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
박지일
약력
1960년 부산 출생
부산상업고교 66회 졸업 동아대학교 회계학과 졸업 연극
80-86년 동아대학교 극예술연구회 활동
- <옛날 옛적 훠어이 훠이>, <에쿠우스> 등 10여편
출연
86년
부산 가마골 소극장 창립멤버, 극단 부두극장 등에서 활동.
<죽음의 푸가>로 데뷔
86~92
<정의의 사람들>, 사뮤엘 베케트 1인극 <대사없는 1막>,
<히바쿠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멕베드>,
<숲속의 방> 등 15편 출연 연극에 대한 꿈을 접고 대학전공을
살려 서울에 있는 모기업에 취직이 되어 연수 준비를 하던 중 연출가
채윤일에 의해 극단 산울림의 <죄와 벌> 공연에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역으로
전격 캐스팅이 되면서 연극활동을 재개. 그 이후 현재까지 연극 배우로
활동 중 92년~현재
극단 산울림, 열린무대, 신화, 연우무대, 쎄실, 서전 등에서 <죄와
벌>, <박사를 찾아서>, <슬픔의 노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윤동주>, <눈물의 여왕>, <물고기 남자>,
<밤으로의 긴여로>, <세자매> 등 40여편의 고전명작과 창작극에서
지식인, 예술가 또는 혁명적이면서 낭만적 이미지가 복합된 역할을 많이
했음. 물론 편안하고 코믹한 역할도 한 적이 있음.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
<금홍아 금홍아>, <약속>, <쉬리> 등 수 편 출연
TV
KBS 전쟁 50주년 특집 2부작 <유리구슬> KBS TV문학관 <그곳에
바람이 있었네> 주연 KBS 드라마시티 <포구> 주연
수상경력
93년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 - 극단 산울림 <죄와
벌> 96년 서울연극제 남자 연기상 - 극단 열린무대 <슬픔의
노래> 99년 한국연극협회 올해의 우수연극 연기자상 - 극단 연극세상
<물고기 남자>
이메일
: 3Dmagicm@thrunet.com">magicm@thrunet.com
홈페이지 : http://user.chollian.net/~magicm3
일시 : 2001년 5월 11일 장소 : 대학로 방송통신대학교
교정
최근에
공연된 <나비는 천 년을 꿈꾼다>(극단 떼아트르 노리, 우현주
연출)에서 '동혁'이란
역할을 맡았었는데 자체 평가를 한다면? 박지일 : 언제부터인가 연출가와 배우의 역할이 전문화되면서
나름대로의 고정관념때문에 집단창작이 아닌 이상 배우는 연출가의 지시에
의해 연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요즘같은 PD시스템(극단 소속의 단원들이 한 편의
연극을 동인제 개념으로 만들어 가는 것과 달리 소속이 서로 다른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모여 연극을 하나의 프로젝트 개념으로 만들어가는
제작방식)하에서는 더더욱 그러한데
배우는 연출자가 시키는대로 연기만 하게 되고 반면 연출가는 배우를
제어하고 조절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작업은
연습 중에 연출가와 배우들 상호간의 의견 교환이 상당히 많이 이루어졌다.
