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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 어느덧 2005년 1월도 마지막 일요일인 30일에 삼도봉을 찾았습니다. 겨울산의 능선은 아스라한 그리움을 일으키는 아름다움이 있기에 늘 새로운 기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강원도 눈꽃 산행을 떠나는 손님이 많아서 민주지산을 찾는 사람이 적을 것이라 여겼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미처 눈꽃 산행 자리를 예약하지 못한 몇몇 사람들과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강원도 산행의 지루함을 피하여 경부고속국도변의 민주지산을 찾는 손님이 많았습니다. 45석 정원의 좌석은 어느 한 자리도 빈 곳이 없었습니다. 지난해에는 1만 5천이었던 회비가 2만원으로 오른 것만 보아도 주5일 근무제가 시작되면서 등산 인구는 부쩍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겨울 산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연령은 아이러니하게도 50대 전후의 사람들도 구성됩니다. 꼭 그렇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그 나이에 다다르면 마음의 여유를 찾으려거나 건강도 생각하는 나이이기에 그러한 가 봅니다. 산행에 나서는 사람들을 굳이 분류한다면 크게 4팀으로 구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산악마라톤을 하는 팀과 무박 산행을 하는 팀과 당일 산행을 하는 팀과 여행을 목적으로 하는 팀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울트라 마라톤이라고도하는 산악마라톤을 하는 팀의 연령층은 30대가 주류입니다. 이들은 보통 15시간 정도의 산행을 하는 사람들로 지리산 종주 등의 무박 산행을 즐깁니다. 체력이나 정신력이 아주 특별한 사람들로 수원에는 호산자율산악회가 이를 대표합니다. 이들의 활동 모습은 보통 사람들의 눈에 잘 띄이지 않습니다. 토요일 저녁 10시에 출발하여 그 다음 날 일요일 그 시각에 돌아오는 사람들이니까요. 그 다음이 보통 10시간 정도의 산행을 하는 무박 산행팀이 있습니다. 은하수산악회가 이를 대표합니다. 보통 저녁 10시에 출발하여 그 다음 날 오후 6시경에 돌아오는 사람들입니다. 야간산행과 일출의 장관을 즐기는 경험 많은 산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이 당일 산행에 나서는 팀입니다. 보통 아침 7시에 출발하여 5시간 정도의 산행을 마치고 저녁 7시경에 돌아오는 일요 산행팀입니다. 이들은 다시 매주 일요일에 등산을 목적으로 하는 산행팀과 때때로 여간 시간을 내어 여행을 목적으로 하는 산행팀으로 구분됩니다. 이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추어 산악회를 선택하고 자기의 체력에 맞추어 산행을 즐깁니다. 당초 해발 843m의 전라북도 무주군 용화면 도마령에서 출발하여 각호산, 민주지산, 석기봉, 삼도봉을 거쳐 물한계곡으로 하산할 예정이던 오늘 산행은 급히 바뀌었습니다. 어제 내린 진눈깨비로 도로가 얼어붙어 도마령에 오르는 일이 수월하지가 않았던 까닭입니다. 그래서 산행버스를 도마령의 반대 방향으로 돌려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미천마을에서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안내 표지를 눈으로 읽은 선두는 뒤도 안돌아보고 눈길을 밟아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뒤 따라 내린 사람들이 등산화에 아이젠을 채울 시간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따라 새로운 아이젠이 눈에 띄었습니다. 기존의 네발, 또는 여섯발의 아이젠이 아닌 아이젠을 가지고 온 산꾼들이 있었습니다. 새로 나온 아이젠은 자동차 타이어에 장착하듯, 덧신을 끼워 신듯 등산화에 덧씌우면 되는 아이젠이었습니다. 이름을 물으니 이것의 이름은 ‘체인젠’이라 하였습니다. 등산화에 덧씌워 신기 간편하고 벗기 간편한 물건이었습니다. 평소 아름다운 우리말을 골라 쓰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아이젠’, ‘체인젠’ 등의 이름도 어감이 좋지마는 이에 버금가는 우리말을 혀를 둥글리며 입안에서 찾아내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체인젠 대한 화제가 끝나가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반 강요하여 우겼습니다. “강원도에서 쓰던 설피네, 그렇다면 쇠사슬로 엮은 이건 쇠설피로구먼, 쇠설피!” ‘쇠설피? 그것도 말이 되네.“ 성격좋은 동년배가 나의 의견에 동조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체인젠이란 새 물건의 이름이 먼저 와 자리잡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쇠설피를 몇 번 되뇌이며 기억에 새기려고 하였습니다. 