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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 대하여
일찍이 영국의 저명한 역사가 윌리암 렉키는 그의 저서 “어거스틴부터 샤를로 대제까지의 유럽 도덕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독교는 18세기 동안 모든 시대,모든 민족,모든 상황,모든 기질적 차이를 초월해서 사람들의 마음에 뜨거운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영감을 불어넣고 ,최고 패턴의 덕이 있을 뿐아니라,그 덕을 행하게 하는 활력소가 되어왔다.
예수는 단 3년간의 생애가 인류의 신생과 그 마음에 부드럽게 함에 끼친 영향은 전 인류의 도덕가들의 노력과 전 인류의 철학가들의 탐구를 다 합한 것 보다 더 큰 것을 성취하였다.
예수가 만약 종교의 사기꾼 이었다면 인류의 거룩한 것은 모두 사기사건으로 된 것이라는 결론이 타당할 것이다.
예수! 그는 나의주 나의 하나님 이십니다.
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
성경 기적을 믿지 않는 여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말을 했다.
“성경에 있는 기적은 진짜로 있었던 것이 아니란 말이예요.예를 들어 우리가 알다시피 모세가 백성들을 끌고 홍해바다를 건너갔을 때 바다의 깊이가 6인치밖에 안되는 갈대밭을 건너간 것이지 어떤 기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거든요”
선생님 말이 끝나자 뒤에 앉은 학생 한명이“기적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했다.
좀 기분이 좋지 않은 선생님은 “무슨 기적이란 말이예요?”라고 묻자 학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하나님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오던 애굽의 큰 군대를 모두 홍해 바다물에 빠져 죽게 했는데 6인치 깊이의 물에다 애굽의 그 많은 대군을 다 빠뜨려 죽게 하신 하나님의 일이 진짜 기적이 아니겠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유세비우스 당시에는 핍박이 너무 심하여 어떤 교우가 재산 몰수를 당하면 교우들이 서로 생활을 책임졌고 ,다른 데로 피신하여 가면 목사 소개서 한 장으로 으레 그들의 생활을 책임 졌다고 합니다.
2세기초의 신학자 터툴리안의 변증론의 일절을 보면“보라,저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가를 ! 저들은 이제 서로 죽기도 사양치 않구나!.저들은 아내 외에는 무엇이나 공동으로 가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불신자들이 경탄함을 말하였고,그들은 또한 불신자들을 향하여“당신들은 우리를 핍박하나 우리는 당신들을 위하여 기도하며,당신들의 신을 위하여는 아무것도 아니하나, 당신들의 빈궁한 자는 우리가 구제 하노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기독교 반대론 루시안은 기독교를 반대하는 글을 썼는데 그 가운데에는 “그들이 서로 어려운 중에도 상부상조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아무것도 아끼는 것이 없다.그들의 첫 입법자가 그들 머리에 그들은 서로 형제라 하는 사상을 단단히 넣어주었다.”라고 말하였고 ,또 로마의 울바너스 감독은 “로마 전국에 기독신자로서 걸식하는 자는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우리도 주님을 사랑한다면 이렇게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제임슨 심프스경
에든버러 대학의 제임스 심프슨 경은 진통제를 발견해서 고통 없이 수술을 받게 했습니다.그것은 의학게의 노벨상 감이고 대 발견이었습니다.
그의 강의 시간에 한 학생이 노교수 심프슨 경에서 “선생님의 생애에 가장 뜻 깊은 소중한 발견 한 가지를 들으라 하면 무엇을 들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한참 동안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했습니다.
“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발견은 나는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오늘 심프슨경의 고백의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하며 이런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야 합니다.
스펄젼의 예수를 바라보자
스펄젼이라는 유명한 설교자가 있습니다.그런데 스펄젼이 자기의 생애에 깊은 회의에 빠진일이 있었습니다.
인생의 길을 다 잃어 버리고 방황하는 영혼이 되었습니다.어느 주일 아침에 시골 길을 가다가 이름없는 감리교회에 들어가 예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사람이 대 여섯명 밖에 안 모이는 곳이었습니다.목사도 없어서 구두를 깁기도 하고,수선하기도 하고,만들기도하는 구두 직공이 일어나서 설교를 하는데 설교도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바라 보십시다.예수를 바라 보십시다.”그 소리만 100번쯤 하는 것입니다.그러다가 스펄젼을 보고는 큰 소리로 설교단에서 “저 청년 방황하고 있습니까”길을 모르십니까?예수를 바라 보십시오“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때에 스펄젼은 ‘아 ,나는 길을 잃은 사람이구나!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생각하고 예수를 바라 보았습니다.그리하여 영국의 거성 같은 위대한 설교자인 스펄젼이 탄생한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만 바라보는 자가 됩시다.
