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얘기를 꺼내야할까? 백두산을 갔다온지 오늘로 딱 1주일이 지났다. 오늘 사진관에 들러 백두산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니 다시 그날의 그 감흥이 되살아나는듯하다. 이사진들처럼 내가슴속에 찍힌 백두산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얼마나 이날을 기다려 왔던가!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는 심정으로 매달 5만원씩 모으기 어언 1년. 드디어 민족의 靈山 백두산을 향하는 비행기에 우리 일행 8명은 가벼운 흥분을 안전벨트로 조이며 무사히 비행기가 이착륙하길 기원해본다.
인천공항을 떠난지 2시간여만에 비행기는 심양에 내린다. 청나라의 수도였다는 심양. 중국에서 네번째로 큰도시라한다. 연길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는 저녁때까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우리 일행은 마중나온 조선족 가이드와 함께 고궁으로 향했다. 택시를타고 가는 도중에 스치는 심양은 옛날과 현재가 뒤섞인 가운데 수많은 자전거 행렬과 정신없이 달리는 자동차들, 끊임없이 울리는 경적소리... 한편으론 무질서한듯 보이지만 나름대로의 질서와 암묵적인 규칙에 의해 숨가쁘게 달리는 아주 활력이 넘치는 도시였다. 심양의 그런 모습은 어쩌면 중국의 오늘을 대표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동안 택시는 아주 고색창연한 거리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고궁은 우리의 경복궁과 같은 곳이다. 한때 중국대륙을 통치하던 왕과 그 신하들의 권위와 위세도 이제는 빛바랜 건물들너머 저편의 역사속으로 묻혀버리고 왕이 앉았던 옥좌위엔 세월의 두께만큼 먼지만이 쌓여있다. 그리고 그 역사의 후광을 업고 인민폐 500元(한화 약 7,500원)이라는 결코 적지않은 입장료만이 아직도 옛영화를 으시대는듯하여 뒷맛이 씁슬하다.
고궁에서 차로 그리멀지 않은곳에 西塔이라는 곳이 있다. 우리의 동대문처럼 말그대로 서쪽에 있는 탑이라하여 서탑이라 불리는데, 이곳 서탑거리는 한글로 된 간판이 즐비한 일종의 코리아타운 같았다. 그곳 한국식당중에서 한곳을 골라 저녁을 먹었다. 낯선 중국에서 한국음식을 먹을수 있다는 사실에 은근히 뿌듯해했지만 맛은 어딘지 모르게 조금 다른듯도 했다. 고사리 볶음이 특히 맛있었는데 한국에서 먹던 고사리무침과는 또다른 맛이었다.
심양을 떠나 길림성의 대표적인 도시 연길에 도착한 시간은 벌써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국보다 1시간이 늦으니 한국시간으로 따지면 밤11시인 셈이다. 꽤늦은 시간이지만 외국여행이라는 흔치않은 경험에 (나는 10년전 일본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 외국여행이다) 피곤한줄도 모르고 마중나온 사람들의 안내로 '대우주 노래방'이라는 곳에 가게 되었다. 겉에 노래방이라고 써있어서 그런줄만 알았더니 중국의 노래방은 노래보다는 술을 위주로하는 한국의 단란주점과 같은 곳이라한다. 그곳에서 맥주 한박스와 과일안주를 먹으며 귀에익은 북한노래 '반갑습니다'도 듣고 한국의 트로트 메들리에 맞춰 춤도추고 하다가 마지막엔 '눈물젖은 두만강'으로 마무리하는 동안 시간은 벌써 새날을 넘어서 있었다. 그렇게 중국에서의 첫날은 낯선 풍경속에서 익숙한 문화를 즐기며 같은 동양문화권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하루였다.