손으로 끈을 묶어야 하는 아이젠, 앞뒤로 연결해야 하는 아이젠, 허리띠 채우듯 잡아 당겨 채우는 아이젠, 덧신 신 듯 덧씌우면 되는 체인젠, 아니 쇠설피. 그 물건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끈으로 묶는 아이젠이 제일 불편한 듯 보였습니다. 끈으로 묶는 아이젠은 얼마 걷지 않아서 끈이 늘어지거나 풀어져서 벗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하고 간편한 것이 사랑받는 까닭이었습니다. 일기예보와 달리 삼도봉에 오르는 길은 따뜻하였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산길을 올려 밟는 눈길은 아주 상쾌하였습니다. 여기저기에 산토끼 발자욱이 있어 고향 마을 뒷산에 온 듯 하였습니다. 10살 때 눈길에 나선 산토끼를 따라가 붙잡은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동네 형들을 따라 처음 나선 산토끼 사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눈길에 배고픈 산토끼는 동네 소년들의 고함소리에 놀라 달아나다가 끝내는 바위굴속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굴의 입구에 솔잎을 모아 불을 놓아 굴속으로 연기를 불어 넣어도 산토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굴 입구를 넓히고 산토끼를 잡자는 의견을 모은 동네 형들은 곡괭이나 지렛대 등의 연장을 가지러 마을로 내려가고 나는 산토끼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굴문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더랬습니다. 그러나 마을로 내려간 형들을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도 지루하였습니다. 그때에 퍼뜩 한 가지 생각이 솟았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속으로 들어가야한다.’는 속담이었습니다. 몸집이 작은 유치한 소년의 생각은 그대로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옷을 버릴까 염려하여 웃옷을 벗어 바위에 걸쳐두고 머리가 들어갈 만큼의 바위굴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소년은 바위밑 어두운 토굴속에서 물고기를 잡아 움키듯 이곳저곳을 더듬어 토끼를 움켜잡았습니다. 그러나 그 것도 잠시 굴속에서 빠져 나오는 일이 난감하였습니다. 굴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쉬웠는데 굴 밖으로 나오려니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더럭 겁이 났습니다. 그렇다고 힘들게 사로잡은 산토끼를 놓아 줄 수도 없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이솝우화 속의 ‘배고픈 여우 이야기’의 한 토막을 생각키우는 일화였습니다. 그 때의 일은 사로잡은 토끼고기를 분배하는 그 다음 일에 이르러 더욱 새롭습니다. 님이라면 사로잡은 산토끼를 어떻게 분배하시겠습니까? 나와 동네 형 이렇게 5명은 우물가로 갔습니다. 우물가에서 산토끼의 가죽을 벗기고 토끼고기를 5등분 하였습니다. 4다리를 중심으로 4각을 떼고 나니 달랑 머리 하나가 남았습니다. 님이라면 이걸 또 어떻게 분배하시겠습니까? 형들은 의견을 나누어 다수결로 분배를 결정하였습니다. 머리는 굴속으로 들어가 사로잡은 나이 어린 소년에게 떼어주고 4각을 뜬 다리는 형들이 하나씩 나누어 가졌습니다. 님은 이 결정이 공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최근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조지부장의 비리가 세간에 회자되었습니다. 노조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에 충실해야할 노조지부장이 2억에 가까운 돈을 받고 취직자리를 팔아 개인의 사욕을 채웠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잠재하는 인간의 본성일 것입니다. 10살짜리 소년도 그 때 그런 생각을 하였으니까요. 사로잡은 토끼를 들고 냅다 뛰어 산을 뒤로 돌아 집으로 가져가려는 생각을 하였으니까요. 그날 저녁 가난한 소년의 식탁에는 계륵에 비유할 토끼탕이 올라왔습니다. 무와 고추장을 풀어 끓인 토끼탕은 그래도 구미를 당겼습니다. 워낙 배고픈 시절이었으니까요. 소년의 부모님은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형들을 따라다니며 씩씩한 소년으로 자라는 경험이 더 소중한 시간이었으니까요. 그깟 토끼 고기 한 두 점이 그런 경험을 대신 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다수의 집단 노조에서 이런 무언의 분배는 종종 부정을 낳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전에 규칙이 있어야 하겠지요. 토끼를 얻었을 때는 어떻게 분배를 한다는 사전의 규약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사주는 토끼 뒷다리를 가진다. 