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한필 저자
경남 진주에서 태어남. 배재고,서울대 사범대졸업. 경향신문 공채기자로 입사 30년간 근무(편집국장 역임) 아내(정복숙)의 발병 후 모든 사회활동을 접고 그 곁을 지켰고 마지막을 같이 보냄.
정복숙(강한필의 아내)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남. 6.25전쟁 때 부모 형제와 같이 월남. 대전에서 대전여고를 거쳐 수도여자사범대학(세종대 전신) 기악(피아노) 전공. 충남 논산에 있는 쎈뽈여고에서 음악교사로 근무. 결혼 후에는 전업주부로 살았음.
• 사미인곡(思美人曲)의 끝나지 않는 노래 (책을 엮으며)
-하늘이 유난히 푸르렀던 지난 가을 어느 날, 백담사 만해 마을에서 며칠을 보냈습니다. 반짝거리는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잠들었던 그날 밤, 아내는 설악의 높은 하늘 너머에서 은은한 달빛처럼 환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내게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두 팔을 벌리고 아내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대청봉 하늘 위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안돼! 안돼!’ 소리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허망한 꿈이었습니다. 이루어 질 수 없는 환상이었습니다.
다시 절망과 슬픔의 밤을 지새운 뒤 나는 그 사람이 꿈에서처럼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미루고 미루어왔던 일을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일이란 그 사람과 함께했던 마지막 날들의 기록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아내 정복숙)이 난소암 선고를 받은 2004년1월10일부터 우리와 영원한 이별을 했던 2009년8월6일까지 5년6개월27일, 2,036일을 근간으로 암 선고 전 이틀, 눈을 감은 후 삼우제를 지내기까지 나흘, 모두 2,042일의 내 비망록에는 희망과 절망, 기도와 절규, 분노와 회한, 고통과 슬픔, 눈물과 한숨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5번의 큰 수술, 50차례에 가까운 항암치료, 3일에 한 번꼴로 드나든 병원, 100번에 가까운 입원과 퇴원, 그 사이 잠깐 잠깐 찾아온 행복과 희망의 날들...
-우리의 희망과 의지와는 달리 암은 이제 더 이상 강 건너 편의 불이 아닙니다. 날마다 세상을 떠나는 세 사람 중 한 명인 200명에 가까운 생명들이 암으로 우리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좌절과 몸부림은 처절하고 참담하기만 합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그 아픔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도 병상에 누워, 또는 그 옆에 둘어앉아 시시각각 가까워져 오는 운명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삼키고 있는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메어집니다. 그들에게 아주 작은 위로나 참고라도 되었으면 하는 소망에서 이 책을 냅니다.
• 1부 그 해의 잔인한 봄, 병원의 입구와 출구 (2004년)
-연말부터 불쾌한 여러 징후가 나타나 해마다 가던 동해안 해맞이 여행을 포기한 것이다. 아내와 나는 아내에게 잇달아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들이 기우로 끝나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구했다. (2004년1월1일) 운명의 날이라고 해야 할까? 동네에 있는 내과의원에 갔다. 주먹만큼 큰 덩어리가 초음파에 잡혔다. 종양이 의심된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눈앞이 캄캄했다. 제발 암만 아니길 빌면서 길고 긴 밤을 보낸다.(1월9일)
-강남성모병원 남궁성은 박사의 진료실을 찾았다. 남궁 박사는 안 좋은 종양일 가능성이 90% 이상 된다고 말했다. 눈앞이 캄캄하고 다리의 힘이 쏙 빠져나갔다. 천사같이 선하고 바르게 살아온 아내에게 왜 이런 가혹한 시련이 찾아오는 것일까? 아내를 살며시 안으며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고 절대 절망하지 말고 암과 싸워 이기자고 다짐했다. 1%의 가능성만 있다면 그 1%를 우리 것으로 만들자고 굳게 다졌다.(1월10일)
-“악성 종양인 것 같습니다. 10cm 이상 커졌으니 상당히 진행된 상태이고 … 확실한 것은 개복 후 조직검사를 해보아야 아는 것이지만, 경험상 좋지 않은 것만은 확실해요.” 각오는 했지만 운명은 현실로 다가왔다.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다. 내색 않던 아내도 안색이 변했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암은 소리 없는 살인자(silent killer)라고 하지만, 어느 새 이렇게 커졌을까. 해마다 정밀검사를 받았고, 지난해 3월에도 검사를 받지 않았던가. 지방병원의 한계일까? 유능한 의료진과 좋은 장비를 갖춘 이른바 서울의 큰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진을 받지 않은 것이 무엇보다 후회스럽다. 몇 달씩 기다리면서 이들 대학병원들을 찾는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1월16일)
아내가 아이들을 낳기 위해 며칠 입원한 적은 있지만, 큰 수술을 받으러 입원한 것은 아내 인생 61년 만에 처음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암과의 싸움. 그 멀고 험한 길에 들어선 것이구나.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굳건하게 버텨나가자고 다짐하고 격려했다.(1월24일)
