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역이란 무엇인가
(살림지식총서 2008.10 이향 94쪽)
들어가는 말
이제는 번역이란는 것에 대해 무관심하던 사람들도 바야흐로 번역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할 만큼 우리는 번역에 노출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럼 번역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방식은 하나일 수 없다.
번역을 직업으로 삼는 번역사가 자신의 체험을 통하여 터득한 번역의 노하우를 정리, 소개하는 방식이라는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번역학자의 입장에서 번역이론을 설명할 수도 있으면, 보다 넓게는 번역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 왔는지를 통찰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번역이 담당해야 할 몫을 역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번역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시중에 나와 있는 출판 번역물들의 문제점과 오류를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번역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자신의 교육 경험을 통하여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번역”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나 실제로 번역현상의 극히 일부에 국한되는 대용을 다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 현실 속에서 번역은 지극히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나며 그 다양한 양상 역시 끝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종종 간과되곤 한다. 번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양성들이 모두 녹아 들어 있는 개념으로 번역을 바라보아야 한다.
본서는 번역의 이론 및 실제를 최대한 큰 그림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성급한 일반화와 개괄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한 이유는 “번역”을 특정 언어, 특정 분야의 전유물로만 가두어 두지 않는 것이야말로 번역 행위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이다.
번역이란 무엇인가: 번역 개념의 모호함을 이해하고, 번역 편견을 짚어보다
1 어디까지가 번역인가
번역의 종류를 크게 언어내적 번역, 언어간 번역, 기호간 번역 등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10쪽)
언어 내적 번역은 동일한 언어체계 내에서 같은 말을 다른 언어기호로 해석하는 것을 말하며, 언어 간 번역은 특정 언어로 쓰인 텍스트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호 간 번역은 언어기호를 비언어적 기호체계(예:악보, 수화)로 바꾸는 것이다.
2 서로 다른 언어 간의 번역
원문 (원천 텍스트 source text, st) 번역문(목표 텍스트 target text, tt)
원천 언어(source language, sl) 목표언어(target language, tl)
원천 문화(source culture, sc) 목표 문화(target culture, tc )
번역 행위가 하나의 언어로 쓰인 텍스트를 또 다른 언어로 쓰인 번역문으로 옮기는 작업이다(13-14쪽)
tl tc sl sc
st tt
번역 작업은 위 그림과 같이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실제로 번역 행위의 본질적 측면에 관해서 어떤 것도 설명해주지 못한다.
우리가 파악하고자 하는, 그리고 파악해야만 하는 것은 바로 원문에서 번역문으로 옮겨가는 사이, 위의 도식에서 화살표 하나로 표시된 대목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들이기 때문이다.
3 번역은 일이적(一义的)으로 정의 불가능하다
1970년대만 해도 번역은 언어학의 하위분야, 보다 구제적으로는 응용언어학의 하위분야로 인식되었다.
1):언어학을 토대로 번역에 접근한 학자들은 번역을 전적으로 언어적인 현상으로 간주하였으며 대체로 “원문과 등가의 텍스트를 생산해 내는 것”으로 번역 작업을 정의하였다.
