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세의 남자분으로 95년도 1월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직장암 수술을 받았고, 이후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후 96년 1월 폐에 전이가 발견되었고, 몇 차례에 걸쳐 항암제 임상 시험에 참여했으나, 명확한 효과를 보지 못했으며, 98년 12월 별세하셨습니다.
아래 글은 암으로 투병하던 환자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쓰기 시작한 일기로, 유족들에 의해 환자가 돌아가신 뒤 서울대 병원으로 보내져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암환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일기가 중간 부분이 모두 지워졌다. 아마 컴퓨터 조작을 잘못한 모양이다. 하기야 꼭 남겨야 될 중요한 내용도 없으니 상관없겠지만. 지난 것을 다시 쓴다는 것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 동안 면역력의 약화가 원인이 되었는지 백내장(두 눈) 수술을 S의료원에서 받았고, 대상포진이 얼굴에 생겨 같은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대상포진은 무서운 병으로 다행히 흉터도 생기지 않았고 머리털도 빠지지 않았으나 지금도 통증이 남아 있어 어떤 때는 경련을 느낀다. 심한 경우에는 치료 후의 통증으로 잠을 못 이루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지병 때문일 것이다. 4월 7일 S병원에서 진단결과가 나왔는데 6월부터 매월 일주일씩 입원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가슴쪽으로 전이된 종양이 커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점점 더 피곤해지고, 기침도 자주 난다. 치료결과는 예측할 수 없으며 임상실험적 성격이 강하다. 참으로 우울한 얘기다. 입원치료도 쉬운 일이 아니며 그 부작용을 생각하면 더욱 걱정이 된다.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할까 하고도 생각하고 있다. 지병이 악화되어서 그런지 요즈음은 충분히 수면을 취하여도 피로가 심해 운전을 하다가 졸기도 하고 걸을 때도 상당히 힘이 든다. 설사도 자주 하고 가스도 예전보다 심한 것 같다. 피부에 기름기가 없어지고 손끝이 수분 부족으로 무엇을 만져도 미끄러지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감각이 무뎌진다. 다행히도 시력이 많이 회복되어 오른쪽은 1.0, 왼쪽은 0.6 정도가 된다. 백내장이 있을 때는 사물이 뿌옇게 보여 신호등 구분도 어려웠다. 더구나 햇빛이 비치는 낮이 더욱 그렇다. 인공 수정체를 넣었기 때문에 손으로 비비거나, 눈에 무리한 힘을 줘서는 안된단다. 아직까지 체중은 많이 안 빠졌으나, 걱정되는 일이다.
1998. 4. 29.
미안하게 생각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따뜻함과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달이다. 아버지는 가정에 소홀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늦게 낳으시고, 일찍 돌아가셨으므로 소년 시절 중요한 판단을 해야 되거나 결정할 일이 생기면 모든 것을 혼자서 처리해야만 했다. 더구나 한창 공부해야 될 시기에 경제사정으로 뜻대로 공부를 못하게 된 것이 반항적이고 비타협적인 성격을 형성해 주었다. 대학등록금이 없어 친척에게 생에 딱 한 번 돈 이야기를 꺼냈으나 거절 당한 후 지금까지 금전문제를 누구에게 부탁해 본 적이 없다. 어떤 일도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했으며, 어떠한 어려움도 혼자서 해결하였다. 이런 성격이 가정에서도 나타나 누구 못지 않게 풍부한 감정을 가졌으면서도 대화를 못하고 무섭게만 대하는 아버지가 되어버렸다. 참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특히 너희들에게 너무 큰 것을 요구했는지도 모르겠다. 기대가 컸던 것이 대화 부족으로 나쁜 점만 보여지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성격인지는 몰라도, 그래도 강한 책임감과 실천력은 너희들에게 좋은 영향으로 남았으면 하고 바란다. 비록 아버지로서 부족하지만 너희들이 훌륭히 자라고 있고 할머니가 건강하시며 너희들 어머니가 적극적인 성격에 자신의 직업과 취미를 갖고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가 좋은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말은 안 했지만 그런 점에서 아버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아버지의 부족한 점은 너희들은 따르지 말고 인생을 재미있게 살아가기 바란다. 아버지도 살아있는 한 가정의 소중함을 더욱 가슴에 품고 너희들에게 좋은 아버지 그리고 좋은 남편과 자식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마음과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안타깝지만, 좋은 아버지였다는 조그만 징표라도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고 생각해 본다.
1998. 5. 7.
머리가 무겁다.