-수술실 문이 열리고 아내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눈물이 핑 돌았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아내, 복부가 열려 있다. 그 가운데 고구마처럼 생긴 덩어리가 파묻혀 있다. 남궁 박사는 이것이 문제의 종양 덩어리라고 했다. 떼어내 의뢰한 조직검사 결과가 나와야 확실한 것을 알 수 있지만 경험상 악성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정신이 아찔하여 그 설명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아내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고 대기실로 물러나왔다. 6시간 35분 만인 2시 35분에 아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내의 고통에 마음 아파 울고, 살아서 다시 내 곁에 있게 된 감격에 울었다. (1월27일)
-오늘 주치의로부터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통고를 받았다. 떼어낸 종양조직을 정밀 검사한 결과 악성으로 판명돼 항암치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란다. 언제나 담담했던 아내가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우리들도 모두 눈시울을 적셨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항암주사를 맞고, 그 지독한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것일까? 무척 참담하고 착잡하다.(1월31일)
항암주사를 맞은 지 16일째,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다. 여자에게 생명과도 같은 머리카락. 막상 그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니 아내는 큰 충격과 비탄에 빠졌다.(2월18일) 아내의 61번째 생일이다. 음력 생일 모임을 이미 가졌었지만, 하루라도 더 아내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양력 생일을 한 번 더 갖기로 했다.(2월21일)
-아내가 큰 수술을 했다는 소식이 많이 퍼진 모양이다. 멀리 떨어져 사는 친구나 집안사람들로부터 많은 안부전화가 걸려왔다. 일부 친구나 후배들은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상황버섯, 차가버섯 등을 가져오기도 했고, 미국에서 항암식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노니(Noni)’란 약을 구해 오기도 했다. 암 투병 중인 한 후배는 그가 복용하고 있다는 항암식품을 나누어주기도 했다. 눈물겹도록 고맙다.(5월15일)
-수술실에 들어간 지 5시간 만인 오후2시15분 드디어 아내가 나왔다.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하다. 수많은 줄들을 주렁주렁 달고 회복실을 거쳐 병실로 옮겨졌다.(6월3일) 환자나 환자 가족들은 빗나간 예측도 고맙게 생각하며 또 다른 예측을 바란다. 일종의 약자의 법칙이다. 때때로 의료진들이 너무 무성의하고 무책임해도 꾹꾹 참을 수밖에 없다. 잦은 검사, 짧은 진찰, 기계적인 치료, 그리고 오랜 기다림. 지친 보호자들을 더욱 녹초가 되게 하는 곳이 아쉽게도 병원이다. 병원에서는 의료소비자는 왕이 아니라 영원한 약자다. 비싼 돈 내고 쩔쩔매는 소비자는 환자나 그 가족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치유가 본질인 병원에서 상처를 받는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다시 새긴다는 것은 세상물정 모르는 얼간이들의 잠꼬대일 뿐이다.(6월7일)
-확인수술을 한 뒤 또 항암주사를 맞기 위해 입원했다. 항암주사는 이번이 일곱 번째다.(6월25일) 어제부터 시작한 항암주사는 오늘 새벽 2시에 끝났다.(6월27일) 아내는 모처럼 친구들의 모임에 나갔다. 일반적으로 항암주사를 맞은 후 7일에서 10일이 지나면 메스꺼움 현상이 없어지고 입맛이 돌아온다. 다시 주사를 맞기까지 10여 일에 불과한 짧은 시간, 그래도 그 한 시간 그 하루가 때로는 한 달 또는 일년이 농축되고 소중하고 축복받은 날이다.(7월5일)
-아내와 24시간 붙어 다닌다. 심지어 화장실 갈 때도 함께 간다. 다리에 힘이 없어 넘어지기라도 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나와 함께 이렇게 지내는 것이 너무 좋은 모양이다. 젊은 시절,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하루에도 20시간 가까운 시간을 혼자서 보내게 한 일들이 가슴을 치게 한다. 언제나 묵묵히 기다림의 세월을 살아온 아내, 그런 것들이 쌓여 큰 병을 얻지나 않았나 생각하며 마음이 저며 온다.(8월27일)
-병원에 가지 않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이 소중한 시간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니 아깝다.(9월10일) 마을사람들과 1박2일 일정의 동해안 여행을 떠났다. 무엇보다 소녀처럼 즐거워하는 아내,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빛에 비친 그 얼굴, 이 아름다운 모습을 내년에도 그 후 내년에도 또 후 내년에도 … 영원히 볼 수 있기를 빌고 또 빈다. (10월16일) 오늘은 1965년 아내와 처음으로 만난 날이다. 39년이 훌쩍 흘렀다. 아내와 만난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고 최고의 축복이었다.(12월12일)
-좌절과 희망, 분노와 환희, 눈물과 웃음이 반복된 한 해였다. 청천벽력 같은 아내의 암 선고, 그리고 큰 수술, 또 큰 수술, 고통스런 함암주사, 머리카락은 모두 빠지고 돋아나고 또 빠지고. 끝없는 구토와 식욕부진, 불면증, 지옥 같은 아픔의 시간들이었다. 나는 아내의 암 앞에 한 없이 무력하였다. 나의 노력은 아내 앞에서 결국 무참하였다. 또 그 무력함 때문에 한없이 울었다. 우리가 암 따위에 패배할 수 없다고 맹세했지만 흐느낌이 소용돌이친다. (12월31일)
• 2부 간병일기, 남편의 가벼움과 아내의 무게 (2005년)
-새해맞이 동해안 여행을 못 간 대신, 일출시간에 아내와 함께 소실봉에 올랐다. 나는 오직 한 가지, 아내의 건강회복을 빌었다.시련과 고통의 2004년이 지나갔으니 이젠 해맑은 아내의 얼굴을 늘 볼 수 있기를, 희망의 불빛이 영원하기를 빌었다. (1월1일)
