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반 반창회-1월 신년회
일시: 1월 7일 화요일 오후 6시반부터- 장소: 안동장 참석: 임종국(반장),김형일(총무), 곽영선, 김정국, 문상두, 박충서, 손창인, ----7명
특기사항: 1) 신년을 맞아 반장이 금년 행사계획을 발표하였다. 역시 작년과 마찬가지로 다이내믹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계획을 보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계획이니만큼 더 좋은 행사로 바꿀 수도 있다고 하니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은 언제나 제안해 주시기 바란다.
2) 이화회(8반반창회)의 2008년 모임계획은 다음과 같다. 2.12 열린음악회 관람 3.11 서울대공원 산책 4.8 괴산에서 4반과 합동모임 5.5 정선 장터 돌아보기 6.10 북악산성곽 산책 7.10 안동장 8.12 한강유람선 관광 9.9 마당놀이 관람 10.3 서천 마량포구 방문 11.11 창경궁 산책 12.9 공군회관에서 송년회
3) 얘기 중에 괴산경찰서장 이종복으로부터 4월에 괴산에서 4반 모임을 열려고 하는데 함께 모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이구동성으로 "그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여 그 자리에서 원래의 계획(남산순환로 산책)을 유보하고 4월 달에는 괴산에서 모임을 갖기로 하였다.
4) 윤양식이는 이연종의 치과병원을 다니면서 임플란트라는 대공사(大工事?)를 하고 있는 중이고 전영철이는 무릎 관절에 문제가 있어 한동안 운신(運身)이 힘들 정도라고 한다. 모두 건강관리를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5) 구영모는 작년 말 스키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 경남지역에서 양산에덴벨리라는 스키장이 개장되어 에이젼트회사를 차렸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아직 잘 알지 못하나 선박업무와 무주펜션에 이어 새로운 사업을 추가하며 역동적(力動的)으로 일하는 그를 보면 아직도 우리는 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힘찬 새해를! 김정국,곽영선,김형일,문상두,임종국,박충서,손창인--박충서가 새 안경, 새 넥타이로 멋을 냈는데 어떠한가?
후기:
하늘에는 영광, 내 마음에는 평화
새해 첫 모임인데다 몇몇 친구들이 건강 문제 때문에 참석이 저조(低調)하여 자연히 이야기는 건강관리가 주제(主題)로 되면서 치과닥터 손창인이 오복(五福)과 관련하여 치아관리(齒牙管理)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이가 나쁘면 천하진미(天下珍味)도 그림의 떡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오복과 치아는 무슨 연관이 있는가?
대체로 오복이라고 하면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꼽기도 하고 또 다른 옛 서적에서는 수(壽), 부(富), 귀(貴), 강녕(康寧), 자손중다(子孫衆多)를 꼽기도 한다.
이 중에서 부와 귀는 쩐(錢) 많고 출세하는 것일 터인데 어느 정도의 크기라야 복을 받았다고 생각할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찌됐든 부와 귀는 누구든지 원하는 바일 것이다.
제 명(命)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다는 고종명은 요즈음에 많이 회자(膾炙)되고 있는 웰-다이잉(well-dying)과도 그리 다를 바 없겠는데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수(壽)를 다하고 죽는다는 뜻이니 결국 수와 고종명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동의반복(同義反復)에 다름없다.
강녕은 말 그대로 건강하고 평안함을 구하는 것이니 모두가 바라는 바 일 것이고 자손중다 만큼은 요즈음과 같은 핵가족세대(核家族世代)에게는 조금 빛이 바랜 희구(希求)일 수도 있으니 일단 제외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결국 이를 함께 묶어보면 부, 귀, 강녕, 고종명의 네 구(句)를 취할 수 있다. 이것은 대체로 누구를 불문하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주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들이다.