가야할 곳을 가르치지 않았다.
미국 어떤 도시의 후생사업국의 한 여직원이 빈민가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다 그녀는 소아마비로 절름발이가 12살쯤 된 소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를 동정해서 그를 도와주기로 결심했다.
유명한 정형외과 의사를 찾아가 그에게 그 소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호소했습니다. 의사는 그녀의 말에 감동해 그 아이를 수술하여 치료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수술과 장기간의 치료를 통해 그 소년은 마침내 정상적으로 걷고 뛸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녀는 길에서 우연히 의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절름발이 소년에 대한 얘기가 오가게 되었습니다. "그 소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고 의사가 물었다. 그러자 "박사님! 지금 그가 무엇이 되었는지 한번 맞추어 보세요" 하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의사가 되었습니까?" "아니요." "그럼 과학자가 되었습니까?" "아니요"
"그러면요?"하고 의사가 궁금한 듯 답변을 재촉했습니다. 그녀가 대답했다. "그는 지금 교도소에서 살인자로 형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박사님!, 우리가 그에게 걷는 법만 가르쳤을 뿐 그가 걸어가야 할 곳을 미처 가르쳐주지 못했어요."
우리의 자녀교육이나 학교교육이 "걷는 법을 가르칠 뿐 가는 곳을 가르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가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지식사회의 도래에 따라 수많은 지식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만큼 지식의 수명은 짧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가르칠까?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주요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당신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성경에는 어릴 때에 주의 도를 가르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평생 그 가르침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신 옥에 갇혔었는대.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실화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어나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되어 같이 생각하기로 합니다.
어떤 친구가 찾아와 사정을 했습니다. 애들 엄마는 가정이 어렵다고 집을 나가버렸고, 세 명이나 되는 어린아이들은 배고프다고 졸라대는데 돈 벌 직장도 없어 그만 도둑질하여 훔쳐온 물건을 팔다가 그만 잡혔다.
내가 지은 죄 값으로 교도소에 갇히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철 없는 세 아이들이 굶어 죽던가 고아원에 버려져야 하니 이 일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당신이 내 대신 책임을 져 줄 수 없겠느냐? 당신은 아직 홀몸으로 딸린 식구가 없지 않느냐. 내 어린 자식들을 생각해서 눈을 감을 수 없다. 제발 부탁이니 내 대신 몇 개월만 살다 나오면 내가 평생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갚겠다.
그 사람은 지금 타향에 나와 막노동판에서 일하는 형편이라 친한 친구도 별로 없었습니다. 찾아와 부탁하는 친구와는 잘 아는 처지는 아니었으나 그 친구의 사정이 너무나 딱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며칠 밤을 고민하다 드디어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 어려운 친구를 위해 내가 누명을 쓰자. 그것이 바로 우정이며 그 가족을 살리는 길이다. 그리고는 그 대신 교도소에 들어갔습니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를 했지만 그를 맞아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여 찾아가 볼까도 생각하였지만 그렇고 해서 그만 잊고 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는데 바로 뒤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의 한 목소리가 너무나 낯익었습니다. 바로 그 친구의 목소리란 것을 알게 되었였습니다. 자연 대화에 귀 기울여 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자기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친구가 신이 나서 지껄이고 있었습니다. 옛날에 자기가 도둑질하다 잡혔는데 어떤 바보 같은 친구가 자기 대신에 징역을 살아 주었기 때문에 자기는 이렇게 잘 살고 있다는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도둑질하다 잡힌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들키지 않고 도둑질 할 수 있다고 뻐기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했는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기로 합니다.
이 어리석은 친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니 그보다는 이 더 흉악해진 도둑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를 위해 아무 잘못이 없는 한 사람이 대신에 교도소까지 갔었는데 은혜를 보답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한 도둑으로 변했고 그것이 오히려 자랑거리가 된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배은망덕한 사람이 바로 나와 크게 다르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나를 위해 희생하신 부모님이나 사회나 스승이나 혹은 다른 분들의 은혜를 잊고 우리가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들의 바람과는 전혀 다르게 오히려 더 악하여져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려고 베프신 크신 은혜인데 우리는 처음 믿을 때보다 더 사랑이 시어졌고 더 악하여져 살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행복 뒤에는 우리를 위해 숨은 희생하신 분들이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우리 모두 은혜를 결초보은 해서라도 갚는 자 은혜를 아는 자가 됩시다.
