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풍물굿에 관하여
1. 들어가는 말
마당에서 펼쳐지는 풍물굿 한마당은 심장의 고동과 맥박을 꿈틀거리게 하는 놀라운 힘과 흥겨움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풍물소리를 들으면 몸과 마음이 풀리고 아무 거리낌 없이 풍물굿판에 뛰어들어 남녀노소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신명나게 춤추는 마을의 축제판을 이루게 된다. 꽹과리를 잡고, 북을 메고, 장구를 치며, 징을 두드리다 보면 농사일에 지친 사람들의 얼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를, 생기가 돌고 의젓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정월 초에는 액을 몰아내고 복을 맞이하는 마을제나 지신밟기를 하여 한 해의 운수를 빌고, 농사일이 바쁜 철에는 일터에서 두렛일을 하면서 풍물로 피로를 푼다. 백중날에는 농사의 장원(농사일을 으뜸으로 지은 사람)을 뽑고 풍물놀이로 하루를 즐기며, 한가위에는 풍물이 전국 곳곳에 메아리 치는 가운데 그 해의 풍년을 축복한다.
비단 세시풍속 놀이로서만이 아니라 집을 지을 때는 성주풀이를 하고 또 새로 이사온 사람은 집들이로 풍물을 치며 술과 음식을 대접하기도 한다. 옛날에는 사냥을 할 때나 적과 싸울 때도 풍물이 쓰였고, 줄다리기나 씨름판을 벌일 때도 풍물을 쳤다. 또 마을의 공공기금을 마련할 때나 장례 때에도 풍물이 쓰였다.
이렇듯 우리 겨레는 일 년 열두 달 풍물과 더불어 살아왔으며, 풍물은 우리 겨레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오늘날의 문화를 이루어 왔다. 풍물에 관하여 자세히 알아 보는 것은 뜻있는 일이며, 우리 겨레의 살아가는 모습을 엿보는 즐거움이 또한 자못 클 것이다.
2. 뜻과 일컫는 말들
1) 뜻
풍물굿은 다섯 악기(쇠, 징, 장구, 북, 소고)를 주로 치며, 소고를 들고 다양한 춤을 추는 기능과 극적 짜임을 맡는 잡색놀이 등을 포함하는 공동체적인 놀이형태를 말한다. 이는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종교적 놀이요, 집단의식에서 싹튼 놀이양식으로서 농경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발달한 문화의 한 양식이다. 풍물의 악기는 원래 신을 부르는 악기였고 잡귀를 몰아내는 악기였기에,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주술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춤과 놀이를 통해 외로움과 아픔을 풀어 기쁨으로 끌어 올리는 가운데 신명이 나온다. 농민들은 활기 있는 노동생활을 위하여 풍물굿에서 신명을 얻어 내려고 하였다. 이렇게 볼 때 풍물굿은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염원을 모으려는 진취적인 행위, 신명으로 고통을 이겨 내는 재생과 생존의 놀이라 할 수 있다.
2) 일컫는 말들
가장 일반적인 말이 '농악'이며 최근에는 사물놀이패가 생기면서 '사물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옛날 마을에서는 지역과 굿을 하는 목적에 따라 굿, 매구, 매구굿, 풍물, 풍장, 두레, 걸궁, 걸립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러 왔다. 그러면 이러한 여러 가지 말들이 어떻게 쓰였으며 앞으로 어떻게 쓰는 것이 바르게 쓰는 것인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1) 농악
1870년대까지 판소리 춘향가에는 '두레굿'이라 쓰였는데, 일본 제국주의의 농업 수탈정책의 하나인 농업 장려운동으로 원각사의 협률사라는 단체에서 농악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농악이 글로 처음 나타난 것은 1936년 총독부에서 펴낸 '부락제'라는 책에서였으며, 이로 미루어 볼 때 농악이란 말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부터 쓰인 것으로 보인다.1) 농악이란 말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농민의 음악'이라 하여 농사꾼이 하는 음악으로 여겨질 수 있다. 원래 풍물굿이 농경사회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농민들 스스로 농악이라고 불렀던 적은 없었고 일제의 민족 말살정책의 하나로써 일본의 탈놀이 능악(能樂)의 발음인 '노가꾸'를 본떠서 농악이란 말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의 민속신앙을 말살하고 농업 장려의 목적에 한해서만 풍물굿을 허용했다. '농악'이란 이름으로 신청을 해야만 굿판을 열 수 있었기 때문에 굿하는 단체들이 농악이란 이름으로 공연신청을 한 데서 일반화되다가, 8?15 해방 이후 많은 학자들이 국악이론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농악이라 부르게 되었다.