-암 수치(CA125)가 많이 올라가 있다는 주치의의 설명이다. 땅이 꺼지는 것 같은 충격이다. 새해엔 해외여행을 떠나도 좋다고 한 말이 불과 며칠 사이에 절망적인 말로 바뀌어 버리다니. 암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검사결과를 순식간에 뒤집고 의사도 속이고 모두를 속인다. 그리하여 좌절하고 희망을 잃게 한다.(1월11일) 오후 3시 입원했다. 작년8월13일 퇴원한 후 5개월 만이다. 입원하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애원하고 기도했으나 그 간절한 소망은 이렇게 허망하게 깨어졌다. 이제 겨우 잠든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넋이 나간 듯, 분노하고 푸념한다. 아! 이 어진 여인에게 왜 이토록 가혹한 시련을 내리고 있는가(1월16일)
-항암제의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심한 구토로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한다. 구토 억제제를 먹어도 듣지 않는다. 아내는 밤새도록 계속 토한다. 위 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 심지어 위액까지 토해낸다. 그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안타깝다. 이 지구상에는 수천만 수억의 암 환자들이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이런 고통을 받고 있다. 그 많은 암 연구자들은 왜 이런 고통을 덜어줄 치료법이나 약물 하나 제대로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2월14일)
-어제가 입원예정일이었으나 병실이 없어 하루 늦게 입원했다. 지방의 환자들까지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에 몰린다. 믿음이 가는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도 싶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의료수준 평준화가 절실하다.(3월4일) 치료를 받으면 조금씩 나아져야 할 텐데, 왜 자꾸 좋지 않은 결과만 생기는지 가슴이 저며 온다. (4월22일)
-첫날부터 토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토할 것조차없다. 참괴롭고 힘든 긴 날들이다. 항암제는 암세포를 죽이기 전에 사람을 먼저 죽이는구나. 아내는 그동안 거의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이들 하나하나의 성장과정을 되돌아보고, 가정을 키워온 일들, 자기가 떠나면 남아있는 사람들, 특히 남편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고 상상하며, 긴 밤들을 뜬눈으로 보내고 있다.(5월27일)
-드디어 사이버 나이프 시술이 시작됐다.오후 1시 반에 시작하여 3시에 끝났다. 1시간 반 정도 걸린 셈이다. 병상에 눕자마자 심한 구토를 한다. 소화기 계통을 건드리지 않았을 터인데 토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방사선이 장을 스쳐갔는지 모를 일이다. 무통,무혈,무절개 등 장점이 많다는 사이버 나이프 시술, 무통 대신 고통은 여전하다.(7월14일)
-“종양 크기는 많이 줄어들었으나 또 수술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사이버 나이프 시술을 한 것이 7월14일. 겨우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또 수술이라니 기가 차다. 엄청난 비용도 비용이려니와 수술과정이에서 아내는 얼마나 고통을 받았던가. 더구나 일반적인 수술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 사이버 나이프 시술을 받은 것 아닌가. 사이버 나이프 수술의 실험대상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분노가 끓어올랐다. 따지고 항의하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환자는 언제나 할 말도 못하는 약자다. 의사에게 불만을 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위급한 환자일수록 더하다. 의사의 처분만 기다릴 뿐이다. 한층 무력해진 기분이 든다.(8월19일)
-항암주사의 부작용으로 몸은 철저히 망가져 가고 있다. 그래도 처절하게 싸우고 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을 만들어가면서 하고 있다. (11월1일) 3박4일간의 6인실 입원, 많이 배우고 많이 깨달았다. 이 병실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은 모두 암 환자들이다. 공통적인 특징은 착하고 성실해 보이는 사람들이란 점이다. 어려운 병이 사람들을 선하고 착하게 만든 것인가. 서로 격려 하고 아픔을 공유하려고 노력한다. 왜 이 선한 사람들에게 이렇듯 무거운 시련을 내리는가. 순간순간 분노가 치솟는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매달릴 곳이 없다. 무한한 고독을 느낀다.(11월12일)
-항암주사는 암을 죽이기 위해, 전이를 막기 위해 투여하는 것, 그러나 횟수를 거듭할수록 그 부작용은 더 심해진다.(12월3일)
-2005년 한 해가 저문다. 우리에겐 시련과 고통의 긴 터널이었다. 그러나 행복과 희망의 날이 반드시 올 것이란 신념을 다지는 세월이기도 했다. 누가 아내를 시한부 삶을 사는 3기말 암환자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더 슬퍼고, 더 가슴이 아프다. 천년, 만년을 살듯 아이들을 돌보고, 나를 받들며 달려온 아내가 2005년의 끝자락에 쓰러질 듯 저 앞에 힘없이 서 있다. 회한과 불안, 애절함으로 가득 찬 긴 시간들이 어김없이 흘렀다. 다가올 아픔과 슬픔을 생각하면, 차라리 영원히 붙잡고 싶은 이 찰나. 아내는 아는가, 닫힌 행복의 문앞에서 더욱 처절한 심정이 되어 오늘 이 그믐날을 서성이는 나의 어두운 마음을. (12월31일)
• 3부 희망과 결의, 그리고 슬픔의 긴 여로 (2006년)
-아내는 또 병원에 갔다. 백혈구가 거의 없다. 겨우 9개, 서둘러 격리병실에 입원했다. 단 며칠간의 작은 행복과 새해 희망이 산산이 깨져 버렸다. 그토록 일어서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해온 아내, 너무 측은해 가슴이 메어진다.(1월5일)
-암 선고 받은 후 3번째 맞은 생일. 생일은 언제나 즐겁고 정겹고 행복했다. 그러나 지금은 쓸쓸하고, 서럽고, 눈물겨운 날이 됐다.(2월13일)
