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서부 코스, 노고단:1507M)
1. 일 자 : 2005년 10월 9일(일) 06:00 방어진 출발
2. 산행코스 : 총 17Km (약 5시간 소요 예상)
----------- 평 지 -------------->------------- 내 리 막 ---------->
성삼재 --3Km--> 노고단 --4Km--> 임걸령 --4Km--> 피아골산장 --6Km--> 연곡사
(1H) (1H20M) (1H20M) (1H30M)
* 차량이 직전리까지 진입 가능하므로 거리는 많이 단축 됨.
[ 성삼재 姓三峙 ]
삼한시대에 마한군에 밀리던 진한왕이 전란을 피하여 지리산 심산유곡으로 찾아들어 달궁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피난 할 때 북쪽능선에 8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였으므로 팔랑재, 서쪽 능선은 정 장군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으므로 정령재, 동쪽은 황장군으로 맡아 지키게 하였으므로 황영재, 그리고 남쪽은 가장 중요한 요지이므로 성(性)이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방어하게 하여 성삼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노고단 老姑壇 ]
태백산, 토함산, 계룡산, 팔공산 등과 함께 나라의 제사를 지내던 오악중 하나이다.
남악산으로 불리던 신라 때는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의 제사를 지냈다.
노고단이란 이름도 선도성모의 높임말인 노고와 신단이 있던 곳 이란 뜻으로 노고단이라
불리게 되었 다고 한다. 구한말 사당 남악사는 폐사 되었다가 화엄사 앞에 복원됐다.
또한 노고단은 세석과 함께 신라 화랑들이 심신을 단련 했던 수련장이었으며, 근대에는
빨치산들의 근거지 이었다.
노고단(1,507m)은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의 3대 주봉으로 꼽힌다.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이며 북쪽으로 심원계곡을 남쪽으로 화엄사 계곡과 문수 계곡, 피아골 계곡에 물을
보태는 크나큰 봉우리다. 노고단 산자락의 끝에 천년 고찰 화엄사가 자리해 한층 위엄을
갖추었다.
성삼재를 넘는 관광도로가 열린 후 한층 가까워진 노고단은 '한국의 알프스'로 불리며 고산
휴양지의 메카로 떠올랐다. 노고단은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으로 인기가 높을 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고산 휴양지로 알려졌다. 일제시대에는 외국의 선교사들이 피서용 별장을 50여 채
나 건립하고 이 곳에서 여름을 났다. 6·25동란을 거치며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돌로 지은
담벼락과 집터가 남아 있다.
노고단 산장에서 10분 오르면 여성의 둔부처럼 솟구친 반야봉과 아스라이 천왕봉이 보인다.
노고단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과 운해, 한여름의 원추리 군락이 유명하다. 또 석양 무렵
에 하늘을 가득채운 고추잠자리 떼도 장관이다.
[ 임걸령林傑嶺 ]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능선이 동남풍을 막아주니
녹림속에서 천혜의 요지이며 샘터에서는 언제가 차가운 물이 솟고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고,
조선 명종때의 초적두목 임걸년의 이름에서 유래되어 임걸령이 되었고, 이곳에 진을 치고
말을 길렀다고 하며, 실제로 마구와 철촉이 발견 되었다고 한다.
[ 피아골 ]
전라남도 구례군(求禮郡) 토지면(土旨面) 내동리(內東里)에 있는 지리산(智異山)의 한
계곡. 길이 약 25㎞. 연곡사(燕谷寺)에서 반야봉(般若峰, 1751m)에 이르는 연곡천
계곡이다.
지리산 주봉의 하나인 반야봉 중턱에서 발원한 계곡물은 임걸령·불무장 등의 활엽수림지대
를 지나 연곡사를 거쳐 섬진강으로 흐른다.
지리산의 20여 개가 넘는 계곡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단풍 숲은 뱀사골과 피아골이다. 특히 피아골의 아름다움은 봄철 진달래, 여름철 우거진 녹음, 가을철 단풍, 겨울철 설화로
이어지는데 그 가운데 가을의 단풍은 지리산에서 으뜸이다. 피아골의 단풍은 삼홍(三紅)이
라 하며 산이 붉게 불타는 산홍(山紅), 붉은 단풍이 맑은 담소에 비치는 수홍(水紅) , 사람
이 들어서면 사람도 붉게 물드는 인홍(人紅)이다. 그 가운데 표고막터에서 삼홍소 간 1km사
이의 빼어난 풍경이 피아골 단풍의 백미. 옛날 부근에 피밭[稷田(직전)]이 많아 피밭골
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바뀌어 피아골이 되었다.