풍물굿을 농민만으로 축소하고 대상화시킨 농악이란 말은 풍물을 일컫는 이름으로는 걸맞지 않고 말 자체에 다음과 같은 한계점을 갖고 있다.
첫째, 농악이라고 부르면 농민의 음악, 즉 장단이나 소리만을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에 풍물굿이 가지는 종합적이고 대동굿(놀이)적인 성격을 나타내지 못해 단순히 악기를 연주하는 것만으로 한정시켜 버리게 된다. 물론 음악적인 요소의 비중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풍물굿이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뜻은 놀이, 춤, 재담, 노래, 연극 등이 나뉘어지지 않고 같은 마당에서 함께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둘째, 도시 즉 복잡한 산업사회에서도 가능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뜻에서 좀더 적극적인 쓰임말이 필요하다. 풍물굿이 본래 농경사회와 함께 하면서 농경사회의 생활과 노동의 율동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오늘날 서로 다른 환경이나 조건 속에 놓여 있는 여러 삶의 터(농촌, 도시, 학교, 노동현장, 어촌 등)에서도 공동체문화 형성에 필요한 매개체로 쓰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쓰임말 자체가 가지는 한계점을 이겨 낼 필요가 있다.
(2) 사물놀이
풍물굿에 있어서 사물이란 쇠, 징, 장구, 북을 가리키는 것으로 불교에서의 사물(범종, 운판, 법고, 목어)에서 나왔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이는 남사당패의 놀이 가운데 풍물이 가장 간단한 짜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지금 우리는 '사물놀이'라는 말이 마치 우리나라의 전통예술 가운데 꽹과리, 징, 장구, 북을 가지고 뭔가 예술적인 행위를 하는 어떠한 갈래를 일컫는 보통명사로 쓰고 있으나, 사실 사물놀이는 1978년에 생긴 한국전통타악연주 단체(김덕수패 사물놀이)에서 자신들 스스로 붙인 단체의 이름이었다. 처음에는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였던 셈이다.2)
사물놀이는 풍물굿을 가리킨다기보다는 고도로 무대화된 타악기의 연주형태로 풍물굿의 가락을 음악적으로 발전시킨 한 형태로 봐야 한다. 풍물굿과 사물놀이를 비교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볼 수도 있다.
풍 물 굿 사 물 놀 이
연주장소
연주시간
연주인원
연주목적
가락특징
관객반응
잡색역할
진 풀 이
넓은 마당이나 공터에서 이뤄진다.
시간 제한이 거의 없다.
많을수록 굿의 맛이 살아난다.
대동굿(놀이)을 지향한다.
같은 가락의 되풀이가 많다.
판에 끼어들기가 쉽다.
치배와 관객의 다리 역할을 한다.
판에 따라 즉흥성을 살릴 수 있다.
좁은 공간이나 무대에서도 할 수 있다.
한 작품당 약 10∼15분 정도이다.
보통 4∼6명 정도로 할 수 있다.
짧은 시간에 고도의 기량을 보여 준다.
대표적인 가락을 이어서 만든다.
공연할 때에 끼어들기가 어렵다.
없는 것이 아쉽다.