노래방에서 나온 우리는 버스를 타고 백두산을 향했다. 12인승 버스에 11명(우리일행 8명, 운전기사, 가이드, 가이드형)이 여행가방, 배낭등과 함께 짐짝처럼 찌그러져서 꼼짝못한채 새우잠을 자다가 1시간 반만에 '안도'라는 곳에 도착했다. 눈을 반쯤감은채 가이드의 안내로 들어간곳은 콘테이너박스를 개조해만든것으로 보이는 일종의 실내 포장마차였다. 배도 안고픈데 왜 거기에 갔는지 영문도 모른채 나오는 음식을 맛보려는 순간.... 우리는 역한(?) 냄새에 그만 젓가락을 놓을수 밖에 없었다. 닭고기를 심하게 불에 끄슬렸을때 나오는 냄새에 산초가루를 섞어놓은것 같은 진한 향...바로 중국특유의 향이었다. 그향은 중국여행내내 따라다니며 우리를 괴롭혔다. 음식뿐만 아니라 방향제, 심지어는 비누에서 까지 그 중국향은 빠짐없이 꽈리를 틀고 있다가 우리의 후각을 물어뜯곤 했다. 어쨌튼 잔뜩 시켜놓은 꼬치, 만두, 건두부 등등을 거의 고스란히 남겨놓은채 그곳을 떠날수밖에 없었다.
안도에서 백두산이 있는 '이도백하'까지 거의 3시간동안 다리한번 제대로 뻗지 못한 상태에서도 여행의 피곤함에 정신없이 잠이들었다. 이도백하에 도착한것은 아침 5시30분...아침을 해결하기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들어간곳은 중국식 식당이었다. 거기서 중국인들처럼 흰쌀죽과 흰빵 그리고 밀가루 튀긴빵을 콩국에 찍어먹었다. 역한향도 나지않고 담백한것이 꽤 괜찮은 식사였다. 밥을 먹고 났더니 배에서 비워달라는 신호가 왔다. 그래서 그곳에서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중국의 화장실문화를 체험하게 되었다. 문도없는 화장실..그래도 옆칸막이는 있었다. 바지를 내리고 쭈그리고 앉아 엉덩이에 힘을주고 있는데 낯선사람이 쑥 들어와 옆칸에 서서 소변을 보는게 아닌가! 그 뭐라 말할수 없는 민망함...갑자기 여자화장실도 이럴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지만 차마 확인해볼수 없었다.
중국에 와서 가장 인상깊었던것이라면 화장실 외에 그들의 교통문화를 들수있겠다. 차선과 신호등은 그저 형식적인 장식품인듯 했고, 앞에 장애물(?)이 나타날때마다 경적은 쉴새없이 울려댔으며, 마치 자동차경주라도 하는듯 경쟁적으로 달려나가는 그들의 교통문화를 보며 그래도 사고가 별로없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뿐이었다. 이런 현상은 백두산입구에서 그 정점을 나타낸듯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보다 하루전에 한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버스가 전복되어 부상당하는 불상사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올라갈때도 길이 막히자 편도일차선임에도 불구하고 차들이 줄에서 빠져나와 옆차선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편도 1차선이기 때문에 그쪽은 당연히 반대방향에서 내려오는 차들의 몫이었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올라가다가 차가 내려오면 다시 원래의 줄에 끼어들면 그만이었다. 더욱 의아한건 반대차선의 운전기사들이었다. 한국같았으면 육두문자가 들어가는 욕이 난무할법도 한데, 그들은 별일 아니라는듯 실실 웃기까지하며 길이 뚫리기를 여유있게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들의 그런 모습에서 大陸의 여유와 포용력을 느끼며, 새삼 '빨리 빨리'를 외치며 살아온 우리의 자화상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혼잡한 매표소를 통과하고도 버스로 한참을 올라가니 길게 늘어선 짚차들을 둘러싼 분주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그곳에서 우리도 짚차로 갈아탔다. 9인승 짚차에 12명을 구겨태운채 짚차는 천문봉으로 향했다. 조금 올라가니 나무는 거의 볼수 없는 초원지대가 나타났다. 키작은 풀들과 꽃들 그리고 파란 이끼들만이 지천에 가득한 백두산 중턱이후는 말그대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후에 보게될 천지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단지 서막에 불과한 것이었다. 천문봉 일대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날씨가 기막히게 좋았기 때문에 수많은 짚차들이 줄지어 오르내리고 있었고,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찍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보았다. 