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남의 자유 -남도여행(04년8월)
5월중에 계획했던 남도 여행이 미루고 밀리어 휴가철에서야 갔다오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 여름 휴가철에 떠나왔다가 꼭 1년만에 떠남의 자유를
만끽하고 온것이네..
취미가 여행인 사람치고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되네 그려...
먼저 출발전 일지를 기록 하고자 한다.
태어나 전라남도 땅을 밟아보지 못한 아쉬움으로 이번 남도여행을
계획한 동기가 되었다.
말로만 듣던 토말(땅끝)을 밟아보고 싶었고
다산초당에 올라 선비의 고저넉함을 몸소 체험해 보고 싶은 충동을
어쩌지 못한 내마음이 그곳으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모름지기 여행이란 항상 그렇지만 출발전 그곳의 사정을 알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남도여행 관광안내 자료를 신청 하였더니 5일만에 충분한 자료를
받아볼 수 있었다.
참고할려면 아래 주소로 들어가서 설문에 응하면 자료를 받아볼 수 있다. (무료)
남도 여행에 필수인 대형 지도도 준다.
http://www.ndtour.co.kr/books/Question.asp
봄 여름 가을 겨울 ..
사계에 맞는 여행코스로 상세히 정보를 알려준다.
여름에 떠나면 좋을곳이 마땅히 정해져 있는건 아니다. 여름이면 해수욕장을 끼고
여행지를 정한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고...
우리가족은 남도 여행지를 먼저 땅끝관광지 다음은 땅끝에서 배를 타고 보길도에서
텐트치고 1박하고 오후에 강진 다산초당을 관광하기로 했다.
그다음 목포로 출발 목포에서 1박하고 보성으로 나와 차밭을 관광하기로 정하였고..
관광 안내지도를 보면서 가족과 같이 여행지를 상의하고 지도로 우리가 갈 곳을
들여다 보니 마음은 벌써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뿌듯해져 왔다.
이렇게 여행지가 정해지니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과 경비가 산출 되어 진다.
그 경비에 비상금을 넉넉히 지참하고 떠난다면 걱정없이 여행을 할수 있으리라.
여행 경험이 많다보면 다들 잘하고 있겠지만 경비를 부부가 반씩 나누어 가지고
여행하는게 편함을 알것이다.
출발은 아침 일찍 서둘렀다
새벽잠을 깬다해도 출근이 아니니 마음의 부담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들 성범이도 여행을 여러 해 부모랑 같이 해 봐서인지 서둘러 일어나
자기의 몫을 거뜬히 해낸다.
새벽 바람을 가르며 서김해 진입로로 들어가 출발지 티켓팅을 하니 비로소
떠남의 자유를 가족이 외쳐 본다.
가사일에 파뭍혀 자기의 주체성도 올바로 표현하지 못한 집사람의 심정이야
나보다 더 떠남의 자유를 만끽함에 부푼 가슴이지 않았으랴...
도착지인 해남 땅끝까지는 남해고속도로의 끝부분인 서순천까지 2시간30분
서순천 나들목에서 2번국도로 순천을 거쳐 벌교 보성을 지나 장흥 강진
강진에서 18번 지방도로 빠져나오다 보면 지석에서 갈라지는 샛길 지방도를
만나는데 그 샛길을 타고 77번도로와 만나는 남창까지 쭉~내려오면 된다.
남창에서 좌측방향은 완도대교로 가는길이요 우측으로 10분정도 달리면
땅끝관광지에 도착한다. 서순천에서 해남땅끝까지는 1시간30분이면 충분하다.
서김해에서 출발 해남땅끝까지 4시간소요된다. 참고 하길....
땅끝 관광지라고 별 특별한 기대는 하지 않는게 좋다.
우리나라 지도의 위도상 최남단에 위치한 곳이기에 땅끝(토말)이라 이름한다.
그런만큼 그곳에다 국토순례의 시발점인 전망대 및 땅끝비를 세워 둔 곳이라고만
생각하면 된다. 깊이 있는 내면은 여행자 스스로의 느낌에 충실 하다보면
땅끝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
4시간을 달려와 땅끝을 알리는 석비뒤로 해풍이 이는 바람을 맞으며
우리가족이 남도 끝을 밟은 기분을 사진으로 남겼다.
바닷가에 자리한 갈두마을에서 보길도행 뱃편을 기다리고 섰다.
보길도 까지는 차를 배에 실고 50분가량을 해풍을 가르면 나타나는 섬이다.
뱃편시간을 잘못 맞추면 좋은 이미지의 여행을 망칠 수도 있다.
휴가철에는 보통 1시간 간격으로 배가 뜬다.