임진왜란, 조선말 격동기, 여순반란사건, 6·25 등 나라가 어지러울 때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해마다 10월 피아골 단풍제가 열린다.
[ 연곡사?谷寺 ] 위 치 :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연곡사는 543년(백제 성왕 21년)에 화엄사 종주 연기조사가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다시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 1981년 3월 1일부터 당시 주지인 장숭부 스님이 정부 지원과 시주로 옛날 법당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화강석과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아 정면 5칸, 측면 3칸의 새 법당을 신축한 이후 복원 불사가 계속되고 있다.
사찰 이름을 연곡사라고 한 것은 연기조사가 처음 이곳에 와서 풍수지리를 보고 있을 때 현재의 법당 자리에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을 유심히 바라보던 중 가운데 부분에서 물이 소용돌이치더니 제비 한마리가 날아간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연못을 메우고 법당을 짓고 절 이름을 연곡사(燕谷寺)라 했다고 한다. 한편 연곡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인데 을사조약으로 나라의 주권이 일본에게 넘어가자 각지에서 항일 의병이 일어났는데 호남 지방에서도 의병 활동이 활발하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담양 출신 의병장 고광순. 그는 1907년 8월 26일 지리산 연곡사에 근거를 설치하고 적극적인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기습을 받아 패전하고 순절하였다.
이때 절도 불탔다.
주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53호인 동부도와 국보 제54호인 북부도 및 보물 제154호인 서부도를 비롯하
여 삼층석탑, 현각선사탑비, 동부도비 등이 있으며, 특히 동부도비는 도선국사 부도라고도 불리 우는데 가장 오래된 신라 말기의 것으로 형태가 아름답고 조각수법도 정밀하여 조형미의 극치를 이룬다.
[ 연곡사북부도?谷寺北浮屠 - 국보 제54호 ]
전라남도 구례군(求禮郡) 토지면(土旨面) 내동리(內東里) 연곡사에 있는 고려시대 부도.
높이 3m. 연곡사동부도와 구조·형식이 거의 같고 모양도 비슷하다.
하대석은 2단으로 구름무늬를 새긴 8각대석 위에 연꽃을 조각한 대석을 올려놓았으며 그 귀퉁이에는 귀꽃무늬 장식이 있다. 얕고 잘룩한 중대석 각 면의 안상(眼象)에는 조식(彫飾)이 있다. 상대석은 꽃무늬를 넣은 앙련을 둘러 새겼으며 윗면에는 가운데 둥근 마디가 있는 난간을 모서리마다 세우고 그 사이 안상 안에는 낙원에 산다는 극락조인 가릉빈가(伽陵頻迦)를 조각하였다. 8각인 탑신 각 면에는 문짝[門扉]·향로·사천왕상이, 모서리에는 기둥이 양각되었다. 옥개석은 목조건물의 지붕을 모방, 서까래·기왓골·막새 등이 세밀하게 표현되었으며 아랫부분에는 비천(飛天)을 조각하였다. 상륜부는 보주만 없을 뿐 앙련의 대석 위에 날개 편 봉황의 모습을 새긴 돌을 얹고 다시 보륜 등을 올렸다.
8각형 부도를 대표할 정도로 단아한 부도인데 누구의 것인지 모른다.
[ 연곡사동부도?谷寺東浮屠 - 국보 제53호 ]
전라남도 구례군(求禮郡) 토지면(土旨面) 내동리(內東里) 연곡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부도.높이3m.8각원당(八角圓堂)을 바탕으로 기단부·탑신부·상륜부를 완전하게 갖추고 있다.
기단부는 상대·중대·하대로 구성되었으며 8각 2단의 하대석 하단에는 구름 속에 있는 용을, 상단에는 사자상을 새겨 넣었다. 중대석은 낮은편이고 각 면에는 보통 양식의 안상(眼象) 속에 팔부신중(八部神衆)을 양각하였다. 상대석은 2겹의 앙련(仰蓮)을 조각한 위에 모서리마다 둥근 마디가 있는 기둥을 세우고 그 안에 낙원에 산다는 극락조인 가릉빈가(伽陵頻迦)를 장식하였다. 탑신각 면마다 문짝[門扉]을 새겼으며 그 안에는 사천왕상 등을 조각하였다. 옥개석은 목조건물의 지붕을 모방, 서까래와 기왓골의 새김이 치밀하다. 상륜부에는 날개를 활짝 편 봉황을 조각하여 얹고 그 위에 연꽃무늬를 장식한 보륜(寶輪)을 올렸다.
