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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지산, 각호산 산행기 1924년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초모롱마) 정상 600M 지점에서 실종된 영국인 등반가 「조지 말로리」는 에베레스트 원정 등반을 떠나기 전, 한 강연에서 어느 부인이 「당신은 왜 위험하고 힘들며 죽을지도 모르는 산에 갑니까?」라는 질문에 「산이 그곳에 있으니 오른다」라는 불멸의 명언을 남겼다. 당시 조지 말로리는 갑작스런 부인의 까다로운 질문에 「당황스럽고 귀찮은 상황을 벗어 나고자 아무 생각없이 재치로 받아 넘긴 답변이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아무 생각없이 국면 전환을 위해 재치로 받아 넘긴 단순한 말 한 마디에 너무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산은 분명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하고 공간의 자유와 사유(思惟)의 자유를 확장시켜 주는 매력이 있다. 모든 것이 규격화 정형화(定型化)된 폐칩된 도시 공간 속에서 생활하는 현대인들에게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마다 자신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자연의 다양함 속에서 생존의 이유를 발견한다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다.
<낙엽송 길>
이번주 산행은 충북 영동군 상촌면과 전북 무주군, 경북 김천시 부항면등 3개 도와 경계선상에 놓인 민주지산과 각호산을 다녀왔다. 민주지산은 충청도 쪽에서 바라볼 때 산세가 밋밋하다하여 민두름산이라 불렀으나, 일제가 지도 제작을 하면서 지명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음이 유사한 한자인 민주지산(岷周之山)으로 잘못 표기함으로써 부르게 되었다는 내력이 있다. 민주지산에 접근하는 방법은 경부고속도로 황간IC를 빠져 나와 상촌 방향으로 49번 국도를 타고 달리다 매곡삼거리와 상촌삼거리를 지나면 물한계곡 입구 주차장에 도착 된다. 황간IC에서 물한계곡 주차장까지는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민주지산은 해발 1,242m의 높이로 덕유산을 중심으로 솟아있는 소백산맥의 등줄기에 속하는 산으로서 각호산(해발 1,176m)과 북동쪽 능선으로 맞닿아 있다. 민주지산의 남쪽 방향으로는 석기봉과 삼도봉이 준령을 이루면서 8Km가 넘게 뻗어 있고, 고봉의 능선과 능선 사이로 각호산 밑의 각호골을 시작으로 민주지산 동남쪽의 쪽새골, 석기봉과 민주지산 사이의 무지막골, 삼도봉과 석기봉 사이의 계곡을 이루고 있는 음주암골, 삼도봉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미니미골등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각 골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는 물한계곡으로 합류하여 10여리를 흐른 후에 초강천을 만든다. 초강천은 다시 굽이굽이 흘러 금강에 합류하고 서해바다로 그 도도한 물줄기를 연결한다. 물한계곡은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한천마을에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옥소폭포와 의용골폭포, 음주암폭포등과 용소, 옥소등 크고 작은 여러 소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비경을 빚어내는 곳이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물한계곡 입구를 산행들머리로 하여 황룡사 - 삼도봉, 석기봉, 민주지산 갈림길 - 쪽새골 능선 갈림길 - 민주지산 정상 - 대피소 - 십자로 갈림길 - 각호산 정상 - 배거리봉 - 각호골 - 물한계곡으로 원점 회귀하는 코스를 잡았다. 총 산행 거리가 10Km로서 5시간 정도의 산행 시간이 소요되는 코스다. 일반적으로 민주지산 전체를 즐기고 조망하기에는 물한계곡을 거슬러 올라 삼도봉 - 석기봉 - 민주지산 - 각호산 코스가 좋으나 능선상에 아직까지 잔설이 남아 있어서 17.5Km의 험한 산길을 부산에서 출발하여 당일 완주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따라서 시간과 체력 안배를 고려하여 코스를 수정했다.
