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배법 제3조 단서 제2호에 관한 검토
이 병 석(경남대학교 경영학부 조교수)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3조 단서 제2호 소정의 사유에 관한 논점에는 두 가지가 있는 듯하다. 하나는 자동차승객이 사망한 경우라면 당해 사고가 설령 운행자 자신에게는 과실이 없고 제3자의 불법행위에 의하여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당해 운행자는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판례의 논리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이러한 논리에 입각하여 있었던 이른바 위헌시비에 관한 것이 그것이다. 전자에 관해서는 이제까지 異論이 없었고, 후자에 관해서는 합헌으로 결정된 바 있다. 이러한 논점의 근저에는 공통적으로 자배법 제3조 단서 제2호 소정의 사유가 운행자의 면책사유라는 인식을 깔고 있다. 그러나 자배법 제3조 단서 제2호 소정의 사유는 운행자의 면책사유라기 보다 애당초 책임이 없는 無責事由에 속한다. 따라서 자배법 제3조 단서 제2호는 당연히 그 존재이유가 없고, 아울러 기존의 해석논리와 위헌시비는 그 근거를 상실한다. 이를 논증한 것이 본 연구이다.
Ⅰ. 序
우리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이하 '자배법'이라 함) 제3조는 본문과 2개의 단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서에는 피해자가 승객인 경우와 승객이 아닌 경우를 구별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3조(자동차손해배상책임) 자기를 위하여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는 그 운행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을 사망하게 하거나 부상하게 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 다만,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승객이 아닌 자가 사망하거나 부상한 경우에 있어서 자기와 운전자가 자동차의 운행에 관하여 주의를 게을리하지 아니하고, 피해자 또는 자기 및 운전자외의 제3자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있으며, 자동차의 구조상의 결함 또는 기능에 장해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 때
2. 승객이 사망하거나 부상한 경우에 있어서 그 사망 또는 부상이 그 승객의 고의나 자살행위로 인한 것인 때
이 규정 특히 단서 제2호에 관하여, 판례는 "운행자는 승객의 사망이 고의 또는 자살행위로 인한 것임을 주장·입증하지 않는 한 운전상의 과실유무를 가릴 것 없이 그 승객의 사망에 따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으므로 자동차의 운행자로서는 그 소유의 자동차승객이 사망한 경우라면 자기에게 과실이 없음을 내세워 이 사건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하여 승객의 사상이 '승객의 고의 또는 자살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설령 운행자 자신에게는 아무런 과실이 없고 당해 사고가 제3자의 불법행위에 의하여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당해 운행자로서는 그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고 풀이한다. 이러한 판례의 태도에 관해서는 헌법재판소는 물론, 업계, 학계, 정책당국에 걸쳐 이견 없이 수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제하에서 최근에는 이처럼 가해제3자가 있고 운행자에게는 아무런 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운행자에게 배상책임을 지우고 있는 단서 제2호가 과연 헌법의 취지에 부합하고 있는가 라는 위헌시비와 함께 동 조항에 관한 위헌제청이 있었고 이에 헌법재판소는 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① 단서 제2호 소정의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한 운행자에게는 아무런 과실이 없고 당해 사고에 가해제3자가가 있어도 당해 운행자는 승객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면하지 못한다는 판단논리는 과연 타당한 것인지, 또 ② 이러한 판단논리를 전제로 한 최근의 위헌시비는 과연 시비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제3조 본문에 따르면 운행자의 책임은 '운행으로 인하여' 생긴 경우에 발생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정작 단서 제2호 소정의 사유는 운행자의 면책사유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고는 이러한 의문을 구명하는 작업이다. 논의의 초점은 단서 제2호의 해석에 국한하며, 제3조 본문의 운행자의 배상책임과 단서 제2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유에 관한 논의를 통하여 단서 제2호의 무용성과 최근에 있었던 위헌시비가 근거 없음을 확인함으로써 제3조를 새로이 인식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Ⅱ. 제3조의 입법근거
1. 제3조 본문의 입법근거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개인 대 개인의 시민생활의 장에서는 불법행위책임 발생의 일반적인 기준으로서 과실책임주의, 자기책임의 원칙이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 민법 제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여, 불법행위의 성립요건을 고의 또는 과실에 의거한 자의 행위에 의해 생긴 것으로 하고, 그 결과 발생하는 책임은 행위자 본인이 스스로 져야 하며, 따라서 타인의 행위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은 원칙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의 급속한 성장에 따라 기업활동에 의한 복잡·다양하고도 새로운 위험이 발생하게 되면서, 그로 인해 손해를 입은 자는 설령 자기가 입은 손해를 입증은 하더라도 누가 가해자이며 또 가해자에게 과실은 있는지에 대하여 피해자가 가해자측의 과실을 증명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므로 피해자는 충분한 구제를 받을 수 없는 것이 실정이었다. 반면에 기업들은 그 위험한 사업의 운영에 의하여 거대한 이익을 얻음으로써 일반적 정의 내지는 형평성 이년에 반하는 사례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자 여기에 종래의 과실책임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제기되어 배상책임원칙에 대한 대전환이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이러한 소위 사회적인 재해에 대하여 과실책임주의를 적용한 결과 피해자의 구제에 불공평이 생긴 경우에 대해서는 설령 과실이 없어도 그러한 위험한 사업을 운영하는 자가 전면적으로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소위 무과실책임주의의 원칙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자동차 사고에 의한 손해배상보장제도의 등장도 이 무과실책임주의의 강한 사상적 영향에 의한 것이었다. 즉 20세기에 들어서 자동차의 급격한 발달·보급에 따라 사회악으로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자동차 사고에 의한 피해자를 구제하는 데에는 과실책임주의만으로는 불충분하여 자동차 사고로 인한 배상책임에 대하여 종래의 과실책임주의를 수정하고 고의·과실의 증명책임을 전환하여 무과실책임에 접근시켜야 한다고 하는 사회적 요청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자동차손해배상보장제도 등장의 단서가 되었다.