신라 때의 부도보다 기단부가 높아졌으나 안정감이 있으며 전체적으로 세련미가 돋보인다.
도선국사의 부도라고 전해지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 연곡사 삼층석탑?谷寺三層石塔 - 보물 제151호 ]
시대 - 통일신라, 높이 - 6M
연곡사의 법당(法堂) 남쪽에 있는 사각형의 3층 석탑으로 3중의 기단(基壇)을 가지고 있으며 지대석에는 하대석을 받치기 위한 낮은 1단의 석재가 있고, 그 위에 하대석, 그 위에 중대석, 그 위 중석(中石)에는 우주(隅柱:탑 몸돌의 모서리에 세운 기둥)와 탱주(撑柱:탑의 기단 면석 사이에 세우거나 면석에 돋을새김한 기둥 모양)가 있다. 갑석(甲石) 상면에는 완만한 경사가 보이고 중앙에는 각형과 호형(弧形)의 몰딩이 있다. 기단의 각 층에는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맨 윗 기단이 넓은데 비해 탑신부(塔身部)는 줄어들었으나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는 석탑이다.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개의 돌로 되었으며, 각 층의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마다 4단이고 추녀 밑은 수평이며 지붕돌의 경사도는 경쾌한 곡선을 그린다. 1967년 떨어져 있던 석탑의 3층 지붕돌을 복원공사할 때 위층 기단 안에서 동조여래입상(銅造如來立像)이 발견되었다. 특이한 3중 기단 양식과 탑신부가 기단에 비해 줄어들었으나 안정감을 주는 아름다운 석탑으로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연곡사 현각선사탑비?谷寺玄覺禪師塔碑 - 보물 제152호 ]
현각선사탑비는 고려시대의 승려 현각선사를 기리기 위해 979년(경종 4)에 건립되었다. 임진왜란 때 비신(碑身)은 없어졌고 현재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인 귀부(龜趺)와 비석의 머릿돌인 이수(?首)만 남아 있다. 귀부는 몸뚱이가 크게 손상되었고, 비좌(碑座)의 네 측면에는 귀꽃과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다. 이수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수의 용의 형상은 웅건하며 사실성이 두드러진다.
비를 받치고 있는 돌거북은 부리부리한 두 눈과 큼직한 입이 웅장하며, 수염을 가진 용머리를 하고 있는데 머리 정상에는 뿔이 하나 돌출되어 있다. 받침돌 위에 놓여 있는 비의 머릿돌에는 여러 마리의 용이 서로 얽힌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 연곡사 동부도비?谷寺東浮屠碑 - 보물 제153호 ]
시대 - 고려시대, 높이 - 1.2M
비문을 새긴 비신(碑身)은 임진왜란 때 없어지고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인 귀부(龜趺)와 용의 형체를 새겨 장식한 비석의 머릿돌인 이수(?首)만 남아 있다. 비석의 받침돌은 네 다리를 사방으로 쭉 뻗고 엎드린 용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사실성이 떨어지며, 거북머리는 훼손된 것을 복구하여 붙여 놓았다. 용의 등에는 새 날개 모양의 무늬를 조각하였고, 등 중앙에 비를 끼우도록 되어 있는 비좌(碑座)에는 구름무늬와 연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머릿돌은 용무늬를 생략하고 구름무늬만을 새겼으며, 꼭대기에는 불꽃무늬를 장식한 연꽃봉오리 모양의 보주(寶珠)가 돌출되어 새겨져 있다. 화강석으로 만든 동부도비는 귀부와 이수의 조형이 작은 편인 고려시대의 석비이다.
[ 연곡사 서부도?谷寺西浮屠 - 보물 제154호 ]
시대 - 고려시대, 높이 - 3.6M
8각원당형(八角圓堂形)의 부도로 하대석의 하단은 8각단이고 상단에는 중앙에 몰딩이 있으며 그 주위에 홈이 새겨져 있다. 중대석은 편구형(扁球形)으로 아래 위로 홑잎 연꽃이 조각되었고, 상대석 밑에는 앙련(仰蓮: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이, 위에는 높은 호형(弧形) 굄이 있다. 탑신(塔身)은 모두 8면인데, 1면만 문짝 모양이 새겨져 있고 나머지 면에는 모두 신장상(神將像)이 1구씩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여덟 군데의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얹어두었으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다.
