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아름다운 추억
<논리학개론>
3월초부터 학교는 시끌벅적 하다. 새내기인 우리로서는 뭐가 문제인지도 잘 모른다. 오전 11시면 학생들이 어김없이 민주광장에 모인다. 처음엔 50여명 조금 있으면 100여명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두시쯤이면 200여명의 학생들이 민주광장을 메운다. 우리는 수업이 없는 시간이면 주변 잔디밭 언덕에서 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구경을 했다. 단상 위에선 웅변이 시작되기도, 밴드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북과 꽹과리로 사물놀이를 하기도 한다.
이날도 어김없이 민주광장은 학생들로 가득 매워졌다. 우리 과 친구들 몇 명은 이미 무리 속으로 들어갔고 나를 포함한 몇 명은 잔디밭 언덕에서 그들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구경을 하고 있었다. 노래를 가끔 따라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노랫말들이 하나같이 섬뜩하다.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젓 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가슴에 붉은 피 솟네. 피피피"
그중에 그래도 가장 들어줄 만한 노래는 '아침이슬'이었다.
<님을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아침이슬>
긴 밤 지세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실연 일 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
오후 2시쯤 이었다. 대략 나란히 여섯줄을 서고, 어께동무를 하고 민주광장을 한 바퀴 돈 다음 정문을 향해 돌진했다. 우리도 그대열의 멘 꽁무니에 줄을 서서 어께동무를 하고 쫒아 나갔다. '독재타도''독재타도'를 반복하면서 정문을 향해 돌진하면 정문에는 으레이 전경들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다. 일부 운동권 학생들은 주변의 보도블록 등을 깨서 돌팔매질을 하고나면 전경들은 최루탄을 연신 쏘아댄다. 그중 지랄탄은 공중으로 날라 오는 것이 아니라 바닥으로 도롱태처럼 굴러와 대열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어온다. 그리고는 최루가스를 '퐁 퐁 퐁 퐁' 사방을 흩어 뿌려 놓는다.
우리는 최루가스를 여러 번 맞고 나서 하는 수 없이 뒷걸음질치고 학교 교양학관 쪽으로 철수 하였다.
1학년 때는 대개 교양학관 쪽에서 수업이 이루어 졌기 때문에,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교양학관 쪽에서 머물렀다. 처음엔 영숙이도 같이 있었는데 그녀는 다른 수업이 있어서 먼저 갔다. 그 밖의 친구들 몇 명은 체루가스를 뒤집어 쓴 탓에 찝찝한 상태에서 교실로 가긴 좀 그랬다. 나는 수업시간이 한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그런데 친구 중 대열이가 막걸리를 한잔 먹고 가자고 한다. 대열이 현방이 국환이 나 이렇게 넷이서 당시 17동 교양학관 아래에 있는 노가다 식당으로 같다. 막걸리를 몇 잔씩 급하게 마셨다. 솔직히 그 당시 난 왜 대모를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친구들도 절반은 그러했다. 막걸리를 마시면서도 우리끼리 찬반이 나뉘어져 열띤 토론을 했다. 나는 좀 씁쓸했고 기분이 무척 좋지 않았다. 왜 우리는 지금 괴로워해야 하는가?
우리는 술을 몇 잔씩 더하고 노가다 식당을 나섰다. 그때 길가에 작은뱀 한마리가 지나간다. 대열이가 장난기가 발동했다. 뱀을 잡았다. 뱀의 꼬리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다가 성에 차지 않았던지 빙빙 돌린다. 처음에 그러지 말라고 말렸는데 조금 지나고 그 뱀을 바닥에 내려놓자 뱀은 이미 온몸이 축 늘어진 채로 죽어 있었다.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었다. '죽음'이라는 것을. ‘죽음이라는 것이 있다. 태어남이 그렇듯이 죽음도 또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이 안닌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삶을 박탈 당하는 것이다. 죽음이 스스로의 것이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삶은 스스로의 것이기에 삶은 존중 받아야한다. 그 뱀은 스스로의 삶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박탈당했다. 존엄이 파괴 된 것이다.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그 뱀에 대한 애도도 아닌 그러면서 동정도 아닌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그래서 나는 그 뱀을 들고 어디론가 갔다.
뱀을 들고 교실까지 갔다. 교실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여학생들은 놀라고 도망치고, 남학생들은 웃어 대기도 했다. 나도 웃었다. 비애같은 웃음이었다. 사건은 그때 부터였다. 다행히 정기가 뱀을 뺏어서 밖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나는 술이 심하게 취하게 되었고 그 상태에서 수업을 받기는 무리였지만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격기가 발동이 걸린 것이다. 맨 뒷자석에 앉았다. 수업이 시작되었고, 교수님이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배국환” “네” “박선주” “네~” “배국환” “네” “박선주” “네~”
순간 교수님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자네가 배국환인가” “네”,
“박선주” “네”
“그럼 자넨 박선주인가 배국환인가”
나의 격기는 거침이 없었다.
“저는 배국환이기도 하고 박선주이기도 합니다.”
“자네가 그럼 어째서 그런지 증명을 해 보게나”
“네 저는 지금 배국환이하고 마음이 똑같아져버렸기 때문에 저는 배국환이기도 하고 박선주이기도 합니다.”
어처구니없는 말싸움이 진행되면서 교실의 분위기는 마치 소 한마리가 짓밟아 놓은 쑥대밭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과대표 현이가 나를 끌고 나갔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 수업은 더 진행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날은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고 말았다. 이날은 나에게는 대학 4년 가운데 가장 부끄러운 날이다.
초등학교 2학년때 한번 무척 부끄러운 일이 있었다. 지금은 뭐 그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날은 하루 종일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가 없었다. 수업시간 이었는데 너무 오줌이 마려웠다. 그래서 손을 들어서 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 오줌 누고 싶은데 변소 좀 갔다 오면 안 돼요?"
"안 돼"
선생님은 단호히 거절 하셨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애들이 자주 소변보러 가는 것을 싫어 하셨다. 나는 선생님의 단호한 거절에 오래지 않아서 그냥 옷에다가 그것을 하고 말았다. 오줌은 내 바지를 타고 교실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선생님 박선주 오줌 쌌어요"
"앵"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우울했었다.
영숙은 다행히 논리학 수업을 듣지 않았다. 다만 소문으로 그 얘길 듣고 무척 분노했다. 나하고 절교를 하겠다고 어름장을 났다. 난 무척 당황했고 미안하다고 연신 빌어야만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국환이와 난 교수님을 찾아갔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만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처벌을 하면 달게 받겠습니다.' 이렇게 싺싺 빌었다. 다행히 교수님은 나에게 논리학 수업 전에 다른 학생들에게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라 하셨다. 다행히 그 사건은 그렇게 넘어갔다. 잘못을 저지르기는 쉬운 일이지만 그것에 대한 반성과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삶은 종종 자신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간다.
그것이 맞든 맞지 않던지,
그것이 옳든 옳지 않던지,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존재하는 것이든 존재하지 않는 것이든,
절대적인 것이든 상대적인 것이든,
그럴 때 한번쯤 자신의 반대쪽에서 사건을 바라보아야 한다.
관성이 나를 완전히 망가뜨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