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초등학교 졸업과 검정고시 합격, 대학 입학. 숨 가쁘게 달려온 과학영재 송유근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작년 5월 KBS <인간극장>에 출연한 이후 전 국민의 관심을 받아온 천재 소년의 좌충우돌 대학생활을 들어보았다.
지난 6월 17일 인하대학교 교정에서 과학영재 송유근(10세) 학생을 만났다. 작년 이맘때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교육부를 상대로 소송을 청구했을 때 만난 이후 딱 1년 만이다. 그때 유근이는 아무 곳에도 ‘적’을 두지 못한 상태였지만 지금은 인하대학교 학생증을 가지고 있는 어엿한 대학생이다.
대학생, 하지만 동시에 어린 아이
유근이를 만나러 간 날은 한 학기를 끝내는 기말고사 막바지여서인지 교정이 한산했다.
유근이 역시 기말고사의 마지막 과목, 컴퓨터 C언어의 시험을 1시간 앞두고 있다기에 공부하기도 모자란 시간을 뺏은 건 아닌가 해서 갑자기 미안해졌다. 하지만 정작 유근이는 별다른 긴장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사진만 찍으면 좋아라 방긋 웃는다. 처음엔 ‘공부 안 하니?’라고 묻던 엄마 박옥선(47세)씨도 유근이의 해맑은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
“시험이라고 해서 특별히 긴장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않아요. 긴장이라는 걸 모른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죠. 그저 재미있어서 공부하는 게 다예요. A학점을 맞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공부했다면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
17학점의 강의에 더해진 5학점의 청강. 일반 대학생들도 버거운 수업량을 즐겁게 소화해낼 수 있는 건 경쟁심이 없기 때문이다. 잘하겠다는 마음 없이 그저 재밌게 공부하기에 견뎌낼 수 있다.
마지막 시험을 보기 위해 시험장을 찾아가나 했더니 교수실로 들어선다. 5학점의 청강을 빼고는 모든 이수학점이 교수와 유근이의 일대일 수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유근이를 기다리고 있던 컴퓨터공학과 조근민 교수가 반가워하며 일어섰다. 시험을 보기 전 유근이에게 물어볼 것이 있느냐고 친절히 묻는다. 그러나 유근이는 아무 대답이 없다. 가방을 들고 옆에 서 있던 박씨의 마음이 답답해진다.
“어제는 분명 모르겠다며 징징대놓고 교수님 앞에서는 가만히 있네요. 아무래도 아직은 교수님들이 어려운가 봐요. 유근이가 주어진 문제는 풀어도 워낙 말이 없으니까 교수님들도 답답하신가 봐요. 유근이와 친해지기 위한 작전이 보통이 아니에요. 초콜릿, 주스 등을 잔뜩 사놓고 기다리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렇게 어린 아이가 대학에 온 전례가 없기 때문에 모두들 고생이 많으시죠.”
고생이 많은 건 유근이도 마찬가지다. 유치원 때까지 부모님께 배운 이후에는 혼자 책을 보며 터득하는 게 공부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내용을 배우고 제대로 익혔는지 시험까지 봐야 한다. 제대로 단체생활에 적을 둔 적이 없기 때문인지 아직도 부모님을 제외한 사람들은 익숙지 않은 것도 문제다.
몇 분을 침묵하고 있던 유근이가 물고 있던 손가락을 내려서 수줍게 문제를 가리킨다. 반색하며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걸 보니, 교수님도 기다리는 데에는 익숙해진 모습이다. 아무리 과학천재라고 해도, 아이는 아이다. 어른이 기다려줄 때야 능력을 제대로 펼칠 수 있다.
수많은 시행착오 거쳤던 대학생활
송수진·박옥선씨 부부가 유근이의 재능을 처음 발견한 건 2003년도 7월. 유치원에 잘 적응하지 못하던 아이를 집에서 공부시키면서다. 처음엔 구구단을 재빨리 외우고 수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다는 정도에만 감탄했다. 하지만 시험 삼아 시작한 수학책의 진도를 유근이는 가볍게 따라왔다. 구구단을 가르친 지 6개월 만에 미적분을 풀자, 송씨는 아들이 영재라는 걸 깨닫고 중학교 입학을 위한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유근이를 위한 교육과 한국의 교육제도에 끊임없이 부딪치기 시작한 것이다.