열두사도의 최후.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주후 68년 네로 박해때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서 죽었고, 안드레는 헬라국 밧으라에서 X형으로된 형틀에서 못박혀 죽었다.
큰 야고보는 주후 44년 예루살렘에서 헤롯에 의해 목이 잘려 죽었으며, 요한은 꿇는 물에 넣어졌다가 살아나 밧모섬에 유배 당했다가 주후100년경 에베소에서 죽었고, 빌립은 부루기아에서 기둥에 매인채 맞아 죽었다.
그리고 바돌로매는 산채로 가죽이 벗겨져 죽었으며, 도마는 인도에서 쇠몽둥이와 창에 찔려 죽었고, 마태는 애굽에서 칼에, 다대오는 버시아에서 활에 맞아 죽었으며, 작은 야고보는 주후 62년 유대인들에 의해 성전에서 밀쳐진 뒤 돌과 망치에 맞아 죽었고, 시몬은 예루살렘에서 못박혀 죽었다.
이들은 단지 그리스도만을 전하다 비참하게 죽어갔지만 그들이 전한 사랑의 복음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을 살리고 있다.
우리도 제자들과 같이 주님을 위해 살다 주님을 위해 죽자
'농구황제' 조던과 마음씨 좋은 택시기사.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1999년 1월 코트를 떠났습니다. 그는 15년간 미국 프로농구(NBA)시카고 불스에서 전설을 만들어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은퇴기자 회견에서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경기를 했다. 최고의 농구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결과 화려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마이클 조던이 시카고 불스에 입단하기 전에는 가난뱅이였습니다. 그는 시카고로 초청 받고도 항공비가 없어 비용을 마련하느라 동분서주 했습니다. 그리고 겨우 마련된 비용으로 시카고 공항에 내렸지만 연습경기장까지 갈 차비가 없었습니다.
그는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 "난 농구선수 마이클 죠던인데 시카고 볼스에서 뛰게 되는데 그 곳까지 갈 택시 값이 없습니다. 그냥 좀 태워다 주시면 나중에 갚겠습니다." 하고 말했지만 모두들미친놈이라고 욕을 하고는 그냥 가버렸습니다. 몇 시간을 이렇게 애를 써다 마침내 한 택시를 얻어 타게 되었습니다. 그 택시기사는 선뜻 조단을 불스 경기장 까지 태워 주었던 것입니다.
조단은 경기장에 도착하자 택시기사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지불 할 차비가 없지만 후에 제가 약간의 돈을 벌면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택시 기사는 웃으며 "시카고를 위해 좋은 경기를 보여주세요. 제가 당신의 첫 번째 펜이 되겠습니다." 하고는 택시를 몰고 떠나갔습니다.
그 후 조던은 멋진 플레이로 많은 팬을 얻게 되었고 돈도 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시카고에서 처음 만난 그 택시기사를 애타게 찾으려 했습니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그 택시기사를 찾는다고 말하였고 드디어 두 사람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해에 두 사람은 시카고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농구 선수로, 다른 사람은 마음씨 좋은 택시기사로.
시카고 경제를 움직일 정도의 농구 황제가 된 마이클 조던은 그 택시 운전사와의 우정을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쁜 일은 그 마음씨 좋은 택시기사가 바로 한국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우정은 아직도 시카고 한인타운에 잘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한국인의 친절은 과히 세계적이라고 합니다. 중국 기술자들은 한국기술자들을 그렇게도 좋아한답니다. 일본기술자들은 기술에 관해 물으면 대답해 주는 법이 없는데 한국기술자들은 묻지 않는 것까지도 다 알려주기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나 그렇지 않고 차별적이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친절이 지나치게 감정적이기 때문에 기분이 내키지 않을 때는 미움이 그만큼 커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됩니다. 우리의 친절이나 이웃사랑이 감정의 차원을 벗어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세계 최대의 자선가.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은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빌 게이츠 회장입니다.