-암이란 놈도 잡초와 같은 것, 살금살금 사람의 조직 속에 파고 들어 그 덩치를 불려나가다 어느 날 그 주인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 아내의 몸속에 숨어든 잡초,암. 화분의 잡초 뽑듯 평소에 관리를 잘하였더라면 결코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제대로 돌보아주지 못한 남편, 이 맺힌 한을 무엇으로 풀것인가. 뒤늦은 깨달음이 가슴을 친다.(2월27일)
-무엇이 그렇게 바쁘다고 언제나 뛰는 삶을 살았다. 좀더 느긋하고 유유자적하려고 하니, 아내가 병이 났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구나. “니 마누라 우째도 살리래이.” 누나 말이 자꾸 맴돈다.(4월20일)
-드디어 그 시간이 왔다. 푸른색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오후 1시10분 침대에 실려 3층 대수술실로 내려갔다. 수술실 문 앞에서 아내의 손을 꼭 잡아주며 수술 잘 받고 나오라는 사랑의 눈길을 보냈다. 육중한 수술실 문이 닫히고 아내는 그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처참한 순간이다. 이런 상황을 4번이나 맞고 있으니 불쌍하고 처참하다.(7월19일)
-외과의사는 원래 거친 것인지 말을 함부로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주머니는 아무리 수술을 해도 낫지 않아요.” 이런 말을 마구 쏟아냈다. 아내는 이 의사의 말이 총알처럼 심장에 박히는 아픔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나도 기분이 몹시 상했고, 한동안 절망에 빠져 있었다.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이고 명의인가. 기술자 같은 명의는 많아도 아픈 육신과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인술을 가진 명의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이다.(7월31일)
-아내의 작은 소망 중 하나는 이들이나 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좀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에는 우리가 그렇지 못했고, 우리가 한가해지자 아이들이 너무 바빠진다. 그래서 아내의 소망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비록 고향으로 가는 짧은 여정이지만, 그 작은 부분이 이루어진 셈이다.(9월23일)
-이 한 해동안 우리의 인생도 모습이 바뀌었다. 절망하지 않으리라는 우리의 약속은 더욱 굳어졌고, 이겨야 한다는 신념은 더 강해졌다. 희망과 결의의 긴 여로였으며, 또 하나의 진정한 여행이었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는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나짐 히크메트, 진정한 여행) (12월31일)
• 4부 인간의 길, 가족의 길, 그리고 가족의 힘(2007년)
-긴 겨울 지리산의 찬바람을 견뎌내고 겨우 피어나기 시작한 이 벚꽃들, 한순간에 우수수 흩날리니 가슴이 휑하고 찡하다. 우리들 인생도 함께 왔다. 어느 날 벚꽃처럼 함께 떠나면 얼마나 좋을까. 이별의 슬픔이 없을 터이니 말이다. 내가 왜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지? (3월30일)
지난 4월 초 뿌렸던상추와 열무, 쑥갓은 연약한 잎과 줄기를 수북하게 내밀었다. 아내는 순을 솎아내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이것들 자란 후 제대로 먹게나 될는지….” 못 들은 척하려고 애썼으나, 눈물이 핑 돈다. 아내의 마음 한구석에는 절망과 비관의 연혼이 숨어 있구나.(4월28일)
-산다는 것, 어딘인지 모르는 종착점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언제 그곳에 이를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생은 반드시 그곳에 이른다는 점이다. 그곳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고, 더 위로하고, 더 아끼고, 더 열심히 살자. (5월11일)
-아내의 머리카락이 이제 뭉텅뭉텅 빠진다. 만질 때마다 우수수 빠져나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아침이 오면 태양이 떠오르듯 머리카락 또한 돋아날 것이란 믿음과 희망이 있다.(6월1일)
-병을 고치기 위해 시행하는 각종 검사들이 또다른 병을 유발하지는 않을까 두렵다.(8월7일)
-암과의 싸움은 당사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온 가족이 함께 아파하고 함께 싸워야 한다. 똘똘 뭉쳐 애정과 사랑을 쏟아 부어야 한다.(12월7일)
-아내와 함께 10번만 더 이런 섣달 그믐날을 맞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이 기도가 과도한 욕심이라면 저에게 먼저 벌을 내리소서. 2007년 저문 섣달 그믐날, 간절한 나의 기도이자 절규다.(12월31일)
5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2008년)
-전원도시생활, 모두들 한 번씩은 꿈꿔보는 은퇴 후의 바람이다. 그러나 나이 들어 살 곳은 오히려 종합병원에 언제든지 접근이 쉬운 큰 도시, 그 중에서도 서울이다. 서울을 떠난 것이 몹시 후회스럽다.(1월11일)
-암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죽여도 죽여도 또 살아나고 살아나고…. 결국 그 숙주가 죽어야 주는 것, 그것이 암인가.(1월18일)
-오늘따라 아내의 정성이 유난히 눈물겹다. 며칠 전 ‘기분 나쁜’검사결과를 통고 받았기에 더욱 그렇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오히려 남편의 건강만을 챙겨주는 아내. 그래서 가슴이 저리고 더 아프다. 고요와 한기가 가득찬 천상에서 아내가 싸 준 따끈한 차를 마시니, 아내의 사랑이 뼈 속에까지 스며든다.(1월20일)
-“한계에 온 것 같아요. 치료를 더 받지 않을래요.” 아내를 달랠 말이 더 없다. 아내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줄 지혜가 없다.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를 뿐이다.(2월1일)