작품 전반에 관한 배우들간의 심층적인 의견 교환과 자유로운 연습 분위기는
작품의 질적인 측면을 많이 향상시켰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작업은 상당히 좋은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작업을 통해 한가지 깨달은 점이 있는데 머리 속의 이론이 현장에서
펼쳐지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험'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떠한 작품을 만나더라도 쉽게 끄집어 낼 수 있는 '경험'이란 자산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사실 공연의 성과에 대한 기대는 컷지만
관객이 적게 든 점에 대해선 아쉬움이 남는다. 다소 통속적이고 진부한
소재지만 높은 연극성과 질적으로 좋은 측면을 두루 갖춘 작품이었기에
작품을 하고 나서는 "뭔가 하나 해냈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의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박지일 : 작품 전체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여러 가지
표현주의적 기법 같은 연극적 기법을 많이 사용한 공연이었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적용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스타니슬라브스키
메소드가 많이 적용되었다. 연기에 대한 아무런 생각없이 연출가를 따른다면
어떤 면에서는 효과적일진 모르지만 이번 작업의 배우들은 어느정도
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있는 중견 연기자들이었기 때문에 연출과의
많은 대화와 의견교환에 의해 자신의 연기를 발전시켜 나갔다. 배우들
또한 서로 많은 의견을 나눴다. 이제까지 난 심각하고 진지한
역할을 많이 해와서 결국에는 내가 보여질 때 다 비슷한 모습으로 비쳐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일종의 딜레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는 또 그럴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되는데
어느 순간 무대 위에서 지금보다 더 연극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영상적 연기가 조화롭게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비는
천 년을 꿈꾼다>가 끝나자마자 <슬픔의 노래>(극단 김동수
컴퍼니, 김동수 연출)에 출연을 하게 됐다. 힘들지 않은가? 박지일 : 매우
힘들다. <나비는 천 년을 꿈꾼다> 공연을 하면서 외적으로 힘든
것도 있었지만 내적으로도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었다. 사실 많이 지쳐있다.
살도 4∼5kg 정도 빠졌다. <슬픔의 노래>는 더욱 힘든 작품인데
충전시기없이 바로 들어가게 되서 굉장히 힘든 상태이다. 그렇지만 워낙
하고 싶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작업에 임하고 있다.
<슬픔의
노래>는 96년도 서울연극제에서 박지일씨에게 연기상을 안겨 주었던
작품이라 감회가 새롭겠다. 새롭게 작품에 임하는 각오가 있다면? 박지일 : <슬픔의
노래>는 95년도 말부터 시작해서 세 차례의 공연을 한 작품인데 개인적으로
역할에 대해 굉장히 애정이 가는 작품이다. 늘 다시 하고 싶었던 작품이고
다시 하게 되서 기쁘고 설레고 한편으론 부담감도 크다. 에너지가 많이
소진된 상태라 남은 연습기간 동안 '생활의 단순화'-연습하고 먹고 쉬고
하는 그 자체-를 통해 에너지를 보충할 생각이다.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박지일 : 고등학교 시절 방송반 활동을 했다. 그 시절
방송드라마용으로 10분 정도 분량의 방송 드라마 극본을 직접 쓰고 성우로
참여해서 발표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연기 경험이 내가 연기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된 것 같다. 그때부터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배우의 내면에는 주목받고 싶은 생(生)에 대한 갈망이 내재되어 있는데 나의 내면에도
그런 갈망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같다. 그 이후 대학에 들어가서
연기에 대한 매력으로 연극반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
연극반 시절 연기 이외의 다른 스탭에는 관심 없었나? 박지일
: 연출을 한 적도 있고 음향, 조명 다 경험해 봤지만 결국 연기자로
남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학창시절
재미있는 에피소드 없나? 선배들한테 몽둥이(빠따) 맞아 본 적은? 박지일 : 고등학교 방송반 시절부터 몽둥이를 맞는
일이 있었다. 일제시대부터 있었던 전통적인 학교였는데 특별활동 시절
방송반은 군기가 아주 강했다. 그래서 사실 엄청 맞았다. (웃음) 대학에
들어가서는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까 맞는 일은 없겠지하고 생각했었는데
연극반 선배들에게 또 맞는 일이 생겼다. 기수별로 규율이 엄격해서...
