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손꼽아 기다리던 안동문화답사팀의 6번째 답사일입니다.
일 욕심과 칠칠치 못한 관계로 복주여중을 향해 달려가는데 오늘도 지각입니다.
멀리 원주에 있는 skywriter-01영재님께서 오셨고, 가을비님은 가족과 함께 참석하였습니다. 오늘은 사진찍기에 햇빛이 약하군요.
오늘의 답사 장소는 북후면 일대입니다. 작산정사 및 가창재사(경북 안동시 북후면 물한리), 옥산사 마애여래좌상(안동시 북후면 장기리(벽절)),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소재지 : 안동시 북후면 석탑리 861)을 향하여 회원 차량 4대에 나누어 타고서 출발합니다. 파랑하늘님의 차가 선두에 섰는데, 깜박하여 길을 잘못 들어 서부시장 통로로 약간 우회하였습니다. 뒤따르는 일행들이 의아해 하면서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시 한 수가 생각납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 눈길을 걸어갈때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 반듯하게 걸어가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 금일 내발자국이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 뒤에오는이에 이정표가 되노라.
서산대사의 시로 백범 김구선생님의 좌우명이라 하네요.
돌아서 가도 답사는 마냥 즐겁고, 실수를 통해 정도 더 들어갑니다.
먼저 도착한 곳이 작산정사(鵲山精舍)와 가창재사(可倉齋舍)입니다.
작산정사(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물한리.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21호)
이 건물은 송안군 이자수(松安君 李子修)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480년(成宗 11)에 퇴계 선생의 조부 3형제 분이 창건한 정사이다. 정사에는 앞면에 강당을 두고, 뒷면에 송안군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을 세웠다. 남향집으로 외삼문, 내삼문 및 사당이 남북으로 배치되어 있고 북쪽으로 갈수록 경사가 심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사당 동쪽에는 전사청이 있으며 주위에는 막돌담장이 지형을 따라 경사지게 둘러져 있다.
사당은 건평 9.9평의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한식기와 맞배지붕으로 전면 반칸은 툇간으로 기단 바닥을 사용하며 전면은 겹처마이고 후면은 홑처마로 되어 있다. 전사청은 건평 2.62평의 정면 2칸, 측면 1칸의 한식기와 맞배지붕으로 막돌기단 위 각기둥을 사용한 납도리 3량집으로 홑처마이다.
이 건물은 송안군 이자수 공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성종 11년에 퇴계선생의 조부 3형제 분이 창건한 것으로 숙종 41년에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정사에는 앞면에는 강당을 두고 그 뒤편에는 송안군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을 세웠다. 전형적인 이 지방 재사건축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사당에는 송안군 이자수(松安君 李子修) : 송안군의 위패 (主享)와 진사 기암공(諱 完) 참봉 송계공(諱 享男), 현감 송윤공(諱 庭檜)3분의 위패를(祔享)모시고 있다.
정사(精舍)의 사전적 해석은 “고명한 유사(儒士)의 강학소로서 학문을 강의하고 정신을 수양하던 곳”이라 합니다. 이자수(李子修)는 고려 공민왕 홍건적의 난 때 공을 세워 안사공신(安社功臣)에 책록되어 송안군(松安君)에 봉해졌으며 판공시사에 역임하였다 합니다. 우선 속세를 벗어난 듯한 深處에 주변의 소나무가 울창하고 별천지같은 느낌이 듭니다. 최총무는 이런 곳에 고풍스런 집 한 채 갖고 있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회원 들과 모여서 이야기 꽃도 피우고... 답사 때마다 하시는 말씀으로 진정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가창재사에는 관리인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마침 어제가 향사여서 재사 앞 누각 화수루(華樹樓)에서 조촐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회장님 덕입니다.
송안군께서는 무관이어서 전시에 북을 많이 사용하였다 합니다. 그 때 사용하던 북인데, 가죽은 삭아서 없어지고, 지금은 이런 모습으로 세월의 두께를 느끼게 해줍니다.
작산정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단체사진 한 번 찍었습니다.
발길을 돌려 안동시 북후면 장기리에 있는 옥산사로 향했습니다. 뒤 따라오는 차량들을 위해 서행합니다.
벽계서원에 도착하여 도보로 옥산사를 향해 이동합니다. 일부는 2대의 차량으로 먼저 갑니다.
먼저 간 일행의 차량이 도로 보수공사한 것을 모르고 콘크리트 공사 현장을 훼손하여 파랑하늘님과 회장님이 임시 보수 작업을 하셨습니다. 마을 주민이 언짢은 듯 뒤에서 지켜보다가 도로 보수 관계로 레미콘 차량이 드나들고 옥산사 가는 길이 막혔다 하여 되돌아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래도 상큼한 가을 하늘처럼 즐겁기만 하고 중추가절이라 논의 벼는 잘 여물어 갑니다.
아쉬운 마음에 옥산사 마애여래좌상의 자료를 적어봅니다.
옥산사 마애여래좌상(소재지 : 안동시 북후면 장기리(벽절). 경북도유형문화재 181호)
이 불상은 자연 암벽에 돋을새김 한 것으로 대좌의 하단은 5판, 상단은 7판으로 된 이중연화대좌에 우견편단의 법의를 갖추고 앞가슴 부분에는 군의의 띠맺음을 갖추고 있다. 전체의 조각 수법은 통일신라시대 양식이다.
