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천여중 김은진 양
명예회복! 잠시 ‘고도’ 낮췄던 성적 다시 하늘로~
인천 상인천여중 1학년 김은진 양(13)은 거실에 있는 책꽂이에서 만화책 2권을 꺼내든다. 김 양이 고른 책은 고우영 화백의 ‘일지매’와 ‘십팔사략’. 그는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함께 만화책을 읽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주말이 되면 아빠와 함께 만화책을 읽었어요. 만화책을 읽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바로 아빠에게 물어봐요. 아빠는 ‘일지매의 배경이 된 조선후기의 시대 상황이 어땠는지’ ‘십팔사략에 등장하는 인물이 결국 어느 나라를 세웠는지’ 등의 역사적 사실을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뿐만 아니다. 김 양은 아버지에게 ‘오늘은 무엇을 배웠는지’ ‘어제 친구들과 뭐하고 놀았는지’ 등을 세세하게 이야기한다. 김 양에게 아버지는 무슨 얘기든 들어주는 친구 같은 존재이다.
만화책을 좋아한 김 양의 초등학교 성적은 어땠을까? 평균 95점 이상을 받아오는 ‘공부 잘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중학교에 들어간 김 양이 첫 중간고사에서 받은 성적은 평균 87점으로 전교 235명 중 45등. 김 양도 아버지도 충격이었다.
“‘중학교라고 뭐 별거 있겠어?’라고 생각했던 게 화근이었어요. 특히 사회과목의 경우 초등학교 때처럼 문제집의 요약된 내용을 한 번 훑어보고 시험을 봤어요. 등고선 문제가 나왔을 때 초등학교 시험에서는 문제 안에 주어진 등고선 그림만 보고도 풀 수 있었거든요. 중학교 시험에서는 지도의 비율에 따라 주곡선과 계곡선의 길이가 어떻게 다른지 등 관련 개념을 미리 알고 있어야 했어요.”
김 양은 어떤 유형의 문제가 나오는지 전혀 모른 채 시험을 치렀다. 중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돼 있었기 때문. 그는 특히 수학과목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었다. “중학교 첫 수학시간에 집합을 배우는데 대부분의 친구들이 선생님이 문제를 풀기도 전에 문제를 푸는 거예요.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 미리 중학교 수학을 배우고 온 거죠. 저 혼자 이해를 못하고 넘어가다 보니 나중에는 수업진도도 따라가기 어렵더라고요.”
인천 상인천여중 1학년 김은진 양은 교과서를 5번 이상 정독한 결과 2학기 중간고사에서 전교 13등으로 성적을 끌어올렸다. 김 양은 “아침마다 같이 수학 강의를 들어주시는 아버지께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김 양은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김 양의 아버지는 아침마다 교육방송(EBS) 수학 강의를 들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두 달 동안 아침 6시 15분이 되면 TV 앞에 앉아 수학 강의를 들었어요. 아버지도 저를 위해 어김없이 옆에 앉아 강의를 보시거나 책을 읽으셨죠. 30∼40분 분량의 강의를 듣고 나서야 학교 갈 준비를 했어요.”
1학기 기말고사를 2주 앞두고는 사회과목을 집중 공략했다. 중간고사 때 65점을 받은 사회점수가 전체 평균을 깎아내렸기 때문. 공부법을 바꿨다. 오직 문제집만 보던 방법에서 선생님이 나눠준 프린트를 보기 시작했다. 매일 1, 2시간씩 선생님이 나눠준 프린트의 내용을 외우고 빠진 부분은 문제집으로 보충했다.
결과는? 예체능을 제외하고 평균 90점. 전교 237명 중 43등이었다. 성적표를 본 김 양은 만감이 교차했다.
“사회과목에서 100점이 나왔어요.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니 기뻤죠. 그런데 수학과목에서 59점이 나온 거예요. 매일 아침 수학 강의를 듣기 때문에 수학만큼은 잘 봐야 된다는 생각을 했었죠. 시험 당일 긴장을 해서 손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어요. 답안지를 4번이나 바꾸는 바람에 문제 푸는 시간도 부족했고요.”
50점대의 점수를 처음 받아본 김 양. 머릿속에는 아침마다 자신을 깨우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학 성적을 본 김 양의 아버지는 “몰라서 틀린 것보다 시간 배분을 잘 못해서 그런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다음 시험에는 손목시계를 꼭 챙겨주겠다”고 말했다.
고마웠다. 아버지의 기대에 보답하고 싶었다. 여름방학이 되고 김 양은 오전 7시가 되면 아버지가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나 TV 앞에 앉았다. 하루에 듣는 수학 강의를 하나에서 둘로 늘렸다. 방학의 3분의 2가 지나자 전 강의를 다 들었다. 2학기가 시작되자 처음부터 강의를 반복해 들었다.
2학기 중간고사 한 달 전. 본격적인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김 양은 오후 5시 학교수업이 끝나면 집에 와 오후 11시까지 공부를 했다. 학원에 안 가기 때문에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시험 일주일 전부터는 하루 1시간씩 더 공부했다.
“암기과목은 최소 5번 이상 교과서를 정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시간이 부족하면 아침에 수학 강의를 듣고 남는 10분까지도 활용해 읽었죠. 사회과목의 경우 18세기 시민혁명에 대해 물어봤을 때 ‘어느 나라에서 일어났는지’ ‘왜 일어났는지’ 등을 줄줄 외울 수 있을 때까지 읽었어요.”
2학기 중간고사 성적은? 평균 95점. 전교 238명 중 13등이었다. 특히 수학과목은 95점으로 껑충 뛰었다.
“성적이 오르니 가장 좋아했던 사람이 바로 아버지에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니깐 되지 않느냐’며 환하게 웃으셨죠. 1학기 기말고사에 저와 비슷한 성적이 나왔던 친구는 공부 비법을 알고 싶다며 학교 앞 분식집에서 우동을 사주더라고요. 땅에 내려갔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간 기분…. 마치 널뛰기를 한 것 같답니다(웃음).”
동아일보 김종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