그는 1955년 시애틀에서 태어났고 ,여덟 살쯤에 세계 백과사전을 겉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독파했다고 합니다. 또한 열한 살에는 산상 수훈을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 없이 암송하여 목사님을 놀라게 하였습니다.후에는 대학 입학 적성 시험의 수학 부분에서 800점 만점을 획득하였고 국립 장학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기업가가 되려는 빌 게이츠의 야망은 어린 시절부터 뚜렷이 나타났는데,그는 6학년 때 미래의 병원에 관 모양의 치료 시스템을 팔기 위해서 빌 게이츠웨이 유한 회사를 설립할 계획을 서술하여 A를 받았다고 합니다.고등학교 시절에는 20대에 백만장자가 될 것이라고 자신의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의 재산은 2003년 말 현재 빌 게이츠의 재산이 460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는 아내 멜린다와 결혼 후 여덟 살 된 딸 제니퍼, 다섯 살 난 아들 로리와 함께 시애틀의 워싱턴 호숫가 저택에 살고 있습니다. 건평만1만1500㎡(3550평)짜리인 이 집엔 3000만 달러짜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육필 원고가 전시돼 있으며, 화장실 24개와 부엌 6개, 120명이 식사할 수 있는 식당과 실내 수영장 등이 구비돼 있습니다.
그는 1994년 1월 자기 회사 직원인 멜린다 프렌치와 결혼했을 때 세상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컴퓨터의 천재이며 촉망받는 젊은 CEO, 세계 최고의 부자가 선택한 여인이 외모도 그저 그렇고, 집안도 그저 그런 너무나 평범한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빌 게이츠는 세계최고의 갑부일 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자선가입니다. 1999년 이후 2003년까지 5년간 게이츠 부부가 재단을 통해 출연한 돈은 자그마치 230억 달러(우리 돈으로 27조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그의 전 재산의 반을 기부에 써온 셈이 됩니다. 그러나 빌 게이츠가 그의 아내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39)를 만나기 전까지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멜린다는 텍사스주 댈러스 교외에서 태어나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듀크대학에서 컴퓨터공학 학사와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차례로 취득하고 1987년에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 해 1993년 결혼할 때까지 프로그램 매니저로 일했습니다.
멜린다가 제3세계 저개발 국가의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을 돕겠다고 나서게 된 계기는 93년 아프리카 여행에서 비롯됐습니다. 멜린다는 여행 중 흙길을 맨발로 걸어가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아무리 눈을 씻고 둘러봐도 도대체 신발을 신은 여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프리카는 나를 영원히 변화시켰다”고 그녀는 회고했습니다.
멜린다는 지난 2000년 게이츠 밀레니엄 장학 프로그램을 발표하는 기자 회견장에서 우주항공 기사로 일하던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을 가르치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감수해야 했는지를 회상하며 “재능이 있는 학생은 어떤 대학, 어떤 학문이든 비용을 아끼지 않고 후원하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98년 한국이 유치한 국제백신연구소(IVI)에도 개도국 어린이를 위한 백신 개발 연구기금으로 1억달러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멜린다는 독점 시비에 휘말리고, 기업 사냥꾼이라는 일부의 손가락질을 받던
빌 게이츠를 결국 세계 최고의 자선사업가로 변신시켰다.두 명의 머리가 하나보다 낫다는 빌의 말을 증명해 나가고 있는 셈입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잠 11:24].
“나를 위하여 돈을 위하여”
미국의 대부호 록펠러(1839-1937)는 한때 미국 석유업의 95%를 지배한 대실업가였다.가난한 행상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청년시절부터 야심에 차 있었다.
그의 목표는 “나를 위하여 그리고 돈을 위하여”였다.그는 빈 손으로 출발해서 20대에 자립했고 30대에 오하이오 스탠더드 석유회사 설립했고,40대에 철도회사와 기업을 합쳐 일약 미국을 취고 흔드는 대부호로 등장했다.
그는 자기를 위한다는 철저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하여 고용한 노동자나 회사원들과 거래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인정없이 착취했다.그랬기 때문에 그를 좋아 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은 없었다. 돈 때문에 그 앞에서 무릎을 꿇는 사람은 많았으나 마음속은 그에 대해 증오로 가득찬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록펠러가 나이 50이 넘게 되자 심한 오이로제에 걸렸다.식욕이 없고 소화도 안 되며 불면증까지 겹쳐 밤이면 악몽으로 고통을 당했던 것이다.이런 고통 속에서 그는 주님을 찾았다.그는 자기를 위하여 돈을 위한 길이 파멸의 길임을 깨달았다.그는 하나님께 돌아왔다.하나님을 찾고, 자기를 찾은 그의 눈에 차츰 아내와 아이들,친구와 이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돈을 내놓기 시작했다.시카코대학을 위시한 많은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뉴욕의 리버사이드교회를 시작으로 많은 교회를 세웠다.그가 여러 자신사업 기관에 기부한 돈은 천문학적 숫자였다.그는 자기의 부를 인류에게 돌려 줌으로써 참 이웃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