머리부분은 평면적으로 묘사하였지만, 얼굴과의 구분선이 명확하다. 얼굴은 미소를 띤 자비스런 상이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올리고, 법의 속에서 굽혀 올린 왼손은 아랫배 부분에서 작은 약합(藥盒)을 받쳐 들고 있다. 이로써 이 불상이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다. 마애불 맞은편 언덕 위에는 안동부 읍지 《영가지(永嘉誌)》(1608)에서 보이는 월천전탑(月川塼塔)이라는 전탑지가 남아 있어 기록에 보이는 옥산사와 관계가 있는 불상으로 추측된다.
불상 규모는 총높이 약 2m, 불신 높이는 1.3m이며 형태는 전체의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특이한 것은 좌상의 약사여래를 중심으로 협시불(脇侍佛)을 갖춘 삼존상(三尊像)을 모셨던 것으로 추측된다는 점이다. 본존의 좌우에 협시불을 다른 돌[別石]로 세웠던 듯 암벽의 오른쪽에 협시불의 무릎 아랫부분을 새겼던 흔적이 남아 있다. 그것에서는 법의의 옷자락이 대좌에까지 덮여 있는 형식을 알아볼 수 있는데, 양발은 약간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예는 이 지방에서 유일한 것 중의 하나이다
학가산 무릎을 타고 넘어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을 향해 달려갑니다.
적석탑에 도착해보니 주차 시설도 없고 뭐 좀 방치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석탑이 외로울까봐 석탑 옆에 지키고 서 있습니다.
방단형 적석탑(소재지 : 안동시 북후면 석탑리.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43호)
이 적석탑은 신라시대 이후 일반화되어 있는 유형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런 종류는 의성 안평면의 방단식 석탑니아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전 구형왈릉 적석유구(傳 九衡王陵 積石遺構)에서 볼 수 있다. 이 곳 북후면 방단식 석탑은 자체만으로 축조연대나 성격을 분명히 알 수 없으나 의성과 산청의 적석 유구와 비교하면 고려시대 또는 조선 초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측된다. 석탑사(石塔寺) 밖의 석탑은 비교적 넓은 퇴적 평지의 경사지에 있어 석탑과 관련되는 절터나 축조 연대를 입증할 만한 기와 등의 자료가 확인되지 않는다. 이 석탑은 부분적으로 훼손되어 있기는 하나 대체로 외형이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의성 안평의 방단식 석탑이나 경남 산청의 구형왕릉과 비슷한데, 사실 석탑인지 무덤(塚)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방 14m 남짓한 크기입니다. 이 탑의 조성에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무덤이라 하더라도 이 지역의 상당한 권력가 이었을 텐데, 전해오는 이야기는 없고 돌만 어울려 있습니다. 우리네 삶이 이러할진데, 눈앞의 작은 일에만 몰두하여 일희일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옆에 있는 석탑사에 가 보았는데 대웅전은 없고 원통전과 범종각과 산신각만 있는 조촐한 절입니다. 어쩌면 화려하게 꾸며놓은 큰 절보다 소박하고 나름대로 운치가 있는 듯합니다.
석탑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전설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나중에 중수하였다고 합니다.
사실 오늘의 답사는 석탑리 일대의 메밀밭과 신전 막걸리 맛을 보는 게 중요한 일정입니다.
메밀은 때가 늦어서 꽃이 다 졌고, 총무님이 신전리 양조장에서 사 온 막걸리와 도토리묵 무침으로 세 아름이나 되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참을 먹습니다.
답사도 하고 세상사는 이야기 나누는 재미 또한 쏠쏠합니다. 직업이 다르고, 나이도 층이 다양하고 정치적인 색깔 또한 여럿이어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파랑하늘님이 수상 턱을 내셔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하고, ‘촌가(칼국수집)’로 향합니다. 다시 한 번 축하와 감사를 드립니다.
국수집 손님방에 걸린 서예 작품입니다.
얼음덮인 연못은 옥거울을 열어놓은 것 같고 정원 눈 덮인 나무에 바람 부니 은꽃이 휘날리듯(銀꽃 銀 거울 山과 물 모두가 새하얀데 그 위에 둥그런 달 내 집을 환희 비추네)
내용은 고전적인데 서법은 옛법을 뛰쳐나온 듯 하군요. 안동은 전주와 같이 식당엘 가도 다방엘 가도 일반 가정의 거실에서도 서예 작품, 동양화, 사군자 한 점 쯤은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상 허접한 답사기...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생각 가는대로 써 보았습니다.
회원님들 모두에게 매일 새롭고 좋은 날 되시기를...
첫댓글 이런 멋진 글을 허접이라고 하신다면, 우린 어떻게 용기내어 적나요? ㅠㅠ 어제의 일이 환히 보입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정말 글쓰기는 자신이 없습니다. 자연과학도여서... 다른 분들도 답사기 좀 올리면 좋겠습니다. (희망사항)
솔직히 전 간략보고도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서... ㅠㅠ 많은 분들이 답사기 올리면 좋을 건데... 선생님, 글은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