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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령 제227호를 올리면서
제2차 세계대전 가운데서 유독 동부전선은 전쟁보다 살육, 학살, 전멸, 증오, 광기 등의 모습이 먼저 연상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전쟁이든 이러한 요소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 중에서도 독·소전이 말살전쟁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것은 최고 수뇌부들이 수위에 제한을 두지 않고, 노골적으로 상대 세력의 멸망을 주장하였던 행위가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을 것이며,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명령 제227호도 같은 범주에 들어가는 예시일 것이다.
역사, 전쟁사, 군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접하였을 이 악명 높은 명령은 그러나,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병사들에게 가혹하게 적용되지는 않았다.
소비에트의 병사들은 이전부터 가혹한 처분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왔던 터라, 어떠한 공포스러운 명령도 이들에게는 큰 영향을 줄 수 없었다. 도리어 몇몇 문장만을 발췌한 다음,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명령으로 둔갑시켜 병사들의 사기를 고양하는데 사용하여 큰 효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명령 227호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장교들이었다. 이 명령서의 주된 목표는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 장교들에 대한 징계 방침을 구체화 시킨 것으로, 이전까지 단편적으로 하달되어졌던 징계 방침을 포괄적인 내용으로 정립시킨 것이며 이는 형벌 부대로 명시되었던 것이다.
사병들이 대상이었던 부대도 있었지만, 이들은 즉결처분과 함께 병행된 반면 장교들은 모두 이 죽음의 부대에 배속되어 피로써 속죄해야만 하였는데 여기에는 어떠한 고위 장교도 예외가 인정되지 않았으며, 정치 지도 위원이나 심지어 내무 인민 위원까지도 포함시키는 징계 명령서였던 것이다.
당시 상황은 이러한 명령서가 나올만큼 절망적이었다.
1942년 6월 히틀러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소비에트 남부를 공격해 오자, 주력을 중부전선에 집중시켰던 붉은 군대는 혼란에 빠졌으며 특히 남부지역의 요충지인 로스토프가 함락당하자 병사들은 공포에 휩싸인 체 스스로 자해하거나, 고의로 무기를 유기하거나, 무작정 동쪽을 향해 도망쳤고, 장교나 정치 지도 위원들은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먼저 달아나기도 하였다. 이에 분노한 스탈린은 참모 총장 대리 바실레프스키에게 1941년 8월에 최고 사령부 명의로 하달한 명령 270호를 기초로 한 새로운 명령서를 만들도록 하였고 당일 저녁, 명령서 초안을 받은 그는 일부 문장을 직접 수정한 뒤 서명, 국방 인민 위원회 명의로 발령하였다.
아래에 소개할 명령서 중 "『』"으로 강조한 문장은 당시 스탈린이 직접 수정하였거나 그가 선호하는 문구로 알려진 부분이다. 아울러 이 명령서에 기초가 된 최고 사령부 명령 270호를 같이 개재하여 비교 분석할 수 있게 하였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역사, 전쟁사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되고자 이 글을 올린다.
2. 명령 제227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국방 인민 위원회 명령 227호
1942년 7월 28일 모스크바
『적은 끊임없이 병력을 투입하여 손실에는 상관하지 않은 체, 소비에트 연방 깊숙히 침범하면서 새로이 점령한 지역의 도시와 마을들을 노략질하고 초토화시킬 뿐만 아니라, 조국의 인민들을 약탈하고, 강간하고, 학살하고 있다.』지금도 보로네츠, 돈 강, 남부 러시아 , 북부 카프카스 수로를 중심으로 전투가 한창이다. 독일 침략자들은 스탈린그라드와 볼가 강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이는 쿠반과 북부 카프카스를 점령하여 석유와 곡창지대를 강탈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보로실로프그라드, 스타로벨스크, 로스소쉬, 쿠비얀스크, 벨루이키, 노보체르카스크, 로스토프가 이미 적의 수중에 떨어졌으며, 보로네츠도 절반이나 빼앗겼다. 게다가 『남부전선의 병력중 일부가 불평분자들의 소요에 혹하여 지휘체계를 무시하고 제대로 저항 한 번 안한 체, 수치스럽게도 로스토프와 노보체르카스크에서 도망쳐 버렸다.』
조국의 인민들은 붉은 군대를 사랑하고 존경하여 왔다. 그러나 이번의 사태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렸을 뿐만 아니라, 붉은 군대의 긍지를 저버린 행위로써 이로 인해 수많은 인민들이 독일 치하에 버림받았으며 살아남은 자들도 군을 저주하며 동쪽으로 피난하고 있다.
