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5주년 ‘한글날’이다. 한글은 그 과학성과 창의성에서 세계 어느 나라 문자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우리 민족의 둘도 없는 큰 자랑이며 세계 사람들이 알면 알수록 놀라는 우리 문화재이다. 또한 ‘한글’은 과학성과 창의성이라는 외면적 가치 뿐만 아니라 세종께서 ‘한글’을 창제해 반포하신 목적이라 할 수 있는 애민·자주·실용 정신이라는 내재적 가치로 더욱 그 빛을 발하는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글’의 창제와 그 반포에 담긴 이러한 뜻은 주류 미래 학자들에 의해 ‘지식정보사회’로 불리는 21세기에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을까.
현재 눈부신 정보통신 기술발전의 격랑 속에서 ‘한글날’을 맞아 세종께서 ‘한글’을 창제, 반포하면서 품으셨던 그 넓고 깊은 뜻을 곰곰이 되짚어 보면서 ‘전자민주주의의 발전’과 ‘창의성 있는 문화상품’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전자 민주주의란 ‘다수 국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와 이를 위한 국민 참여에 의한 국민의 결정이 정보통신 기술 발전에 바탕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만들어진 개념이라 생각한다. 즉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에 따라 대다수 시민들의 국가 및 공공 정보에 대한 접근 가능성과 경로가 확장되고 이에 따른 의사 및 정책결정 과정에의 참여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세종께서 ‘한글’을 창제, 반포하면서 널리 천명하신 모든 백성들이 쉽게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한 ‘애민정신’의 현재적 의미라 할 수 있다.
또 세계적인 미래연구가인 미국의 제러미 리프킨은 근작 ‘소유의 종말(The Age of Access)’에서 ‘산업자본주의에서 문화자본주의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설파한 바 있다. ‘세계화’로 집약되는 국경 없는 물적·인적·문화적 교류 속에서 ‘문화’는 이제 가장 강력하고 가치 높은 산업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또 가장 경쟁력 있는 문화는 가장 주체적이며 자주적인 창의성에 의해서 형성되고 생산된다. 문화는 바로 한 나라, 한 민족이 가진 ‘지식, 정서, 그리고 사상’의 결집체며 그것은 세대에 걸쳐 삶의 조건들을 지배한다고 한다. 따라서 주체적 문화역량을 통한 ‘창의성 있는 문화상품’은 우리 정신에 맞는 우리말을 가지도록 한 ‘한글’창제의 목적인 ‘자주정신’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이러한 ‘한글’ 창제와 반포에 담겨진 그 깊은 뜻을 계승해 나가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전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이러한 목적들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 및 공공 정보와 문화적 정보들에 대한 시민들의 광범위한 접근과 의사 및 참여의지가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컴퓨터 사용과 그를 통한 정보검색 및 제공 능력(매체 친숙도)은 계층별·직업별·연령별로 매우 제한적이다.
다음으로 시민들이 요구하는 정보 및 문화적 콘텐츠들이 테이터베이스화(정보화) 돼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과제들은 제대로 수행되고 있지 못하며 이것은 현실 공간에서의 구체적인 세력관계와 이해관계에 따라 제한된 정보와 참여만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국가는 학교·도서관 등 공공부분에서 ‘지식-정보’ 인프라에 대한 균등한 접근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영역을 더욱 확장해야 하며 그러한 바탕 위에서 창의적이며 경쟁력 있는 문화적 상품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므로 공공부문 도서관의 ‘디지털화’, 즉 ‘전자도서관’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 할 수 있겠다.
전자민주주의 발전과 문화 자본주의 발전의 원천이 바로 지식-정보에 대한 제한없는 접근성의 보장, 그리고 책과 디지털을 통한 창의력 경쟁에 달려 있으며 초고속 통신망 등 국가사회의 IT 인프라와 새로운 지식 수요를 연결시키는 가장 강력한 콘텐츠 풀(contents pool)이 바로 e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