형식적 등가: 원문과 번역문 간의 언어 형식의 일치를 의미하다
역동적 등가: 원문과 번역문이 독자로부터 동일한 효과를 유발해야 한다
화용적 등가; 의미적 등가
“등가”란 “등가로 추정되는”, 보다 구체적으로는 “번역사가 생각하기에 원문과 등가인 것으로 추정되는” 번역을 의미할 것이다. 번역은 등가로 정의되고 등가는 또한 번역 속에서만 정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을 “등가적인” 것으로 보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15쪽)
2):또 다른 정의 “번역이란 특정 시기에 특정 문화에 의해 번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번역이 무엇인지는 특정한 시기, 특정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이 “번역이라고 부르기로 합의한” 내용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시대나 문화를 넘어서서 번역을 그 자체로서 정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아포리아 aporia“주장 (소크라테스에서 유래한다 16쪽)
번역에 대한 기존의 정의가 번역 개념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즉, 번역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번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나 편견을 먼저 언급해보고자 한다. 다시 말해 번역과 자주 혼동되는 개념을 번역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을 번역을 정의하는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17쪽)
작문·독해는 우리가 연구하고자 하는 의미의 “번역”과 여러 가지 차원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목적 다르다: 전자의 경우 일반적으로 언어학습자의 언어능력을 제고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후자는 서로 다른 언어 간의 소통에 있다. 문장의 이해 단계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관건이다. (19쪽)
둘째:대상독자(adressee)가 다르다. 전자의 경우에는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이해하는 사람이 언어능력의 평가를 목적으로 결과물을 읽게 된다. 반면 번역의 경우 대부분 원문을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이다. 번역된 텍스트는 그 자체로서 독립적이고 완결성 있는 텍스트여야 한다.(19쪽 에스프레소 espresso머신이라는 예)
셋째: 맥락이 주어지는가 여부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번역은 맥락과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번역자는 항상 주어진 텍스트를 상황 속에 위치시키고 그 속에서 적절한 번역을 찾아 내어야 한다. 철학자 리쾨르(Ricoeur)가 말한 것처럼 번역은 단어에서 문장, 맥락, 문화,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문화, 맥락, 문장으로 좁혀가는 작업인 것이다.(21쪽)
번역과 작문·독해는 목적의 차이, 대상독자의 차이, 맥락의 유무 등 세 가지 요소를 통하여 설명될 수 있다.
4 문학번역만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분야의 번역이 번역전체를 대변하는 것으로 성급히 등식화된다면, 영상번역, 컴퓨터 소프트웨어 번역, 상용문서의 번역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번역에 관한 성찰은 자연히 누락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번역을 이해하고자 할 때 문학번역이나 출판번역의 영역을 포함하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그 외의 다양한 형태의 번역활동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23-24쪽)
5 한국어를 외국어로 옮기는 작업도 번역이다.
서구의 번역담론을 살펴보면 거의 전적으로 외국어에서 모국어 방향의 번역에 논의의 대상을 한정시키고 있다. 이러한 서구의 담론을 그대로 수입한 결과, 국내에서도 번역에 대한 논의의 대부분이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에만 할애되어 있다. 우리는 종종 서구의 주요 언어들과 상대적으로 소수어인 한국어를 같은 지위에 올려놓고, 외국어의 한국어 번역에만 집중한 채 그 반대로의 번역에 대한 논의를 외면하곤 한다.(25쪽)
6 번역은 언어치환 작업이 아니다
언어능력(linguistic competence)은 번역능력(translation competence)의 “필요조건”중 하나일뿐, 그 자체로서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번역은 단순히 언어적 작업이 아니다.(26쪽)
이제 철학, 인지과학, 전산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학제적 차원으로 번역에 대한 관심이 표명되고 있다.(26쪽)
무엇이 좋은 번역인가: 번역담론 속에서의 주요 개념
1 좋은 번역에 대한 상반된 입장들
“좋은”이라는 형용사는 본질적으로 주관적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존재한다. 따라서 “좋은 번역”이라는 평가 역시 개인, 사회, 언어권, 문화권 등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좋은 번역이 무엇인가에 대해 끝없이 논쟁하고 이해하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번역방법론의 문제, 즉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무엇이 좋은 번역인가라는 물음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고, 더 나아가 번역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며, 한 사회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느냐의 문제와도 직결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언어학자 사보리(Savory)는 좋은 번역이 갖추어야 할 요건을 아래와 같은 이율배반적 격률들로 정의하였다.(30쪽)
1) 번역은 원문의 단어를 드러내야 한다.
2) 번역은 원문의 사상을 드러내야 한다.
3) 번역은 원작처럼 읽어야 한다.
4) 번역은 번역처럼 읽어야 한다.
5) 번역은 원작의 문체를 반영해야 한다.
6) 번역은 번역의 문체를 가져야 한다.
7) 번역은 원작과 동시대의 것으로 읽어야 한다.
8) 번역은 번역과 동시대의 것으로 읽어야 한다.
9) 번역은 원문에 덧붙이거나 생략해도 상관없다.
10) 번역은 원문에 덧붙이거나 생략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11) 운문의 번역은 산문이어야 한다.
12) 운문의 번역은 운문이어야 한다.