『일부 몰지각한 자들은 우리는 광대한 영토와 수많은 인구가 있고, 식량 또한 풍족하기 때문에 동쪽으로 더 물러나도 괜찮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이 전선에서 저지른 부끄러운 행위를 정당화하지만, 이는 전혀 말도 안되는 억지이며 명백한 이적행위이다.』
모든 지휘관과 병사들 그리고 정치 지도 위원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에게 무한한 자원 같은 것은 없다. 소비에트 연방의 영토는 광대하지도 않고, 수많은 인민의 절대 다수가 노동자, 농민,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이며 아내와 형재 그리고 어린 자식들이다. 이 순간에도 적들은 점령한 조국의 영토에서 곡물과 자원을 약탈해가고 있으며 우리의 산업시설을 무단으로 사용하여 자신들의 무기와 탄약을 만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발트 해 연안과 도네츠크 등 우리는 수많은 영토를 빼앗겼으며, 이는 인민과 곡물, 철강 및 각종 산업시설의 감소를 의미한다. 즉, 지금의 우리는 적에 대한 인구나 곡물수급의 우위를 잃어버린 상태이다. 더 이상 후퇴를 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조국을 파괴하는 행위이다.』한 뼘의 영토를 포기할 때마다 적은 더욱 더 강성해지고, 조국과 인민의 투쟁의지는 그만큼 꺾이게 된다.
휴전협상 따위는 있을 수 없다. 후퇴도 중단해야 한다. 아직 우리에게는 발을 딛고 싸울 수 있는 영토가 있고, 거기에는 많은 자원과 인구가 있으며 충분한 양의 곡물이 생산되고 있다. 휴전협상 따위는 근거없는 풍문이며 이적행위 그 자체이다. 만약 우리가 항쟁을 멈춘다면 우리의 곡물, 연료, 철강, 자원, 공장을 비롯한 산업시설과 철도를 고스란히 강탈당해야 한다.
이 시각 이후 후퇴는 없다. 『단 한걸음도 물러서지 말자! 이것이 앞으로 우리의 모토가 되어야 한다.』
조국의 땅 한 조각, 진지 하나,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바쳐서 소비에트의 영토 1미터가 남아도 끝까지 지켜야 한다. 지금 조국은 고난의 시기에 있다. 물러서려 하지말고, 희생을 두려워 말고 적들을 분쇄해야 한다. 독일놈들이 무적이라는 것은 유언비어이다. 놈들은 전선을 지나치게 확장하였고 그 위력도 다 하였다. 지금이야말로 반격을 가할 절호의 기회이다.
과연 우리가 적들을 서쪽으로 날려 버릴 수 있는가? 물론이다. 지금 후방에서는 수많은 인민들이 우리를 위하여 신형 전차를 생산해 보내주고 있으며, 완벽한 작전이 입안되었고, 박격포와 각종 야포를 갖춘 포병대가 지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최대 약점은 모든 사단, 연대, 중대 및 기갑 부대와 전투 비행단 등에 만연한 군기와 군율의 문란이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엄격한 군기와 엄정한 군율은 당연한 것이다.
『더 이상 무단으로 거점을 포기하는 지휘관, 내무 인민 위원 및 정치 지도 위원과 해당 부대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일부 불평분자나 겁쟁이들이 병사들을 현혹시키거나 멋대로 후퇴하는 이적행위를 방관하는 지휘관, 내무 인민 위원 및 정치 지도 위원도 용납치 않을 것이며, 불평분자와 겁쟁이는 즉결처분될 것이다.』
모든 지휘관과 병사들 그리고 정치 지도 위원들은 강철같은 군기과 군율을 유지하여 해당 부대의 최고 사령부 명령없이는 결코 철수하여서는 안된다. 이를 어길 경우에는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 및 내무 인민 위원과 정치 지도 위원을 포함한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조국의 배신자로 간주한다.
지난해 겨울, 붉은 군대에게 무너졌던 독일놈들은 자국 병사들 가운데서 의무를 저버린 겁쟁이나 미친 놈들로 구성된 100 여개의 형벌 중대를 만들어 전선의 가장 위험한 지역에 투입시켜 피로써 자신의 죄를 씻게 하였는데, 이는 나름대로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죄를 저지른 장교들로 구성된 10 여개의 형벌 대대를 편성하여 이전 계급과 서훈을 모두 박탈한 뒤, 역시 피로써 자신들의 죄를 씻게 하였으며, 이른바 저지 부대라는 것을 만들어 싸울 의지가 의심스러운 사단의 후방에 배치하여 적전 이탈자, 무단 항복 및 불평분자들을 즉결 처분하였다. 상기의 조치들은 조국을 수호하는 것이 아닌, 남의 땅에서 강제로 싸우도록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작년 겨울동안 매우 효율적인 방안이었음이 인정된다. 이에 비해 우리는 조국의 배신자들에 대한 처리가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왜 적에게서 유익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훌륭한 선각자는 적에게서도 배울 것은 배우고 그것을 토대로 승리를 쟁취하였다. 본인은 우리도 그리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붉은 군대 최고 사령부 명령:
1. 모든 전선군 사령관 및 전선군 사령부에게 명함.
