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에는 공부보다는 데모를 열심히 했고, 한국민족사상연구회와 같은 서클활동에 열중했다. 그는 이 시기에 “우여곡절이 많을 수는 있지만 우리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역사를 훌륭하게 발전시켜야 할 책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조 교우는 공직에 들어가 경제기획원, 통계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거치게 된다. 당시 서울대 출신이 장악하고 있던 경제기획원에서 조사관리과장, 투자계획과장, 물가총괄과장 등을 거치며 성실과 의지로 두각을 드러냈다. 주사보로 공직을 시작했지만 관리관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그에 대해 모 신문은 평하기도 한다.
“내게는 ‘호랑이는 굶주려도 풀을 뜯지 않는다’와 같은 자존심이 있었어요. 참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합니다. 1978년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에 있으면서 경기종합지수를 개발했던 일, 부동산투기억제대책, NGIS 구축계획 수립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조 교우는 쓰레기장에 버려진 소파를 본 뒤, 알뜰시장의 보급에 앞장서기도 했다.
“내게는 소용이 없으나 이웃 누군가에 소용이 될 수 있는 물건을 서로 사고 팔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부터 시작했지요. 손수 현수막을 만들고 전단지를 만들어 아내와 함께 홍보했습니다. 동네주민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었고 이후, 한국일보 사회면에 ‘개포동 아저씨’란 기사가 나기도 했습니다. 이후 다양한 단체를 통해 알뜰시장이 보급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모교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렸다.
“목표를 세우면 최선을 다해 전력투구 하십시오. 그래야 후회도 없고, 일도 이룰 수 있습니다. 스스로 좌우명을 정해 마음속에 깊이 심으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대담 = 김진국 편집국장 정리 = 양명철 기자
첫댓글 이 나라의 선진화를 위해 노력하는 조교우의 활동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