-우리는 암센터 안에 있는 그의(외과의 오 모 교수) 진료실을 찾았다. 젊고 패기에 찬 그는 외과의사의 속성인 듯 거친 태도로 아내의 장내시경 사진들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조금 전 주치의가 설명했던 내용과는 180도 다른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아주머니는 아무리 치료해도 완치는 불가능하고요. 장 안의 암덩어리가 장을 막아가고 있어요. 장장 수술을 해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장루(인공항문)을 달아야 할지도 몰라요.” 이래서 병원을 약주고 병 준다고 하는 것인가? 억장이 무너진다. (2월19일)
-좋아지고 있다고 말한 지 불과 1주일, 전혀 다른 소리를 한다. 환자가 실험 대상인가. 분노와 배신감이 끓어오른다. 이른바 빅 파이브(Big 5),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5개의 대학병원을 말한다. 이들은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의사들은 환자들의 호소와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병은 자신이 더 잘 안다. 그런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말하고 궁금한 점, 어려운 점을 호소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병원 문을 나섰다. 다시는 드나드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빌었던 우리의 소원과 희망은 또 무너졌다.(2월26일)
-“이제 조금씩 준비를 해야 해요. 나이는 더 들었고, 체력도 떨어지고, 그래서 당신과 함께 머물 날들이 뭉텅뭉텅 빠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피눈물 나는 말들이다. 나 역시 약해진 것인가. 눈물이 자꾸 나다. (3월10일) 아내는 “치료를 더 받지 않겠다.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절규한다.(3월18일)
-의료진에 대한 신뢰는 떨어져가고, 그들의 무책임한 행태가 분노를 자아낸다.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환자를 보살피는 진지한 모습을 보고 싶다. 미음에서 밥으로 일사천리로 달리더니 또 금식, 뽑아냈던 줄들을 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배를 열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한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를 이렇듯 쉽게 쉽게, 적당히 해도 되는 것인가? (3월31일)
-지난해 말까지 무려 39번의 항암주사를 맞았다. 그때마다 아내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번엔 그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아마도 의료진이 내뱉은 가혹한 말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주머니는 아무리 수술해도 낫지 않습니다.” 이 한마디가 아내의 희망과 의지를 꺾어버렸다. 비록 진실일지라도 환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정제되지 않은 말을 함부로 하는 의사는 문제가 있다. 의사의 말 한마디가 묘약이 되고 때로는 그 반대인 독약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4월24일)
-주치의로부터 전화가 왔다. 소견서,진료기록 등을 수간호사에게 맡겨두었으니 찾아가라는 내용이다. 너무 사무적이고 공식적인 목소리다. 4년이 넘도록 치료하고 치료받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라면 직접 만나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약간은 섭섭했다. 다른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으니 어쩌면 그 쪽이 더 섭섭하고 자존심이 상했을지도 모른다.(5월12일)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 잔치가 연일 이어져 온 나라가 열광 속에 빠져있다. 그러나 이 순간, 검은 커버에 싸여진 병에서 방울방울 떨어져 긴 호스를 타고 아내의 몸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약제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아내 손을 꼭 쥐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축제의 날, 환희의 날이 오게 해달라고 빌고 있다.(8월11일)
-누려야 할 날들이 얼마일지 그들은 모른다. 사람들이 그것을 예단하고,느끼고, 우수에 젖는 것은 오만이다. 내일을 모르기에 희망과 기대를 갖고 산다. “포기하기엔 아깝다.” 는 말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저며온다.(9월12일)
-행복한 것, 아름다운 것, 좋은 것들은 잠깐 머물다 떠나는 것일까? 아름다운 봄꽃, 장엄한 황혼, 잔잔한 물결, 찬란한 무지개, 고요한 아침, 그윽한 눈길, 은은한 미소, 이런 것들은 나타났다가 어느새 사라진다. 우리의 좋은 날도 이런 것일까? (9월22일)
-죽음의 고개를 숱하게 넘으며 헤쳐온 4년10개월, 오늘 35번째 항암주사를 맞는다. 의지와 희망이 없으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연속이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듯한 악몽의 24시간을 보내고 병원을 나선다. 꿈을 꾼 것만 같이 멍멍하다.(10월10일)
-암과 싸우는 사람들, 모두 선하고 무구한 얼굴을 하고 있다. 무엇이 왜 선한 이들에게 이토록 지독한 병을 주어 끝없는 고통을 겪게 하고 있는 것일까? (10월17일)
-김장을 끝낸 아내는 또 가슴을 찌르는 말 한마디를 던진다. “혹시 내가 잘못 되더라도 아이들과 잘 챙겨 드세요.”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불길한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일까? 우리들에게 충격을 줄이고 면역력을 길러주기 위한 계산된 표현일까? 아내는 이런 말들을 어떤 계기가 있을 때마다 자주 되풀이 한다.(11월24일) 언제나 즐거움이었던 퇴원, 그러나 이 등식이 서서히 깨져가고 있다. 너무 많은 약물 투여와 큰 수술이 쌓이고 퇴원은 불안으로 바뀌어가고 있다.(12월10일) 12월12일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날. 운명적인 만남이 사랑의 시작이요 행복의 출발점이 되어 43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지금 그 사랑의 원천, 행복의 근원인 아내가 누워 있다. 이 지독한 병마가 아내에게서 너무 많은 것으르 빼앗아갔구나(12월12일)
