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조선전사"나 "조국해방전쟁사"를 참조해 보면
북한은 한국전쟁의 기원을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로는 미국의 "세계제패정책"의 일환으로 사회주의와 민족해방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선제도발이었다는 것이며,
두번째로는 미국의 경제불황을 군수산업 팽창을 통해 타개하려 했고 또 이를 위해
전략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을 채택했다는 것이며,
세번째로는 이승만의 북진론과 이를 지원하기 위한 미국의 대규모 군비원조 및 무기지원을 들고 있습니다. |
현재 운동권의 시각도 이러한 북한의 관점과 대동소이하다 볼 수 있는데
NL계열의 운동권의 시각도 위 세번째의 시각에서 연유된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들이 정말이지 아주 우연히 북한과 맞아떨어진 것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는 80년대 초반부터 주체사상을 탐독해 오던 운동권 선배들이
일본 조총련이나 친북학자들에 의해 해석된 사료들을 학원가에 은밀하고도 조직적으로 퍼뜨리면서
뿌리를 내린 덕입니다.
여기에는 부르스커밍스나 굽타와 같은 수정주의 학자들의 검증되지 않은 이론들이
무차별 원용되기 시작하면서 더더욱 고착화되었다 볼 수 있겠네요.
그러나 부르스커밍스는 한국전쟁에 관한 자신의 시각을
"Korea’s Place in the Suna Modern History(2001)"에서
한국전쟁의 발발에 대한 1차책임이 미국이 아니라 김일성에게 있는 것으로 수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총련 학생들은 여전히 80년대에 머무르고 있음을 볼 때마다 개탄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서론은 이만 접고 구체적으로 님의 질문에 답변해 볼 차례입니다.
운동권들은
"일단 민족해방전쟁 시기.. 48년부터 미국은 이미 전쟁준비를 시작하고
막대한 돈을 들여서 첨단무기를 국내에 도입을 한다고 주장하는데
모두 사실이 아님을 밝혀드립니다.
1. 미국은 48년부터 전쟁준비를 시작하였는가?
여기에 답변을 드리기 앞서 다음의 자료를 참고해 주십시오.

위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이 "미제가 전쟁준비에 광분했다"고 주장한 그 시기에는
오히려 군사비 추세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고로 님의 주장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겠죠?
2. 미국은 한국전쟁 전 막대한 돈을 들여서 첨단무기를 한반도내에 도입시켰는가?
북한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주요 근거는 1948년 8월 24일에 체결된 "한미잠정군사협정"이
한국에서의 전쟁 수행 이전에 한국군의 증강 및 무기도입을 위한 공격적 조약이라고 보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약은 1949년 주한미군의 완전철수에 따라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 한반도 내의
안보에 대한 협조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10개월 후에 효력을 상실한 조약입니다.
또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주한미군의 철군에 따른 장비이양에 있어서 북한이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한국군이 받은 중화기, 대포, 및 비행기 등의 질적 수준은 북한의 장비 수준과 비교하여 대단히 낮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950년 1월 26일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원조협정에 따라 미국이 한국에 지원하게 되었던
1천만불 상당의 군원물자와 장비는 일부 극소수의 품목을 제외하고는 한국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한국으로 수송되지 않았습니다.

3. 48년이면 북조선은 정부수립기간이여서 남조선 침공계획을 세울여력도 정신도 없었을거 라 판단되며,
북조선또한 남조선에 미군이 전쟁준비와 주둔을 하고 있었다고 분명 알고 있었던 바...
아무리 무식하기로소니 미제의 남조선강점상태와 자기정부도 수립하기바쁜 하필 그시기에...
남침을 했다는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구요.
=> "미제의 강점상태" 운운 하셨는데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1년전 이미 미국은 군사고문단
500여명을 제외한 모든 미군을 철수 완료한 상태였습니다.
소련 역시 이와 비슷한 시기에 철군을 했구요.
따라서 님이 말씀하신 "미제의 강점상태"라는 표현은 적절치 못한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네요.
북한은 1948년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지만 사실 선언만 그때했다 뿐이지
헌법, 행정, 지방조직 등 국가체체를 완성하고 군대를 보유한 것은 이미 1947년에 완료되었습니다.
또한 1946년 말부터 군수산업기지를 건설하고 무기생산을 독려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건설에 우선하여 군수산업에 여러 기술을 동원함으써 "국가 총동원체제"를 갖추어 나갔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북한이 전쟁준비를 시작한 것은 1946년 말부터라는 것이죠.
북한은 1949년 3월5일 "김일성.스탈린 모스크바 회담을 계기로 군사력이 급격하게 강화되는데
3개년에 걸쳐 군사차관을 받기로 협의하고 이어 "조.소 방위협정"에 따라 소총, 전차, 야포 등
대규모의 군사자원 및 무기의 지원을 받게 됩니다.
