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로스쿨에 대해 말이 많다. 약 4년전인 2004년 4월 일본이 로스쿨을 개교하였을 때 비로소 우리나라는 로스쿨 도입 논의를 시작했다. 그 때 법조인들이 좀 더 광범위하게 의견을 개진하여 국민들의 여론을 우리편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법조인이 원래 나서기를 싫어하고 남의 일로 변론요지, 준비서면을 작성하는 데는 능하나 자기일에는 잘 대처를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법조인의 장래는 우리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것이고 누가 대신해 주는 것은 아니다.
우선 로스쿨의 출발부터 잘못되었다. 여론에 떠밀려, 미국이 한다고 하여, 일본이 한다고 하여 우리도 하는데 장래가 심히 걱정된다.
우선 미국이 한다고 우리도 해야 하는가.
미국은 다문화 사회로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많아 미국인들끼리도 의사소통이 안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기본적인 법률서식을 작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미국은 50개 주가 모두 다른 법률을 가지고 있는 연방국으로서 우리나라의 시도 연합체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미국은 법률적 사고가 있어 모든 분쟁을 법정으로 가져가는 분위기가 있다.
워싱턴주 판사가 한인교포 운영의 세탁소에서 바지 1벌을 잃어버렸다고 5400만불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내는 나라다. 미국 46개 주의 주지사가 담배로 인하여 주민에 대한 의료비 지출이 증가되었다고 하여 주요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2060억불을 25년간 분할지급하라는 승소판결을 받았다. 그 결과 로펌은 그 20%에 해당하는 약 800억불을 성공 보수금으로 10년 내지 20년 분할상환으로 받게 되어 있다. 그래서 로펌이 다수의 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큰 소송에서 한 번 승소하면 10여년간은 안전한 수익이 보장된다.
미국에 있어서 담배소송은 한개의 소송유형이되어 주, 자치단체, 개인 등이 건강침애, 복지비증가 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 담배회사를 상대로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총기판매에 있어서 관리소홀로 인한 총기소송도 줄을 잇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소송망국인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 중심으로 아직은 버티고 있다. 그리하여 미국의 법률시장은 넓다. 그래서 미국의 로스쿨은 미국 뿐만이 아니고, 세계각국에서 온 학생들로 넘친다.
위와 같은 조건이 우리에게 충족되어 있는가. 우리는 같은 한국어를 쓰고 있어서 의사소통, 한글서류작성에 문제가 전혀없고, 법무사, 변리사, 관세사, 세무사, 노무사, 중개사 등 변호사 외에 광의로 법률가라고 할 수 있는 직종이 많다. 그 뿐 아니다. 한국은 사돈에 팔촌까지 연줄로 엮여 있어 법정외에서 합의로 일을 끝내는 경우가 많다.
하기는 요즈음 우리나라의 변호사들도 먹고 살기 어려워 의사를 상대로 의료과오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 소음공해를 일으키는 건설현장, 공항을 찾아가 소음측정기로 소송 건수를 만드는 변호사, 인터넷에서 타인의 노래, 사진, 저작물을 복사하여 유포한 사람들을 상대로 50만원에서 100만원 까지 저작권자의 의뢰를 받고 받아주는 변호사들도 있다고 한다.
일본은 어떤가.
일본이 우리보다 5년 일찍 로스쿨을 실시하여 지금 수료자가 2년째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2007. 9. 13. 발표한 신사법시험의 결과 5200명의 응시자 중 1850명만 합격하여 합격율이 3분의 1 정도에 그치고 있다. 거기에다가 종래부터 있어온 사법연수소 수료자와 합치면 약 2400명 정도의 신규법조인이 배출되고 있다. 이중 약 70%만 일자리를 얻고 나머지는 백수라고 한다. 일본의 인구는 1억 2500만명, 우리는 4700만명, 딱 3분의 1이다. 그런데 법조인의 배출 수는 우리가 일본 보다 비율이 더 많다. 앞으로는 더욱 심할 것이다.
