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대교를 건너 한참 들어오면 남해읍이 나오고 여기서 또 한참가면
상주해수욕장이 나오고 그 길로 계속가면 도로끝인 미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나는 태어났고, 나의 아버지도 여기서 태어났고, 나의 할아버지도
여기서 태어났다.
오늘도 나는 전날 과음한 탓에 정오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전날잡은 멸치를 털러 나갔을것이고
엄마 역시 멸치 삶는곳에 나간 모양이다.
부엌에서 물 한사발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인근바다에는 온통 멸치배 뿐이며 길거리에는 멸치 말리느라 온통 도로를
덮고 있었다.
띵한 머리와 메스꺼운 속을 억지로 참으며 삼정다방으로 향했다.
어제밤 같이 술 마신 미스박은 멀쩡하게 손님과 노가리를 풀고
있었다.
흐흐흐 갑자기 어제밤이 생각났다. 광란의 밤...
그런밤이 일주일만 지속되면 난 아마 피골이 상접하여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어제밤은 정말 대단했다.
다방을 나와 방파제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때 나의 어릴 때 친구이자 같이 인천 선원학교에 함께 입학한 친구
동철이를 만났다.
"어이, 대호야 니 어디가노?"
힐끔 돌아보고는 나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저거 아버지하고 인근 양식장에 가는 모양이었다.
5년전 중학교 졸업하고 둘이 인천 선원학교 입학할 때 졸업한후에
큰 배를 타고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을 다니며 고기를 잡자고 나하고
그렇게 약속해 놓고는 이제와서 저거 아버지하고 인근바다에서
양식장을 하는 놈이다.
나는 전에도 그놈한테 신경질을 낸적이 있다.
"야 이자석아, 사내로 태어나가 선원학교에서 큰배 타고 전세계를 돌며
고기도 잡고 돈도 벌자고 약속한게 얼마전인데 고새 마음이 변해서
미조리 근처에서 멍개, 해삼 키우는걸로 만족하나?
내는 니하고 다르다 아나?
내는 분명 큰배탈끼다. 그리고 그 배에 고기를 잔득 실고 올끼다. 알아 듣겠나?"
방파제 앞에 서니 늦가을 바닷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옆에 그물을 손질하던 김씨 아저씨가 또 내한테 한마디 한다.
" 봐라 대호야 이놈아 니도 이제 너그 아부지 생각좀 해라, 허구한날
큰배타고 나가 큰고기 잡겠다고만 하고 니 올해들어 고기 잡은 거 뭐 있노?"
나는 피우던 담배를 휙 집어 던지고는
"아저씨요 그런말 마이소, 내도 98년도 가을부터 작년까지 한번
출항하면 엄청나게 벌어온거 아저씨도 잘 알잔아요
올해들어 고기 못잡았다고 그렇게 괄시하면 안되는기라요
"이놈아야 그때 큰고기가 좀 잡혔다고 계속 잡힌다는 보장이 있나?
그란께 니도 정신차리고 동철이처럼 가두리 양식장이나 해라
알겄나?
" 아저씨.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이소
양식장 할라면 자본금도 있어야지요, 까닥 잘못하다 태풍이라도
오면 쪼매씩 벌었는거 다 토해 내야지요, 혹시 무슨일이나 없을까
밤새 잠 못자지요, 내는 그런거 못합니다.
내 98년도 11월달에 배타고 나가서 대박잡은거 아재도 잘 알잖아
요."
돌아서서 걸어가는데 뒤에서 김씨 혼자서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조매씩 조매씩 벌어먹고 사는게 진짜다. 나도 너만할때는
큰거하나 잡아야지 하면서 보낸세월이 10년이다. 큰 고기가 맨날
니한테 갈줄아나?
98년도 99년도 같이 큰 고기잡은 것은 아마 니 평생에
다시는 그런 행운은 없을끼다. 그때는 태풍 타이거 바람이
이상하게 불어서 그런거다 알것나?'
나는 속으로 눈물이 흘렀다.
' 아재요 낸들 그걸 모르는교. 나도 다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그때 번돈
큰고기잡겠다고 맨날 바다에 나가는 바람에 다쓰고 지금은 양식장은 고사하고
거물하나 살돈도 없는데 우야는교. 인자는 방법이 없는기라요.
삼천포에 김선주 어른께서 배를 내주면 죽기 아니면 까무라 치기다 하고
출항할겁니다.
이번에 만약 큰 고기 잡으면 저도 인근 연안에 가두리 양식장도
하나 만들고, 멍개, 해삼도 키워 장가도 가고 그렇게 살깁니다.
만약에 이번에도 허빵이면 인제는 이 미조리 떠날낍니다.
도회지 가서 노가다라도 해서 살 생각입니다.
인지 배운게 이건데 마지막으로 한번은 해봐야 안되겠습니꺼?'
나는 과거 큰 고기 잡을 때 미래를 준비하지 않은 자신을 생각하
니 자꾸만 신경질 났다.
"에이 #팔, 삼정다방 미스박한테 5천원만 달래서 새우깡에 소주로 해장이나
한잔 해야겠다. 끝.
요세미티원정기 이후 많은분들이 3탄을 요구하시기에 급조하였습니다
성원에 미치지 못하는 글이라 올리기 부끄러우나 용기를 내어 올립니다.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