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서울교대에 가다
2015년 2월 서울교대에 갔다. 30년 전 1985년 2월 우리는 이곳을 졸업했다. 대학시절은 단순한 시간의 한 지점이 아니다. 일생을 결정짓고 삶을 끌어나가는 수많은 경험과 의미가 담겨있는 시간이다. 81년 서초동 교대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맞이했던 건 황량한 바람과 쓸쓸한 벌판이었다. 강남이 시대의 중심으로 진입할 때도 이곳은 아직 강남의 변두리였다. 우리의 시작은 기대와 희망 그리고 실망으로 연속되었다.
교대는 81년 처음으로 4년제로 승격했다. 비로소 진정한 대학의 시작이라는 자부심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그리고 82년은 교대의 유일한 학문적 르네상스였다. 4년제 교대 교육과정이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 학과는 전공 중심의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윤리과도 수준 높은 학문과 조우할 기회를 맞이했다. ‘논리학, 국가론, 불교철학’ 등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우리는 학문이 무엇인가에 대한 추억을 간직할 수 있었다. 3학년이 시작된 83년은 모든 것이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KEDI에서 개발한 교육대 교육과정은 각 학과별 전공학점을 전격적으로 축소하였다. 83년부터 우리에게 전공과목을 배울 기회는 사라졌다. 이미 2학년 때 대부분의 학점이 이수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2년은 실망과 개인적 활동의 시기였다. 사회는 엄혹한 군부독재의 흐름으로 치달았지만 이곳에 그러한 흐름에 대한 저항은 배제되어 있었다. 간혹 외부의 고통을 도입하던 학우들은 무관심과 무지에 대한 실망을 폭음으로 씻어내곤 했다. 이곳은 섬이었다. 80년대 서울의 대학을 지배하던 정서와는 괴리된 세계였다. 이곳을 지배한 정서는 개인적 낭만과 소시민적 가치였다. 그러나 그것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싶지 않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대하여 반응하는 존재이다. 우리에게 주어졌던 세계가 비록 왜곡된 모습이었어도 보편적 삶의 요소는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에 최선을 다했고 인간의 보편적 선에 접근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추억에 대한 인식은 개인적 경험에 기초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평가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근거로 자리 잡을 것이다.
30년 후 교대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교대 주변은 이제 강남의 중심이 되었다. 주변에는 법조단지가 만들어져 화려한 상업지대로 바뀌었다. 과거의 모습을 다시 찾을 때 우리는 두 가지 감정과 직면한다. 변화와 보존이다. 변화된 모습을 확인하면서 경이와 같은 즐거움을 확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끝에서 느끼는 감정은 아쉬움이다. 이제는 사라진 과거의 모습은 새로움이 주었던 경이로움을 감쇄시킨다. 학생들이 편하게 둘러앉아 이야기했던 중앙 잔디밭, 감옥같다는 불평이 있었지만 중세적 장중한 분위기의 합동강의실과 강의실의 모습은 이제 사라졌다. 그 자리에 현대적인 강의동과 새로 만들어진 달팽이 조각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교대의 상징이었던 사슴상은 구석으로 밀려났다. 장소와 시간에 따른 재배치였다. 장소적 요구와 시대적 필요가 만들어낸 대학의 모습이었다. 교대는 이제 30년 전의 여러 의미의 특수성에서 탈출했다. 특별한 혜택도 특별한 지위도 이제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 앞에 바뀐 ‘사향광장과 에듀웰 센터 그리고 전문대학원’의 모습은 바로 교대의 현재성을 보일 뿐이다.
10년 후 졸업 40년에 다시 이곳을 기록하고 싶다. 그때에는 학교의 변화와 나의 성숙이 조화를 이루고 여유로운 마음을 통하여 학교의 변화를 바라보고 싶다. 조화를 추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변화와 보존의 차이를 원융적으로 이해할 힘을 소유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욕망과 불안에 직면한 삶이기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삶을 시도하고 10년 후 좀 더 겸손한 마음으로 학교를 찾고 싶다. 그때 만나는 학교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80년대 초반의 모습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과학관’(현재 평생학습관)의 모습과 84년 동아일보에 실렸던 시를 적는다. 이 시는 당시 나의 감성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시계탑 아래서> - 이준영
비 내리는 광장
너를 찾아나선 먼 여로에서
내 잠시 머물렀다 떠난 자리를
친구여,
비어있다 하지 말아다오
그 누가 눈빛으로 반겨 주었어도
고향처럼 영영 그 가슴에
잠들었을 것을
가만히 지피기만 했어도
활활 타버렸을 것을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떠나는 나를
친구여, 이별이라 하지 말아다오
한 줌에 애수를 주머니에 넣고
언제나 비에 젖는 나의 귀로
네 가슴에 잠들지 못하고
떠나는 나를
친구여
정녕 떠났다 하지 말아다오
그리고 네 앞에서
활활 다 타지 못하고
떠나는 나를
아, 그냥 떠나는 나를
친구여
..................
용서해다오(1984.9.22. - 동아일보)
첫댓글 모든 것은 시간과 함께 변한다. 학교, 사람, 생각...... 무슨 생각으로 학교를 다녔는지 기억조차 없지만 시간은 흘러 벌써 30년! 남은 인생 30년이나 될까? 지나간 시간을 소중하게 기억할 수 있는 삶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