보길도행 뱃편이 갈때와 올때의 차이점으로 인한 낭패한 속 이야기를 뒤에 쓰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14편을 갈무리 한다.
다음편 "추억의 보길도편"을 기대하시라.
차를 배에 실고 2층 선실을 지나 3층 배 갑판에 올랐다.
항구를 빠져나가자 염분을 함유한 해풍이 상갑판을 때렸다.
시원의 극치를 넘어 팔에 닭살을 돋게 할 만큼 강렬한 바람이 승객들을 애워싸
여기 저기서 우~와 하는 감탄사들 .. 1시간을 기다려 제풀에 지친 우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자연의 바람... 나 바람 맞았어!!!
보길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에 속하는 섬
전라남도기념물 제37호인 부용동정원(芙蓉洞庭園)이라는 윤선도의 유적지가 있는데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윤선도가 제주도로 가던중 보길도의 자연경관에 심취되어
부용동에 연못을 파고 세연정(洗然亭)을 세워 선유를 즐기며 불후의 명작인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남긴곳이기도 하고
섬의 동쪽 선백도 바위에는 유배의 한을 기록한 우암 송시열의
글씐 바위도 있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청별리 선착장에 도착하여 예송리 해수욕장으로 이동 했다.
예송리 해수욕장은 백사장 대신 고운 조약돌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이다.
그곳에 12년째 사용중인 터널형 텐트를 치고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작년에는 아들과 해수욕장에서 같이 못 놀아준 기억이 있어 무조건 같이 바닷물에
들어갔다.날물때라 바닥을 드러내 놓고 있는 조약돌밭이 아름답다.
날물때라도 조금만 들어가면 바닥에 발이 닿이지 않는다.
그만큼 경사가 심한 곳이다. 바람이 불어도 모래가 없으니 기분까지도 상쾌하고
오랫만에 가족의 단촐한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그런 순간들이 더 없이 좋다.
< 도 래 미 화음같네... >
< 장난기 다분한 아들녀석 ... >
<시원한 모자(母子)의 모습이 정겹다>
기억이 가물 가물 ...
역시 기행소감은 갔다 온 뒤 바로 적어야 제맛이 나는데 ...
다음날 일정대로 일찍 아침먹고 떠나려 했으나
아들녀석의 성화에 점심먹고 떠나기로 아들과 합의(!!!)를 보았다.
때양볕 불볏 더위는 모든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시간이 낮11시를 기준으로 온 대지를 달구니 우린들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태양의 용트림과 마주할 수 있으랴 ..
텐트를 갈무리 하고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보길도의 바다를 바라보면서 우리 부부는 무엇을
이 바다에 남기고 싶었을까 !!
다음 목적지인 세연정를 찾았다.
섬의 풍광을 즐기면서 10분쯤 달리면 나온다.
세연정 정자를 지어 풍류를 즐긴 고산의 숨결이 곳곳에 흐른다.
정자의 처마를 눈여겨 보면 선조들의 해박한 슬기를 엿볼 수 있다.
여름에는 처마문을 접이식으로 접어 올려 문설주에 매달아 창을 올려 졎힌
모습으로 더위를 피하도록 설계 되어 있고
겨울에는 처마문을 내려 비바람을 피하도록 되어있다.
또한 정자 중앙에 겨울철 하롯불을 피울 수 있도록 아궁이가 설치
되어 있는게 특징이다.
세연정을 둘러 보는데 아는 이 없는 이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
그것도 김해 외동에 이웃하는 가정을 ... 세상이 좁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이었다.
<세 연 정>
다음으로 간 곳은 우암 송 시열 선생의 유배의 한(恨)을 기록한 곳
<글씐 바위> 숙종때 세자 책봉을 반대 했다가 제주도로 유배가다 풍광에
매료되어 잠시 머물면서 한의 글을 새긴 바위를 말한다.
어린이들을 데리고 글씐바위로 갈때는 안전에 유의 하길 ...
<글씐바위>
떠나는 배편은 그야말로 생지옥 이었다
무려 3시간을 선착장에서 기다려야 했다. 서울차 경남차 대전차 ..쑥 뚫린
고속도로 때문인지 이제 보길도는 남도만의 섬이 아니었다.
차례로 줄지어선 자동차 행렬이 무슨 피난민도 아니고 불볏 더위에
여행자들은 좋은 기억의 보길도를 몇이나 간직하고 떠나랴 ...
그래도 떠나는 배를 타고 보길도를 바라보는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찼다.
보길도를 벗어나는 배편의 지체로 땅끝마을에 도착하니 오후4시쯤 되었다.
다음 목적지인 다산 초당으로 가기에는 너무 늦은시간 인지라 갈등이 생겼다.