연극을 대하는 자세, 무대를 대하는 태도 등등 그러한 이유로 맞았던
것 같다. 몽둥이 얘기가 나왔으니까 좀 더 말하겠다. 군대를 가서도
많이 맞았고 제대 후 처음 부산의 '부두극장'과 '연희단거리패'와 함께
활동을 했었는데 그때 가마골 극장에서 이윤택씨와 첫 작품인 <죽음의
푸가>를 공연할 때다. 극장 앞에 앉아서 이제는 내가 더 이상 맞을
일이 없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그로부터 정확하게 약 30초 후 몇 사람이
지각했다는 이유로 집단으로 연습태도 불량을 이유로 이윤택씨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몽둥이를 맞은 적도 있다. 이윤택씨는 지금도 가끔 단원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집단으로 말고 개인적으로 자기한테 맞지
않은 사람은 박지일 뿐이다."라고. 나도 한 두 번 정도 후배들
몽둥이 친 적이 있다. 술 먹고 무대 뒤에서 오줌 싼 후배였는데...(웃음)
이제까지
정말 여러 편의 연극에 출연하였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박지일
: 대학 연극반 시절 <에쿠우스>에서 알런 역을 했는데 연습하면서...
뭐랄까몸을 사리지 않는 과도한 열정 때문에 허리를 다친 적이 있다.
공연 전날 밤샘 연습을 할 때다. 강의실 콘크리트 바닥에서 미친 듯이
연습을 했다. 아무런 요령도 없이... 알런이 한쪽에 쪼그려 앉아 있다
일어나 뛰어가는 장면에서 막 일어나 뛰어갈 때 허리가 삐끗했는데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공연은 해야 했고... 결국 새벽에 병원에서
진통제를 맞고서 공연을 강행했다. 이후로 그때 다친 허리가 계속 재발하곤
했다. 특히 군에서 그 후유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지금은 선무도(禪武道, 불교의 전통 수행법)로 치료를 하게 되면서 많이 나아진 상태다.
에너지는 복부와 척추 쪽에서 나오는데 허리 때문에 힘들지만 치료 후
많이 좋아져서 큰 문제는 없다. 오히려 신체를 운용하는 감각을 알게
되니까 내 기본 체격과 성량 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다음은 서울 무대에 데뷔할 수 있었던 <죄와
벌>이란 작품이다. 그 다음은 <슬픔의 노래>...
이
작품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박지일 : <에쿠우스> 1막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뿐만
아니라 연기하고 있는 나 자신도 엑스타시, 즉 내적 에너지가 발산되는
느낌을 갖게 된다. 공연이 끝나면 쓰러질 정도로 모든 에너지를 무대
위에서 소진하는 것이다. 이때 난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고통의 극점까지
갔을 때 느끼는 쾌감! <슬픔의 노래>도 이런 부분이 있다. 10분
가까이 되는 퍼포먼스가 있는데 모든 에너지를 소진 시킬 수 있는 그런
장면이다. 일상에서의 나는 비교적 부드럽고 스스로를 그렇게
많이 드러내 보이는 것이 없는 편이며 오히려 안으로 감추려고 하는
편이다. 예민하니까... 그런데 무대 위에서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역할을 만났을 때가 좋다. 연기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외적으로 끼가 너무 넘쳐서 정리할 필요가 있는 연기자,
다른 하나는 끼가 넘쳐 보이진 않지만 내재되어 있는 끼가 많은 연기자다.
나의 경우는 후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재된 끼를 끄집어 낼 수 있는
역할을 만났을 때가 좋다.
연기관을
얘기해달라.
박지일 : 특별히 어떤 연기관이라기 보다는 '난 이런 연기자가 되고
싶다'라는 차원으로 얘기를 해보겠다. 우선 집중력이 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 연기의 출발은 집중력에서부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연기자는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연극이란 사람을 만나는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만나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생활의
유연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더불어 어떤 작품을 만나든 그 작품에
가장 적합한 형식을 적용할 수 있는 유연성 또한 갖추고 있어야 한다.
리얼리즘은 리얼리즘 연기답게, 작가나 연출가가 특별히 생각하는 실험적
작품은 또 그 작품의 성격에 맞게... 실험성 강한 작품을 하면서 리얼리즘을
할 순 없지 않은가? 난 내가 배우라는 사실을 늘 잊어 버리지
않는다. 배우로서 나 자신을 늘 인식하고 있다.
