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한글타자기와 세계 최고 타자속도를 보이는 세벌식 타자기를 만들다
나이 90을 얼마 안 남긴 나이였지만 매일 PC통신을 하면서 마지막까지 한글운동에 모든 열정을 바친 분이 공병우 박사다. 돌아가신 후에는 장기를 기증하고 남은 부분은 해부용으로 쓰라고 몸을 기증함으로써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성인의 삶을 몸으로 보여주셨다. 그리고 언제나 대한민국과 한글, 젊은이를 사랑하셨다.
공병우 타자기 광고

공병우 박사는 우리나라 한글기계화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을 남긴 분이다. 1949년에 최초로 세벌식 한글타자기를 개발하면서 세벌식 한글타자기 및 글판을 만든 분이다. 한글타자기는 1914년 이원익이 영문타자기에 한글 활자를 붙여 만든 것이 최초이나, 한글 기계화 원년에 들어선 시기는 공병우 박사가 가로로 찍고 가로로 읽는 과학적인 세벌식 타자기를 고안하여 특허를 취득하고 언더우드 타자기 회사에서 상품화한 1950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글기계화의 아버지’인 공병우 박사는 한글창제 원리에 맞는 세벌식 기계화를 이끌면서 한글을 가장 한글답게 가꾸는데 노력했다. 이후 1958년에 김동훈 씨가 좀 더 예쁜 출력을 위해 5벌식을 개발했고, 공병우 박사도 글자 모양이 예쁜 4벌반식 한글타자기를 개발했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타자기의 글판 비율은 공병우식 세벌식이 60%, 김동훈식 5벌식이 30%를 차지할 정도였다. 네벌식이나 두벌식은 존재 의미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1968년 10월에 상공부에서 시중의 흐름과 상관없이 네벌식 표준자판 시안을 발표하고, 1969년 7월에는 과기처에서 초성 1벌, 중성 2벌, 종성 1벌로 구성된 네벌식 타자기를 한글타자기의 국가 표준으로 정하는 일이 발생한다. 여기에 인쇄전신기(텔레타이프)용으로는 두벌식을 표준으로 확정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글판(자판) 논쟁이 발발한다.
1982년 과학기술처가 두벌식 한글 자판을 컴퓨터의 표준 자판으로 확정하고, 1985년에는 컴퓨터와 타자기의 자판 배열을 통일해야한다는 명분으로 한글타자기마저 두벌식으로 표준을 정하면서 큰 반발을 부른다. 그러나 7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과 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 하에서 민간 쪽의 반발은 미약했고, 결국 한글 글판은 두벌식으로 통일되고 만다.
네벌식은 글꼴이 더 예쁘다는 이유로 채택되었으나 손에 부담이 많이 가고 속도가 느리다는 비합리성 때문에 결국 폐기되었다. 두벌식은 영문자판에 맞추다보니 한글 조합 원리에 맞지 않는다. 애국가를 타자하면 윗글쇠Shift key를 누르는 비율이 세벌식은 0.5%인 반면, 네벌식은 3%, 두벌식은 16%나 된다. 두벌식의 왼손 부담률은 60%나 되고, 자모음의 배치는 비과학적이다. 두벌식의 피로도가 심한 것이다. 당연히 세벌식에 비해 속도나 피로도에서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언더우드에서 나온 초기 공병우 타자기(좌)
속도보다 더 큰 문제는 비과학적인 원리 때문에 황당한 현상이 나타나는 점이다. 수동식에서 전자식 타자기로 발전해도 글씨가 나타나지 않는 문제가 나타났다. ‘민족’을 입력할 경우 ‘민조’를 칠 때까지 한 글자도 종이에 나타나지 않는다. 네 타나 쳤는데 글씨가 안 나타나는 황당한 방식이 두벌식인 것이다. 컴퓨터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지금 당장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ㅁ, 미, 민, 믽, 민조, 민족’을 하나씩 칠 때마다 글씨 모양이 매번 바뀌기 때문에 눈이 피곤하고 오타가 많아진다. ‘믽’에서는 지읒이 앞글자에 붙었다가 ‘ㅗ’자를 입력하면 그때서야 뒤로 붙어 ‘민조’가 된다. 이런 현상을 ‘도깨비불현상’이라고 하는데, 두벌식의 비과학성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공병우 박사를 비롯한 많은 한글기계화 전문가들이 세벌식을 다시 표준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으나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공병우 박사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한글기계화운동의 맥이 어느 정도 단절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나마 마이크로소프트의 한글화 운동 덕분에 한글용어 표준화는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졌다. 요즘 우리가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용어 중 상당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인 윈도에서 사용되는 용어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마이크로소프트의 한글화 그룹의 노력 덕분에 좋은 용어로 많이 정착된 상태다.