다시 1박을 하고 내일 아침에 갈까도 생각 했지만 그래도 출발 하기로 했다.
땅끝에서 다산 초당까지는 40여분 남짓..
초당에 당도하니 해는 산속으로 넘어 가고 있었다.
홍광을 드리우고 넘어가는 석양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다산유물 전시관은 마침 시간이라 관리인이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초당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내려오는 사람들만 드문드문 보인다.
같은 시간에 당도한 한팀이 올라 가길래 우리도 따라 올라갔다.
반질한 황토 비탈길을 오르니 나무들이 내뿜는 청량한 공기가 정신을 맑게한다.
정약용 선생님은 고산 윤선도(1587∼1671) 의 외가 친척으로 알려져 있고
유배 기간중(1808~1818년) 유배가 풀릴때까지 이곳에서 학문탐구와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등 방대한 저술활동을 이루셨다.
초당에 걸린 현판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24년 연하인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친필로 쓰여졌다.
초당 오른쪽 바위에 새겨놓은 '정석(丁石)' 은 선생님의 성품을 표현하듯
꼿꼿한 기품이 느껴진다.
사진은 찍었지만 저녁무렵이라 어둡게 나와 올리지 못하고 초당의 이미지를
카피해서 올린다.
<다산초당>
<추사 김정희 친필 집자>
<동암의 정약용 친필 집자 모각)
<정석> - 해배를 앞두고 발자취를 남기고져 각인한 정석바위-
<천일각>
초당에서 위로 조금 오르면 후인들인 세운 천일각이 나온다.
천일각에 서니 저녁무렵이지만 그래도 여름인지라 올라올때 등줄기에 맺힌
땀방울이 식어면서 강진의 시원한 바람이 우리가족을 맞이 했다.
마루에 올라 천주교 신자 이기도 한 정약용 선생님을 기렸다.
당시 다산의 온 가족이 천주교 박해에 연루되어 유배길을 떠났는데
형 정약전은 강진 땅이었던 신지도 송곡리에 유배 되었다가 동생 약용이
장기에서 강진으로 이배됨에 따라, 나주에 속했던 흑산도로 이배되어
‘자산어보’를 남기기도 하였으며, 성인 정하상 바오로가 다산의 조카이다.
전라남도는 다산초당도 천주교 성지로 인터넷에서 소개하고 있다... 좋은 느낌...
더 머물고 싶지만 어둠이 초당을 덮는지라 오늘의 숙박지인
목포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강진에서 목포까지도 차로 40여분 가까운 거리이다.
밤에 도착한 목포에서 1박을 ...
목포에서의 계획은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남도를 여행하면서 가까운 목포도 한번 둘러 본다는 의미에서 일정에 포함시켰다.
아들성범이의 교육 목적으로 국립 해양 유물전시관을 관람 하기로 했다.
바다에서 인양된 우리의 오랜 해양 역사 흔적을 보존, 전시함으로써 우리 해양
문화의 전통을 일깨우며 배움과 휴식공간이 되고 있는 국내 유일의 해양박물관이다.
바다에서 건져올린 실물의 배를 복원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야외전시 낙월도 멍텅구리매 앞에서>
해양 유물 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목포 시내를 한번 휘둘러 보고
다음 목적지인 보성 대한다원으로 이동 했다. 쑥~뚫려 있는 국도가 시원스럽다.
드라마 촬영지, CF광고등 시원스러운 비경을 간직한 보성 녹차밭은
이제 너무도 많이 알려진 곳이다.
대한다원 근처로 여러곳의 다원들이 있어 과히 산등성이 전체가 녹차밭 물결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삼나무 숲길이 여행자를 반긴다.
곧게 뻗은 삼나무 숲길을 걸어 들어가면 광고를 통해 눈에 익은 녹차밭에 다다른다.
상큼하고도 시원스러운 녹차밭길 사이사이로 걸어서 한바퀴 휘돌고 나오면
마음 또한 녹색 물결에 녹아든 듯한 느낌을 누구나 다 받을 것이다.
<대한다원 녹차밭>
다원 녹차밭안 유일한 음식점이 하나 있다.
녹차로 만든 녹차국수, 녹차 자장면,녹차 비빔밥등....
녹차 메밀국수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원을 나왔다.
도로변에 녹차 무료시음장도 있다. 그곳에서 녹차 한잔을 여유로이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먹을 녹차건빵과 녹차음료를 사서 그리운 집으로 향했다.
떠남의 자유를 느끼며 내 감성에 그 지역의 정서를 담아오는 것을 잊지 않으며
이번 여행도 우리 가족이 잊지못할 추억으로 길이 남으리 ...
이상으로 남도 여행을 갈무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