(수곡용담) :
제3곡(관폭대) : 큰산이 지켜주는 아늑한 골짜기엔 맑디맑은 물이 고여 깊은 정적에
쌓여 흐르고, 하얗게 닦여진 바위가 돌 마루처럼 깔려 있다.
제4곡(용하선대) : 수렴선대라고도 하며, 신륵사를 지나 500미터를 오르면 길 좌측 숲
우거진 골짜기에 넓은 바위 위로 물이 흘러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멋진 폭포를 이룬다.
제5곡(강서대) : 용하구곡 중에서 가장 길고 높은 지대이면서도 바위가 이상스럽게
편편하고 넓으며 뒷켠으로는 벽을 이루듯 둘러서 있어서 옛 선비들이
글을 읽고 쓰던 유서 깊은 곳이다.
제6곡(활래담) : 큰 폭포가 하늘에 매달린 듯 세찬 기세로 흘러 떨어지고, 그 아래 떨어진
물은 소를 이루어 주위 바위들과 조화되어 일대 경관을 이룬다.
제7곡(수용담) : 물이 거울처럼 맑아 특히 부녀자가 많이 찾아와 몸을 청결히 하는 곳이다
제8곡(선미대) : 우거진 숲 속에 물이 돌며 흐르고 커다란 청벽이 그 모양을 내려다보고
있다. 특히 주변 숲 속에 송이버섯과 독사가 많기로 유명하다.
제9곡(청벽대) : 맑은 물이 굽이돌아 소를 이룬 절경인데 구한말 박의당 선생의 시엔
청벽대의 아름다운 풍경이 많이 담겨 있으며, 둘러보면 첩첩이 산이고
빠끔히 하늘만 열렸는데, 차도변이면서도 세상과는 단절된 느낌을 준다.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서 신륵사 쪽으로는 월악산 정산을 오르는 길이고, 억수리 쪽으로는 두 갈래 골짜기로 갈라져서 용하수 골짜기와 수문동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데 곳곳마다 16km의 계곡에는 원시림과 천하의 절경이다. 선인들이 이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제반 기록들이 새삼 수긍됐다. 그 시대에 태어났더라도 아마 구리했을 것이라는 공감이다.
3시 50분.
<억수리 1.1Km (해발 320m) 만수대 5.1Km, 수문동폭포 1.4Km>
느릅나무, 생강나무, 물푸레, 산초, 굴참, 박달, 이깔나무, 쪽동백나무를 바라보며 물색한 마땅한 계류지점에서 잠시 몸을 풀었다. 물 온도는 알맞았다. 세상만사가 이곳 시원한 계류에 담겨있다. 기독교의 하나님도, 불교의 부처님도, 회교의 알라신도, 그리고 셔머니즘과 에니미즘의 多神도 모두 이 속에 잠겨있다. 그냥 석고상처럼 굳어진다고 해도 여한은 없을성싶다.
철다리 두 곳을 지났다. 이내 여러 基가 묻힌 무덤지대다.
쓸쓸한 무덤들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후 4시 24분.
용하구곡 本流와 合水지점에 위치한 버스종점인 억수휴게소에 닿았다.
<청벽대 2.7Km, 수문동폭포 2.5Km>
수문동 계곡 입구에 세워둔 이정표다.
덕주사 입구를 출발, 수정대-전망대-덕주봉-삼거리-시루봉-문수동폭포를 거쳐 억수휴게소로 내려오는 11Km 거리에 소요된 시간은 장장 6시간 55분이 들었다. 예상보다 1시간 정도 늦춰진 소요시간이었다.
용하교를 막 건너면 버스가 멎고있는 주차장이다.
소나무 그늘아래 자리잡은 쉼터에서 구수한 우거지 된장국에 소주 한잔으로 마무리가 된 오늘이었다. 문자 그대로 단표자음주(簞瓢子飮酒)였다. 도을 산악회 선두리더 분이 산행과정에서 도움이 됐다는 인사를 받았다.
중부고속도로 사정이 나빠서 귀경하는 길이 무척 능기적거렸다.
밤 8시 30분.
사당동에서 맞은 서울, 그리고 가을의 밤이 한창 여물어가고 있다.
헤어지는 연습이 익숙한 일행들과의 인사가 짧고 간단하게 끝났다.
발산역 K네 주점에서 양경태씨와의 9시 50분 늦은 만남이 있었다.
상호 과정설명과 차후를 계획하고 확인하는 긴 시간이 있었다.
한 템포 늦추면서 바라보는 시간을 갖자는 제안에 동의했다.
항상 그렇듯 귀가하는 고독한 밤길은 처연하다.
잠시 자신을 돌아보는 작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와 우리들, 그리고 세상의 잡다한 인연과 緣起를 되새기는 子正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교통 : 승용차[중부, 영동, 중부내륙고속도로-괴산IC-597번 도로-기룡목재-수안보-
미륵리 입구 삼거레에서 597번 도로-사문리 매표소-미륵리-덕주사 입구]
대중교통[동서울터미널~수안보 1시간 배차운행, 서울남부터미널~수안보행
1일 5회 운행→충주~수안보~미륵리~송계행 1일 11회 버스운행]
*숙박 :
-덕주사입구[덕주골산장(043-653-8352), 덕주휴게소(-661-1930), 월악산장(-651-5615),
월송산회(-651-6478), 민박집(642-1928)]
-미륵리지역[미륵사휴게소(-864-02120, 월악가든(-846-0310)]
-신륵사입구[월악산 산채식당민박(-663-7505), 호산민박(-663-6543)]
-용하구곡입구[용하수민박(-653-3829), 둥지민박(-651-3822), 도원가든(651-9755)
큰덕골가든(651-1164), 삼룡매운탕(651-1933), 아리랑가든(651-7852)
신토불이(651-1942), 명산아래(651-1944), 억수민박촌(47가구, -642-3301)]
*맛집 :
-미륵리방면[미륵가든(043-848-6612, 산채·버섯전골), 월악가든(-846-0310)]
-용하구곡방면[월악산 산채식당(-646-7505), 억수휴게소(-646-1966), 억수민박(-651-8597]
-송계계곡방면[월악산장(-642-6478, 토종닭백숙·닭볶음)]
*기타 :
-사조마을 스키장(-847-0750~6), 수안보온천[와이키키호텔(-846-3333) 외 여관 다수].
-수안보 장[1·6장, 산나물 더덕 밤 대추]
-조령산 자연휴양림[043-833-7994, 통나무집 18동·오토캠프장·삼림욕장·야영장]
-관 리 자 월악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043-842-3250)
첫댓글 정정합니다. '...어느 勞철학자...'가 아닌 '어느 老철학자...'로 바로 잡습니다.
내 '昨醉미성인 S씨' 올시다 " 덕주봉 주릉인 암릉" 절대 단독산행 하지 마세요. 암릉코스 장난이 아니고 길 잃어버리기 딱 좋아요.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