이 격률들은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좋은 번역에 대한 양 극단의 논의들을 정리한 것이다. 1/3/5/7/10/12항은 모두 원문이 가지고 있는 형식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나머지 항들은 번역문이 잘 이해되고 잘 읽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31쪽)
흥미로운 것은 이렇듯 대비쌍으로 제시되는 개념들은 종종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즉 번역가는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가독적인 번역을 할 수는 없으며 늘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나머지 하나를 희생시킬 수 밖에 없는 딜레마(dilemma)에 처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중 가장 함축적으로 드러내주는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아름다우나 부정한 여인”이다.(32쪽)
2 아름다우나 부정한 여인
이런 표현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17세기 프랑스의 대학자 메나쥐(Gilles Menage) 이다. 여기서 같모습이 아름답다 함은 가독성이 뛰어나고 매끄러워서 번역한 티가 나지 않는 번역을 말하며, 부정하다 함은 원문에 대해 충실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후 이 표현은 가독적이고 매끄러우나 원문에 충실하지 못한 번역을 일컫는 말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도 역시 충실성과 가독성이라는 두 가치는 공존하기 어려운 것으로 암시된다. 겉모습이 아름다우면 부정하고, 충실하면 겉모습이 아름답지 못하고 둘 중 하나일 것이다.(32-33쪽)
3 독자를 저자에게 데려가거나 저자를 독자에게 데려가거나
번역가의 선택 가능성: 독자를 저자에게 데리고 간다거나 저자를 독자에게 데리고 간다.
위 표현은 독일 철학자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가 이분법으로 “아름다우나 부정한 미녀”만큼이나 오랫동안 번역사의 딜레마를 표현하는 멍언으로 기억되어 오고 있다.
독자를 저자에게 데리고 간다 함은 독자가 읽기에 가독성이 떨어지더라도 독자로 하여금 원문에 다가가는 수고를 하게끔 하는 번역, 즉 원문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33쪽)
저자를 독자에게 데리고 간다 함은 원문에 대해 충실하지 않더라도 최대한 가독적인 방식으로,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33쪽)
그런데 왜 슐라이머나허는 “독자를 저자에게 데려가는 것”이 더 좋은 번역이라고 말했을까? 저자를 독자에게 데리고 가는 , “아름아우나 부정한” 번역은 어째서 위험한 걸까?(34쪽)
4 종교경전의 번역과정에서 드러난 번역의 딜레마
원문의 운율과 리듬, 문체 등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내용의 전달 만큼이나 중요한 문학번역의 영역에서는 당연히 내용이냐 형식이냐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런한 딜레마가 모든 종류의 번역에서 동일한 양상으로 발생하는 것일까? 성경의 번역을 예로 들어보고자 한다.
성격번역을 토대로 번역이론을 구축한 나이다(Eugene nida)의 역동적 등가(dynamic equivalence) 개념의 핵심 주장은 원문의 형식을 존중할 것이 아니라 원문의 독자가 느낀 것과 동일한 것을 번역문의 독자가 느낄 수 있도록 번역해야 한다
5 내용전달을 중시하는 번역
번역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며, 어떠한 상황에서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문학 텍스트가 아닌 실무적· 상업적 텍스트의 경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요소들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서는 번역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없게 된다.(39쪽)
예: 안내방송(시간요소) 상품광고 (현지 습관)
6 원문의 고유함을 전달하는 번역
번역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번역사의 번역전략을 결정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속담을 번역할 경우, 번역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 원문의 형식을 최대한 충실하게 번역할 것인지, 혹은 전체적인 내용 전달 위주로 번역할 것인지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42쪽)
7 좋은(Good) 번역에서 적절한(Adequate) 번역으로
오늘날의 번역 평가를 어떻게 볼까요?