a)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후퇴를 생각하지 않도록 예하 부대를 철저하게 교육시켜야 한다. 더 이상의 후퇴는 없으며 이는 곧 이적 행위이다.』
b) 『전선군 사령부의 명령 없이 임의로 후퇴한 예하 부대 지휘관은 즉시 직위해제 시킨 후, 최고 사령부로 소환하여 군사법원에 회부한다.』
c) 『전선군 휘하에 1~3개의 - 신뢰할 수 있는 인원으로 구성된 - 형벌 대대를 - 병력은 800 명으로 - 편성, 임무를 저버린 비겁한 자들 가운데서 고위 장교와 정치 지도 위원 등을 이곳으로 이송한다. 이들은 전선의 가장 위험한 지역에 투입시켜 피로써 조국에 속죄토록 한다.』
2. 모든 군 사령관 및 군 사령부에게 명함.
a) 군 사령관의 명령없이 임의로 후퇴한 예하 부대 지휘관은 즉시 직위해제 시킨 후, 전선군 사령부로 소환하여 군사법원에 회부한다.
b) 군 사령부 예하에 3~5개 부대를 - 독전대로 - 편성, 해당 부대는 - 저지 부대로 명명 - 전투의지가 의심스러운 사단 후방에 배치시켜, 혼란과 무질서한 후퇴를 조장하는 겁쟁이와 불평분자들을 즉결처분하여 충성스러운 병사들이 조국 수호의 의무를 다 할 수 있도록 한다.
c) 군 사령부 예하에 5~10개의 - 신뢰할 수 있는 인원으로 구성된 - 형벌 중대를 편성, 임무를 저버린 겁쟁이와 미친 놈들을 이곳으로 이송한다. 이들은 전선의 가장 위험한 지역에 투입시켜 피로써 조국에 속죄토록 한다.
3. 모든 군단 및 사단장, 정치 지도 위원에게 명함.
a) 군단장의 명령 없이 임의로 후퇴한 예하 부대 지휘관은 즉시 직위해제 시킨 후, 전선군 사령부로 소환하여 군사법원에 회부한다.
b) 동원 가능한 병력을 - 독전대로 - 편성, 해당 부대는 - 저지 부대로 명명 - 예하 부대가 강철같은 군기와 군율로 무장하게끔 한다.
이 명령은 모든 중대, 대대, 기갑 부대 및 본부대에 하달한다.
국방 인민 위원장
요지프 스탈린
3. 최고 사령부 명령 제270호
최고 사령부 명령 270호는 1941년 8월 16일, 독일의 바바롯사 작전 당시 악화된 남부전선에서 자신의 승인 없이 이루어진 후퇴에 분노한 스탈린이 구술한 명령으로 약간은 충동적인 모습이 엿보여지는 문건이다. 그래서인지 스탈린은 명령서에 서명한 후 그대로 두었다가 몰로도프, 부죤늬, 보로실로프, 티모셴코, 샤포시니코프, 주고프 등 국가 수호 위원회와 최고 사령부의 수뇌부들의 이름을 연명토록 한 다음 발령하였다.
제28군 사령관 카찰로프 중장은 비겁하게도 적에게 항복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의 본부대 병력과 주력은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데 성공하였다. 포네델린 소장과 제13사단의 키릴로프 소장도 적에게 항복하였다. 이는 매우 수치스러운 행위로써 겁쟁이나 배신자는 엄벌에 처해야 마땅하다.
이에 본인은 다음과 같이 명한다.
1. 붉은 군대의 표식을 떼어내고 항복하는 자들은 탈주병으로 간주, 즉결처분한다. 또한 이런 족속들의 가족 역시 조국에 대한 충성의 서약을 어긴 반역자와 한 통속이므로 모두 체포하여야 한다.
2. 포위되었어도 끝까지 싸워 아군 전선으로 귀환해야 하며 항복하는 자들은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응징해야 한다. 또한 이런 족속들의 가족은 국가로부터의 모든 혜택을 박탈한다.
3. 용감무쌍하게 싸운 이들은 반드시 진급시킨다.
이 명령은 모든 중대, 대대, 포병대에 하달한다.
○ 참고 문헌
헬무트 알트리히터, 최대희 옮김, 『소련 소사』, 창작과 비평, 1997.
드미트리 볼코고노프,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옮김, 『스탈린』, 세경사, 1993.
리처드 오버리, 류한수 옮김,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지식의 풍경, 2003.
안토니 비버, 안종설 옮김,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서해문집, 2004.
(출처 : '죽음의 명령 제227호' - 네이버 지식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