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신춘문예 3관왕을 차지한
강유정 씨. 그는 “영화든 그림이든 소설이든 보고 나서 느낀 생각을 그냥 두면 날아가 버릴 것 같아 늘 메모를 한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매년 1월 1일 일간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신춘문예’
사상 44년 만에 처음으로 한 해에 3관왕을 차지한 인물이 나왔다.
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에
가작 입선한 강유정(姜由楨·30·고려대 강사) 씨가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문학평론 부문에도 각각 다른 작품으로 당선한 것. 이는
이근배(李根培·64) 전 한국시인협회장이 1961년 가작 1편이 포함된 ‘신춘문예 3관왕’ 기록을 세운 후 처음이다. 강 씨는 특히 올해
동아일보 문학평론 부문에서도 두 작품이 겨루는 최종심까지 올라갔으나 아깝게 ‘동시 4관왕’의 대기록은 세우지 못했다.
강 씨는 “지난해 12월 17일
동아일보로부터 첫 통보를 받고 몇 시간 안돼 조선일보로부터도 통보가 오자 ‘이제 됐다. 10년 공부의 결실을 거뒀다. 겸손하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마침 이튿날 모교(고려대)의 지도교수인 이남호 교수님의 제자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어 소식을 알리고 새벽까지 술을
마셨는데, 깨어보니 또 당선 통지가 와서 두렵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고려대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강
씨가 3관왕 기록을 세운 평론 부문들은 특히 인문계열의 박사들이 대거 응모하는 어려운 분야다. 그는 이미 2001∼2003년 본보 신춘문예
영화평론과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문학평론 부문에 세 차례 응모했으며 그때마다 모두 ‘최종심’까지 올라가는 기량을 보였다. 당시 막판에 그를
낙선시킨 한 심사위원은 심사평에서 “선택은 형벌과 같았다”고 쓰기도 했다. 강 씨는 “잠시 낙담하긴 했지만, 이미 써놓은 응모작에 미련을 갖지
않고 새 글감을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2005 신춘문예]영화평론 가작 입선소감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는 내게 영화 ‘아마데우스’ 표를 주면서 “보고
오너라”고 말씀하셨다. 내 생애 최초로 혼자 본 영화였다.
영화란 늘 나의 몸속 어딘가를 건드려
뭔가를 말하게끔 간지럽혔다. 난 영화를 보고나면 평가 비슷한 개념들을 설정하기 시작했고 나름대로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문학 전공자인
내게 영화는 늘 가까이 할 수 없는 오마주(숭배)의 대상이었고 난 주변의 평범한 관객이었다.
2003년 ‘올드 보이’를 처음 보았을
때, 영매처럼 그 세계가 전하는 언어에 포획당해 버렸다. 자의식의 간섭 끝에 망설이다 어느 불면의 밤 그 생각들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비로소
글로서의 꼴을 갖추게 되었다.
강유정이라는 평범한 관객마저도 비평가로
만들어 준 두 감독, 박찬욱 김기덕 감독에게 감사한다. 좋은 텍스트가 없었더라면 나의 글은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언제나 내 곁에서 나보다
더 힘들어하고 안타까워하시며 인문학자라는 어려운 길을 돌봐주시는 부모님에게 감사한다. 게으른 제자의 방만한 행보를 관대한 기대로 일관해 주신
이남호 선생님과 윤석달 선생님, 고려대 은사님들에게 감사드린다. 이건 시작이다. 이제, 물꼬는 트인 셈이다
강유정
▼약력▼
△1975년 서울 출생 △1998년 고려대 국어교육과 졸업 △2002년 고려대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현재 고려대, 극동대 강사
올해 신춘문예 3관왕을 차지한
강유정 씨. 그는 “영화든 그림이든 소설이든 보고 나서 느낀 생각을 그냥 두면 날아가 버릴 것 같아 늘 메모를 한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매년 1월 1일 일간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신춘문예’
사상 44년 만에 처음으로 한 해에 3관왕을 차지한 인물이 나왔다.
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에
가작 입선한 강유정(姜由楨·30·고려대 강사) 씨가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문학평론 부문에도 각각 다른 작품으로 당선한 것. 이는
이근배(李根培·64) 전 한국시인협회장이 1961년 가작 1편이 포함된 ‘신춘문예 3관왕’ 기록을 세운 후 처음이다. 강 씨는 특히 올해
동아일보 문학평론 부문에서도 두 작품이 겨루는 최종심까지 올라갔으나 아깝게 ‘동시 4관왕’의 대기록은 세우지 못했다.
강 씨는 “지난해 12월 17일
동아일보로부터 첫 통보를 받고 몇 시간 안돼 조선일보로부터도 통보가 오자 ‘이제 됐다. 10년 공부의 결실을 거뒀다. 겸손하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마침 이튿날 모교(고려대)의 지도교수인 이남호 교수님의 제자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어 소식을 알리고 새벽까지 술을
마셨는데, 깨어보니 또 당선 통지가 와서 두렵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고려대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강
씨가 3관왕 기록을 세운 평론 부문들은 특히 인문계열의 박사들이 대거 응모하는 어려운 분야다. 그는 이미 2001∼2003년 본보 신춘문예
영화평론과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문학평론 부문에 세 차례 응모했으며 그때마다 모두 ‘최종심’까지 올라가는 기량을 보였다. 당시 막판에 그를
낙선시킨 한 심사위원은 심사평에서 “선택은 형벌과 같았다”고 쓰기도 했다. 강 씨는 “잠시 낙담하긴 했지만, 이미 써놓은 응모작에 미련을 갖지
않고 새 글감을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2005 신춘문예]영화평론 가작 입선소감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는 내게 영화 ‘아마데우스’ 표를 주면서 “보고
오너라”고 말씀하셨다. 내 생애 최초로 혼자 본 영화였다.
영화란 늘 나의 몸속 어딘가를 건드려
뭔가를 말하게끔 간지럽혔다. 난 영화를 보고나면 평가 비슷한 개념들을 설정하기 시작했고 나름대로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문학 전공자인
내게 영화는 늘 가까이 할 수 없는 오마주(숭배)의 대상이었고 난 주변의 평범한 관객이었다.
2003년 ‘올드 보이’를 처음 보았을
때, 영매처럼 그 세계가 전하는 언어에 포획당해 버렸다. 자의식의 간섭 끝에 망설이다 어느 불면의 밤 그 생각들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비로소
글로서의 꼴을 갖추게 되었다.
강유정이라는 평범한 관객마저도 비평가로
만들어 준 두 감독, 박찬욱 김기덕 감독에게 감사한다. 좋은 텍스트가 없었더라면 나의 글은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언제나 내 곁에서 나보다
더 힘들어하고 안타까워하시며 인문학자라는 어려운 길을 돌봐주시는 부모님에게 감사한다. 게으른 제자의 방만한 행보를 관대한 기대로 일관해 주신
이남호 선생님과 윤석달 선생님, 고려대 은사님들에게 감사드린다. 이건 시작이다. 이제, 물꼬는 트인 셈이다
강유정
▼약력▼
△1975년 서울 출생 △1998년 고려대 국어교육과 졸업 △2002년 고려대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현재 고려대, 극동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