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숙자(김숙)
그리움
김 숙
먼 먼 지난날.....
아침이면 긴 신작로에
새까만 머리들이 줄을 지어
등교하던 길
지나가던 버스와 터럭바퀴에서
돌멩이가 툭툭
참새 떼 쫓아내고
가위 바위보
가위 바위보
학교 가는 아이는
얌전히 가지 못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
허리에선 딸랑딸랑
필통 속 연필 부러지는 소리
이슬비
김 숙
우리 집 작은 화단에
노란 난초 꽃
오늘아침 내리는 이슬비에
세수를 하면
촉촉이 젖은 얼굴
수줍은 새색시 얼굴인가
도도한 새 언니 얼굴인가
연녹색 잎 파리 위에서도
은구슬 굴러가듯
또르르. 소리내며
노곤하게 잠든
꽃잎을 깨운다
아침이슬
김 숙
밤새 가슴적시며
기다리든 작은 물방울
반가운 손님처럼
한걸음에 달려와
또로록 똑똑
해님 눈치를 보며
꽃잎에 뽀뽀를 하면
잎새는 심술로 바람을 불러
나뭇가지를 흔든다
.
고향
김 숙
푸른 물결
넘실대는 수평선 멀리
희미한 등잔불만
깜박깜박
바람결에 들려오는
어머님 다듬이소리
시린 하늘에 그려진
뭉게구름에
꿈 마차 만들어
고향으로 날아가면
철새 따라
찾아온 때까치
갈대밭 숲 속에서
둥지를 틀고
저녁노을 배경 삼아
어우러진 한마당 춤을 춥니다
무지개
김 숙
파랗든 하늘에
검정구름 달려와
심술부리면
소나기 후 두둑
물을 뿌린다
해님이
성급하게 달려와
구름 쫓으면
산등성이
걸려있는 무지개
견우직녀 만나는
오작교 만들고
여린 살결에 스치는 실바람
오색실 솔솔 풀어
견우직녀 목에다 걸어주었네
해바라기 꽃
김 숙
아침 이슬 머금고
고개 숙인 둥그런 얼굴
며칠 전 시집 온
수줍음 많은
부끄럼쟁이 새색시
밝은 햇살 내려와
머리 쓰다듬어주면
노란 얼굴을 들어
마음 주며 따라가는
해바라기 꽃
매미
김 숙
햇볕이 쨍쨍
내리쪼이는 여름 날
나무 가지에서
합창단 노래부른다
시작과 끝맺음은 각기 달라도
제각각 목소리 뽐내기라도 하는지
열창하는 노랫소리에
둥글게 둥글게 웃으면서
자라나는 노란 열매들
옥수수는 하모니카
김 숙
간밤에는 이슬을 먹고
한낮 햇살 받으면
땅속에 물을 마시며
실바람 놀다가는 흔적으로
한 뼘씩 자라납니다
겹겹이 가려진 속옷 속에는
알수 없는 속마음 이 담겨있는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겹씩 벗겨보며는
울 엄마 하얀 이빨처럼
알알이 박혀있는
옥수수 하모니카
느티나무
김 숙
몇 백년의 긴 시간 속에서
말없이 동네를 지켜보며
동구 밖 어귀에 묵묵히 서서
긴 수염 휘날리는 할아버지
오래도록 우리를 바라보시며
동네 방네
근심 걱정 다 들어주시고
마을의 평안함과 안녕
지켜줍니다
바람
김 숙
나무 가지 사이로 불어온 솔바람
엽록색 잎 파리 흔들어
얼굴을 시원하게 하면
흐르는 계곡물소리
내 마음 시원하게 할 때
풍류를 즐기던 옛 선비
돌아온 듯
흐르는 계곡 물 에 발 담그며
산천초목 벗삼아
실타래처럼 풀려 나오는
시 한 수
여름을 보내며
김숙
밝은 햇살 창문에 부딪혀 부셔질 때면
시작되는 하루
요란하게 들리는 발자국 소리
봉송화 채송화 곱게 핀 뜨락에
씨 주머니들이 달랑 달랑
신선한 아침 공기에 가을이 오고 있다.
실바람 다가와 나뭇가지 흔들어
지휘가 시작되면
보내는 계절의 아쉬움
이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는지
여울진 목을 빼고
매미들의 마지막 합창
부채
김숙
얼굴을 가려주는 부채
춘향가의 한 대목
심청가의 한 대목
신선한 산수화 한점 담겨있다.
모시적삼 사이로 바람을 담은 풍경
어머니는 부채로 모기를 쫓고
아기를 잠재우신다.
아름다운 무늬 태극선
장인의 솜씨 맑은 바람이 인다.