그런데 유호덕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유를 그저 허사(虛辭)로 보고 호덕을 해석하면 즉 "덕을 좋아한다"라는 것이 글자 그대로의 해석이기는 하나 한걸음 더 나아가 조금 더 확대 해석하면 "덕을 좋아한다, 덕을 지킨다, 나아가 남에게 덕을 베푼다"라는 것으로 부, 귀, 강녕, 고종명을 이루는 근본적인 밑바탕(fundamental)이 될 뿐 아니라 단순히 원하기만 해서는 안되고 내가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內包)하고 있고 이것을 다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가공(加工)하면 나의 정신과 육체를 잘 관리하여 행복감(幸福感)이 충만하도록 만들어 결국 자의(自意)로나 또는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그 행복감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게 하는 것이니 그것은 곧 행복을 나누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는 오복을 부, 귀, 강녕, 고종명, 호덕의 다섯을 꼽게 되는 것이다.
흔히 치아가 오복 중의 하나라고 하는 것은 치아가 건강하면 맛있는 음식을 잘 씹어 먹을 수 있으니 자연히 건강해지고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하여 오복의 밑바탕이 단단하게 될 것이니 호덕의 한 원소(元素)가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광고 카피로 쓰여져 알려진 것이 이제는 널리 통용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보면 일상생활에서 건강관리는 바로 오복을 얻을 기초자산(基礎資産)이 될 것이다.
오복을 가지기 위해서 각자의 신불(神佛)에게 간절히 기원하며 애를 쓰게 되는데 그 중에 호덕과 같은 것은 남에게 베풂으로써 그것이 결국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나의 마음까지 풍성(豊盛)하게 하니 결국 육체적으로도 건강하게 된다는 것으로 정신적인 재산이 풍족해야 함을 암시(暗示)하고 있다.
예술과 체육활동이 그러한 일익(一翼)을 담당하거니와 종교활동도 당연히 큰 몫을 갖고 있다. 이야기 중에 김형일이가 교회 성가대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고 하면서 아무래도 금년부터는 좀더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자신은 탁구선교라는 명분하에 탁구모임에서 더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 쪽이던 종교활동과 병행하는 것이니 오복의 밑바탕을 잘 쌓고 있는 셈이다.
성가대(聖歌隊) 활동에서 마음의 평화나 건강을 찾았다는 사람도 꽤 많다. 맨날 약을 먹어도 목이 아프고 잘 낫지 않아 항상 마음에 먹구름이 낀듯하다는 사람이 성가대에 들어가 주일마다 성가를 부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낫더라는 것이다. 그런 일이 보편적(普遍的)이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마음에 안정과 평안을 가져오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군 복무 시절에 졸병 고개를 막 넘어갈 즈음 당시 중대장이 천주교 신자로 종교활동을 장려(奬勵)하였는데 일요일이면 부대 옆 산의 절로 읍내의 교회와 성당으로 외출을 나갈 수 있었고 그 시간에는 사역병(使役兵) 모집에도 빠지곤 했으니 졸병들에게는 꽤 근사한 유혹이었다.
그런 사탕과 같은 달콤한 유혹에다 중대장의 영향을 받아서였는지는 모르나 어쩌다 가톨릭 통신교리(通信敎理)를 배우게 되었다. 그런데 굳이 가톨릭을 선택하게 된 것에는 또 다른 유혹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기로 사단본부로 전령을 다닐 때 잠시 들르곤 하던 읍내 다방의 다방아가씨가 그것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인가 우연히 "잠시 다방에 들러 학창시절처럼 음악이나 듣다 가야지" 하고 들렀는데 주문 받으러 온 아가씨가 꽤 낯이 익은 듯하였다. "어디서 많이 본듯하네?" 하고(절대 꼬시려는 멘트는 아니었음!) 말하자 아가씨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다 불쑥 생각난 것이 언젠가 서울 돈암동의 어느 다방에서 만났던 J양이었다.
S대(으앙, 서울대 아님!) 다니던 친구녀석을 만나 노닥거리던 다방에서 얼굴을 익혀 서로 누나다, 오빠다 하며 급기야는 "주민증 까보자" 까지 하는 등 장난을 치곤 했던 그 J양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모래내에 있는 다방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하며 놀러 오라고 했지만 그때는 도대체 모래내라는 동네이름이 하도 생소하여 엄청 멀게 느껴졌기 때문에 이럭저럭하다가 잊어버렸던 것이다.