첫째, 국내의 독자들이 그만큼 번역의 품질에 대해 까다로워졌음을 주장할 수 없다. (42)
둘째, 번역의 품질문제가 여전히 화두가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 좋은 번역인가에 대한 판단이 여전히 지극히 자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번역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이 주관적이고 자의적이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번역이란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니 않을 수도 없다.(42)
셋째, 품질기준에 대한 보다 유연한 시각이 필요하다. 비록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어도,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번역이라면, 그것은 제 기근을 수행하기에 ‘충분한’ 번역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43)
넷째, 현재 번역사들의 작업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결과물인 번역물만을 비판하는 것은 공정치 못할 뿐 아니라, 효율적이지도 못하다. 번역의 중요성을 논하면서, 그 작업을 수행하는 번역사들의 현실적 업무조건에는 야박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44)
좋은 번역은 이처럼 다양한 변수들을 적절히 충족시키며, 주어진 상황에서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번역이다. 따라서 가독성과 충실성 개념을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무엇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다.(44)
번역능력이란 무엇인가: 번역사
1 번역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결과물로서의 번역텍스트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구체적 상황 속에서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번역에 임하는 주체인 번역사를 이해하는 것이다.(46)
번역사를 생각해보려면 먼저 해결되어야 하는 물음은 바로 번역사를 번역사이게 만드는 능력, 즉 번역 능력이 무엇인가의 문제이다.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며 습득한 것이며 답이 여러 가지이고 통일치 않다.(47)
2 기계번역(machine translation)과 번역능력
기계번역은 자동번역(automatic translation)과 혼동하는 경우도 많은데 엄밀한 의미의 자동번역이란 일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번역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말하면 이는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컴퓨터를 이용하여 이루어지는 오늘날의 번역은 ‘기계번역’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47)
기계번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시스템(expert system)을 이해해야 한다. 전문가시스템은 단순자료처리만을 하는 기존 컴퓨터와는 달리 지식을 처리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말한다.지식을 처리한다 함은 입력된 지식을 토대로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기계번역이란 결국 번역을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핵심이다. 다시 말해 ‘번역능력’을 가진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 바로 기계번역 프로젝트의 핵심인 것이다.(48)
기계번역의 발전사: 제1세대 기계번역은 주로 단어 대 단어 치환의 간단한 번역을 수행하였다. 제2세대에서는 구문분석이,제3세대에서는 의미분석이 이루어지면서 치환의 단위는 단어에서 문장으로 확대되었다.(‘맥락’의 문제 남아있다.) 제4세대에서는 어떤 특정한 언어에도 의존하지 않는 중간언어 방식이 선택되어 한 언어로부터 여러 언어로의 기계번역 역시 가능해졌다. 즉 어떤 언어를 입력하든 그 언어가 제3의 매개적 언어로 전환이 되어 무수히 많은 다른 언어로 번역이 가능해진 것이다.(49)
그러나 눈부신 기술발전에도 불구하고 현재 단계에서의 기계번역은 인간의 번역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를 생산해 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인간의 ‘번역능력’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주고 있다.기계에는 없고 인간에게는 있는 번역능력의 구성요소는 무엇인가? 현재로서는 번역능력의 구성요소에 대한 학계의 다양한 논의들 속에서 그 답변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52)
3 번역능력의 구성요소
오랫동안 번역능력은 언어능력과 동일시되어 왔다. 다시 말해 언어만 잘하면 누구든 번역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되어 왔다. 외국어 실력이 뛰어나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번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언어적인 능력 이외에 번역사가 갖추어야 할 플러스알피는 무엇인가? 많은 학자들이 번역능력(translation competence)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해 고찰하였고 나름대로의 답변을 제시하였다. 예: ‘이중언어 사용자들의 의례 가지고 있는 신비하고 설명 불가해한 능력’, 문법적 능력, 통사적 능력.
필자는 번역능력의 설명에 새로이 추가된 요소가 바로 번역사의 ‘전략적 선택’의 능력인 거라고 한다.(55)
4 번역능력은 선택 능력이다.
오늘날에는 번역의 과정을 일련의 의사결정과정(decision making process)으로 설명한다. 번역사가 내려야 하는 결정의 범주는 언어적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55)
논리적 사고를 거쳐 최종적 ‘결정’을 내리는 것은 온전히 번역사의 몫이며, 이러한 결정은 ‘언어적’차원을 전적으로 넘어서는 것이다.(57)
사람이 기계보다 번역을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능력, 즉 ‘전략적 선택 능력’ 때문이다. 전략적 선택 능력은 한마디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를 자체적인 성찰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57)
호주 출신의 번역학자 핌(Pym)은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번역사는 첫째, 하나의 원문을 번역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을 생산해 낼 수 있어야 하며, 둘째 그중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번역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58)
5 번역능력은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가
언어 능력은 번역능력을 구성하는 필요 조건일 뿐, 충분 조건일 수 없다. 여기서 번역 능력의 향상 방법을 알아보고자 하다.(59)
캐나다, 벨기에 등 다언어 국가들의 경우 전문번역교육은 학사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단일언어 국가들의 경우,보통 전문번역사를 양성하기 위한 번역교육은 석사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반적 의미에서의 언어 능력과 ‘번역에 필요한 언어 능력’은 별개이기 때문에 번역 교육기관에서 언어 교육을 전적으로 배제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서 전문 번역사 양성 기관에서 사용되는 번역능력 향상 연습 방법을 며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실용 번역을 위한 연습임을 밝혀둔다.)