<계곡 입구> 물한계곡 매표소를 통과하면 곧바로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온다. 다리 건너 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각호골로 오르는 방향이고, 좌측으로 향하면 황룡사 방향이다. 갈림길마다 산행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별 어려움없이 산행할 수 있다. 민주지산의 유일한 사찰인 황룡사는 1970년대에 세워진 절로서 아담하고 조용한 모습으로 계곡 건너 좌측 편에 위치해 있다. 산행 초입에서 20분쯤 오르다 보면 우측으로 민주지산 지름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계곡을 따라 계속 직진하면 미니미골과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오늘 우리는 지름길인 쪽새골을 치고 올라 바로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를 타야한다. 흔히 물한계곡을 국내 최고의 원시림 지대라고 부르고 있으나 객관적 기준이 부족한 것 같 고, 이 일대는 모든 산행인들이 감탄하는 낙엽송 군락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어 자연의 풍만함을 만끽할 수 있다. 산자락 양지바른 곳에는 매화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계절이지만 차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차가운 고산 기후가 남아있다. 1시간 30분 정도의 된비알을 치고 오르면 쪽새골 능선 갈림길이 나온다.
<능선 갈림길>
<상고대>
능선 갈림길을 중심으로 좌측은 석기봉 방향이고 우측은 민주지산 정상이다. 능선을 경계로 북쪽으로는 온통 나뭇가지에 상고대가 맺혀 환상적인 풍경을 빚어내고 있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능선을 따라 불과 400m의 거리지만 간간이 밧줄을 타야하고 잔설도 남아있어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민주지산은 1998년 4월에 갑작스런 폭설과 악천후로 인해 특전사 군인 6명이 훈련도중 탈진하여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정상>
<정상에서 바라본 삼도봉 방향>
<정상에서 바라본 석기봉 모습> 정상에 도착했다. 산행 초입인 물한계곡 주차장에서 1시간 50분 소요되었다. 북동쪽으로 태백산맥에서 갈라진 소맥산맥의 등줄기가 추풍령을 지나 황악산으로 이어져 굽이치는 모습이 장엄하다. 서쪽으로는 덕유산의 모습이 조망되고 동남쪽으로는 수도산과 가야산이 아련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한반도 남한 땅 중간지점 민주지산 정상에 서서 동서남북을 향하여 잠시 묵례를 올리고 각호산 방향 능선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정상에서 각호산을 향하여 20여분 거리에 대피소가 있다. 충북 영동군에서 특전사 군인 사망사건 이후 세운 대피소라 한다. 민주지산에서 각호산까지는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거리상으로는 3.4Km에 1시간 40분 정도 소요된다.
<대피소 모습>
군데군데 날카로운 암봉들이 칼날처럼 솟아있어 칼날능선이라 부르기도 하나, 설악산 공룡능선에 비하면 얌전한 편이다. 각호산은 뿔 달린 호랑이의 형상이라 하여 각호산이라 부른다. 각호산 정상은 밧줄을 타고 겨우 오를 수 있는 서너평 남짓한 넓이의 암봉이다. 각호산에 올라 민주지산과 석기봉, 삼도봉으로 연결되어 활처럼 휘어진 능선을 바라보니 산세의 웅장함과 능선에 마치 벚꽃처럼 피어있는 상고대가 조화를 이루어 보기 드문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각호산 정상>
<민주지산 정상, 석기봉이 아스라이 보인다>
종주 산행시에는 각호산에서 직진하여 도마령으로 하산하는 것이 지름길이나, 오늘은 각호산에서 우측 사면에 있는 배걸이봉(해발 1,097m)을 통과하여 각호골로 하산한다. 배걸이봉에서 각호골 합수지점까지는 급경사 길이다. 스틱이나 길옆 나무를 잡고 몸을 가누어야 겨우 굴러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이 길은 민주지산 산행인들이 덜 선호하는 코스로 호젓한 맛은 있으나 단독 산행시에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민주지산과 각호산의 여러 작은 골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모아지는 합수지점부터는 또다시 낙엽송, 잣나무 군락이 호젓한 산길에 터널을 만들어 산행인을 반긴다. 육신을 자연의 안온한 품속에 내맡기고 온전히 안겨서 무상무념으로 걸어가면 속세의 번민은 한 올 터럭 끝에 스치는 바람이 아닐까? 각호골 마지막 지점 「풀하우스 펜션」을 통과하여 흐르는 계곡물에 탁족하니 심신이 상쾌하다. 다리 건너 출발 지점인 물한계곡 주차장에 도착하니 15시 50분이다. 오전 10시 20분에 출발했으니 산행시간은 5시간 30분 소요되었다. |
첫댓글 동절기 산행시 고생 많았겠습니다. 설경 또한 환상적입니다. 다녀오신 민주지산(1,242m)과 각호산(1,176m)의 높이를 봐서 "우리 산악회"회원님 모두다 무난히 산행 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