금주에 진단을 하고 다음 주부터 입원치료를 받게 된다. 마음이 불안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다. 주사를 맞는다는 공포감도 있으며 이 방법밖에 없나 하는 아쉬움도 있다. 여러 가지 상념들이 머리를 스치지만 하여튼 유쾌하지 못한 일이다. 모든 것을 잊고 일에 빠져버리지만 몸이 피곤하고 머리가 무거워 이것도 제대로 안된다. 그저 의연하게 대처해야지 하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이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내가 없어도 잘 꾸려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애들이 한창 공부할 나이인데 하필이면 이럴 때 이렇게 되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모든 것 잊고 회사를 떠나 여행이나 다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약해진 것일까? 필연적으로 발생될 일에 대한 결과인가? 아니면 쓸데없는 상념인가? 이러다가 정말 통증이 오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끝나겠지. 그리고 어느 날 세상을 떠나겠지. 모든 것 잊게 되고, 잊혀지며 왔던 곳으로 돌아가겠지.
1998. 5. 25.
몸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이제 몸이 아파 오기 시작한다. 걷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온다더니 나에게도 다가오는 모양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하루하루가 너무 피곤하고 견디기 어렵다. 애써 나타내지 않으려 하지만 눈 뜨는 것도 귀찮을 때가 있다. 하루가 다르게 전이가 진행되는 것 같다. 슬픔과 고독 그리고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나를 짓누른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해보려고 애쓰지만 하루하루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기 싫다. 사람도 만나기 싫고, 병원에도 가기 싫다. 모든 것을 혼자서 삼키며, 체념도 하고, 용서도 해보지만 왜 이렇게 서글픈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1998. 7. 13.
숨이 차고 힘들다.
10월 27일 병원에 다녀왔다. 폐로 전이된 이후 변화가 없더니 점점 커지고 있으며 임파선을 따라 전이가 확대되고 있다.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조금만 올라가도 숨이 차서 견디기가 어렵다. 특히 조금 무거운 짐을 들면 50미터 걷기도 힘든다. 이 병이 이렇게 무서운 병인지 점점 실감하게 된다. 어제는 지하실에서 집으로 올라가는데 숨이 차고 갑자기 호흡이 멈추는 듯한 통증이 느껴져 간신히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시간이 아주 빨리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잠자리에서도 기침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하염없이 상념에 빠져 자꾸 나쁜 생각만 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답답하기도 하고 자살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루가 다르게 몸이 쇠약해지고 체력이 소모되는 것을 느낀다. 태연한 척 회사에서도 근무하고 있지만 괴롭기 그지없다. 모든 사람이 비웃는 듯 하고, 자기관리 하나 하지 못한 주제에 살아서 뭣하나 하는 자괴감도 든다. 정말 무슨 결심을 해야겠다고 생각되지만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스스로 놀라 슬퍼지기도 한다. 무슨 대책이 있겠는가? 의사도 아무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그저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처제들이 걱정이 되어서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고맙게 생각한다. 더 이상 괴로운 얘기 써봐야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저 조용히 운명을 기다릴 수밖에...
1998. 11. 5.
모든 것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다.
임파선을 따라 종양이 점점 커가고 있다. 이제는 목 부분에서 덩어리가 만져진다. 그리고 숨이 심하게 차서 계단을 한 개 층도 올라가기가 힘이 든다. 갑자기 숨이 막혀 쓰러지기도 한다. 점점 변해가는 육체의 나약함을 매일 느껴가야만 한다는 것이 참을 수 없이 괴롭다. 이제 모든 것을 빨리 정리해야만 된다는 강박관념이 든다. 오늘은 부동산에 대하여 현재의 상황과 앞으로의 대책에 대하여 정리를 했다. 살아서 애들에게 하나하나 가르치지 못하고 이렇게 글자로써 남기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으나 몸이 너무 피곤하여 그만 쓰러지고 만다. 끊임없는 기침소리에 모든 것이 사라지듯이.... 일기 쓰기가 힘들구나.
내가 잠시라도 곁에 없을 때는 나를 부를 힘이 없으니까 종을 가져오라고 했다. 설거지나 세탁 등 잠깐 동안 방에 없을 때 종소리가 나면 곧바로 달려간다. 대전 엑스포 때 인도관에서 사놓은 종을 이렇게 사용할 줄은 몰랐다. 밥을 못 먹고 생수나 쥬스 종류만을 마시니까 너무나 안타깝다. 준이와 간단히 김치와 들기름을 넣고 비벼서 빨리 식사를 했다. 오늘 저녁 때 음식을 먹으면서 준이가 이런 말을 하였다. "엄마! 아빠는 아무것도 못 드시는데 밥 먹는게 너무 죄송해요." 나는 "우리가 먹고 힘을 내야 잘 간호해 드리지" 하며 식사를 했다.