작품의 틀이 공연 전에 정해져 있다.
풍물을 창조적으로 이어받은 사물놀이는 일반 사람들에게 풍물의 가락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고,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뛰어난 재주를 살리고 발전시킨다는 좋은 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풀어 나가야 할 문제점을 갖고 있다. 즉, 옛날 마을굿이 지니고 있던 대동놀이적인 면을 살리고, 구경꾼과 놀이꾼(연희자)과의 거리를 좁혀 가는 판을 되살리는 일이다.
(3) 풍장
농사일에 많이 쓰이는 말로 김매기할 때 이루어지는 풍물놀이를 가리킨다. 특히 만두레(벼농사는 김매기를 보통 세 번 하는데 그 가운데 마지막에 하는 것을 말함)가 끝나는 날 농사가 제일 잘 된 집 머슴을 소 등에 태워 위로하며 노는 것을 농장원, 질꼬냉이라고 한다.
(4) 두레
원래는 우리나라 고유의 마을단위 일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며, 특히 김매기를 위해서 만들어졌다. 풍물이 공동체적 놀이로서 일두레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풍물을 두레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5) 굿
모든 지방에 걸쳐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로 '굿친다'라는 표현을 쓴다. 굿의 의미는 원래 '모인다'는 뜻을 갖고 있었다. 모여서 공동체 안의 모든 일을 의논하고 풀어 가며, 공동체적 바람을 집단적으로 빌며 집단적 신명으로 끌어 올려 새로운 삶의 결의를 다지는 일련의 과정을 담아 내는 말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무속에서의 신앙적 뜻만을 가리키는 흐름이 있다.
(6) 매구?매굿?매귀(埋鬼)
땅 밑에 있는 나쁜 귀신이 나오지 못하도록 묻고 밟는다는 뜻으로 보통 섣달 그믐날 밤에 하는 풍물놀이를 매굿이라 한다.
주로 경상도 지방에서 풍물을 일컫거나 꽹과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7) 풍물?풍물굿
주로 경기, 충청도 지방에서 쓰이는 말로 모내기할 때 간단한 편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기도 하며 신에게 소원을 푼다는 뜻이나, 농사의 풍년을 바란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80년대에 들어와서 대학가와 문화모임들이 농악이란 말 대신에 풍물 또는 풍물굿이란 말을 자주 쓰게 되었다.
3. 뿌리와 변천과정
풍물굿의 기원은 원시사회의 풍농과 안택을 비는 제천의식이나 일의 율동에서 비롯됐다. 이것이 점차 집단생활 속에서 놀이형태, 축원형태, 연극형태로 발전되고 사람들이 이를 즐기게 된 것으로 보인다.
원시시대의 제천의식 또는 집단적 바람을 비는 제의형태는 종교적 의식을 주재하고 대행해 줄 무당(샤만)이 나타나기 이전이므로 집단적 신명을 통해 신과 만나고 기원하는 형태였으며, 풍물굿의 원시적 형태로서의 집단춤과 쉽게 소리를 낼 수 있었던 타악기를 썼을 것이다. 이것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오늘날의 틀을 갖춘 것은 조선시대 이후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풍물굿에서의 악기와 연희형태 가운데 불교에서 들어온 것이 많은데, 이런 악기와 연희형태가 기층민중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불교가 탄압을 받았던 조선시대이며, 풍물굿이 농촌의 두레공동체와 함께 커온 것으로 볼 때 두레의 생산과정과 궤를 같이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함께 일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 것은 이앙법(모내기)이 들어온 조선시대 이후로 추측할 수 있다.
학자들 사이에 풍물굿의 기원을 풀이한 것으로는 풍농안택기원설, 군악설, 불교관계설 등이 있는데, 이들은 풍물굿의 기원을 풀이한 것이라기보다는 풍물굿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기까지의 과정을 풀이한 것으로 의미가 있다.
