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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5. 15. 주일 오전. 필그림교회 (변종길 목사)
고르반
[본문] 마가복음 7:9-13
지난 주일은 어버이 주일로 지켰습니다. 예수님은 부모를 어떻게 공경했는가? 특히 어머니 마리아를 어떻게 공경했는가? 또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어떻게 섬겼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한 번만 하고 끝날 일이 아닙니다. 어버이날에 한 번만 감사하고 꽃 달아드리고 선물 드린다고 끝날 일이 아닙니다. 평생 동안 계속해서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를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유대인들은 부모를 어떻게 공경했는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지켰는가? 잘 지켰는가? 잘 못 지켰는가?에 대해 살펴보고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먼저 유대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로부터 받은 율법이 있습니다. 그 율법에 보면 부모 공경에 대해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십계명 중 제5계명에서 부모 공경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명령과 함께 약속이 있습니다.
여기 오늘 읽은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이 계명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10절) 여기서 ‘공경한다’는 것은 헬라어로 ‘티마오’인데 ‘명예롭게 하다, 영화롭게 하다(honor)’, ‘존경하다(reverence)’는 뜻입니다. 부모를 영화롭게 한다, 존경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부모 공경을 강조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효(孝)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효는 천륜(天倫)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나중에는 부모에게 제사 잘 지내는 것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살아계실 때 잘 모시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시고 나서 3년상 치르고 제사 잘 지내는 것을 효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살아계실 때는 말을 안 듣고 내내 애먹이다가 부모 돌아가시고 나서 울고불고 제사 지낸다고 야단입니다. 이런 걸 청개구리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청개구리가 많아요. 전국에서 개골개골 합니다.
여러분, 청개구리 효도는 소용없습니다. 죽고 나서 아무리 돈 들여 제사 잘 지내봐야 쓸데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 벌을 받게 됩니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부모에게 잘 하고 효도해야 합니다. 살아계실 때 생선도 사다 드리고, 용돈도 드리고, 또 하와이 여행 티켓도 사 드리고 해야 합니다. 비행기 티켓만 달랑 드리지 말고 호텔 숙박권을 같이 넣어서 드리고, 또 레스토랑 이용권도 같이 넣어서 드리는 게 올바른 효도입니다. 성지순례 여행 상품도 괜찮고요. 아니면 지중해 크루즈 상품도 좋고요. 이런 걸 어버이날에 깜짝 선물로 드리면 얼마나 좋을까?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일까요? 두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마음으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부모를 존경하고 감사하고 부모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는 없이 억지로, 건성으로 부모에게 선물만 사 드린다고 효도가 아닙니다. “어버이날이니까 상품권 하나 드리고 말자.” 아니면 “돈이나 조금 부쳐드리고 말자.” 이런 것은 참된 부모 공경이 아닙니다.
