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안무가, 댄서, 그리고 배우인 포세는 특히 혁신적이고 화려한 안무로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아오고 있다. 그는 어렸을 떄부터 닦아온 발레, 탭댄스, 곡예댄스를 뮤지컬 <시카고>에 선보임으로써 그의 재능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여러 작품의 안무로 뛰어난 역량을 인정받으며 브로드웨이 최고의 안무가로 활동하다가 1987년 9월 23일 <스윗 채러티>쇼 진행 중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작품배경
뮤지컬 <시카고>는 1975년 6월 5일에 46가의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오디션이 있은 후, 본격적인 <시카고>의 연습에 들어가기 시작했지만 연습이 시작된 일주일 후의 어느 날 포세의 갑작스런 심장병으로 모든 연습은 중단되고 그 역시 서둘러 수술을 받게 된다. 프로듀서인 로버트 후라이어와 제임스는 연습이 지속될 수 없음을 판단, 그가 병원에 있는 동안 팀의 해체를 막기 위해 모든 배우들과 스탭들에게 다른 일거리를 제공해주며 포세의 완쾌를 기다려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 당시 이미 빅 스타들도 이에 흔쾌히 응해주었다. 모든 배우들과 제작자 연출자는 포쇼ㅔ의 빈자리를 메꾸며 새로운 캐릭터를 착수하는 등 <시카고>의 더 나은 공연을 위해 작업한다. 한달 후, 포세의 부분적 회복으로 연습은 다시 시작된다. 그의 회복과 일에 복귀한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포세는 안무가로서 뿐만이 아닌 연출자로서도 인정받는다. 호세는 무엇보다도 배우들에게 자신의 마음의 상태와 감정을 정확하고 진실하게 관객들과 교감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포세는 각 배우마다의 최고의 모습을 포착하는데 주력했으며 그것을 찾아주고 무대에서 승화시켜 배우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것을 표출해낼 수 있도록 이끌 줄 아는 연출이었다. 포세는 무용수들의 긴장을 완화시켜주기 위해 척 연습 일주일은 그 누구도 출입이 금지된 연습실에서 무용수와 포세만이 연습에 참여한다. 포세는 연습시 배우들의 감정을 최대로 끌어올려준 후 각자 분장실에 가서 지금 자신의 캐릭터에 도움이 될 만한 어떠한 소품을 가져올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모둔 배우는 다양한 소품을 차지하느라 싸움이 날 정도로 배우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캐릭터를 창조하는데 주력하게끔 만든 것이다.
늘 좋은 성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때론 어느 도시에서는 그들의 쇼를 만족스러워하지 않았으며, 배우들은 그로 인해 실망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의 좋은 연설을 통해 배우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했다. "잊지 마시오. 관객들은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들기를 좋아하고 또 그 영웅을 다시 끌어내리기를 좋아하죠. 작년에 나는 최상의 위치에 있었지만 지금 그들은 나를 다시 망치려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는 잘 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는 추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추락하지 않았고 <시카고>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후, 1995년 가을, <시카고>는 시티 센터에서 앵콜 공연을 갖게 되었다. 이 짧은 공연은 폭넓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끝났다.
브로드웨이 관객들이 열망하는 아주 훌륭한 음악과 기발하고 획기적인 안무, 그리고 관객들의 온몸으로 전달되는 파워풀한 열정은 <시카고>를 단지 단순한 앵콜 공연으로 치부할 수 없는 완성된 작품성을 보여주었고 이 작품은 관객들이 보고자 열망하는 뮤지컬의 모든 것을 갖춘 작품으로 인식되었다. 뮤지컬 <시카고>는 일반적인 브로드웨이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무대 메커니즘이 없이도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과 완벽한 노래, 그리고 열정만으로도 그렇게 작품에 생기를 돌게하고 완전한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뮤지컬 <시카고>가 그 동안 익숙해졌던 브로두위에의 거대한 스케일의 뮤지컬과는 매우 다른 성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브로드웨이를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 인정하였으며 어떤 다른 작품보다도 가장 극적인 작품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시카고>의 독특하고 에너지가 느껴지는 생동감 있는 공연은 종전의 브로드웨이에 익숙해있던 관객들의 인식에 변화를 주게 되었고 <시카고>는 브로드웨이의 수많은 다른 작품들보다 커다른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