무과실책임주의 원칙의 이론적 근거는 사회생활상 스스로 위험을 만들어 낸 자는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는 危險責任原理와 이익이 귀속하는 곳에 손실 또한 귀속한다는 報償責任原理에 의거하고 있다. 우리 자배법 제3조도 일반적으로 이 원리에 의하여 설명된다. 즉 자기를 위하여 위험한 자동차의 운행을 관리 지배하여 자기의 활동범위를 넓히고 이윤을 얻는 자(운행자)는 그 운행으로 타인에게 입힌 손해를 배상토록 하는 것이 형평이념에 맞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배법의 입법근거이다.
2. 단서의 분리입법
우리 자배법 제3조 단서는 운행자책임과 관련해서 단서 제1호에는 피해자가 승객이 아닌 경우에 대해서, 단서 제2호에는 승객인 경우에 대해서 각각 구별하여 달리 규정하고 있다. 즉 피해자가 승객이 아닌 경우에 있어서의 운행자책임은 소위 면책3요건이라는 ①자기와 운전자가 자동차의 운행에 관하여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아니하고, ②피해자 또는 자기 및 운전자 외에 제3자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있으며, ③자동차의 구조상의 결함 또는 기능의 장해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 때에는 면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승객이 사상한 경우에 있어서는 그 사망 또는 부상이 그 승객의 고의나 자살행위로 인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자배법은 피해자가 승객이 아닌 경우와 승객인 경우를 분리하여 피해자가 승객인 경우를 승객이 아닌 경우보다 더 두텁게 보호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이유는 어디에 무엇일까. 이는 앞서 언급한 건설교통부장관의 의견처럼, 승객은 본인의 주의노력과 무관하게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높은 승객과 본인의 의지에 의하여 사고예방을 위한 주의노력을 다할 수 있는 승객아닌 자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배법의 제일의적인 목적은 피해자보호이지(제1조) 위험에 많이 노출된 자를 특별히 보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위험에 많이 노출된 자(승객)이든 적게 노출된 자(보행자)이든 피해자가 되지 않은 이상 자배법이 이들에게 줄 수 있는 내용 있는 보호는 없고, 또 피해자는 사고 전에 위험에 많이 노출되었든 적게 노출되었던 결과적으로 피해자라는 점에서는 하등의 차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늘날처럼 자동차사회에서는 적게 노출되고도 피해자가 된 경우가 많이 노출되고도 피해자가 된 경우보다는 더 억울하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중에는 자신들의 의지에 의하여 사고예방을 위한 주의노력을 다하였거나 혹은 주의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이에 비하면 승객의 경우는 자동차의 위험과 일체화되어 있다고는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한 선택의 발로이고 스스로가 위험이 있음을 알면서도 감히 그 위험에 노출하였다는 점에서 보호의 여지는 적다고 생각된다.
Ⅲ. 제3조 본문의 운행자 배상책임-근거와 범위
주지하는 바와 같이, 자배법은 자동차사고로 인하여 인적 손해를 입은 피해자를 특히 보호할 목적에서 제정된 것이다(제1조).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배상책임주체를 확대한 운행자(보유자)의 등장(제3조 본문), 입증책임의 가해자에의 전환(제3조 단서 제1호), 책임보험제도의 도입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제5조 제1항 및 제3항). 이러한 조치는 이 법이 피해자보호에 우선을 둔다는 가치판단에 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제한으로 피해자를 보호해 주는 것은 아니다.
