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 목매는 프리미엄 브랜드
4월이면 겨우내 쌓인 먼지를 털기 위해 활짝 여는 게 있다. 창문이 그렇고, 간혹 대문도 `입춘대길`이란 문자를 써넣으며 한 해의 행운이 깃들기를 바란다.
그러나 독일에선 겨우내 차고에 뒀던 클래식카를 꺼내는 사람이 많다. 수북한 먼지를 털어내고, 닦고 조이며 봄맞이 출정준비를 하는 것이다.
봄이 되면 독일 전역에서 각종 올드타이머 전시회와 클래식카 축제들이 잇따라 개최되면서 본격적인 `올드타이머 계절`이 열린다.
클래식카를 지칭하는 `올드타이머`는 독일에서만 통용되는 독일식 영어 단어다. 핸드폰이 독일에서는 `핸디`라고 불리는 것과 같이 순 독일식 영어인 셈이다. 방송용어인 `NG`나, 시도때도 없이 외쳐대는 `파이팅` 그리고 자동차에서 사용되는 `쇼바`나 `데후`같은 무수한 일본말의 찌꺼기가 남아 묘하게 범벅이 된 한국식 영어 단어들이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것과 같다. 한국의 콩글리시처럼 독일식 영어 댕글리시(Denglisch)인 셈이다.
그러나 댕글리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도 있다. 이름하여 `Pseudoanglizismen(프소이도앙글리치스멘) 또는 Scheinanglizismus(샤인앙글리치스무스)`가 그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콩글리시를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어느 나라든 외국어의 혼용과 오용 그리고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들이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독일은 독일인답게 서류 상 `올드타이머`의 정의를 매우 깔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독일의 자동차클럽 가운데 하나인 `AvD`와, 프랑스에 본부가 있는 FIA에서는 `올드타이머`라는 매우 폭넓은 개념 아래 세부적으로 클래식카를 A에서부터 G까지 7단계로 구별했다.
먼저 클래식A는 자동차가 발명된 초창기부터 1904년말까지 생산한 차종을 지칭하며, `엔서스터(Ancestor)`라고 한다. 말뜻 그대로 원형 혹은 선구 자동차의 원조인 셈이다. 이들 차종은 대부분 유럽 유명 브랜드인 회사들이 소유하고 있거나 그들의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자동차시대에 역사적으로 자랑할만한 작품(?)인 만큼 메이커로선 대단한 자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클래식B는 1905년부터 1918년까지 생산한 차를 말한다. 이 시기 자동차는 왕족의 전유물로, 영국에서는 에드워드시대여서 `에드워드디언(Edwardian)`, 독일에서는 `카이저시대(Kaiserzeit)`라 불리지만 정식 명칭은 `베테랑(Veteran)`이다. 배기량도 10ℓ 혹은 20ℓ로 맘모스급에 해당돼 자동차가격은 차치하고 연료소비 또한 귀족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해마다 8월 둘째 주말이면 독일 뉘르부르그링 서킷에서 AvD 주최로 올드타이머 에드워르디언 챔피언전이 열릴 때 이들 차종이 곧잘 등장한다.
클래식C는 1919년에서 1930년까지 생산한 차종을 나타내며, `빈티지 (Vintage)`라고 부른다. 원래는 포도 수확 혹은 포도 풍작이었던 해를 의미하지만 영국식 영어, 특히 오래된 자동차에도 빈티지란 단어를 쓴다.
클래식D는 소위 포스트 빈티지시대로 불린다. 1931년부터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던 해인 1945년까지 나온 모델이다. 이 시기 자동차의 고향이랄 수 있는 유럽이 2차 대전으로 전쟁터가 되는 바람에 민간 자동차의 공급과 수요는 제로 상태였으나 전쟁용 자동차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각종 장갑차나 수륙양용차, 사열용 무개차, 지프형 자동차, 화물차 등이 발전했다.