1)적극적 읽기(active reading):
번역을 전제로 하고 책을 읽는 번역사는 텍스트의 큰 흐름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전체의 흐름을 연두에 두고 읽어나가는 것이다.(60)
2)평행(parallel texts)텍스트를 활용한 표현력 향상:
평행텍스트란 ‘목표언어로 쓰인 동일한 주제를 다루는 텍스트’를 말한다. 평행텍스트는 번역문이 아닌 목표언어권의 저자가 쓴 정통텍스트(authentic text)라야 한다.(64)
필요에 따라 최대한 다양한 어역(register)을 구사할 수 있으려면, 평소에도 다양한 평행텍스트들을 확보하여 읽고 비교해 가면서 어휘와 표현을 늘려 가야 한다. (65)
3)시역(sight translation 視譯):
시역이란 원천언어로 쓰인 텍스트를 눈으로 읽어 가면서 목표언어로 구역하는 것이다. (65)
4)번역물 감수: 번역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훈련으로서의 교육적 감수(pedagogic revision)를 한다.(66)
번역의 실제: 번역 유형별로의 예
1 문학 번역
혹자는 번역의 영역을 크게 문학번역과 비문학번역으로 대별하기도 한다.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번역’이라는 것을 무조건 문학번역과 동일시할 만큼, 문학번역은 번역의 영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학문으로서의 번역담론(즉 번역학, translation studies)에서도 마찬가지여서 근대적 의미의 번역학은 상당부분을 문학번역을 둘러싼 역사적 논의들에 빚지고 있다.
문학번역은 ‘텍스트의 내용전달보다 문학적, 심미적 측면의 전달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번역’으로 푹넓게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어디까지를 문학번역이라고 정의할지 역시 상당히 애매한 문제이다.(68)
‘고전번역’은 주로 한문으로 된 고전들을 국역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이런 종류의 텍스트에서는 원저자의 문체, 분위기, 문장의 길이, 호흡 등 작품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들을 제대로 전달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로 문학작품을 번역할 때, 늘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어떤 요소들은 아예 ‘번역이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69)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적으로 언뜻 번역 불가능해 보이는 이러한 문학작품은 고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세기 동안 끊임없이 번역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재번역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정보성과 메시지 전달 위주의 실용 번역의 영역에서는 매우 드문 일로 이는 문학번역이 단순한 메시지 전달이 아닌 작품의 끝없는 다시 읽기의 과정임을 드러낸다. 문학번역의 경우는 다른 번역과는 달리, 문학적 소양과 필력이 그 어느 분야에서보다 더 중요하다. 문학번역의 영역에서 유독 ‘번역 작가’라는 말이 사용되는 이유는 번역자에게 창작에 비견될 만한 담금질과 창의력을 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번역의 기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해당 주제 혹은 해당 작가에 대한 언어외적 지식, 그리고 번역에 필요한 노하우도 갖추어야 한다.(70)
2 출판번역
문학번역은 ‘출판번역’의 영역에 포함되는데, ‘출판번역’의 대상은 문학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실용서, 만화, 이론서, 교양서 등 무한히 다양하다. 한국의 번역도서 양은 엄청 많다. 오늘날 국내의 번역담론이 왜 출판번역시장에서의 오역문제에 집중되고 있는지를 일부 설명해주고 있다.