옛날에 공자도 이런 세태를 탄식했습니다. “근자의 효도는 잘 부양하는 것만으로 생각하나 개와 말이라 하더라도 모두 부양은 하고 있다. 공경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論語 爲政 편) 개와 말도 먹을 것을 주어서 부양합니다. 그런데 부모에 대해서도 부양만 하고 마음으로 공경하지 않는다면, 개나 말을 키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는 것입니다. 주전 6세기의 공자의 말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마치 요즘 세대를 두고 꾸짖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부모에 대해 우선 마음으로 공경할 것을 강조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출애굽기 21:17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저주(curse)’는 나쁜 말, 욕설, 악담을 퍼붓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구절의 말씀을 여기에 인용하고 있습니다. 본문 10절에서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이라고 말합니다. ‘훼방하다(카코로게오)’은 악하게 말하다, 나쁘게 말하다, 비방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해 악하게 말하는 자,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게 하라, 죽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섭지요? 부모를 저주하는 자, 훼방하는 자, 부모를 욕하는 것은 무서운 죄입니다. 부모를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죽여서 그 악을 제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의 최소한입니다. 적어도 이런 죄는 지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부모를 경히 여기면 안 됩니다. 욕하면 안 됩니다. 부모를 존중하고 무겁게 여기고 공경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또한 물질적으로 부모를 섬긴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물질적으로, 경제적으로도 부모를 공경하고 돌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옛날에 유대인들은 밭에서 농사를 지으면 그 수확한 것의 일부를 부모에게 드려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밀을 수확하면 그 중의 얼마를 부모에게 드려야 했습니다. 그래야 나이 드신 부모도 그것으로 빵을 만들어 먹고 생활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유대인들은 먼저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칩니다. 수확한 곡식이나 과일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에게 일부를 드려서 부모가 생활하도록 합니다. 예들 들면 1/10이나 2/10, 경우에 따라서는 3/10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니 많지요? 하나님께 드리고 또 부모에게 드리고 나니 자기에게 돌아오는 몫은 한 70% 정도밖에 안 됩니다. 게다가 로마인들에게 세금 내고 나면 자기에게 돌아오는 몫은 더 줄어듭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은 “아깝다, 내기 싫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다 먹고 싶은데 ... 내 혼자 다 먹고 싶은데 ... ” 십일조는 주위 사람들 눈치 때문에 안 낼 수도 없고 ... 그런데 부모에게 드리는 것은 참 아깝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무슨 좋은 수가 없나?
그래서 유대인들이 생각해 낸 것이 고르반 제도입니다. 고르반이 뭐냐? 히브리어로 ‘코르반(Korban)’은 하나님께 드린 헌물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 바친 것, 하나님께 드린 예물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했습니다. “이 밭에서 나는 것은 다 고르반이다. 즉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부모에게 아무것도 안 드려도 된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포도밭이 있는데, “이 포도밭에서 나는 것은 다 고르반이다. 하나님께 바친 헌물이다.”고 말하면 부모에게는 하나도 안 드려도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 고르반 제도는 매우 인기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르반 제도는 “말만 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11절에 보면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여기서 “하기만 하면”은 곧 “말하기만 하면”입니다. 말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나서 실제로는 그 밭에서 나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는 않았습니다. 말뿐이었습니다. 자기가 다 가졌습니다.
결국 부모에게 돌아가는 몫만 없어진 것입니다. 자식들이 다 가져가고 부모들은 쫄쫄 굶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나이든 부모들이 엄청 고생했습니다. 자녀들이 돌보지 않아서 굶어죽고 병들어죽고 그냥 방치했습니다. 그런데도 자녀들은 경건한 것처럼 행세했습니다. “내 밭에 나는 모든 농산물은 다 하나님께 바친 바 되었어. 고르반이야! 그러니 부모에게는 드릴 게 없거든!” 자기는 신앙이 좋은 것처럼 행세하고 다녔습니다. 실제로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자기가 다 먹어치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책망하십니다. 13절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여기서 ‘유전’이란 전해내려 온 것을 말합니다. ‘전통’ 또는 ‘전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상들이 전해준 것들입니다. 곧 전의 랍비들이 가르쳐 준 것들입니다. 처음에 옛날의 유명한 랍비가 이렇게 가르쳤을 것입니다. “어떤 수확물이나 물건을 하나님께 바쳤으면 거기서는 부모에게 안 드려도 된다.” 그렇지요? 하나님께 다 드렸는데 어떻게 부모에게 드릴 수 있나요? 그런데 이런 랍비의 가르침이 내려오면서 자꾸 변질되고 악용되었습니다. 실제로 드리지 않아도 말만 하면 된다, ‘고르반’이라고 말만 해도 효력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고르반’이라고 말만 하고, 사실은 자기가 다 챙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게 되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을 폐하게 되었습니다. 제5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폐한다’는 것은 무력하게 만든다, 무력화시킨다, 사실상 그 효력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는 것은 인간의 가르침 곧 랍비들의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 가운데는 이런 게 없습니까? 물론 우리가 직접 고르반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인간의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일이 없습니까?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력화시키는 일이 없습니까? 예를 들어 생각해 봅시다.