이 시기에 자동차역사 상 불후의 명작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독일의 명차 비틀이 탄생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참혹한 전쟁을 통해 인간이 비로소 철학적으로 깊은 인간성을 되돌아볼 수 있는 성찰을 제공받았다는 점과, 전쟁 수행과정에 발전한 각종 교통 및 수송, 무기 과학기술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1946년부터 1960년까지 생산한 클래식E는 소위 전후시대라 한다. 세계대전이라지만 사실 곰곰히 따져 보면 전쟁터가 유럽이었던 만큼 전쟁 전과 전쟁 후, 특히 직접 전쟁을 겪었던 유럽인과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한 미국인의 생활 변화와 차이가 무척 심했던 때다. 이는 곧 지역적 차이에 따른 자동차의 변화를 가져 온 시기이기도 하다.
클래식F는 1961년부터 1970년까지 나온 차종인데, 독일은 물론 미국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 경제기적의 시대로 불린다. 사실 이 때 차종이 소위 클래식카를 대중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클래식G는 영타이머로 칭하며, 1971년부터 1980년까지 만든 모델을 말한다. 50대 이후 세대에게는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차종이다.
다음 단계인 클래식H는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클래식G의 첫 모델인 1971년 차종이 클래식카의 기본조건인 30년이 넘었으므로 조만간 클래식H는 아마 새로운 카테고리로 등장할 것이다. 이미 클래식카시장에선 1971년 차종이 당당히 클래식카로 대접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 처럼 올드타이머 정의가 확실히 정리돼 있다는 건 정식으로 등록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독일에서 자동차 번호판의 고유번호 다음에 `H`자가 있으면 1969년 7월 이전 생산한 모델이거나, 적어도 30년 이상 된 올드타이머로 등록한 차다. H는 영어와 비슷하게 독일어에서도 `Historisch`, 즉 `역사적`이란 뜻이니 단순한 공산품이자 소모품에 지나지 않던 자동차에 지나간 시간이 점착돼 역사성이 부여되는 것. 자동차에 역사성이 더해져 H자 자동차는 이전의 가치와는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다.
무조건 오래됐다고 가치가 부여되고 좋은 평가를 받는 건 아니다.
H자가 붙어 공인된 올드타이머 역시 자동차이니만큼 자동차의 보관상태와 오리지널리티, 즉 얼마나 원형에 가까운가에 따라 그리고 생산연식과 차종에 따른 일정한 평가기준이 확립돼 있다. 이를 점수로 일반화해 표시하는데 독일에서는 점수(Note) 1부터 `Note 5`까지 평가하도록 돼 있다.
Note 1은 흠집없는 최고의 상태를 말하는데, 완전무결하게 복원된 차도 포함한다. Note 5는 형편없는 상태지만 역사적 가치가 있는 차적증명서나, 잠재적인 복원가치가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자동차는 분명 문명의 산물이지만 자동차문화라는 건 그 것을 받아들여 사용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형식의 행동양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래된 자동차를 아끼고 보존하는 클래식카문화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한 지 어언 40여 년이다. 초기 생산한 차종은 이미 유럽기준으로 봐도 당당한 클래식카다. 그런데 우리나라 어디를 가야 이런 차를 만날 수 있을까.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찬란한 유교문화를 전통으로 내세우며 자동차생산국 세계 5위의 위풍당당한 우리나라엔 어찌하여 클래식카문화가 아직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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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드타이머 정확한 뜻과 정의를 알게 되어 새로운 분야에 눈을 뜨는 것 같습니다 우리카페에 새로운 카테고리로 탄생할 예감이듭니다
잘배웠습니다.
오~~ 정말 귀중한 공부를 했습니다. 막연했던 클래식카의 개념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된 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우리의 자동차 법규도 클라식카를 문화의 범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개정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올드 타이머가 무슨뜻인지 알게 되었고요 클래식카의 개념을 알게 되어서 저에겐 상당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도 73년식 올드 바이크가 (혼다)있는데요 다시 한번 공부을 해야 할것 같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