공병우 박사님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 분이 쓰신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라는 자서전을 보기 바란다. 평생을 올곧은 고집쟁이로 살아오신 박사님의 일생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박사님은 세상을 떠났지만 한글문화원을 통해 전했던 정신은 여전히 많은 통신인들을 통해 여기저기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박사님의 공로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그 중에서도 박사님이 가장 자랑스러워하고 또한 소망했던 것은 바른 한글기계화였다. 한글타자기를 발명하고 세벌식을 만든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해외에 잠시 나갔다가 다시 귀국한 후에는 한글문화원을 개원하고 한글기계화에 앞장섰다. 한글문화원은 아래아한글을 만든 한컴이 설립되고 한글동아리들이 모이던 곳이다. 항상 이름은 한글로만 쓰셨고, 한글타자기 발명으로 한국인 최초로 미국 특허를 얻어낸 분이다. 이런 분이 만든 뛰어난 한글 글판을 네벌식과 두 벌식으로 바꾼 정부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질 수밖에 없다.
한글사랑 BBS 멋과 하이텔 한글사랑 동아리의 한글운동
한국에서 한글운동을 가장 먼저 펼친 분은 물론 두말할 것도 없이 공병우 박사님이다. PC통신망에서 한글사랑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1990년 5월에 한글 사랑 BBS인 ‘멋’이 문을 열면서부터다. 내가 BBS 지기를 맡아 운영했던 ‘멋’은 당시 all, am, pm 등의 BBS 운영시간표에 들어가는 용어부터 한글화하여 ‘늘, 24시간, 오전, 오후’ 등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컴퓨터용어 한글화부터 시작해 이후 글꼴 개발 및 한글운동 컬럼, 잡지 배포 등을 통해 한글운동의 필요성을 알렸다. 이후 하이텔에 한글사랑dasom 동아리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전국적인 활동으로 변화했고, 4대 PC통신망에 모두 한글사랑 동아리가 개설된 후에는 연합을 하면서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공병우 박사와 한글동아리 지기들. 가운데 흰색 상의를 입은 남성이 필자다.
대한민국 여성을 위한 다섯 가지를 도입한 공병우 박사님 |
대한민국 여성들이 알아두면 좋은 지식 몇 가지를 알아보자.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하는 성형수술을 꼽자면 쌍꺼풀 수술일 것이다. 이 쌍꺼풀 수술을 국내에서 최초로 시술해 여성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한 분이 공병우 박사다.
안경을 쓰면 불편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스타일과 맞지 않는 문제도 있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안경을 쓰지 않고 콘택트렌즈를 낀다. 우리나라에서002_08. 세계화를 위해 타자를 배워야 한다는 공병우 타자기의 광고 콘택트렌즈를 최초로 도입하고 직접 만들어 보급한 사람도 공병우 박사다.
오늘날 여성의 성해방을 위해 매우 중요한 도구이자,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최적의 도구는 콘돔이다. 국내에서 콘돔이라는 말조차 알려지지 않았을 때 콘돔의 필요성을 느끼고 콘돔 도입을 주장한 분도 공병우 박사다. 실제로 미국에서 콘돔을 대량으로 수입했으나 세관에 의해 '풍기문란용 기구'로 판정받았다.
마당을 건너 재래식 화장실에 가는 것처럼 귀찮은 일이 없다. 특히 여성들은 ‘푸세식’에서 볼 일 보고 다시 마당이나 부엌에서 물을 받아다가 뒤처리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요즘은 화장실이 집 안에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양변기를 방 안에 만들었다가 미쳤다는 소리를 들은 공병우 박사 덕에 현대식 화장실 문화가 보급되었다.
여성들이 밥상을 내거나 방을 닦을 때마다 문지방에 걸려 많이 불편하고 위험했다. 진공청소기를 쓸 때도 문지방 때문에 청소가 불편했다. 지금은 문지방 없는 아파트가 유행이지만 수십 년 전에 집 안 문지방을 모두 톱으로 썰어버린 선구자가 있다. 문지방 없는 방문을 구현한 분도 공병우 박사다.
오늘날 우리나라 여성들의 아름다움과 편리함에 큰 기여를 한 분은 바로 세벌식 한글 타자기를 발명하신 공병우 박사님이다. 이 정도 업적이라면 우리나라 여성들이 공병우 박사님을 기억할 이유가 충분하리라고 생각한다. |
첫댓글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기술표준이라는 건 효율성과 큰 상관이 없다는 점을.. 여기서도 알 수 있습니다. 두벌식도 별 불편없이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보다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기술이 묻힌다는 점은 쩝..
익숙해진다는 게 무서운 것 같습니다.
세벌식은 저도 써보려고 하다가 적응이 안되서 포기. 두벌식이 기억하기 훨씬 쉽더라구요. 이게 선점효과인지,머리가 나빠서인지, 아니면 세벌식이 정말 기억하기 어려운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거부감이 들었던것은 숫자 영역까지 침범했던 것입니다. 참고로 영문 타자기는 기계적 한계때문에 일부러 느리게 치도록 자판을 배열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저도 세벌식을 한 번 써보고 싶습니다. 세벌식이 좋다, 아니다 그건 스노비즘일 뿐이다 라는 의견들이 분분해서요...
제 사촌동생이 상고를... 나와서.. 세벌식도 배웠는데.... 두벌식과 세벌식. 타수 느는 속도차이가 크댑니다... 마의 경지 1,000타를 손쉽게 쓸수 있는 게 세벌식이라고 -ㅇ-;;;; 쩝.. 1등은 거진 1,500타 친다는 전설을 들었습니다만... 민간인과는 조금 차이가 있죠.. 세벌식 키보드.. 구할 수도 없고... 이젠 말 그대로 전설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