1) 뿌리
(1) 풍농안택기원설
농경사회에 있어서 집단적인 바람(기원)은 당연히 농사가 잘 되고 마을에 탈이 없기를 바라는 것으로, 이는 집단적 신명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그것을 위해 쓰였던 음악과 춤을 풍물굿의 원시적 형태로 보는 것이다.
(2) 불교관계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불교가 탄압을 받게 되자 모든 절의 경제적 기반이 어려워졌다. 스님들은 자구책으로 불교음악이나 의식춤에서 나오는 연희형태를 가지고 마을에 내려와 자금을 얻어가게 되었다. 이런 일들이 계속되면서 불교음악과 의식춤에서의 악기, 장단, 연희형태들 가운데 민중의 미의식에 알맞는 것들을 풍물굿에 끌어들여 썼으리라는 것이다. 오늘날도 소고를 법고(버꾸)라고 한다든지, 고깔을 쓰고 놀이를 한다든지, 바라를 악기로 쓰는 것 등은 불교의 영향을 잘 말해 주는 것이다.
(3) 군악설
전통시대에 변방을 지키거나 기타 군대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농민들이었으며, 그들은 요즈음의 예비군과 같은 성격을 지녔다. 풍물굿패의 옷차림이나 지휘체계 등에는 군대의 것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를 통해 농민들이 놀이 속에서 군악의 체계를 썼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풍물굿이 흐트러짐 없는 짜임과 힘을 가지는 것도 이러한 영향에 의한 것으로 본다. 오늘날에도 군대에서 풍물굿(사물놀이) 군악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2) 변천과정
풍물굿의 맨 처음 형태는 생산, 신앙과 관련하여 생긴 축원, 노작형태이며, 축원형태→노작형태→걸립형태→연예형태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각각의 형태가 따로따로 생겼다가 없어지고 새로운 형태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동시에 바뀌었다고 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현재 남아 있는 풍물굿의 모습을 보고 그것의 본질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그 흐름을 알아 낼 수 있는 것이다.
(1) 축원형태
당산굿, 기우제, 매귀굿, 풍어제, 추수감사제 등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풍요를 기원하고 추수를 감사하는 종교적 의식으로 행해진 것이다. 풍물굿의 기원에 중요한 뿌리가 된다.
(2) 노작형태
여럿이 함꼐 농사일을 하면서 일의 율동에 맞게 노래하고 춤을 추거나 풍물굿을 치는 형태를 말한다. 이는 일을 지루하지 않게 하고 나아가 능률을 높이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이앙법이 들어오면서 모내기, 김매기 때 행해지던 형태가 전형적인 노작형태라 할 수 있다. 보통 일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노동요라 하고 농사를 지으며 부르는 노래를 들노래(농요)라 한다.
(3) 걸립(걸궁)형태
한 마을 또는 여러 마을을 집집마다 돌며, 그 집에 일 년 내내 탈 없이 많은 복이 들어오기를 빌어 주며 곡식이나 돈을 거두는 형태이다. 마을 단위의 공동자금을 모으는 방법이기도 하고 전문예술인 모임의 먹고 사는 방법이기도 하다. 보통 지신밟기(마당밟이) 형태로 진행되는데 집집마다 돌며 돈이나 쌀을 모으는 형식을 가리킨다.
(4) 연예형태
뛰어난 재주를 지닌 전문예인(보통 사당패라 부름)들이 주로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행해지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서면서 두레패 놀이에서 사당패 놀이가 나눠져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4. 지역마다의 특색
풍물굿은 크게 중부 이북지방에서 행해지는 웃다리 풍물굿과 중부 이남지방에서 성행하는 아랫다리 풍물굿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웃다리 풍물굿은 주로 경기지방과 충청 이북지방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상쇠의 기능이 뛰어나다.
반면 아랫다리 풍물굿에서는 장구와 소고의 기능이 발달하였다.3) 그러면 각 지역마다의 특색을 짧게나마 살펴보자.
