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인천교구 석남동 본당 정경림(율리안나)입니다.
1999년 12월 14일 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작은 아이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당황하여 넋을 잃고 있을 때 교감선생님이 가좌 성모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시는데도 어떻게 가야할지 아무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차로 데려다 주셨습니다. 가좌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담임 선생님에게 "서현(둘째아이)이는?"하고 다급하게 묻자 "저-기"하며 손으로 가리키기에 그곳을 바라보니 작은 아이가 119 구급차에 실리고 있었습니다. 황급히 뛰어 들어가 보니 입에는 산소 호흡기가 꽃혀 있었고 두 눈을 뜬 채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어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장난이라도 그런 장난은 하지 말라"며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인천에서 제일 큰 종합 병원인 중앙 길 병원에 도착하니 가좌 성모 병원 의사와 간호사가 길병원 의료진에게 인수 인계하면서 "가좌 성모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사망했습니다."라고 말을 듣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고 마치 지옥의 길을 걷는 느낌이었죠. 응급실 집중치료 3실에서 계속 치료를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며 컴퓨터 그래프 자체가 전혀 움직이지도 않았고 의학적으로는 완전히 사망이었습니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담임 선생님, 양호 선생님, 남편과 함께 마음을 졸이며 희망적인 결과가 나오기를 학수고대 하였지만 담당의사 선생님이 "이 아이 말고 다른 아이가 또 있습니까"하며 "포기하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 한마디에 저는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내 아들은 현대의학으로도 어찌할 수 없어 이미 포기한 사람들만 위주로 입원시키는 중환자실(바로 밑에는 영안실)로 옮겨졌고 애간장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아 저는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제 자신이 정신병자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매달 한 번씩 나주에 다녀오시던 레지오 부단장님이 나주에서 가져왔다는 작은 성수와 1.8ℓ의 기적수를 가져와서 성수를 뿌리고 의식도 없는 아이 입에 성수를 넣어주었는데 흘리지 않고 삼켜졌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아이가 신기하게도 그것을 흘리지 않고 먹는 것을 제 눈으로 확인하였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기적이었습니다. 저는 큰아이 때문에 집에 와 있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날 밤 세현이가 움직이는 것 같아 남편은 아들의 손을 잡고 "아빠인줄 알면 손에 힘을 줘봐"했더니 약간의 힘을 주다가 놓았다고 하였습니다. 난 믿어지지가 않아 "정말이야?"하며 반문했습니다. 그리고 "아! 내 아들이 살아났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이튿날 큰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남편과 함께 중환자실에 들어갔는데 아까보다 더 정신이 돌아온 것 같다고하여 나는 기적수를 침대 주위에 수시로 뿌리며 기도했습니다. 면회도 하루에 두 번밖에 안되었지만 아이의 정신이 돌아오자 간호사에게 부탁하여 아이 곁에 있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아이 옆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옆에서 가래 끓는 소리, 죽어 나가는 시체들(그 시간처럼 죽음을 많이 본 적이 없음)을 계속 보면서도 아이를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나주의 기적수와 성수를 뿌리면서 무서운 줄을 몰랐는데 아마도 그것이 바로 모성애였던 것 같습니다. 낮이 되어 세현이가 일어나 "배가 고프다"고 하여 간호사가 준 미음을 먹이면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식에게 떠 먹이는 어미의 행복한 마음을 과연 그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시간 시간 회복이 너무 빨라 의사 선생님도 기적이라고 하시면서 의학적으로 뭐라고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만 사흘만에 우리 세현이는 죽음에서 탈출해 나와 일반 입원실로 옮기고나서 미음에서 죽, 밥으로 식사도 변해갔습니다. 약을 먹일 때뿐만 아니라 입을 통하여 다른 무엇을 먹일 때도 언제든지 기적수를 사용했습니다. 부단장님께서 물 한방울도 흘리지 말라고 하셨기에 그대로 했었는데 마침 물이 떨어진 12월 24일 가퇴원 할 수 있다고 하여 별다른 장애 없이 일어나 퇴원해서 짐만 집에 놓고 우리 가족은 곧바로 성당에 갔는데 '어린이 성탄 발표회'로 큰아이는 바이올린 연주와 합창을 했는데 우리 세현이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으며 마냥 즐거워했습니다. 신자들은 다시 살아난 우리 세현이를 보고 축하한다고 하면서 모두들 한마디씩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신부님께도 인사를 드렸더니 "사흘동안 죽었다가 크리스마스에 퇴원한 것은 그 의미가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나주 기적수에 대하여 호기심이 생겼고, 아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지만 그 후유증으로 알레르기성 체질로 바뀌어 밤에 긁적이느라고 짜증낼 때도 있어 그것마저 치유 받고자 4월 첫 토요일에 학교수업을 조퇴하고 세현이와 함께 나주에 가게 되었습니다. 나주에서 철야기도를 하고 돌아오는 도중 세현이는 자기가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기도를 한 적이 없다고 하였으며, 생각하는 모든 것도 더 예뻐지는 것 같았습니다. 세현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주에 가는 것은 자기 마음을 수술 받으러 간다"고 하며 "나쁜 마음을 모두 버리고 착한 마음이 되게 수술해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아들을 통해서 제가 변화된 것은 성당에서 어떤 직책을 맡으라고 하면 항상 싫다고 거절했는데 지금은 주님의 뜻이라면 제게 능력과 건강 주셔서 도구로 사용하시라고 할 정도로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었으며 남편도 바쁠 때는 주일도 걸렀으나 지금은 새벽미사에도 나가려고 하며 또 운전하기 전에도 기도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답니다. "나주 성모님! 우리 세현이 지켜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