자배법 제3조는 일정의 추상적이고도 특유한 위험성을 갖는 자동차가 운행이라는 형태로 현실화한 경우에 있어서 발생한 특정한 사고에 영향을 끼친 자동차의 운행중의 일정한 원인력을 가진 것만을 선택하여 그 자동차의 운행에 대한 지배가능성을 가지고 있던 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하는 구조로 규정하여, 그 구체적인 자동차사고의 발생에 원인을 제공한 복수의 자동차의 운행 중에서 일정한 원인력을 가진 '그 운행으로 인하여'를 운행자의 손해배상책임의 발생근거에 관해서는, 대법원도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는 그와 같은 운행 중에 일어난 모든 사고에 대하여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운행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사고에 대하여서만 그 책임을 지는 것이다"고 판시하고 있다. 따라서 자배법의 적용에 의하여 보호를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자동차의 운행과 사고간은 물론 배상범위와 사상간에도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우리 법원이 구체적인 경우에 있어서 어떤 행위(사실)가 일정 결과인 손해발생의 조건이 될 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경우에 있어서도 그 행위(사실)가 일반적으로 동종의 결과인 손해를 발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질 때 그 행위(사실)와 손해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다는 상당인과관계설을 취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처럼 상당인과관계설이 취해지는 이유는 생긴 손해의 원인만을 파악하는 일원적 인과관계가 아니라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것과 손해배상책임액은 책임부담원인에 의하여 생긴 모든 손해라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고, 따라서 손해배상책임의 승인과 손해배상책임의 제한이라는 것은 불법행위법에 있어서는 물론 특별법에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통상 과실책임주의가 적용되는 불법행위법에 있어서의 인과관계는 가해자의 어떤 행위(사실)가 없었다면 손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관계 즉 손해배상책임의 성립요건으로서의 인과관계(責任根據因果關係)와 어떤 행위(사실)로 인하여 생긴 손해 중 어느 범위까지를 가해자책임으로 하는가 하는 손해범위의 인과관계(責任範圍因果關係)라는 관점에서의 파악이 상당인과관계의 전제조건으로 인정되고 있다. 우리 법원은 자배법에 대해서도 과실책임주의에 입각한 처리방법을 적용하고 있는 듯하다. 이 경우 위험책임주의하에 피해자보호를 우선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자배법상의 인과관계가 불법행위법상의 그것에 비하여 엄격성이나 정밀성 면에서 완화된 성격의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으나, 이 점에 관해서는 특별히 조정된 것은 없는 듯이 보이며,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현저한 조정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Ⅳ. 제3조 단서 제2호 소정의 사유
1. 기존의 해석
단서 제2호 소정의 사유에 대하여, 판례는 "운행자는 승객의 사망이 고의 또는 자살행위로 인한 것임을 주장·입증하지 않는 한 운전상의 과실유무를 가릴 것 없이 그 승객의 사망에 따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으므로 자동차의 운행자로서는 그 소유의 자동차승객이 사망한 경우라면 자기에게 과실이 없음을 내세워 이 사건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하여 운행자의 면책사유로 파악해 왔으며, 이러한 판례의 태도에 대하여 이제껏 이의를 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2. 해석의 비판
그렇다면 단서 제2호 소정의 사유는 과연 운행자의 면책사유에 해당하는 것일까. 기존의 해석처럼 운행자의 면책사유에 해당한다고 한다면 단서중임의 해석은 지극히 정상적이며 위헌시비 또한 그 나름의 의미를 가길 것이다.
통상적으로 면책사유라 함은 책임이 발생하는 범이 안에서 예외적으로 책임이 면해지는 사유를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자배법에서의 운행자 책임은 '운행으로 인하여' 생긴 경우에 발생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자배법에서 말하는 운행자의 면책사유는 운행자의 책임이 발생하는 '운행으로 인하여' 생긴 사고에 있어서 예외적으로 운행자가 면책될 수 있는 사유가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단서 제2호 소정의 '승객의 고의 또는 자살행위'는 운행자의 면책사유에 해당하는가. 아니다. 왜냐하면 '승객의 고의 또는 자살행위'는 '운행으로 인하여' 생긴 사고에 있어서 예외적으로 운행자책임이 면해지는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승객 고유의 행위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서 제2호 소정의 사유는 해당초부터 운행자책임이 발생하지 않는 무책사유이며 이러한 무책사유에 관해서는 이를 법무에 별도로 규정해 둘 필요가 없다. 무책사유에 대해서는 설령 그 어떤 것을 유형별로 정리·열거하여 단서 제2호에 규정하더라도 운행자의 책임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행 단서 제2호는 전혀 쓰임 없는 규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쓰임 없는 규정에 대하여 내리는 단서 제2호 중심의 풀이법은 당연히 옳을 리 없다. 또 이러한 전제 아래 붙은 위헌시비 역시 그런 의미에서는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밖에 볼 수 없으며, 불가항력 면·부책 논쟁 또한 근거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사실 제3조 본문과의 관계에서 볼 때, 단서 제2호의 규정만을 강조하게 되면 責任根據因果關係가 무시되어 예컨대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승객의 갑작스런 심장마비라든지, 승객끼리의 다툼으로 인한 승객의 사상, 도어밀폐로 인한 열사 혹은 질식사, 燒死 등, '운행으로 인하여' 생긴 사고로 보지 않는 듯한 사고까지도 운행자의 배상책임근거에 속하는 것으로 풀이되어, 제3조는 그야말로 구조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현행 자배법 제3조는 승객에 관한 한 규정은 있지만 그 기능은 없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