그리고 눈을 의심했다. 그렇게 놓은곳에 그렇게 크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을 줄이야! 그 푸르디 푸른 물색깔하며, 사방으로 에워싼 기기묘묘한 봉우리들.... 정말 탄성이 절로 나오고 벌어진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기대 이상이었다. 사진으로 보아온 천지도 멋있었지만, 실제보는 백두산 천지는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그 어떤 풍광과도 견줄수 없는 자연의 신비...그 자체였던 것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떠오른다. 그 고요한 물살과 말로 형용할수 없는 물빛... 그 아름다운 천지에 풍덩 뛰어들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만큼 북받쳐오르는 희열... 천지를 보기위해 기다려온 시간들이 전혀 아깝지 않았고, 그대로 그자리에 주저앉아 몇날이고 천지만 바라보아도 좋을것 같았다. 그리고 하늘에 감사드렸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씨를 선물해 주셔서...정말 고맙습니다. 천지를 찾고도 악명높은 일기변화탓에 천지를 제대로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고들한다. 지리산 천황봉 일출이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수있다면, 천지는 5대쯤 덕을 쌓아야 볼수있다는 말이다. 그런 천지를 단칼에 제대로 보게된 우리는 로또복권에 1등은 아니라도 2등담첨쯤된 기분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하지만 기쁨도 잠시...저멀리 보이는 북한땅을 바라보니 기분이 착잡하기만 했다. 우리땅을 놔두고 이렇게 멀리 돌아와야 하다니... 우리땅이면서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곳 - 북한땅 - 이 손을 뻗으면 닿을거리에 있었다. 그땅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기원해본다. 다음에 다시 백두산을 찾을때는 반드시 북한쪽으로 올라오게 해달라고... 갈수없는 북한땅을 사진으로라도 남겨두고자 천지를 배경으로 실컷 사진을 찍고나서 아쉽지만 하산을 하기로 했다. 올라갈때는 짚차를 타고 갔지만 내려올때는 장백폭포쪽으로 걸어 내려왔다. 주위에 핀 이름모를 꽃들을 따서 수첩에 기념으로 넣으며 나무처럼 가벼운 돌들도 몇개 배낭에 주워넣었다.
얼마쯤 걸어내려오니 멀리 발아래 천지주변에 사람들이 조그맣게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우리도 험한 비탈길을 기다시피 내려가기 시작했다. 위에서 볼때는 얼마 안돼보이는 거리였는데 막상 내려가려니 30분이 넘게 걸렸다. 그도 그럴것이 화산폭발로 이루어진 비탈이어서 돌들이 땅에 단단히 박혀있지 못하고 곧잘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마음놓고 걸음을 옮기기가 어려웠다.
어렵게 어렵게 천지에 도달한 우리는 천지물에 손을 담그고 세수도하고 준비해간 물병에 천지물을 채우기도 하며 천지와의 해후를 만끽했다. TV광고에서 (사이다 광고였던것으로 기억되는데)만 보던 천지에 손담그던 장면을 직접 체험하는 순간도 좋았지만 밑에서보는 천지 주변의 경치 또한 압권이었다. 위에서 내려다 볼때와는 또다른 느낌...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유명한 그랜드캐년이 그렇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백두산에 오른지도 어느새 3시간을 훌쩍넘어서고...우리는 다음장소를 향해 하산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장백폭포를 향해 내려가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천지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는 등산화를 신고 있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운동화차림 가끔은 구두를 신고올라오는 사람들도 보였다. 수없이 이어지는 시멘트 계단들...그 높은 곳에 어떻게 시멘트로 계단과 터널(위에서 떨어지는 돌을 막기위해 시멘트 터널이 끝없이 이어졌다) 을 만들어 놓았는지 실로 불가사의하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오니 장백폭포의 위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까지 튀는 물보라의 시원함을 만끽하며 계곡에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그곳 바위틈에서 놀랍게도 뜨거운 온천수가 솟아나오는 것이였다. 