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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가마솥엔 돼지국밥이 설설 끓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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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경 |
| 돼지 죽는소리 들린다. 숨을 꼴깍거리며 마지막 내지르는 괴성에 온 동리가 떠나갈 듯 소란스럽다. "꽥, 꽥…" 목청 찢어지는 소리 쩌렁쩌렁 산골짝을 흔들어놓는다.
명절이 다가오면 돼지 잡을 날을 기다린다. 댐 주변에서 돼지 사육은 금물이다. 그래서 사슴은 길러도 돼지 키우는 집은 없다. 양돈장에서 얼떨결에 끌려온 돼지를 구경하려고 사람들이 몰려들면 지레 겁을 잔뜩 먹고 콧물을 흘리며 똥을 지려댄다.
마당가에서는 연기가 뽀얗게 솟아오르고 가마솥 물이 설설 끓어오른다. 숫돌을 달가닥거리며 칼 가는 소리에 돼지 숨소리 더욱 커지고, 눈을 멀뚱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누구하나 도와 줄 사람은 없다.
돼지 양쪽 다리를 잡고 벌러덩 자빠뜨려 놓으면 돼지잡기는 시작된다. 굵은 통 철사 줄로 주둥이와 네 다리를 동여 놓는다. 그것도 모자라 옴쭉달싹을 못하도록 긴 작대기 서까래로 흰 배통을 눌러댄다. 그러면 돼지는 죽겠다 또 한바탕 비명을 지르며 눈알을 튀기고 눈물을 툭툭 흘려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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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 내장 속의 신비를 구경하시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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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경 |
| 급소를 찔러 편하게 죽을 수 있도록 목을 따는 일은 아무나 하는 기술이 아니다. 평생 목을 땄으나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명줄을 단숨에 끊어놓는 작업은 작은 박씨 몫이다. 긴 한숨 소리 뒤로 쿨쿨 선지피가 쏟아져 나온다. 함지를 채워 가는 선홍색 피 덩이, 보는 사람도 힘이 들고 안쓰러워 죽을 판이다.
곧 전쟁이 끝난 듯 사위가 조용하고 잠잠해진다. 저마다 식칼을 하나씩 들고 돼지 몸통을 이리 굴리고 저리 돌리며 뜨거운 물을 슬슬 뿌려 털을 삭삭 깎아내린다. 가마솥을 빙빙 돌며 끓어오르는 물소리, 사각거리는 칼자국에 털을 뽑아내는 모습들이 사뭇 진지해 보인다.
털 뽑기가 끝나면 시퍼런 칼날을 번뜩이며 돼지 부위를 하나씩 도려내기 시작한다. 배통을 양쪽으로 죽 갈라 내장들을 꺼내낸다. 쓸개와 배설통이 터지지 않도록 조심, 열 간 지라 소장 대장 콩팥 등을 잘도 꺼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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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드나무 가지를 넣어 돼지 내장의 똥을 뒤집고 있다. 고도의 기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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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경 |
| 김이 솟아오르는 새빨간 간덩이, 어린 코끼리 귀처럼 반들거린다. 너도 한 점, 나도 한 점, 지나가던 집배원과 부식장사까지 입술이 빨갛다. 사홉들이 소주가 금방 바닥이 난다.
돼지고기 맛의 진수는 지금부터다. 벌건 불덩이들을 화로에 담아 솥뚜껑을 엎어놓고 콩팥 지라 삼겹살을 지글지글 구워낸다. 갈비살을 올려놓으면 저마다 자기 것을 맡아 점을 찍어놓고 침을 발라 놓는다. 술병은 점점 더 춤을 추고 또 동네가 시끌벅적해온다. 고기 냄새와 사람 사는 소리가 어울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간다.
언제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돼지잡기에 제일 지저분한 작업이 내장 손질이다. 이는 박씨 몫이다. 버들가지를 창자 속에 들이밀고 뒤집어 똥을 털어 내고 닦아낸다. 아침에 먹다 아직 소화를 못하고 남은 사료 찌꺼기가 비적비적 터져 나온다. 이번에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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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잿물을 먹어도 끄떡 없다는 돼지 내장...사람도 한 달에 한 번은 내장 국밥을 먹어줘야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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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경 |
| 똥을 닦아내는 데는 왕소금이 최고다. 함지박에다 내장들을 쏟아 손으로 훑다가 부걱부걱 빨아낸다. 누렇고 시커먼 똥물이 말갛게 빠질 때까지 주물럭댄다.
토종 가마솥에 물 끓는 소리가 거세지면 내장을 노끈으로 묶어 한참을 더 달여낸다. 나무꼬챙이로 내장들을 건져내 썰어놓으면 젓가락들이 또 바빠진다. 내장이 내장 속으로 들어가 내장 청소를 한다. 양잿물을 마셔도 끄떡없다는 돼지 내장, 죽어서도 사람 내장을 달궈내며 제 구실을 톡톡히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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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 족발 맛을 아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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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경 |
| 오늘의 마지막 축제는 국밥이다. 시래기를 썰고 된장 풀어 돼지머리 국밥 한 그릇을 비우다보면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간다. 저마다 살코기 몇 근을 달랑거리며 집을 향하는 발걸음이 저토록 가벼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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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밥 한 그릇씩 가지고 가세요, 즐거운 설 명절 쇠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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