첫째로, “나는 주의 일 한다, 나는 하나님께 바쳐진 주의 종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안 섬겨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저처럼 대학 공부 마치고 나서 신학교에 들어가면 회사에 취직을 안 하고 월급을 안 받으니 소득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전도사 하면 사례가 조금 나오긴 하는데 자기 혼자 살기도 바쁩니다. 신학교 다닐 때에는 등록금도 없어서 장학금 받고 또 다른 사람의 도움 받아서 다녔습니다. 이처럼 교역자의 길로 가면 부모를 섬기는 일은 힘듭니다.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나는 교역자니까 부모를 안 섬겨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내 인생을 다 바쳤으니 부모를 안 섬겨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의 중처럼 “나는 출가했으니 부모도 버리고 아내도 버리고 자식들도 다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잘못입니다. 이런 생각은 마치 “나는 내 인생을 고르반 했으니 부모를 섬기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물론 신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또 강도사나 목사가 되어서 자리를 잡기까지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예수님도 3년 동안 공사역을 하시는 동안에는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를 버리신 것은 아닙니다. 잊어버리신 것도 아닙니다. 늘 마음에 생각하고 계시다가 마지막 순간에,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에 어머니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때부터 평생 동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에베소로 갈 때에도 모시고 갔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제자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시고 식사할 때에 늘 자기 옆에 앉게 하고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눕게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식사할 때 약간 기대어 누워 식사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제자 요한은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누워서 예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마지막에 예수님의 부탁을 받고 예수님의 어머니를 자기 집에 모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품에 누운 값을 치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품에 누운 것은 결국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값을 다 치르게 되었는데 엄청 비싼 값을 치루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이모 집에 자주 가서 밥 공짜로 먹고 이모 집에 공짜로 누워자고 하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 세상에 공짜가 없습니다. 나중에 다 값을 지불하게 됩니다. 나중에 이모를 모시고 이모부를 모시고 해야 합니다. 다음에 좋은 호텔에 재워 드리고, 좋은 레스토랑에 모시고 가서 식사 대접해야 합니다. “아이고야, 큰일났다.” 싶지요? 그러나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하게 되니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꼭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현대판 고르반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나도 자녀를 키워야 하니 부모를 섬길 여력이 없다.”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나도 새끼들 키우려니 너무 힘들어요. 유치원 보내는데 돈 많이 들어요. 아이들 피아노 시키고, 플루트 시키고, 또 영어 가르치고, 태권도 가르치고, 또 수학을 너무 못해서 수학 과외 시키고 ... 애들 키우는데 너무 힘들어요. 완전 적자예요, 적자. 그러니 부모를 도와드릴 돈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현실적인 사정이 어려운 것은 이해되지만, 어쨌든 자기의 사정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제5계명을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정, 자기 형편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폐해서는 안 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자기의 형편이 어렵다고, 사정이 있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전통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폐하고 있습니다. 고대 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2천년 동안 형성된 전통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리아 승천 교리’가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마리아가 죽지 않고 승천했다고 가르칩니다. 하늘로 올라갔다고 가르칩니다. 성경 어디에 그런 게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냥 교회에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합니다. 미신적인 전통입니다. 그런 것을 교리로 정해서 가르칩니다. 성경에도 없고,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는데도 교리로 가르치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숭배합니다. 그래서 또 하나의 우상숭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간적인 사정과 형편으로, 자기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일들이 많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정말로 마음으로 부모를 공경하고 또한 물질적으로 부모를 섬기고 있습니까? 자기 자신의 생각으로, 시대 조류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시대의 고르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기 위해 사람들이 만든 핑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 이러한 고르반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