너무 뜨거워서 오래 담글수가 없었지만 찬물과 합해지는 지점을 잘찾아서 꽤 괜찮은 온천욕으로 지친 발을 달랠수가 있었다. 그러고나서 조금 내려오니 온천이 있었고 백두산의 명물인 온천물에 삶은달걀을 사기위해 장사진을 친 행렬을 만날수 있었다. 너무 많은 인파탓에 계란맛도 못보고 온천욕도 못한채 아쉬움을 안고 하산해야만 했다. 그렇게 우리의 백두산 여행은 막을 내리고 다시 우리는 버스를 타고 연길로 돌아와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 사우나에서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기위해 호텔을 나섰다. 우리가 묵은 만국호텔 근처에 북한에서 운영하는 류경호텔이 있었다. 그리고 북한음식점들도 몇군데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에 하나인 '해당화'라는 곳에 들어갔다. 분위기부터 예사롭지 않은 그곳엔 우리말고 다른 일행이 한팀 더 있었다. 우리를 보고 남조선에서 왔냐며 인사말을 건네더니 우리를 환영한다며 북한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분위기가 약간 어색한 가운데 우리의 관심은 그곳에서 일하는 여자종업원에게 쏠렸다. 생전 처음 접하는 북한 여성이었다. TV등을 통해 북한여성이 예쁘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직접 만나보니 정말 예뼜다. 그중의 한명은 핑클의 성유리를 닮았다. 그녀는 예쁘기는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차가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우리가 시킨 음식이 나오지 않아 재촉하자 "시켰으면 나오겠지요. 기다리시라요"라며 특유의 북한 사투리로 응답하는데 그 목소리 어딘가에서 원망과 체념같은것이 묻어나오는것처럼 느낀것은 아마도 나의 선입견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들은 식당밖으로 한발짝도 못나온다고 한다. 그말을 듣고나니 단지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를 구속당하는 그녀들이 불쌍하게 느껴지고 그녀들을 구해야한다는 막연한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러왔다. 아! 언제나 북한동포들에게 자유의 날이 찾아올 것인지...
중국여행 마지막날엔 중국, 러시아, 북한의 국경이 접하는 '방천'이라는 곳과 북한과 조그만 다리하나를 사이에두고 접하고있는 '도문'이라는 곳을 여행했다. 그전날 북한식당에서 느꼈던 민족분단의 가슴아픈 현실을 다시한번 뼈져리게 느꼈고, 건물들만 뎅그러니 놓인 가운데 사람들은 보기힘든 북한땅에선 적막만이 흘러나오는걸 느꼈다. 분명 저땅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텐데... 그것도 우리랑 생김새가 같고 말도 통하는 같은 핏줄 같은 형제들일텐데...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갈라져 서로 미워하며 불신만을 키워왔는지....정말 슬프고 우울한 하루였다.
이제 백두산 여행기를 마무리 해야할것 같다. 3박4일 동안 인천에서 출발하여 심양-->연길->이도백하-->백두산-->연길-->방천-->도문-->연길-->장춘을 거쳐 인천에 돌아오는 숨가뿐 일정이었다. 좋은 날씨덕분에 백두산 천지를 보며 감격했고 북한 사람들과 북한땅을 바라보며 답답한 가슴을 억누르기도 했다. 漢族이 경제권을 차지하고 있는 연변땅에서 가난한 운명을 극복하기위해 한국행을 꿈꾸는 조선족 동포를 만나기도 했고, 발이 넓은 가이드 덕분에 안되는 일도 가능하게 되는것을 보며 중국사람들이 말하는 '꽌시(인간관계)'의 중요함도 느꼈다. 무엇보다도 세상이 넓다는 것과 중국의 무궁한 가능성을 느꼈다. 좁은 대한민국안에서 '빨리빨리'를 외치며 정신없이 사는 우리들...가끔은 훌쩍 여행을 떠나서 또다른 세상을 보고 느끼는것이 우리에게 일상의 삶못지않게 중요하다는걸 정말 가슴깊이 느낀 여행이었다는 말로 백두산 여행기를 마무리한다.
첫댓글 들소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참 잘 쓰시네요. 들소님의 글 자주 접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제서야 글을 읽었습니다. 벅찬 여행 이셨겠네요~ 그 감동 오래오래 간직하시길 바라며.. 또한 그 느낌으로 마라톤에 대한 들소님의 비상도 기다립니다.. 무릎통증은 좀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