서너 해 만에 이렇게 만나니 이런저런 개인적 이력(履歷)과는 상관없이 어찌나 반갑던지 지나갈 때마다 들르게 되었는데 이런 것도 바로 한줄기 즐거움의 원천이 되어 다시 만날 때를 기다리곤 하였다. 그런데 애기하다 보니 그녀가 가톨릭신자라고 하여 그렇다면 언젠가 함께 읍내 성당에서 만나자고 손가락을 걸게 되었다.
그래서 일요일이면 성당에서도 만나게 되겠구나 하며 꽤 열심히 교리공부를 했는지도 모른다. 통신교리 과정이란 것이 그다지 어려운 과정은 아니었기 때문에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교리공부를 마치고 이ㅇ희 중대장이 대부(代父)가 되어 영세(領洗)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성당에 다니면서 성가대에 들어가 미사 때마다 성가를 부르는데 어떤 때는 눈물이 날 만큼 가슴에 북 바쳐 오르는 것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게다가 생각과는 달리 성당에서 만난 J는 다방아가씨의 외각(外殼)을 벗어버린 듯 어쩌면 성녀(聖女)와 같은 그런 이미지로 보여졌다. 그래서 미사를 하는 동안 다른 엉뚱한 생각은 멀리 사라지고 차분하고 정화(淨化)된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때는 의무중대(醫務中隊)에서 근무했었는데 전방 DMZ에서는 하루가 멀게 총기와 대인지뢰 사고로 부상병이 들어오고 여기저기에서 구타와 기합, 오발사고(誤發事故)로 인한 부상자, 구타를 못 이겨 자해(自害)하는 사병까지 있었다. 우리 중대에는 애인으로부터 절교 당한 동기(同期)가 탈영하는 바람에 애꿎은 우리만 닦달을 당하기도 했는데 붙잡혀온 그는 정신까지 조금 나가 정신과 치료까지 받기도 했다. 아마 지금의 민주군대로서는 상상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여하튼 성당에 나가 성가대 활동을 하였던 것이 그렇게 고단했던 군생활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버팀목 역할을 해주었던 것 같다. 장중(莊重)한 성가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지, 옆에는 예쁜(?) 읍내 아가씨들이 함께 입을 맞추고(?) 있지, 이 시간에는 더욱이 살벌한 기합도 없지, 하하, 속된 마음을 품어서 하나님께는 죄송하오나 저절로 마음에 평화!
J양은? 군복을 입은 혈기방장(血氣方壯)한 사나이에게 일호(一毫)의 음심(淫心)이 없을 수야 없었겠냐 마는 어느 날인가 그녀는 홀연 사라져 버렸다. (그녀와는 훗날 다시 만나게 되는 인연이 남아 있지만 여기에서는 그 뒷얘기는 생략할 수 밖에 없다)
어찌됐던 호덕(好德)에서 덕을 현대적으로 폭넓게 해석하여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나를 강하고 힘차고 풍부하게 만드는 것을 덕이라고 해놓고 그 덕을 즐기고 좋아함으로써 나를 더욱 풍족하게 만들고 그것을 혼자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다시 다른 이에게 베풀어 줄 수 있게 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오복 중에서도 가장 큰 복이 아닐까 싶은데 이를 다른 말로는 "나눔의 미학(美學)"이라나 뭐라나?
아, "호덕"을 "호떡"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방금 만든 호떡은 뜨거워 한번에 먹지 못하니 손에 쥐고 이리저리 살포시 돌리면서 호호 불며 조금씩 베어먹어야 하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힌다. 거기에 함께 호호하면서 서로 쳐다보며 호떡을 먹을 때 행복감이 따로 없다. 이것이야 말로 서민적(庶民的) 행복감이라는 것!
우리 친구들! 호덕(好德)하십시요. (양천서창에서 2008.1.10. 문상두 씀)
|
첫댓글 4반과 8반이 합동모임을 갖게된 연유는 무엇실꼬 잘된 일이지만 궁금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