“만 12세 이상이 되어야 검정고시를 볼 수 있다는 말에 차선책으로 초등학교 6학년에 입학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융통성 있게 아이를 배려해주신 교장선생님이 오히려 곤란해졌죠. 아이를 위한 교육제도가 오히려 아이를 억압해도 그걸 따라야 하는 게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송수진씨는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입학처분 취소 무효 확인 청구소송에서 승소해 결국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됐다. 그 후 만 7세에 중학교 검정고시와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차례로 합격, 인하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소위 말하는 대학의 서열을 고려하지 않았어요. 유근이가 서열을 따져서 대학을 간다면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것 같았거든요. 아이의 영재성을 이용해 다른 사람보다 빠른 코스를 밟아서 엘리트로 만들려고 한다는 오해도 불식시키고 싶었고요. 물론, 유근이에게 미국 MIT에 버금가는 교육을 해주겠다고 한 인하대 총장님의 약속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죠.”
총장의 약속, 교수들의 노력에도 유근이의 대학생활은 쉽지 않았다. 아이를 위한 교육의 전례가 만들어지지 않은 대학 교과 수업에서 유근이는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어른들의 어휘로 써진 전공서적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나이를 먹으면 당연히 아는 상식들이 유근이에겐 턱없이 부족했다. 성인을 위한 대학 교재를 그대로 가르칠 수 없게 되자 교수들이 과학용어들을 아이에 맞게 ‘통역’해야 했다.
“이번 학기는 ‘탐색전’에 가까웠어요. 교수들도 기대를 많이 하고 받아들인 유근이에게 때로는 실망도 하고, 그러다가 아이의 창의적인 생각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서로를 알게 된 데에 의미를 두어야 할 것 같아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교수들도 자꾸 잊어버리는 사실이 있다. 유근이는 ‘대학생’이지만 동시에 ‘10살 아이’라는 것이다. 어휘가 부족하다 보니 교양국어 점수는 턱없이 낮고, 실험을 하다 보면 학창시절에 배웠어야 할 상식적 기초가 통째로 부족할 때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어른들도 듣기 힘든 3시간 연강 수업을 자세 하나 바꾸지 않고 눈을 반짝이면서 듣는 모습으로 교수들을 감동시킨다고.
“처음 들어올 때는 1년은 부담 없이 대학생활에 익숙해지는 데 쓰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유근이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전공을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 없잖아요. 어차피 물리학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쭉 달려야겠다는 생각에 곧바로 2학년 전공과목들을 이수한 거예요. 3년 만에 조기졸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더니 유근이에게도 공부는 만만치 않아요.”
하지만 유근이는 아직까지 ‘힘들다’는 소리 한 번 한 적이 없다. 교수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봐, 시험 성적이 나쁘게 나올까봐 걱정하는 건 부모뿐이다. 유근이에게는 그저 재밌는 책을 함께 공부하는 것뿐이다.
MT, 동아리 활동에도 적극적
한시도 떨어져 산 적이 없는 송수진씨 부부는 유근이가 대학생이 되자 졸지에 주말 부부가 되었다. 어머니 박옥선씨가 유근이와 함께 인하대학교 기숙사에 머무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다른 대학생들과 달리 아침마다 엄마가 깨워주고 밥을 챙겨주는데도 유근이는 지각을 면하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교수가 맨 앞의 지정석, 유근이의 자리가 채워지지 않으면 수업을 시작하지 않는다고 하니 아침마다 박씨의 속이 바짝바짝 탈 수밖에 없다.
“매일 밤 과제에 매달리다 보면 금방 새벽 한두 시가 되거든요. 유근이는 대부분 교수님과 일대일 수업을 하기 때문에 매 수업마다 준비를 해가야 해요. 늘 과제를 해결하고 나서 새벽에야 잠들면 아침에 일어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에요. 게다가 애들 걸음으로는 학교 교정이 너무 먼가 봐요. 불평을 모르는 아인데, 학교가 너무 크다며 우는소리를 하더라고요.”
아이의 피곤을 줄이기 위해 동아리 활동을 자제하는 게 어떻겠냐고 해도 유근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록음악을 하는 공과대 동아리에 가입한 후 드럼의 매력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도 야무지게 드럼을 치는 덕분에 지난 대학축제 무대에서 멋진 공연을 하기도 했다고. 수업이 끝나고 오후 6시가 넘으면 기숙사로 바로 오면 좋겠는데, 아이는 늘 동아리방에서 드럼을 치다가 오후 9시가 넘어서야 들어온다. 한밤중에야 과제를 하겠다고 눈을 비비고 책상에 앉으니 엄마로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한번은 아이가 일찍 들어와서 시무룩하게 앉아 있더라고요. 오늘은 동아리 모임이 없다고 일찍 가라고 하기에 왔다는데 형들끼리 노는 것 같았나 봐요. 아무래도 대학생들은 술자리도 많을 텐데 유근이가 끼면 얼마나 곤란하겠어요.(웃음)”
다행히 유근이는 대학생 형, 누나들 사이에 무리 없이 끼어들었다. 특히 여학생들은 유근이를 귀여워하며 함께 사진을 찍고 맛있는 걸 사주곤 한다고. 교양국어 수업을 들을 때는, 수업이 있는 목요일마다 몸무게가 늘어날 정도였다. 결국 송씨는 누나들이 주는 주전부리를 자제하도록 ‘다이어트’까지 시켰다고. 하지만 술자리가 있는 날은 유근이를 은근히 집으로 보내면서 눈치를 못 채도록 하기 위한 동기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학기 초 OT와 MT를 가서는 술을 먹기 전에 유근이를 재우느라 다들 애를 먹었다고 털어놓았다.