-엄청난 고통을 수없이 되풀이해온 아내, 그렇게도 잘 견뎌내고 언제나 희망에 차 있던 아내, 오늘은 비관적이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언 같은 아내의 슬픈 당부가 제야의 종소리에 실려 우리들 가슴에 깊고 아프게 울려온다.(12월31일)
6부 회자정리, 님의 침묵(2009년)
-“아내를 살려주소서.” 기도가 아니라 절규다. 아내는 거의 먹지 못했다. 우울하고 가라앉은 설날, 2009년은 잿빛으로 그 문을 열었다.(1월1일)
-올 들어 처음이고, 통틀어 40번째의 항암주사다. 오후 1시15분에 시작하여 6시30분에 끝났다. 5시간 이상 걸린 셈이다. 지난 2004년 2월2일 첫 번째 항암주사를 맞은 후 거의 5년의 긴세월이 흘렀다.(1월6일)
-말을 아끼던 주치의가 오늘은 마구 쏟아냈다. “치유는 불가능하고 손을 쓸 단계는 이미 지났다. 부작용이 적은 함암제를 맞으며 생명을 연장하는 길밖에 없다.” 아내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담담하다. 그러나 내게는 청천벽력이다. 너무 참담하고 처절한 형벌이다. 말 한마디 없이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다. 어찌 할꼬? 어찌 할꼬? 아까운 내 아내를 어찌할꼬? (1월15일)
-“암 덩어리는 좀더 커졌어요. 그리고 CA125도 지난번 22에서 47로 급격히 올랐고요.” 김 교수는 절망적인 말만 계속한다. 온갖 고통을 겪으며 맞아온 항암주사의 효과가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덩어리를 더 키워놓았다니 억장이 무너진다. “방 한 칸을 내줄 터이니 사이좋게 잘 지내자.” 암 투병을 하고 있는 의사가 쓴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2월24일)
-아내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여류화가 김점선 씨 이야기를 꺼냈다. 역시 난소암으로 고생하던 그는 “암 덩어리는 내 몸 속에 돋아난 종유석이다. 그래서 나는 그조차도 사랑한다.”는 말을 했단다. “그런데 나는 왜 5년 이상 암과 더불어 살아오면서 김점선 씨의 경지에 이르지 못할까?”라고 말한다.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그 고통을 주는 암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만 유독 아픈 것일까? 아니면 내가 수양이 덜 된 탓일까?”(3월26일)
-“내가 왜 이러지, 내 자신이 싫다. 이제 버틸 힘이 없다. 죽고 싶다.” 아내는 절규한다. 아내를 어떻게 위로해야 좌절하지 않고 굳건하게 걸어갈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세상이 캄캄하고 아득하다.(4월1일)
-인생은 누구나 생로병사의 길을 걷는다. 질병은 그 과정의 하나다. 그러나 질병의 과정을 짧게 하고, 덜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의술이 지향하는 여러 가지 목표 중 하나가 아닌가. ‘4·19혁명’, 49주년. 어느새 반세기가 훌쩍 흘렀다. 혈기방장했던 청년은 언덕에서 자꾸 자신에게서 떠나려고 하는 사랑하는 아내의 병상에 걸터앉아 있다. 어젯밤 응급실에서 목격한 구박받는 늙은 부모의 모습까지 눈에 어른거린다. 인간은 왜 늙고 병드는가.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을 수는 없는가.(4월19일)
-우리는 목마를 때 물 마시고, 씻고 싶을 때 샤워하고, 시원하게 변을 보고, 피곤하면 잠을 자고, 이 일상의 일들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 사소한 것 같은 일상이 행복의 원천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손안에 쥔 모래알처럼 빠져나간다. 우리는 행복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욕심을 부리고, 아웅다웅하며 거대한 물결에 밀려 흘러간다.(4월26일)
-아내의 몸은 만신창이가 돼 있다. 배에는 양쪽에 1개씩의 구멍이 뚫려 인공장기(장루)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수술부위와 연결된 두 개의 피주머니,방광에 연결된 소변줄, 위장에 고이는 불순물을 내보내는 콧줄이 얽혀 있다. 이런 것들을 모두 걷어내고 병원 문을 나설 날은 언제일까. 가슴이 멘다.(5월1일) 한 고비 넘으면 또 다른 고통, 가물거리는 불빛, 영롱한 무지개, 그리고 또 천 길의 낭떠러지. 이래서 인생을 고해라 했던가.(6월1일)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가지 말아야 할 곳, 병원과 교도소다. 죄짓지 않은 선량한 사람이 가는 교도소, 그곳이 병원이다. 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들 모두는 모든 것을 잃는다. 정상적인 생활이 없고, 시간도, 공간도 없다. 자유도 없고, 기쁨도, 즐거움도 없다. 높은 담장과 감시자만 없을 뿐 교도소인들 이렇듯 답답하고 불안하고 가슴조일까?(6월2일)
-때로는 아주 작은 자극이 인생의 행로를 엉뚱한 곳으로 바꾼다. 끝없이 이어지는 아내의 병마와의 싸움은 무엇 때문일까? 40여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 뜻밖의 행동이 여린 마음을 상처를 내, 아내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지나 않았을까. 때늦은 자각과 깨달음이 가슴을 죄어온다.(6월25일)
