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외로움을 달래는 저마다의 방법이 있다. 애꿎은 소주병에 푸념을 털어놓거나, 바람 부는 새벽녘 담배 한 모금 내뱉다 떠나고픈 욕망에 휩싸이기도 한다.
서해로 떠나는 포구 여행은 ‘고독 모드’를 즐기는 추남(秋男), 추녀(秋女)들에게 적격이다. 추억의 소래, 월곶 포구는 주말이면 인파가 넘쳐나고 제부도는 어느덧 낯익은 유원지로 변했다. 수도권에서 그리 멀지 않은 화성의 외딴 포구는 그래서, 가을을 음미하기에 좋다.
서신면 삼거리에서 제부도를 외면하고 방향을 틀면 궁평 포구와 맞닿는다. “요즘은 예년 같지 않아 꽃게가 흉년이네요.” 궁평 포구에서 만난 꽁지머리 선장의 얼굴에는 근심이 한 가득이다. 가을이면 대하, 꽃게가 그물 가득 잡혀야 하는데 올해 역시 형편이 좋지 않다.
궁평 포구는 궁평에서 매향까지 우정방조제가 들어서면서 비대하게 커졌다. 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인근 왕모대, 매바위 포구의 고깃배들이 궁평 쪽에 새롭게 닻을 내렸다. “예전에는 고깃배가 10척도 안 되는 작은 선창이었는데 요즘은 수십 척의 배가 드나들고 있죠.”
포구를 제대로 음미하려면 오전 10시쯤 경매가 시작될 때 선착장을 찾아야 한다. 경매 때는 소라, 돌게 등이 쏟아지는데 즉석에서 구입해 맛볼 수 있다. 물이 빠지면 해송 숲이 우거진 송림 앞 갯벌에서 바지락 캐기 체험이 가능하다. 아직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은 뒹굴고 소리치는 젊은 청춘을 넉넉하게 끌어안는다.
궁평 포구 인근, 여름 한철 붐비던 제부도 역시 가을에 찾으면 운치 있다. 썰물 때 제부도와 이어져 또 다른 ‘모세의 기적’을 연출하는 매바위 일원은 한때 자연산 굴의 보고이기도 했다. 제부도 가는 길의 바지락 칼국수와 조개구이는 ‘3040’ 세대들에게 추억 가득한 먹을거리이기도 하다. 화성의 바닷가 마을 어디에서나 맛난 바지락 칼국수를 맛볼 수 있지만 송산 어섬 방면으로 향하다 만나는 사강리 일대의 횟집과 칼국수 집들이 푸짐한 편이다.
이왕 어섬까지 향했으면 초경량 항공기 체험을 놓치지 말자. 가을 하늘과 바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액티비티가 바로 초경량 항공기다. 짜릿한 스릴이 온몸에 퍼지고 발 아래 펼쳐진 어섬과 시화호의 정경을 내려다보면 고독의 절반 정도는 날릴 수 있다. 드라마 ‘다모’에서 숨막히는 추격전이 펼쳐지기도 했던 어섬 일원에는 가을 갈대가 낮게 깔려 있다.
다시 핸들을 돌려 우정방조제 방향으로 향한다. 본격적으로 외딴 포구의 흔적들을 음미해 본다. 우정방조제가 삼킨 왕모대, 매바위, 매향리 포구는 옛 정취만 아련하게 남았다. 궁평 포구 초입의 왕모대 포구에는 왕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성을 쌓았다는 전설과 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린 부잣집이 있었다는 사연이 전해 내려온다. 해군기지가 영종도로 옮겨가면서 ‘구영종’이라고도 불리는 왕모대 포구에는 최근 윈드서핑을 즐기려는 마니아들이 하나 둘 찾고 있다.

장덕리에 위치한 매바위 포구는 개펄은 모래가 덮여 사막지형으로 변했고 방조제 남쪽에 매달린 매향리 포구는 우정방조제로 선착장을 옮긴 뒤 그 흔적만 유지하고 있다. 옛 포구의 물길이 막힌 뒤에는 어시장이 들어선 선창 포구만이 외지인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리고 해질녘. 일몰을 보기 위해 다시 찾은 궁평 포구에는 청명한 가을이 서해바다와 또렷하게 입맞춤을 한다. 포구 앞에 늘어선 배들 사이로 비껴 내리는 태양의 침몰은 숨막히는 장면이다. 궁평낙조를 ‘화성 8경’ 중 최고의 극치로 꼽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풍족한 화성 앞바다에는 민어가 잡히고 망둥어도 팔뚝만한 것들이 올라왔는데….”
노을에 비낀 한 어부의 푸념처럼 화성의 포구들은 세월 속에서 그 색이 많이 바래기는 했다. 깊어가는 가을, ‘고독 모드’를 즐기려는 이방인들의 가슴을 그래서 더욱 애잔하게 붙들어 놓는다.
▲ 화성연계 체험여행 시화호가 맞닿은 송산면 고정리의 공룡 화성지대는 1억 년 전 백악기 공룡의 화석이 발견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이 일대는 주라기 마을로도 불리며 원래 어촌이었다가 시화호의 건설로 내륙에 속하게 됐다. 이곳 마을에서는 시화호 생태체험, 농촌체험(hsjurassic.invil.org)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39번 국도를 타고 발안으로 향하다 독정리에 접어들면 이색적인 타조사파리(031-351-8528) 체험도 가능하다. 체험 질주 1만원. 화성은 온천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인근 발안 식염온천(031-351-9700)은 800m 땅속에서 끌어올리는 물이 바닷물처럼 짜다. 노천탕도 갖추고 있으며 입장료는 6,000원.
▲ 가는 길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비봉 나들목에서 빠져나온 뒤 306번 지방도로 우회전. 포도산지인 송산을 지나 309번 도로에 진입한 뒤 서신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궁평 포구에 닿는다. 매바위 포구는 서신면에서 남양방면으로 317번 도로를 탄다. 사강리와 어섬은 남양에서 서쪽인 송산방향으로 향한다. 문의: 화성시청 문화관관광과(031-369-2093), 제부도 바닷길 통행시간(jebumose.invil.org), 궁평리 어촌계(032-357-9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