“물리학 시간에는 유근이 혼자만 알아듣는 내용이 있어 소외감을 느끼는 친구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다른 부분에선 성인을 따라갈 수 없는 아이일 뿐이에요. 엄마의 망가진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면서 전화가 되는 척 장난하는 꼬마아이죠.”
남들보다 버거운 수업량을 쫓아가야 하는데다, 동아리 활동에도 열중하다 보니 잠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워낙에 컴퓨터 오락을 좋아하다 보니 엄마가 보지 않을 때는 늘 ‘카트라이더’에 빠져 있다고. 결국 아침마다 잠에서 깨어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일어나야 한다, 유근이가 오지 않으면 강의는 시작되지 않으니까.
천재가 아닌 한 아이로서의 성숙기
유근이의 마지막 시험을 기다리면서 교정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엄마 박옥선씨의 표정이 환하다. 유근이의 학교생활을 위해 기숙사에 사느라 주말 부부로 지냈지만, 간만에 세 식구가 함께 3개월의 여름방학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유근이를 유학 보낸 적도 그럴 생각도 없다 보니 이렇게 오래 떨어져 산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끔은 일이 생겨서 유근이를 두고 저 혼자 집에 가야 할 때가 있었어요. 특히 집에 제사가 있을 때는 제가 먼저 가서 준비해야 했기에 유근이 혼자 두고 가야 했죠. 그럴 때면 유근이에게 수업이 끝나고 집에 찾아와보라고 했어요. 넓고 복잡한 대학 교정을 누비는 정도라면 집도 혼자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죠.”
인하대에서 구리시 교문동에 있는 집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인천역에 가서 지하철을 탄 후 잠실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 3시간 반이나 걸리는 길인데다 늘 자가용으로만 움직이던 길이다. 이 어려운 초행길도 무리 없이 온 것을 보고 박씨는 가슴이 벅찼다고. 공교육을 받지 않다 보니 또래에 비해 얼마나 성숙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학생활을 하면서 유근이는 확실히 한 뼘 이상 훌쩍 컸다.
“유근이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배운다는 것 자체가 성숙이에요. 부모가 구구단을 가르쳐준 이후에는 늘 스스로 책을 보며 공부했으니까요. 처음에는 공부를 다른 사람과 같이 한다는 데에 익숙지 않아서 애를 많이 먹었어요. 하지만 수업에 익숙해지면서 타인과 어울리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나이에 비해 심하던 낯가림도 조금씩 고치는 중이에요.”
유근이의 낯가림을 고치는 데는 임주초등학교 친구들도 한몫했다. 부족한 초등교육을 경험하기 위해 화요일에는 초등 수업을 듣는다. 여기서 머무르는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기 때문에 많은 걸 배울 수는 없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받는 예체능 수업과 급식시간은 좋은 경험이 된다고. 초등학교 3학년의 어린 아이들이라 유근이를 부자연스럽게 의식하는 친구들이 없어서 다행이다. 때로는 6학년 형들이 교실에 놀러와 유근이를 구경하기도 하지만 반 친구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유근이와 어울려 논다.
“운동회날에 유근이가 학교 생활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어요. 유근이가 저를 끌고 가더니 귀여운 여자아이를 가리키며 예쁘지 않느냐고 재차 묻는 거예요. 자기 반 부반장이라고 자랑까지 하더라고요. 또래들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제 나이에 맞게 잘 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흐뭇했어요.”
송수진씨 부부는 유근이의 밝고 낙천적인 성격을 알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과학천재 유근이’의 앞날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진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지금의 대학생활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남들보다 10년 빨리 출발한 것 이상의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유근이가 남들보다 10년 먼저 대학을 졸업하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남들보다 10년 빨리 실업자가 되는 길이지요. 중요한 건 졸업이 아니라 그 후의 문제입니다. 물리학자로서 아이가 가야 할 길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진지하게 모색할 생각입니다. 최연소 검정고시 합격과 대학 합격에 이어 ‘발칙한 반란’을 보여드려야죠.(웃음)”
어떤 반란을 계획하고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번 여름방학에 철저히 준비할 생각이라고 귀띔을 했다. 유근이 인생에 처음 찾아온 여름방학은 또 한 번 뛰어오르기 위한 준비기간이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