아까
보니까 그로토프스키의 "가난한 연극"을 보고 계시던데? 연기를
위해 특별히 공부하는 것은 있나? 박지일 : 난 대학교 연극반 출신이라 그 당시 연극반에서 가진
연극 스터디 이외에는 특별히 제도적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거의 경험적이고
선험적이며 감각적이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아직도 혼란스럽다. 그래서 연극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교육기관에 진학해 볼 생각도 갖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렵다.
연극원에서 공부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도 있었지만 학비문제 같은
현실적 문제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연기 공부는
특별히 따로 있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 작품할 때 자료를 많이 보고
작품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는데 그런 것이 일종의 연기 공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몸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마임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
사실 예전에는 광대가 되고 싶었거든... 줄타고 공굴리는 것 같은...
그래서 아크로바틱 같이 신체 사용을 많이 필요로 하는 연극을 할 때
나이에 비해 몸이 유연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그로토프스키는
이번 작품에 필요해서 보고 있다.
박지일씨는
소위 잘나가는 연극배우인데 연봉이 어느 정도 되는지 궁금하다. 박지일 : 연극배우의
연봉? 연극배우가 1년에 3편 정도 출연하면 1년을 다 보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순수하게 연극만 해서 1년에 버는 돈이라고 하면 대략 3편
정도 출연해서 버는 것인데 나의 경우는 공연의 규모에 따라 상이성은
있지만 대략 1,000∼1,200정도이다.
굉장히
잘 버는 편이다.
박지일 : 그렇다. 편당 400정도. 어느 작품은 500, 어느 작품은
200... 지금 출연하고 있는 <슬픔의 노래> 같은 경우는 극단 작품이라
타극단의 작품에 출연할 때와는 조금 다르다.
스승이
있다면? 혹은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사람은? 박지일 : 부산
연극 시절 극단 부두극장 대표였던 이성규님, 그리고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당시 난 막연하게 연기자가 되겠다는
꿈만 있었지 정작 내가 어떤 연극을 해야 할지, 어떤 연기자가 되야
할지 확신이 없었는데 두 분은 나로 하여금 그런 생각에 몰두할 수 있게끔
해준 분들이다. 이분들의 연극에 대한 열정과 치열함을 보고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자신이
생각하는 연기자로서의 강점과 단점은? 박지일 : 외모에 비해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고 보다시피 내가 약간 왜소한 편인데 이런 용모가
단점이라면 단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난 집중력과 유연성이
있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결혼은
했나? 박지일
: 애하고 살고 있다. 중1이다. 부산에 살고 있었는데 엄마가 재혼하면서
나한테 왔다. 애한테 아빠는 연극배우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애도 아빠가 연극배우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고. 애가 끼가
무척 많다. 애한테 게으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봐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얼마 전에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애한테 항상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재혼은?
박지일 : 돈도 좀 잘 벌고 집도 좀 나아지고 하면 재혼해야지...
연기자로서의
꿈은 무엇인가?
박지일 : 연기자로서의 꿈이라기보다는 그냥 생활인으로서의
꿈인데 아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연극배우로 남고 싶은 것이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 <쉬리> 등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한 걸로 알고
있다. 영화 연기와 연극 연기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있나? 박지일 : 연극
연기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영상 연기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 그리고 영화 연기라는 용어보다 영상 연기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방송도 있으니까... KBS TV 문학관 <그곳에 바람이 있었네>에서
스님역으로 출연했었는데 그때 많이 배웠다. 영상 연기는 순발력이 있어야
하고 집중력을 굉장히 많이 필요로 한다. 전체 씬에 대한 파악과 커트별
분석은 물론 빠른 시간내에 몰입해서 표현해 낼 수 있는 순발력과 카메라
워크 같은 매체적 특성에 대해 빨리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연극보다
영상은 기술적 연기를 더 많이 필요로 한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은?