1998. 12. 11.
산소호흡기
숨쉬기가 더 힘들다고 해서 아침 9시 출근시간을 기다렸다가 S대 호스피스실로 전화해서 M이라는 업체를 소개 받아 산소호흡기를 오후에 설치하였다. 최대한 적은 양으로 시작하라고 해서 그렇게 하였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잘 모르겠다고 나아질 것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사용설명서와 계약서 등을 제대로 준비하였고 간호사가 나중에 방문하여 체크 한다고 한다. 큰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는 하였지만 보호자 입장에서 최대한 도움을 주고 싶어 설치했는데 효과가 있기를 바란다. 성의껏 해주고 최선을 다해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1998. 12. 15.
식은 땀을 흘리며
새벽녘에 잠시 졸았다. 깜짝 놀라 일어나 경진이 아빠를 보았다. 식은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다. 새벽녘에 숨 넘어가는 줄 알았다며 고비를 넘겼다고 지친 목소리로 얘기했다. 소변, 대변을 받아내고 이렇게까지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뭐가 미안하냐고 대꾸했지만.. 눈 속에는 눈물이 잠기었다. 21년 만에 처음 듣는 "미안하다"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미리 건강을 보살피지 못해서 이렇게까지 되어 아내의 역할을 다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며 엉엉 울었다. 서로 미안하다며 경진이 아빠도 울었다. 수원 정은이 아빠가 퇴근길에 왔다. 힘내시라고 당부하는 분위기가 너무 착잡해졌다. 내가 정은이 아빠께 새로 발령 받은 동장님 역할이 힘들겠다고 하니까 경진이 아빠가 동장은 미소만 짓고 있으면 되는데 뭐가 힘드냐고 하였다. 동민들에게 친절히 봉사한다는 말이다. 형제들과 회사 직원들이 문병을 온다고 하는데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하였다.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싫은 모양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등불교실에서 상담한 대로 본인이 하자는 대로 편안하게 해 드리려 한다.
1998. 12. 19.
재혼할 건가
약을 바꾼 효과인지 대변을 2일간 계속 봐서 그런지 오랜만에 오늘은 잠을 잘 잤다. 오전에 경진이 아빠가 갑자기 작은 소리로 "재혼할 거야?"라고 물었다. 무슨 소리인지 처음에는 잘 못들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뭐라고 했는데?", "재혼할 거야?" 나는 지금 내 나이 오십인데 별소릴 다한다고 대답했다. "가능하면 하지마"라는 너무나 약한 목소리의 대답을 듣고 너무나 불쌍했다. 예전에는 늠름하고 강한 모습이 넘쳐 나는 몸이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쇠약해졌다. "나는 당신 치료를 위해서 수지침도 배우고, 소나무처럼 건강하게 살기를 기원하며 소나무도 그렸는데..." 울면서 이야기하니까 "다 알아"라고 하며 짧은 대답을 했다. 난 인생이 복잡해지는 것이 싫다. 경진이와 준이가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인물이 되도록 잘 키우고 뒷받침해야 할 일이 많은데 지금까지 둘이서 못한 것을 내가 최선을 다해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1998. 12. 22.
저 세상으로
새벽 3시 30분에 물을 주고 나도 지쳐서 잠이 들었다. 5시 45분 깨어 물을 마시고 <굿모닝 팝스> 녹음준비를 하고, 고모는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금방 떠났다. 경진 아빠가 똑바로 편한 자세로 누워 있고 눈을 뜨고 있었다. 손으로 눈을 쓸어내려 눈을 감기고 준이를 깨웠다. 준이가 맥을 짚어보고 약간의 미동이 있다고 하였다. 이상하여 119에 신고하여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경진 아빠에게 바지와 남방을 입혀드렸다. 바로 119 사람들이 와서 경진이 아빠 눈을 보고는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러나 믿기질 않았다. 아직도 몸은 따뜻하고 숨을 쉬는 것 같았다. S의료원으로 부탁하여 그 곳으로 떠났다. 자신의 아버지가 가신 그 날에 함께 가신 것이다. 53세에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에 간 것이다. 편안한 표정으로 보아 아마 저 세상 좋은 곳, 아픔도, 힘든 일도 없는 행복한 곳에서 편히 쉬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