-천붕지통(天崩之痛)이란 말이 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표현하는 말이다.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셔야 겠습니다.” 오후 6시30분 병실 밖 복도에서 만난 김 교수가 괴로운 표정으로 조용히 말을 꺼냈다. 이제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단계, 이승에 남은 시간은 길어야 3∼6개월, 떠나보낼 각오를 해야 한다고 거듭 말한다.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보낼 것을 그토록 고통스런 투병생활(다섯 번의 큰 수술, 사이버 나이프 수술까지 포함하면 6번, 장류와 인공요관 시술, 50번에 가까운 항암주사와 방사선치료)을 해왔던가. 뜨거운 눈물이 울컥울컥 솟구친다. 회한과 분노도 치솟는다. 왜 이런 결과를 예측 못하고, 그 큰 수술(마지막 수술)을 강행했던가. 성한 곳 하나 없이 만신창이로 만들어 보내야만 하는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아내를 지금 떠나보내기엔 너무 젊고 아깝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치료는 계속됐다.(7월8일)
-이제 우리에게는 조금도 한가한 생각과 행동을 할 시간이 없다. 한 시간을 하루같이, 하루를 한 달같이 살아도 아깝고, 소중한 시간이다. 더 보듬고, 더 사랑하고, 더 비비고, 더 말하고, 더 서로의 숨결을 느껴야 할 소중한 순간순간들이다. 째깍째깍 시간이 흐른다. 시간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까?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 그 시간의 잔고는 이미 바닥을 보인다.(7월9일)
-울고 싶은 날들의 연속이다. 아내는 내게 모든 것을 다 가르쳐주려고 안간힘을 쓴다. 갈 길이 촉박하다는 것을 예감하고 그준비를 서두는 것 같아 너무 슬프다. 통증이 심해 연달아 모르핀을 맞아야 하는 극한상황에도 남편과 아이들만 생각하는 아내가 가엽고 눈물겹다.(7월16일)
-현실을 인정해야 할 단계에 이른 것 같다. 아무리 아우성치고 울부짖어도 운명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유택의 번지 69-1-826(용인공원) 그곳을 아내와 내가 영원히 쉴 곳으로 정했다. 아내는 여전히 깊은 신음을 계속하고 있다. 정말 힘든 이별의 준비가 또 다른 슬픔을 몰고 온다.(7월23일)
-“남은 시간이 정말 얼마 안돼요.보내드릴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때입니다.”(김 교수)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그래도 치료는 계속 됐다. 째깍째깍 아내와 영원한 안녕을 고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순간순간이 자꾸자꾸 줄어들고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한정된 시간을 살고 간다. 비록 그 한계가 내일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을 모르기에 영원히 살 것처럼 살고 있다. 그러나 이별을 고해야 할 시간을 안다는 것은 가혹한 형벌이요 가슴을 도리는 슬픔이다. 아내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어떻게 나보다 먼저 떠나게 할 것인가? (7월24일)
-오후 3시경 통증완화 전문의인 임 교수가 병실에 왔다. “ 이 시간부터 남은 짧은 시간이 이제까지 살아온 긴 시간보다 더 소중합니다. 환자는 기력이 떨어져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있을 뿐 듣고,피부로 느끼는 기능은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말,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을 계속 속삭여주고, 손도 잡아주고, 입맞춤도 계속하세요.” 아! 그동안 우리들은 무의식중에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울고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아내는 얼마나 좌절하고 슬퍼했을까. 부산 강 사장의 친구인 신부님 한 분이 오셔서 간곡한 기도를 해주셨다. 아내는 분명 이 기도를 듣고 있다. 심장박동수가 솟구친다. 이 절박한 순간, 신부님의 간곡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그리하여 하고 싶은 말 한마디라도 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맑은 정신으로 우리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게 하소서(8월4일)
-6시 모든 계기가 멈췄다. 달려온 의사는 청진기로 심장이 뛰고 있는지를 테크했다. “너무 슬프군요. 하늘나라로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자, 그 누구나 이 순간을 맞습니다. 이제 영원한 곳에서 편히 쉬도록 놓아드리세요.” 아내의 임종을 선언했다. 2009년8월6일새벽6시. 사랑하는 내 아내, 자상한 아이들의 어머니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66년5개월16일, 결혼한 지 41년3개월16일, 암과 처절한 싸움을 벌여온 지 5년7개월, 2,036일 만에 아내는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아무리 울부짖고 발버둥쳐도 돌아오지 않는다. 정월 대보름달과 함께 이 세상에 왔던 아내, 그 달과 더불어 영원한 피안의 세계로 떠났다. 이 비극의 날에도 시간은 흐른다. 이제 아내가 떠나는 길을 평탄하게 만들어 주어야 할 일. 산 사람의 몫이다.(8월6일)
-한평생 올곧고 알뜰하게 살아온 아내, 그가 가지고 간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 다 두고 달랑 삼베옷 한 벌 걸치고 황망히 떠났다. 허무하고 허무하다. 아내 없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8월7일)
-이렇게 보낼 것을 왜 평소에 더 잘해 주지 못했던가. 결국 빈손으로 떠난 아내를 위해 과연 모든 것을 다 바쳐 치료하고, 최선을 다해 돌봐주었던가. 왜 의식이 아직 좀 있었을 때 무엇인가 말하여 했던 것을 마음 약한 소리라며 못하게 말렸던가. 하지 않겠다는 마지막 큰 수술을 왜 해야 한다고 우겼던가. 그 수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마지막이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고 단 며칠이라도 우리와 함께 더 머물지 않았을까. 영혼을 찢는 듯한 상념과 후회들이 끝없이 교차한다. (8월8일)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라 했던가. 소중한 삶을 살고 떠나간 사랑하는 아내여, 이별 없고, 고통 없는 그 세상에서 편히 쉬고 계시오. 나 이제 곧 그곳에 가리니.(8월10일) “끝”
☉ 이 책을 읽고 나서 ....