로스쿨이 됨으로써 예상되는 결과는 법조인의 출발이 늦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 법조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진다는 것이다. 이 점은 의학전문대학원의 실시로 입증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전문직 경력자에게 가산점을 주게 되자 20대 후반에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니 4년의 학부과정, 4년의 전문의과정을 마치면 한 30대 후반이 되어야 전문의 과정을 마친다. 60세까지 약 20년간 의사로서 활동하고, 70세까지 10년간은 현상유지하다가, 그 이후에는 은퇴해야 하는 실정이다. 의료인의 출발이 늦어지는 결과 기초의학, 외과학을 전공하려는 사람이 적고, 응급실을 담당할 의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 대신 위험성이 적은 안과, 이비인후과, 성형외과, 영상의학과 등 임상의학을 선택하여 돈벌이가 되는 개업의 쪽으로 몰려 당초 취지와는 다르게 다양한 전공을 살리는 못하고 있다고 한다.
법조인도 마찬가지가 될 거라고 예상된다. 우선 로스쿨은 대학졸업자들로 선발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4년 늦게 출발한다. 여기에 로스쿨 입학시험 응시회수의 제한, 사회경력자 우대 등으로 로스쿨을 입학하기 위하여 재수, 삼수를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입학 후에도 로스쿨 수료시험에 탈락한 사람들이 재수, 삼수를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된다. 법학수료자와 미수료자가 동시에 입학하여 과연 동일한 교과과정을 수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점은 일본에서 우려하여 법학이수자는 2년, 법학미이수자는 3년을 교육하는 것으로 설계하였다. 또한 일본에서는 법과대학 수료자와 미수료자 사이에 신사법시험 합격율이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여러 이유로 로스쿨 전후의 각 단계별로 정체가 된다. 지금 대학 졸업후에도 취직이 안되니 의도적으로 휴학하거나, 군대가서 대학생활을 연장하는 대학생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지금보다 입학시 4년, 입학정체 2년, 수료기간 3년, 수료정체 2년, 남자는 군대 3년을 합하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잘해야 14년, 나이 34세가 되어야 법조인으로 출발한다. 그 뒤 한 5년간은 법률실무를 익히다가 40이 되어 한창 일할 나이에 10년동안 변호사를 하고, 그 뒤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법조인이 되어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를 물려 주어야 한다. 국제거래관계 등 특수한 법률분야를 전공하려면 국내 로스쿨로는 부족하고 어차피 영미법계 외국유학을 통해야 한다. 3년은 기본법 배우는데도 부족한데, 어떻게 국제거래, 공정무역 같은 특수법을 배워 국제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것인지...
지금 로스쿨 예비인가에서 탈락된 대학들의 아우성이 연일 신문에 보도되고 있다. 과연 그 아우성이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지금 선정된 대학도 합격률이 시원찮으면 인가취소된다. 로스쿨이 지금의 사법연수원과 같은 정도의 교과과정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가. 적자가 누적되면 로스쿨을 자진 반납할 수도 있다. 지금 로스쿨 예비인가를 받은 대학이 막대한 운영경비를 충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00명이 정원이면 3학년 전부를 해도 300명이고 여기에 장학금 혜택 30%를 공제하면 200명으로부터 수업료를 1인당 3000만원을 받아야 60억원을 마련할 수 있다. 사립은 2000만원, 국립은 1000만원 이상의 등록금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1년 로스쿨 운영비 약 80억원을 마련하자면 로스쿨을 제외한 다른 대학의 투자재원을 상당부분 로스쿨에 매년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지금 고려대학교 등 일부 대학교가 로스쿨을 반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로스쿨은 해도 적자 투성이이다. 과연 법과대학을 없애고 로스쿨로 가서 살아남을 대학이 몇개나 될른지. 일본은 법과대학은 그대로 두고 로스쿨을 설치하고 있다. 그리고 로스쿨 하려는 대학은 인가조건만 맞으면 무조건 인가해주고 정원도 자율 조정하는데도 정원이 74개 대학에 5800명 정도이며, 신사법시험 합격율이 10% 미만인 대학이 많아 고민거리라고 한다. 로스쿨을 하나 마나 한 상황이 되고 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그 근본원인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 미국의 로스쿨을 도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법과대학이 없고 로스쿨만 있다. 기존에 법학을 공부하지 않은 다양한 전공의 대학졸업생이 로스쿨에 입학한다. 따라서 입학시에는 모두가 평등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나 일본은 법과대학이 있어 로스쿨 입학생 중 법과대학 수료자와 미수료자 사이에 실력의 차이를 보정할 방법이 없다. 완전한 미국식의 로스쿨을 하려면 법과대학을 없애야 한다. 그래야 장점도 살릴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변호사 자격취득을 무슨 청년실업자 해소책으로 내놓는게 문제다. 청년실업자 해소는 공장을 짓고, 서비스 산업을 늘리고, 과학연구인력을 늘리고 해서 해결될 일이지, 변호사나 의사 숫자 늘려 실업자가 해소되지는 않는다. 근본은 다스리지 않고, 때깔나는(실제는 아닌데) 듯한 변호사, 의사만 두들겨 패니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 물은 쪼개도 물이고, 흙은 부숴도 흙이다. 아무리 변호사를 쪼갤려고 해도 변호사는 변호사다. 돌을 까부수어 흙을 만들 수 있을지언정, 흙을 물로 바꿀 수는 없다.