1) 경기도 충청도 풍물굿
(1) 흔히 웃다리 풍물굿이라고 하며 경기, 충청, 강원도 영서지방을 포함한다. 분포지역은 평택, 안성, 이천, 양주, 원주, 홍성, 단양, 제천, 음성, 천안, 대전, 부여, 논산, 영동 등을 들 수 있다.4) 상호 교류권은 북으로 개성, 해주, 김천, 신천, 평양, 순천 등 황해도, 평안도 지역과 남으로는 경상북도 김천을 포함한다.
(2) 안성에 있는 청룡사는 옛날 남사당패들의 중심지로 널리 알려져 있고 직업성을 띤 남사당은 연희종목으로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춤), 덜미(꼭두각시놀음) 외에 풍물놀이에도 뛰어난 기량을 지니고 있었다.
(3) 소고와 법고(버꾸)의 구별이 없고, 다른 지역에 비해 북을 적게 쓰는 편이며, 특히 느린 가락과 빠른 가락을 고르게 쓰는 쇠가락이 분명하고 암채, 숫채 가락의 변화를 구사하는 짝쇠놀이가 발달했다.
(4) 여러 아이들로 짜여진 무동놀이가 발달하였고 깨끼춤, 쾌자춤이 돋보이며 동고리, 삼무동, 곡마당 등의 다양한 무동타기가 발달하였다.
(5) 판굿의 짜임새가 다양하다. 당산벌림 같은 ㄷ자진, 사통백이, 가새벌림, 좌우치기 같은 진풀이가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6) 경기 풍물에서는 마을굿인 대동굿(당산제)을 하지 않고 지신밟기만을 하며, 여름철에는 두레굿을 하며 걸립풍물이 발달하였다.
(7) 충청도 풍물은 판굿의 짜임이 경기 풍물과 같으나, 충남 일부 지역에서는 전라도 풍물의 영향으로 마을굿인 당산굿을 하며 두레기가 있고 편성에 있어서 잡색에 대포수, 각시, 양반 등이 있고 어른들이 무동놀이를 한다. 경기 풍물의 특징인 무동타기는 별로 없고 무동들의 단체춤인 나부춤(나비춤)이 특색 있다.
(8) 경기 풍물에서는 모든 치배들이 상모를 쓴다. 특히 양사를 위주로 하는 채상버꾸가 발달하였고 충청도 남쪽에서는 고깔을 쓰기도 한다.
(9) 판굿의 구체적 내용은 이 자료집의 경기도 안성 풍물놀이를 참고하길 바란다.
2) 강원도 풍물굿
(1) 한반도의 등줄기가 남북으로 뻗은 태백산맥을 경계로 강원도 풍물은 영서 풍물과 영동 풍물로 나뉜다.
영서 풍물은 원주, 횡성, 춘성 등지로 경기 풍물과 내용과 형식이 거의 같고 영동 풍물은 강릉, 속초, 동해, 삼척, 평창, 정선 등의 지역이다. 상호교류권은 북으로 안변, 함천, 길주 등지의 함경도 지역과 남으로 청도, 부산에 이르는 경상도 일부 및 경상도 동해안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2) 영동 풍물은 험준한 산악으로 각기 지역 나름의 고유한 형태와 멋을 지닌 민속놀이, 민요, 토속신앙과 함께 풍물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3) 영동 풍물은 마을굿으로 당산굿은 별로 하지 않으며 지신밟기가 성행하고, 고사소리가 다양하고, 달맞이굿과 횃불놀이(다리밟기)가 있고, 두레풍물이라 할 수 있는 김매기 풍물과 질먹이기가 있다.
(4) 강릉 풍물굿의 경우, 오월 단오절에 남대천 단오장에 모실 대관령 국사서낭님 신대와 위패를 모셔 오는 사월 보름날, 대관령을 갈 때와 올 때에 친다. 사월 보름날 대관령에 국사서낭을 모시러 갈 때에는 지역 대표를 비롯하여 많은 인사와 주민들이 참석하는데 그때에 풍물굿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서낭을 맞이해 온다.