이어서 중공으로 부터 1949년 4월에 "조. 중 회담"을 통해 한인출신 중공군 3개 사단,
약 5만명에 이르는 대규모의 군사지원을 받아 남한군의 두배에 이르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됩니다.
북한 김일성은 48년부터 중국과 소련을 오가면서 수차례 남조선 전쟁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였는 바, 그 횟수만 해도 33여차례에 걸친 것이므로 얼마나 집요하게
그들을 설득했는지 짐작해 볼 수 가 있습니다.
다음은 김일성이 중국 모택동에 보낸 친서로서 모택동과 사전에 남한침공을 모의했음을
증명해주는 귀한 자료입니다.
이러한 사전 준비를 철저히 마친 김일성은 치밀한 계획하에 6.25일 전면전을 시도합니다.
이것은 한총련 학생들이 주장하는 바, 3.8선 국경분쟁의 "우연한 확전"이 아님을 나타내며
오랜 기간동안 체계적이고 주도면밀하게 전쟁을 계획했었다는 방증이 됩니다.
그 주요한 자료로서 북한 군부가 작성한 작전명령서, 정찰명령서는
각각 러시아어로 번역이 되어 소련으로 직접 보고가 되었다는 겁니다.
이 정찰명령서에 보면 사전에 적들의 동향, 무기 위치, 참호상황을 파악하여
어떻게 타격을 입힐 것인지 세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 작전명령서 (러시아 보고용)

(2) 정찰명령서(러시아 보고용)

(3) 정찰명령서 1호 (번역본)

(4) 전투명령서 1호 (필사본) - 6월 22일까지 남침준비 완료할 것을 지시한 문서

4. 마지막으로 반론
"게다가 한나라가 다른나라의 침공에 막아나섰을 때..
들어온적을 완전히 막아낸날을 기념하겠습니까?
아님 적군이 쳐들어온날을 기념하겠습니까?
제가 남의 나라를 쳐들어갔다면 당연히 쳐들어간날을 기념할 것이고 남이 내나라를 쳐들어온것을 막았다면 ...
적들이 내나라에서 완전히 물리쳤던 그날을 기념하겠지요?
=> 굉장한 비약이라 생각됩니다. 북한에서도 "조국해방전쟁발발일"이라 해서 6.25일을 기념합니다.
휴무가 아닌 점은 우리와 똑같습니다. 종전일을 기념하는 것은 우리도 합니다.
재향군인회에서 매년마다 "종전"기념이라 해서 당시 참전했던 국가들의 노병들을 초청해서
개별적으로 실시합니다. 정부가 주최하지 않았다 뿐이지 정부가 후원하는 행사 맞습니다.
그러나 북한처럼 거창하게 "전승"이라는 타이틀을 갖다붙이고 100만명을 동원해서
반미시위에 이용해 먹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커밍스 이론은 해방기부터 한국전쟁 발발 직후까지 다루는 방대한 작업이지만
일단 그의 이론은 크게 네가지로 압축할 수가 있다.
첫번째로 '3.8선 무력충돌론' 은 김일성의 남침론을 희석시키기 위한 논리이다.
두번째로 '내전론'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전쟁개입을 비난하기 위한 논리이다.
세번째로 '남침유도설'은 6.25의 책임을 미국과 이승만으로 돌리기 위한 논리이다.
네번째로 '민족해방전쟁론'은 김일성의 남침결정을 옹호하고 면죄부를 주기 위한 논리이다.
자~ 요점정리가 되었는가? 그러면 하나씩 차근차근 이를 반박해 보기로 하겠다.
問1. 6.25는 6월 25일날 발생하지 않았다는데..
=> 48년 부터 50년 6월 전쟁발발 직전까지 3.8선 국경근처에서는 남북한 정규군간의
크고 작은 무력충돌들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런 충돌들이 도화선이 되어
'우연히' 전면전으로 확대되었고 그 날이 6월 25일이라는 것이다.
즉, 6월 25일은 확전일일 뿐 개전일이 아니라는 것이 요지이다.
어떤가..벌써부터 가슴이 깝깝해 오지 않는가? ㅋㅋ..
그러나 흥분하지 마시라. 언뜻 듣기에는 전혀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니까 말이다.
이른바 '3.8선 무력충돌론'을 얘기하고 싶은 친구들의 목적이 뭐냐.
뭐겠나? 오래 생각할 것도 없다. 뻔~하지 않은가.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이제 6월 25일날 김일성이가 남침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으니 전쟁 개시일을 6월 25일 전으로 돌려보고 싶은 게 그들의 목적일 것이다.