지금 배출되고 있는 사법연수원 수료자 1000명만 해도 많은 편이다. 대구지역에서 변호사의 개업은 1년에 15명 내외, 판사, 검사 등 신규임용 15명 내외, 기타 기업체 취업 10명 등 40명이 최대한이다. 경북지역을 합한다고 하더라도 60명 정도가 상한선이다. 그런데, 뭐가 부족하여 로스쿨하자는 것인지. 국제화 시대에 글로벌 비지니스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로스쿨 한다고 국제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인수합병, 해상보험, 국제금융, 외국과의 무역분쟁, 특허소송 등과 같은 특수한 업무와 소송은 어차피 10여년 이상 경력의 변호사가 수련하여야 수행할 수 있는 것이지, 신참 로스쿨 입학자가 배울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따라서 국제변호사를 양산하기 위해 로스쿨을 한다는 것은 논리가 맞지 않는다. 국제 변호사를 양산하기 위하여는 우리나라 법과대학 대학원을 각 대학별로 특화하여 특수강좌를 개설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 그 정도로만 될 일을 로스쿨이니 뭐니 하고 떠드는 것은 실효성도 없고 다 부질없는 일이다.
어떤 이는 "이공계 대학 정원을 2000명으로 제한하는 것을 봤나. 왜 로스쿨 정원만 2000명으로 제한하는가." 이런 아둔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공계 출신이 할 수 있는 업무범위와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업무범위의 크기를 생각하지 않는 단견이다. 우리나라 이공계의 수요가 100이라면 변호사의 수요는 1도 되지 않는다.
또한 법률가(Lawyer)와 변호사(Attorney)는 엄밀히 다른 개념이다. 법률가 중 일정한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10대 법과대학을 졸업하면 법학에 대해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 말하는 변호사 수준에 해당하는 법률가가 될 수 있다. 미국의 변호사 자격은 우리나라 법과대학 졸업자 보다는 수준이 높고 사법연수원 수료자 보다는 낮은 법학석사 정도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로 한 때 금융기관의 설립을 자유화하였다가 도덕적 해이에 빠져 무수한 금융기관이 퇴출되어 결국 우리가 IMF에 의한 경제지배를 받게 되었다. 아파트 분양가 자유화를 했다가 지금 지방에 무수한 미분양 신규아파트가 있어 도리어 건설경기의 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무엇이든지 수요와 공급을 적절히 예상하지 않고 시행하는 정책은 오류를 범하기 쉽다.
물(비지니스)이 크면 고기(법률분쟁)가 많고 낚시꾼(변호사)이 많이 모여들게 되어 있다. 그런데 낚시꾼이 늘면 고기가 늘어나고 물이 불어나게 되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물을 크게 하여 여러사람이 공생할까를 생각해야지, 고정된 물에 낚시꾼이 많으면 모양이 좋지 않다. 지금은 물을 크게 하여 주위로 산책로를 만들고 상가를 형성하고 유람선을 띄워 같이 즐길 수 있는 대규모 산책객, 쇼핑객, 관광객을 유치하여야 할 때이지 자기의 행복이 남의 불행으로 이어지기 쉬운 낚시꾼을 늘릴 때가 아니다.
이미 로스쿨 도입이 결정된 마당에 딴지를 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너무나 명백히 보이는 오류를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로스쿨을 우리의 실정에 맞게 잘 정착시키기 위하여는 우리 법조인이 로스쿨의 실체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 이제까지는 변호사의 자격이 없는 대학교수, 시민단체가 여론을 주도하였다. 더이상 침묵이 미덕이 아니다. 권리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우리 모두 잠에서 깨어납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