- 강한필님의 2,042일간의 긴 시간 아내의 간병일기를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면서 이 내용은 저자 한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절실한 감정으로 느끼고 체험했습니다. 처음 아내가 난소암으로 판정이 되어 치료를 시작하였으나 악성으로 조짐이 좋지를 않은 상태에서 지속적인 치료와 입원 그리고 최첨단의 의료기술을 이용하고 많은 돈과 시간을 들였지만 결국은 아내가 처참한 모습으로 한마디 말도 못하고 사망한 것에서 과연 암이 발생되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로 예후가 좋지 않았을 때에는 현재의 의료현실에서 항암치료를 해야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아무리 최첨단 의료기술이라고 했지만 막상 암덩어리가 자라고 번지는 상태에서는 속수무책임을 이 책을 통해서 여실히 볼 수 있었습니다. 만일 저자의 아내가 어느 정도 치료를 한 후에 예후를 잘 판단하여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일반적인 통증및 완화치료만 하였더라면 5년6개월동안을 고통속에 보내지는 않았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저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인줄은 압니다. 당사자가 되었을 때에 함암치료에 매달리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지를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그래도 안타까움과 아쉬운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5번의 큰 수술, 50차례에 가까운 함암치료, 3일에 한 번꼴로 드나든 병원, 100번에 가까운 입원과 퇴원.... 누가 보아도 끔찍하고 두렵고 무서운 과정인 것 같습니다. 환자 자신은 물론이고 옆에 있는 가족들은 피눈물 말리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KBS파노라마 2013년12월19일 방영: 허대석교수) ‘임종전 한달 전에 항암제를 쓰면 손해다. 부작용이 문제이기 때문인데, 선진국에 비해극도로 많이 사용함. 세계최고인데, 이때 필요한 것은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여야 하는데 선진국의 1/10도 사용하지 않음. 우리나라 항암제의 50%가 말기암환자에게 사용되고 있음. 이는 미국의 5배, 캐나다의 10배 수준임. 지금까지 우리는 병원에서 끝없이 의료행위를 하면서 환자분한테 생명의 마지막까지 의료행위를 하는 것을 적절하고 최선을 다하는 의료에서의 임종과정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가난해서 말기에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않았고 가난해서 마지막이 오히려 평화로웠음’(문평화 환자, 구강암 말기)
이 글을 읽으면서 내내 우울하고 답답하고 걱정이 되고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들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직접 경험한 것처럼 생생하게 그 심정과 고통스러운 마음들을 글로 표현하여 세상에 내어 놓은 저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또한 저자가 아내에 대한 바위같은 사랑과 애절한 헌신은 어둡고 긴 고통의 터널 속에서 한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너무나 사랑한 아내였기에 차마 보내지 못한 마음이 끝까지 연명치료에 집착하게 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평생 올곧고 알뜰하게 살아온 아내, 그가 가지고 간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 다 두고 달랑 삼베옷 한 벌 걸치고 황망히 떠났다. 허무하고 허무하다...” 이 대목에서 신라 경덕왕 때 승려인 월명스님이 일찍 죽음을맞이한 누이를 애도하면서 지은 작품인 “제망매가”라는 시가 오버랩 됩니다. “생사로(路) 여기 있어 차마 두려워 가노라 한마디 그 말마저도 못하고 홀홀히 가고 말다니” (가엾은 누이야 이승의 생사로는 기실 천국에의 길이기도 한데 너는 그것을 두려움으로만 대하였었구나 그래서 너는 이 오라비에게 마저 말없이 떠난 것이로구나) 여기에서 월명스님은 삶과죽음에 있어서 극락의 세상이 있는데 누이는 이를 모르고 죽음에 대해서 너무 두려운 나머지 한마디 인사도 없이 황망히 세상을 떠났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이 이 시의 내용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 이상의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에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떠난 아내의 모습에서....
이 책을 읽고 저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누리는 이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그리고 그 소중함이 또 얼마나 쉽게 깨어지고 흐트러질 수 있음을.... 그래서 현재의 지금 주어진 이 시간 시간을 어떠한 보물보다도 더 아끼고 사용하여야 겠습니다. 비록 어둡고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내용이었지만 그 속에서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에 무언가 메시지를 던져주고 삶의 지혜를 일러준 것에 감사함과 고마움을 가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