(5) 영동 풍물의 짜임은 농기 외에도 신대를 사용하며, 사물(쇠, 징, 장구, 북)과 소고, 법고, 무동잽이의 수가 각각 같은 숫자로 4분화되어 있고, 소고와 법고가 구별된다. 장구잽이는 장구를 앞으로 메고 궁글채 대신 손으로 장구 궁편을 치기도 한다.
(6) 영동 풍물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모의 형태가 특색이 있다. 상모와 퍽에 넓고 짧게 자른 한지를 두 장 붙인 상모가 있다. 외사와 양사를 많이 친다.
(7) 경기 풍물과 같이 어린 무동의 수가 많고, 무동은 고깔을 쓰는데 고깔에 붙은 여러 색의 꽃의 수는 40여 개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다. 일제 때 서커스단의 영향으로 생긴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탑을 쌓는 무동타기가 있고, 사람탑 맨 위에서 하는 열두발 상모놀이(때론 상쇠가 상모놀이를 함)가 특색 있다.
(8) 영동 풍물은 일풍물(일하는 사람의 풍물)이라고 하며, 농사짓는 동작을 흉내낸 가래질, 논갈이, 모찌기, 모심기, 논매기, 낫갈기, 벼베기, 벼광이기, 방아찧기 같은 농사풀이가 발달하였다.
(9) 판굿 진행에서 가락은 외가락을 되풀이하면서 제자리춤이 없이 허리를 앞으로 구부정하게 굽혀서(그래야 흥이 난다고 함)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고 진풀이는 정방형, 체조대형, ㄷ자형, 멍석말이 등이 있다. 놀이는 단체놀이에 치중한다.
(10)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 자료집의 강원도 강릉 풍물굿을 참고 바란다.
3) 전라도 풍물굿
(1) 전라도 풍물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조선시대 때 전라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한양으로 파발마가 지나는 길을 경계로 하여 한양에서 전라도를 내려다보았을 때, 좌측 산간지역이 좌도이고 우측 평야지역이 우도이다.
하나는 전라도의 북쪽 지역을 웃녘굿(주로 전북지방), 전라도의 남쪽 지역을 아래녘굿(주로 전남지방)으로 나눈다.5)
(2) 앞의 좌도굿, 우도굿의 구분은 학계를 비롯하여 일반적인 구분법이다.
(3) 뒤의 웃녘굿, 아랫녘굿의 구분은 옛날 전라도 풍물잽이들 사이에 통해 왔다고 한다.6)
(4) 이 자료집에서는 앞의 좌도굿, 우도굿의 구분을 적용하였다. 교통의 발달과 사람들의 잦은 왕래로 좌도굿과 우도굿의 차이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5) 예부터 좌도굿과 우도굿을 크게 나누지 않고 동일시하는 경향도 있다.
4) 전라 좌도 풍물굿
(1) 좌도 풍물굿의 발달 지역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맥과 전라도 서쪽의 평야지역과 경계를 이루는 노령산맥 사이인 전라도의 동쪽 산간지역으로, 금산, 무주, 진안, 장수, 임실, 남원, 곡성, 화순, 광양, 보성, 여수 등의 지역이다.7)
(2) 모든 치배들이 상모를 쓰는 경우가 많고 웃놀음이 발달하였다. 상쇠는 부들상모(개꼬리상모)를 쓴다.
(3) 쇠옷(치배의 옷차림)은 비교적 간소하다. 평상복을 입다가 얼마 전부터 쇠옷이 발달하였다.
(4) 쇠와 장구가 중요시되며, 가락은 원박 위주로 빠르고 투박하면서 힘이 있다. 가락이 빠른 만큼 치배들의 동작도 빠르고 단체놀이에 치중한다. 상쇠와 부쇠가 가락을 주고받는 쇠놀이가 발달하였다.