연곡사에는 서부도를 비롯해 동부도(국보 53)·북부도(국보 54) 등 세 개의 부도가 남아 있는데, 서부도는 연곡사의 다른 부도들에 비해 형태나 꾸밈은 뛰어나게 아름답지 않지만 각 부분의 비례가 우아한 작품이다. 조형적으로는 아름다운 균형미를 볼 수 있으나 조각수법의 생략화로 둔중해 보인다.
탑신에 새겨진 명문(銘文)에 따라 조선시대인 1650년(효종 1)에 세워진 부도로 추정된다
부도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묘탑(墓塔)으로 연곡사 서쪽에 있는 서부도는 소요대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 고광순高光洵, 1848.2.~1907.10 ]
한말의 의병장. 본관 장흥. 자 서백(瑞伯). 호 녹천(鹿泉). 초명 광욱(光旭). 전라남도 담양에서 출생하였다.
1895년 일본이 대궐을 침범하고 국모(國母)를 시해하자, 통분을 참을 수 없어 기우만(奇宇萬)과 도모하여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일본 침략에 항거하였다.
그후, 동복(同福)에서 왜적을 대파한 후 구례 연곡사(燕谷寺)를 본영으로 삼고 고제량(高濟亮)·고광수(高光秀)·박찬덕(朴贊德)·고광훈(高光薰) 등과 함께 여러 곳에서 싸우다가 왜적의 야습으로 연곡사에서 전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
[지리산 10경]
* 1경 - 천왕일출(天王日出)
이른 새벽 동틀 무렵 해발 1,915m의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에 올라보라. 끝없이 펼쳐진 회색
구름바다 저 멀리 동녘 하늘에 희뿌연 서기가 어리기 시작한다. 이것도 잠깐 동녘하늘이
오렌지 빛으로 물들면서 휘황찬란한 오색구름 속에서 진홍빛 거대한 태양이 눈부신 햇살을
부채살같이 뻗치며 불쑥 솟는다. 이 천왕봉 해돋이는 지리산 10경중 제1경으로, 이 일출을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삼대에 걸쳐 적선을 해야 된다는 속설도 있다.
* 2경 - 노고운해(老姑雲海)
지리산 서쪽 해발 1,507m의 높이로 솟아있는 노고단은 이 산의 수 많은 봉우리들 중에서도 영봉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화엄사 계곡을 따라 오르는 10km의 노고단 산행 코스는 중간부터 가파른 길이 이어져 숨이 턱턱 막히기도 하지만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경관은 4시간 남짓의 힘든 산행을 한층 뿌듯하게 해줄 만큼 장엄하다. 특히 노고단 아래 펼쳐지는 '구름바다'의 절경은 가히 지리산을 지리산답게 만드는 제 1경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으며, 5월에 산철쭉이 고원 전체를 분홍색으로 물들이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한 여름철 과 가을에 걸쳐 천상의 화원을 이룬다. 화엄사 계곡의 끝머리 바위 턱에 앉아 파도처럼 밀려갔다 밀려오며 계곡을 덮고 능선을 휘감아 돌다 저 들녘 까지 이르러 온통 하얀 솜이불을 깔아놓은 듯 펼쳐지는 운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잠시 인간의 세계를 벗어난 것같은 착각을 일으킬 만큼 신비롭기 그지없다. 노고단은 지리산 종주 코스의 출발점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 임걸령 - 반야봉 - 토끼봉 - 벽소령 - 세석평전을 거쳐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산 능선 길은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밟아보고 싶어 하는 영원한 동경의 코스다. 봄에서 초여름까지 노고단의 비경으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원추리 꽃이다.
* 3경 - 반야낙조(般若落照)
해발 1,732m의 지리산 제 2봉인 반야봉은 멀리서 바라보면 여자의 엉덩이 같이 보인다는 봉우리로 전남과 전북의 경계지역이기도 하다. 노고단에서 바라보면 바치 여인의 젖가슴처럼 봉긋 솟아있는 봉우리다. 노고단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3시간 30분가량의 산행코스인 반야봉은 사방이 절벽지대로 고산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반야봉에 오르는 기쁨은 낙조(落照)의 장관에서 찾는다.
여름날 해거름에 반야봉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서쪽하늘의 황홀한 낙조는 아마도 자연이 인간을 위해 베푸는 시시각각의 축제 중에서도 가장 경건하고 가장 의미심장한 축제가 아닐까? 때로는 구름바다를 검붉게 물들이며, 때로는 마지막 정염을 불사르는 선홍의 알몸으로 서서히 스러지는 태양과 마주하는 순간, 사람들은 아득히 먼 시원(始源)의 날에 시작된 한 편의 장엄한 드라마가 끝난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 4경 - 벽소명월(碧宵明月)
벽소령은 빼어난 경관과 지리산 등줄기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입지 조건에서 밀림과 고사목 위에 떠오르는 달은 차갑도록 시리고 푸르다. 시인 고은 씨는 "어둑어둑한 숲 뒤의 봉우리 위에 만월이 떠오르면 그 극한의 달빛이 천지에 부스러지는 찬란한 고요는 벽소령 아니면 볼 수가 없다."고 찬탄하였다.