그 나머지는 노조원끼리 공동 분배한다는 등의 사전 규약이 먼저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노조 운동이 대단한 동해 바닷가 도시 울산, 고래잡이로 이름난 울산은 힘써 잡은 고래 고기 분배 방식으로도 유명한 지역이지요. 그 옛날 이곳 울산에 살던 선인들은 울산반구대에 암각화를 새겨 그 당시의 일을 새겨 놓았지요. 작살을 던진 사수에게는 고래 고기의 어느 부위를, 배를 저어 고래를 끌어 온 선원에게는 어느 부위를 얼마나 떼어 준다는 규약이 에스키모의 고래 분배 그림처럼 전해져 내려온 곳이지요. 그런 선행된 규약을 두고 고래잡이에 나선다면 노조도 사주도 보다 수월한 관계로 목표를 향해 달려 갈 수 있겠지요. 삼도봉에 오르니 겨울산의 하얀 능선이 아련한 그리움처럼 밀려오고 쓸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모래톱에 부서지는 파도처럼 그렇게 물굽이치고 있었습니다. 삼도봉은 경상남도 부항면과 충청북도 상촌면과 전라북도 설천면이 만나는 지경에 위치해 있습니다. 서른 평 남짓한 공간의 삼도봉 정상에는 삼도의 화합을 자랑하는 기념물이 서있었습니다. 세 마리의 거북등에 세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모습이었는데, 해마다 1월이면 삼도의 면주민들은 이 봉우리에 올라 우정을 다지는 행사를 갖는다고 합니다. 날카로운 돌바위로 이루어진 석기봉에는 등산의 안전을 위한 밧줄이 매어져 있었습니다. 밧줄을 잡고 내려 남쪽으로 돌아서면 바윗돌에 새겨진 삼두마애불이 따스한 햇볕을 쬐고 있고, 그 아래로 마애불이 마셨을 법한 약수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면서 평소 우매한 나를 이끌어주는 주변 사람들의 고마운 얼굴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분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과 가정의 평안과 뜻하시는 일들이 수월하게 이루어지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하였습니다. 민주지산에 오르는 산등성이에 팔각정을 닮은 대피소가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비바람이나 눈보라를 피하기에 좋은 대피소였습니다. 문득 몇해 전에 이곳에서 극한 훈련을 하던 특전사 장병들이 눈보라에 희생당한 지역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혈기가 왕성한 장병이라 하더라도 급작스런 겨울 날씨에 눈보라를 만나는 야간 산행의 위험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니까요. 그런 상황은 오늘도 어김없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단지 그런 산하의 특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우매한 잘못이기도 하지만요. 민주지산을 돌아 내려와 산 아래 대불리 마을로 내려오기까기 날씨는 화창하고 바람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마을 앞 도로로 이어지는 설천에 가까워지자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낮의 따뜻한 날씨로 인한 상승기류를 이은 골바람이 산을 향해 세차게 불어드는 것이었습니다. 시각을 살펴보니 오후 3시 30분 경, 아마도 바람은 3시경부터 산을 향해 불어들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매서운 겨울바람은 점차 거세어 지는 것이었습니다. 산을 일찍 하산한 사람들에게는 평안한 산행이었지만 다소 늦게 하산하는 사람들은 매우 심한 고통을 겪었던 것이었습니다. 5시간의 산행이었지만 선두보다 1시간 반이나 뒤처진 사람도 있었는데, 그는 처음 산행에 나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달에 한두 번 정도 산을 다니는 사람으로 어느 정도 산행을 아는 사람이었는데 자신을 믿는 자만에 빠져 그만 도착 시간에 한참이나 늦는 실수를 한 것이지요. 해 짧은 계곡에서 눈보라라도 만났더라면 아마도 길을 잃고 쓰러지는 경우를 당하지 말라는 법이 없는 일이지요. 해 짧은 겨울 산행에 나 홀로 하산하는 일은 여러 가지로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지요. 지음! 그런대도 조망이 뛰어난 눈 내린 산하의 풍경은 언제 보아도 상쾌한 기분을 들게 합니다. 푸르른 산죽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 걷는 하얀 눈길은 그 무엇에 비길 수 없는 감촉이 압권이었습니다. 사드득 사드득 부드럽게 밟히는 촉감과 소리가 주는 쾌감으로 힘든 산행의 고단함을 가볍게 씻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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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이젠 보다 쇠설피가 어감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