사실 49년 이후로 3.8선 국경 충돌이 끊임없이 지속되면서 국군이 먼저 월경한 사례도 있었으니
개전일을 6월 25일 전으로 돌려놓는다면 전쟁을 누가 먼저 시작했냐하는 물음에
일단 좋은 핑계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이말이다.
=> 3.8선 무력충돌이 실제로 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49년도부터이다.
국군이 창설된 것이 48년 후반기이므로 실제적으로 정규군끼리 충돌이 발생한 것은
49년도 부터라고 보는 것이 맞는 얘기다.
'양영조'와 같은 이는 3.8선 무력충돌에 관해 꽤 중량감있는 분석을 내놓고 있는 바
그에 의하면 이 국경선 무력충돌은 총 3기에 걸쳐서 진행된다.
즉, 제1기는 소련군이 철수한 직후인 49년 1월부터 6월까지를 말함이요.
제2기는 미군이 철수한 직후인 49년 7월부터 12월까지 말함이요
제3기는 6.25 전쟁 발발 직전까지의 50년 1월부터 6월까지를 말함이다.
아~ 씨바. 성경체로 얘기했더니 어김없이 조는 인간들이 계시다.
시험에 꼭 나오는 중요한 부분이니 정신차리고 듣자.
해골 복잡하게 왜 이렇게 시기를 나누느냐.. 다 이유가 있어서 나누는 것이다.
무슨 이유로 무력 충돌이 발생했는지 어느 쪽이 공세적이었는지
충돌의 결과는 또 어땠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충돌이 6.25로 번질만한
합리적인 사유가 되는지를 파악할려면 이 부분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① 제1기에는 북한이나 남한이나 병력이라는 게 상호 그다지 별 볼일 없었다고 보면 된다.
일본군이 남기고 간 소총과 경장비를 몇개 주워다 거지같은 군대를 만들어 놓고
이름만 그럴싸하게 조선인민군이네 국군이네 이렇게 지어놨던 것은 쌍방이 유사한 처지다.
이 시기에는 소련이 철군한 틈을 타서 이승만의 '실지회복론'에 의거
남한군의 공세가 주도적이었다고 한다. (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
'실지회복'이라는 것은 원래 우리땅인데 잃었던 것을 이제 되찾자라는 거다.
한자만 나왔다하면 어리버리한 친구들은 이 기회에 한문공부 좀 하기 바란다.
그러나 실제로는 북한을 공격할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작전계획 같은 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공세라고 해봐야 야포 몇방 갈기거나 건너편 산하나 점령해 놓고 소주파티하던
수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연대급 이상 충돌도 진지 구축과정에서 발생한 우발적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당시 국경이라는 것은 지금처럼 촘촘한 철조망이나 바리케이트로 보기좋게 둘러져
무식한 양반이라도 아. 저쪽부터는 북한놈들 땅이구나. 하는 머 이런 게 없었다.
미.소 양국의 군대가 편의상 말뚝 몇 개 박아놓은게 3.8선의 실상인 것을 미루어 짐작컨대
오줌싸다 물 한방울만 저쪽으로 튀어도 니네 땅이냐 우리 땅이냐 치고받고 싸웠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국경분쟁이라는 게 발생 안하면 더 이상했던 게지.
당시 국경분쟁의 주무대였던 옹진반도를 보자.
여기는 황해도 개성입구 땅으로 들어가는 전략요충지다.
지도를 펼쳐보자. 지도가 없는 분은 고딩때 쓰던 사회과부도라도 펼쳐보자.
옹진반도에는 국사봉이라는 곳이있는데 아. 이놈은 3.8선을 떡 하니 관통하고 있다.
산하나를 두고 3.8선이 양분된 것이다. 그런데 주봉이 3.8선 이북에 있다.
군대갔다 와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산에서 진지를 구축하려면 보다 높은 주봉에다
진지를 만들어야지 어디 언저리 쭉대기에다 진지를 구축했다가는
높은 곳에 있는 적들에게 위치가 일거수 일투족이 탐지되어 밤낮으로 집중포격을 맞기에
십상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국군은 국사봉의 주봉을 교두보로 확보하기 위해 죽기아니면 살기로
북한놈들과 싸웠나보다. 어쨌든 그당시 치뤄졌던 국경분쟁이라는게
대부분 이런 형식이었다. 누가 더 유리한 고지를 먼저 선점하느냐..
그 과정에서 소대끼리 치고받은 싸움이 연대로, 다시 사단으로 번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북침이다. 이런 싸가지 없는 소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뎅이에 똥을 한 바가지씩 먹여주자.