박지일 :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좋아하고 인연도
많다. 특히 <죄와 벌>로 시작되는 그의 5대 장편소설 중 제3작에
해당하는 <악령>이란 작품에 스타브로긴이라는 어린 소녀를 죽음으로
몰아 넣는 악마적 인간이 등장하는데 그런 역할을 한 번 해보고 싶다.
이 역할은 이전에 내가 맡았던 역할들과의 연계성이 있는 역할이기도
하다. 그리고 점점 나이가 들면서 젊었을 때 해봤던 역할의 상대역을
해보고 싶어진다. 예를들어 <에쿠우스>에서는 알런의 상대역인
다이사트, <죄와 벌>에서는 포르피리(예심판사) 같은... 창작극은
외국의 고전처럼 늘 할 수 있는 작품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때그때
시류에 맞는 작품이라 아쉽다. 사람들이 내가 심각하고 진지한
역할을 많이 해서 그런지 날 심각한 연기쪽으로만 생각하는데 무대 위에서
천방지축 뛰놀 수 있는 코미디 연기를 한 번 해보고 싶다. 기회가 되면
놀이성이 많은 연극이나 잘 짜여진 코미디를 한 번 해보려고 한다. 아참
뮤지컬도 한 번 해보고 싶다.
노래
잘하나?
박지일 : 잘한다.
춤은? 박지일 : 그건
좀 딸리겠지. 나이가 있으니까... (웃음)
올해
계획은?
박지일 : <슬픔의 노래>까지 따지면 작년 12월말부터 올 상반기까지
연속으로 세 편에 출연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슬픔의 노래>
끝나면 잠시 쉬는 기간을 가지려고 한다. 올 하반기 계획은 아직 특별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가을쯤 또 뭔가 하게 되겠지.
연기를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박지일 : 대한민국에서 연극배우로 산다는 것은 아주
비참하고 절망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비참함과 절망을 극복하고
계속 할 수 있다면 연극배우를 하라. 자신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를
만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하라. 연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회의해 보고 정신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면 연극에 대한 힘이
생겨난다. 그렇지만 자칫하면 청춘을 허비할 수 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모적인 시간이 될 수 있다. 연기를 지망한다면 극중
인물과 연극배우, 그리고 생활인은 서로 다른 거라는 점을 명심하라.
연극하는 사람은 인간적으로 성숙해야 한다. 무대 위에서 다 까발리는건데
스스로 부끄럽지 않아야한다.
연극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박지일 : 그런 생각을 잊고 산지 정말 오래다. 연극이란
뭔가?
내가
물었다 박지일
: '연극이란 무엇인가'는 '내게 있어서 연극은 어떤 의미인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별 의미없다. 내 인생이지, 인생 그 자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연극을 그만 두려고 수도 없이 빠져나오려고 했다. 이건 절망이다!라고
생각하고. 그러면서도 이 길을 가는데는 어떤 운명적 힘이 작용하는
것 같다. 그렇다. 내게 있어서 연극은 숙명이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건데 연극이란 '노래'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노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며 어떤 울림을 주기도 하고 우리의 정서를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다. 단지 멜로디와 가사 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끝으로
otr 네티즌들에게 한마디... 박지일 : <나비는 천 년을 꿈꾼다>는 네티즌들로부터
좋은 평을 이끌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홍보가 잘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아직까지 네티즌들이 어떤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연극에 대한 애정을 갖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어떤 교류의 장이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 연극에
대한 애정없이 자신의 공명심을 떨치기 위해 글을 쓰려고 해선 안될
것이다. 애정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연극은 우리들 생김새만큼 다양하다.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습실로부터
빨리 오라는 연락을 받고 나서 박지일님은 서둘러 연습장으로 향했다.
그의 발길이 또 하나의 명연기를 예견하듯 힘차고도 당당해 보였다.
예지를 머금은 그의 눈빛처럼 항상 빛나는 연기를 기대해 본다.
짬을 내주신
박지일님에게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취재 및
정리 박홍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