출판번역의 경우 번역의 과정에서 다른 종류의 번역과는 다른 단계가 추가되는데 그것이 바로 ‘편집’단계이다. 편집자들의 고충도 적지 않다.(70)
출판번역을 하는 전문번역가들이 엄청난 시간적 압박 속에서 작업하고 있다. 현재 국내 번역시장의 경우, 번역서가 지나치게 영어권의 원서에 치중되어 있는 점, 낮은 번역료, 번역사의 전문성 결여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71)
1996년 한국문학의 번역과 해외출판을 지원하는 한국문학번역금고가 창설되고, 2001면 한국문학번역원으로 확대 개편되면서 한국문학의 외국어 번역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72)
3 실용번역(전문번역)
실용번역 혹은 전문번역이란 ‘문학적 심리적 텍스트가 아닌 구체적 기능이나 목적을 가진 텍스트의 번역’을 말한다. (예:증명서 번역, 계약서, 입찰서류, 법률문서, 컴퓨터 프로그램, 기업정관 등). 이러한 번역들은 대부분 번역관련 석사학위 이상을 소지한 전문번역사들에 의해 수행된다. 언어별로 차이는 있겠으나 특정 전문분야로 특화하여 전문성을 높이는 번역사들도 있다. 번역수요가 많은 기업에서는 인하우스 번역사(in house translator)를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73)
4 영상번역
영상번역이란 비디오, 영화를 포함한 다양한 영상물을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예:외국 영화, 홍보영상물,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취재자료 등) (74)
영상번역은 크게 번역대상에 다라 비디오번역, 영화번역, TV영화번역, 기타 영상물 등으로 구분되며, 상황에 따라 자막번역과 더빙번역 중 선택을 하게 된다.(75)
자막작업: 비디오 자막작업과 영화자막이 다소 차이가 있다. 비디오 자막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가로로 16자씩 2줄, 모두 32자에 맞추어 번역을 하고, 자막의 위치는 스크린 아래쪽이다.
반면 영화번역의 경우는 과거 극장 좌석의 경사도가 낮았던 시절에는 스크린 오른쪽 7자씩 3줄(21자), 혹은 8자씩 2줄(16자)이 허용되었다. 오늘날은 극장이 멀티플렉스화되면서 경사도가 높아지고 관객들의 가시권이 확보되면서 스크린 아래쪽에 12자씩 2줄(24자)로 자막을 넣는 것이 일반화되었다(75)
더빙번역의 경우는 폭넓은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TV영화 번역에 많이 사용된다. 더빙번역은 자막번역과는 또 다른 제약 속에서 작업해야 하는데, 바로 번역된 대사가 성우의 더빙을 통하여 내보내지기 때문에 외국인의 입모양에 대사를 맞추어야 한다(lip synchronizing)는 제약이 그것이다.이런 특징으로 인해 TV영화번역은 영상번역사가 하는 일 중 가장 어려운 일에 속한다. (76)
5 로컬라이제이션 (Localization)--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
로컬라이제이션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특정 지역의 문화, 법률, 언어 및 기술 요구 사항에 맞게 개정하는 작업을 말한다. 외국의 기업들이 만들어 낸 소프트웨어, 제품 설명서, 마케팅 자료, 교육 콘텐츠 및 웹 사이드를 현지화하여 세계 각국의 고객들에게 일관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로컬라이제이션이다.
로컬라이제이션의 구성 단계
1)현지 언어와 상황에 적합한 요구 사항을 찾기 위한 목표 시장을 점검한다
2) 현지에 맞게 조정할 부분을 결정하기 위해 제품을 분석한다.
3)텍스트 및 기타 언어적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는 자료를 추출한다.
4)추출한 요소를 번역하고 수정한다.
5)새로운 해외 시장 콘텐츠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핵심 제품을 재조정한다.
6) 새로운 해외 시장 버전이 국내 제품의 성능 기준에 맞는지를 테스트한다.(77)
6 다양한 언어서비스 제공자로서의 번역가
실제로 현장에서 번역사들이 수행하는 작업은 이처럼 명확하게 잘 구획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번역가가 문학번역, 실용번역, 영상번역 등 다양한 종류의 번역들을 동시에 소화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번역의 범주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실무 현장에서 번역사가 수행해야 하는 다양한 업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요약 (80)
2) 감수(80)
3) 코디네이션(82)
4) 번역품질평가(82)
5) 북 리뷰(book review, 도서검토문)(83)
6) 포스트에디팅(post-editing) (85)
오늘날의 번역사는 이제 언어서비스의 제공자(language service provider)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