촟불
김숙
어둠이 내려와
방안 가득한데
홀로 앉아
살을 태워 어둠을
몰아내는 하얀 눈물
살점 녹여
긴 밤을 태워
새벽을 만든다.
태풍
김숙
태풍이 요란스럽게 먹구름 몰고 와
높은 산 넘을 수 없어 뿌리고 간 흔적은
눈으로 볼 수 없은 모습들
수마가 할퀴고 간 그 자리에
생존의 강한 의지력
소리 없는 아우성
죽음과 실종 하룻밤 사이 일어나
울부짖는 슬픔 속에도
끈질긴 생명력 돋아나
슬퍼할 겨를 없이 시작되는 삶과 싸움
이것은 다만
살아있음을 일 깨워줍니다.
꽃반지
김 숙
은모래 금모래 몰려와 만들어진 백사장
까치집 짓고
새집 지으며
모래 동산 만들었네
벌거숭이 아이들 물장구치며 놀다
파래진 입술 말리며
모래밭에서 벌어진 한마당
남자 아이 힘 겨루기
여자 아이 닭싸움
꽃반지 꽃시계 만들어 묶어주던
개구쟁이들
뿔뿔이 헤어져 수많은 시간 속으로
숨어버렸네
가을
김 숙
몰려오는 시린 바람에
무더위 밀려나
이별을 하고 있습니다.
먹구름 몰려와 비 뿌리던 하늘
파란색으로 새 단장하면
따사로운 햇살 내려와
영글어 가는 곡식들
고추밭에 옷 갈아입고
손님을 기다리는 붉은 마음
싸리나무 울타리 고추잠자리
어설픈 날개 짓
아기들의 걸음마
가을 행 열차 타고
여행은 시작했지만
종착역은 어디인지 알지 못한채......
해바라기 꽃
김 숙
햇님이 긴 밤을 달려와
하늘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슬 머금고 고개 숙인 해바라기
햇살의 따뜻함에
마음을 열어
바라보는 사랑
어둠 내려와
햇살을 가릴지라도
언제나 변함 없는
해바라기 마음
산사의 밤
김숙
초승달 나뭇가지 걸려
졸고 있는 밤
풀벌레들 구슬피 울 때면
길 저문 노스님 무거운 발걸음
반딧불이 길 인도하네
업장을 녹이고자
부처님 전 엎드린 동자 승
부모 인연 끊지 못해
흐르는 눈물
애달픈 풍경소리만
고요하고 적막한 산사의 밤 흔드네.
금초
김숙
새벽바람 맞으며 금초 가는 길
눈에 띄게 단장한 산소
전생을 살다 가신 흔적으로
차지하신 몇 평의 땅
천년의 흔적을 더듬어 본는
뿌리의 소중함
산들은 온통 죽은 영혼의 집들로 가득차
산자와 죽은자가 공존하며
시간 속을 헤맨다.
그림 같은 집
김숙
초원 위에 그려진 하얀집
옥수수 담장
길 건너 시냇물이 도론 도론 흐르며
소곤소곤 이야기합니다.
대문 밖 밤나무에 매달린 밤송이
밤새 흔들고 간 바람에게
잃어버린 붉은 마음
해뜨는 곳 인형 같은 집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며
오누이처럼 다정한 연인
앞마당 모퉁이
봉숭화 채송화 곱게 핀 뜨락
참새들 재잘재잘
늘 다정함이 넘치는 집
오솔길
김숙
옹달샘 맑은 물
해님이 보이네
내 얼굴이 보이네
호도 나무위 청솔모
발자국 소리 놀라 달아나며
다람쥐들의 가족 소풍
알밤 나무 밑으로 쪼르르
고운 옷 갈아입고
길손을 기다리는 듯
바위 틈새 단풍나무
아기처럼 예쁜 손 흔들고 있네.
포도
김숙
내 고향 영동 용화 포도의 고장
높이 솟은 민주지산 아래로 흐르는 계곡
맑은 바람 불어와
고운 햇살과 어울려
까맣게 익어 가는 포도송이들
송알송알 맺혀있는 농부의 땀방울
포도 알처럼 대롱대롱
자녀처럼 돌보는 마음이
알알이 영글어
구월의 정겨움 익어갑니다.
친구<현숙에게>
김숙
까만 교복 흰 칼라
늘 같은 곳을 바라보는 친구 되어
미소를 보내던 너
머루 다래 따다가
몰래 살짝 찔러주던
정 많고 예쁘던 너
졸업하여 저만치 헤어져 있을지라도
꼬불꼬불 산길을 걸어서
그리워 찾아오던
마음이 아름답던 너
붓글씨 쓰다 바라보는 창가
나뭇잎 떨어질 때면
눈시울 붉어진다는 너
그리움은 더욱 그리움을 자아내며
시린 바람 불어올 때면
너의 모습 그리워
추억 속을 헤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