(5) 소고잽이의 채상모 소고놀이와 박진감 있는 두루거리(자반뒤집기)가 뛰어나다.
(6)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 자료집의 전라 좌도 진안 중평굿을 참고 바란다.
5) 전라 우도 풍물굿
(1) 우도 풍물굿의 발달 지역은 전라도의 서쪽 평야지역으로, 전라도 서해안에서 동쪽의 노령산맥 사이로, 북에서 남으로 익산, 군산, 정읍, 김제, 부안, 이리, 전주, 나주, 함평, 영암, 장흥, 목포 등의 지역이다.8)
(2) 쇠치배들은 뻣상모를 쓰고 다른 치배들은 고깔을 쓴다.
(3) 쇠옷(치배의 옷차림)이 화려하게 발달하였다.
(4) 장구가 중요시되며, 가락은 주로 느린 가락이 많으나 빠른 가락도 곁들여 있어 비교적 가락이 다채롭고, 개인놀이가 발달하였다.
(5) 장구잽이의 장구놀이(설장구)와 쇠잽이의 부포놀이가 발달하였다.
(6) 윗놀이에 치중하지 않고, 발림(발짓)을 중시하는 아랫놀이가 발달하였다.
(7)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 자료집의 전라 우도 이리 풍물굿을 참고 바란다.
6) 경상북도 풍물굿
(1) 경상북도 풍물굿은 청도 차산 풍물과 비산 풍물, 금릉의 빗내 진굿이 현재 전해지고 있고, 안동, 예천, 영주, 영천, 영덕, 군위, 달성 등의 지역에도 나타난다.
(2) 안동이나 영주와 같은 동북지방은 영동 풍물의 특색이 나타나고, 김천, 선산 등의 지역에서는 경기?충청 풍물의 특색이 나타나고 있다.
(3) 북을 많이 사용하여 가락이 힘차고 박진감이 있다. 치배의 짜임에 있어 징 뒤에 북이 선다.
(4) 모든 치배들을 두 패로 나누어 모의 전쟁놀이를 하며, 상모놀이의 발달로 소고잽이의 채상 놀이가 뛰어나다.
(5) 느린 가락에서 시작하여 차차 몰아가는 빠른 가락을 자주 쓰는 편이다.
(6) 지신밟기가 발달하여 다양한 사설을 가지고 있다.
(7) 자세한 내용은 이 자료집의 경북 금릉 빗내 진굿을 참고 바란다.
7) 경상남도 풍물굿
(1) 경상남도 풍물굿의 분포는 진주, 삼천포, 함안, 함양, 마산, 통영, 거창, 고성, 합천, 밀양, 울산, 부산, 양산, 동래, 진해 등의 지역이다.
(2) 함양, 진주, 삼천포, 마산, 통영, 거창 등의 서남지역 풍물굿과 밀양, 울산 등의 동북지역 풍물굿, 그 중간 형태로 부산, 양산, 진해 지역의 풍물굿으로 나누기도 한다.
(3) 경북 풍물과 같이 군대의 지휘체계와 일사불란한 단체행동을 중요시하고 있다.
(4) 북이 많이 쓰여 북가락과 북춤이 발달하였으며 보통 북이 징 뒤에 선다.
(5) 지역에 따라 고깔을 쓰기도 하는데 상모놀이가 발달하였다. 채상모의 소고춤과 자반뒤집기가 뛰어나다.
(6) 옷차림은 경북 풍물과 비슷하다.
(7) 서남쪽으로 갈수록 전라 좌도굿의 특징이 나타나기도 한다.
(8) 대나무나 나무로 만든 나발 종류의 악기가 있어, 굿이 진행되는 동안 독특한 음향으로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대나무로 만든 땡가리(부산 아미 풍물굿), 나무로 만든 고동(청도 차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