* 5경 - 연하선경
세석평전과 장터목 사이의 연하봉은 기암과석과 층암절벽 사이로 고사목과 어우러진 운무가 홀연히 흘러가곤 하여 이곳에 앉아 있으면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천왕봉을 향해 힘차게 뻗은 지리산의 크고 작은 산줄기 사이사이에는 온갖 이름모를 기화요초가 철따라 피어 지나는 이의 마음을 향기롭게 한다.
이끼 낀 기암괴석 사이에 피어 있는 갖가지 꽃과 이름모를 풀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지리산과 어우러져 마치 신선의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고산준령 연하봉의 선경은 산중인을 무아의 경지로 몰고 간다.
* 6경 - 불일현폭(佛日顯瀑)
청학봉(淸鶴峰과) 백학봉(白鶴峰) 사이의 험준한 골짜기속의 깊은 낭떠러지 폭포로 오색무지개가 걸리고 백옥 같은 물방울이 서린다. 60m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장쾌한 폭포 소리가 온몸을 파고드는 냉기는 몸과 마음이 얼어붙는 긴장감마저 느끼게 한다.
* 7경 - 피아골단풍(직전단풍,稷田丹楓)
10월 하순경에 절정을 이루는 피아골 단풍은 현란한 "색(色)의 축제" 다. 사람의 손으로는 빚어낼 수 없을 온갖 색상으로 채색한 나뭇잎들, 그들이 한데 모여 발산하는 매혹적인 자태는 능히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산도 붉게 타고, 물도 붉게 물들고, 그 가운데 선 사람도 붉게 물든다는 삼홍(三紅)의 명소. 피아골의 단풍은 가을 지리산의 백미다. 조선시대 유학자 조식 선생은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은 사람은 단풍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할 정도로 단풍이 좋다.
조식 선생은 "온 산이 붉고 물이 붉어서 사람 마음도 붉다"는 삼홍시를 읊었다고 한다.
* 8경 - 세석철쭉(細石)
봄이면 난만(爛漫)히 피어나는 철쭉으로 온통 꽃 사태를 이루는 해발 1,600m의 세석평전은 30리가 넘는 드넓은 평원으로 남녘 최대의 고원이다. 이름 그대로 잔돌이 많고 시원한 샘물도 콸콸 쏟아지는 세석평전에는 수십만 그루의 철쭉이 5월초부터 6월말까지 꽃망울을 터뜨리며 한바탕 흐드러진 잔치가 벌어진다. 핏 빛처럼 선연하거나, 처녀의 속살처럼 투명한 분홍빛의 철쭉이 바다처럼 드넓게 펼쳐지는 절정기에는 산악인들의 물결로 세석평전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시인 김석은 세석계곡 훈풍이 꽃 사이로 지날때마다 꽃들의 환상적이고 화사한 흔들림, 그것은 남녘나라 눈매고운 처녀들의 완숙한 꿈의 잔치라고 이곳의 철쭉을 노래하기도 했다.
지리산 철쭉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처절하도록 서럽게, 그러나 꺾이지 않는 의지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진달래와 더불어 봄의 지리산을 단장하는 명물로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9경 - 칠선계곡(七仙溪谷)
지리산 "최후의 윈시림" 지대로 자연자원의 보고이다. 계곡 전체가청정한 선경으로 일일이 그 이름조차 명명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 10경 - 섬진청류(蟾津淸流)
산이 높으면 물도 맑다. 지리산을 그림자로 한 채 남서로 감돌아 남해에 이르는 섬진강은 그 물이 맑고 푸르러 한 폭의 파란 비단을 펼쳐 놓은 듯 하고 앙쪽에 펼쳐진 백사장도 하얀 명주천을 깐 듯 아름답다. 급류를 타고 오르내리며 은어떼를 낚는 어부의 모습도 아름답기만 하다. 지리산 산자락을 그림자로 한 채 남해로 흘러드는 섬진강의 푸르고 맑은 강물과, 하연 백사장과 더불어 이강에 뜬 돛단배는 지리산 역사와 사연들을 들려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