최소한 북침이 성립되려면 단순 월경이나 교전 사실만 가지고는 안되고
위로는 대통령부터 시작하여 육해공 전 군단이 합동작전하에 전면전으로
비화될 만한 사건이 발생해야 그것을 북침이라 하는 거지
어제 저쪽 봉우리에서 총 몇 번 쏘고 대포 몇발 날렸다고 그게 북침이냐 이말이다.
그러다 남한은 양양 침투 이후 미국의 직접적인 제재를 받게된다.
미국 무쵸대사(베사메무쵸가 아니다.)가 이승만에게
'앞으로도 도발이 지속될 경우 군사, 경제 원조 등을 일체 중단하겠다'고
으름짱을 놓게 된 것이다.
그 당시 미국이 주는 쌀 한톨이 아쉬웠던 이승만은 결국 이에 굴복하게 되고
이 이후로 국군은 단 한차례도 3.8선을 월경하지 않았다.
② 제2기는 북한 인민군에 중공 팔로군 3개 사단이 편입되고 소련의 무기지원이
활발해지면서 북한 군사력이 남한보다 월등히 앞서가는 시기였다.
이때는 전세판도가 완전히 뒤바뀌어 북한이 공세적인 입장이된다.
교두보 확보나 진지구축 과정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충돌이 주를 이루었던 제1기의
무력충돌과는 달리 제2기는 남침을 위한 사전준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북한 군부에 의해 의도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진다.
이른바 8월공세니 10월공세니 하는 것이 그것이다.
공세의 주된 목적은 남한군의 전투능력, 전력탐색을 위한 전쟁준비적인 정찰적 성질이
강하였고 삼척 빨치산 해방구 건설과 같은 게릴라 침투공작도 있었다.
이미 김일성은 1949년 신년사를 통해 '국토완정론'을 들고 나와
남침 전략을 노골적으로 표면화시키고 있었다.
물론 이승만도 북진통일론 같은 것을 종종 언급해왔다고는 하지만 현실성도 없었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던 '뻥'이 었다는 점에서 김일성의 발언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소련대사관 툰킨(Tunkin) 공사와 김일성, 박헌영과의 대담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이 대담에서 김일성은 '38선 지역에서의 충돌 경험에 의하면 남한군의 전투수행 능력은
취약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국경분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또한 이에 앞서 가진 스티코프와의 대담에서도 김일성과 박헌영은 이와 똑같은 주장을
한 바 있다. 인민군을 투입하지 않고 경비대(전투경찰에 해당)의 힘만으로 능히
남한군을 제압해 오고 있다며 자신하였던 것이다.
의도적인 국경분쟁을 일으켜 남한군보다 군사력이 월등함을 깨달은 김일성은
남침계획의 일부로서 옹진반도 점령안(案) 승인을 소련정부에 요청한다.
만일 북한이 옹진반도를 점령하게 된다면 현행 38선으로 이루어진 군사분계선을 120Km
정도로 단축시켜 대남도발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된다.
즉, 옹진반도를 선점하면 2주일내에 남한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을것이라는 계산을
김일성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공개된 소련 외교문서에 따르면 김일성이 한국전쟁 개전가능성을 타진한 보고문이
1949년 8월에서 10월 사이에 모두 9건이나 발견된다.
그러나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는 시기상조 및 전면전 가능성을 들어
이 제안들을 거부하고 오히려 김일성이 경거망동 하지 못하도록 강력히 통제하려 했다.
그 실례로 소련당국의 이와같은 조치를 무시하고 북조선 제3정찰 여단이 또다시
대규모 국경전쟁을 도발하자 이를 늦게 보고한 스티꼬프 대사를 견책하기도 했다.
즉, 이것은 소련 당국의 승인없이는 남침이 불가능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김영호, 양영조, 이완범 등의 연구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 사건 이후로 3.8선은 확실히 소련의 통제하에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6.25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까지의 제3기는 완연한 소강상태를 맞이하여
더이상 대규모의 국경분쟁이 발생하지 않았다.
③ 결론적으로 49년 이후 발생했던 3.8선 무력충돌의 연장선상에서
6.25 전쟁이 '우연히' 확전되었다는 것은 완전히 오류임을 알 수가 있다.
첫째로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미.소 양국의 제지와 통제가 있었고
남.북한 모두 미.소의 영향 하에 놓여있었다.
둘째로는 전쟁을 야기할 만한 대규모 국경분쟁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49년 11월 이후로 사실상 완전 중단되었으며
셋째로는 북한의 국경선 도발은 처음부터 남침을 계획하고 의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김일성의 49년 신년교시인 국토완정론에 의거 전투부대를 증강하고
병력을 3.8선으로 이동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된 전쟁계획에 의해 전면전이 발생된 것이지
'국경충돌'의 와중에 어느날 갑자기 우연스럽게 확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피터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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