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업 2
〔06 : 50〕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아침밥을 먹고 언제나 쫑(犬)이의 담을 넘어다보는 너무도 충직한 배웅을 받으며 출근길을 나선다. 저 녀석은 그게 삶의 즐거움인지도 모른다. 아직은 동이 트지 않은 탓인지 골목길이 제법 깜깜하다. 우리 동네도 어느 듯 할렘가(?)가 되어 가고 있는지 예전에 알고 인사를 나누던 이웃들은 하나 둘 이사를 떠나가고 늘어나는 건 셋방을 찾아든 낮선 사람들과 그들이 하나씩 끌고 온 다소 값싼 차량들만이 골목을 가득 메워가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지금의 경제위기를 몰고 온 서글픈 사회현상의 산물일 것이다.
바람은 불지 않지만 그래도 기온은 귀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매우 차갑다. 횡단보도를 지나 다리를 건너간다. 춥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이른 시간에 걷는 기분도 나쁘지만은 않다. 건너편 산봉우리의 중계 탑과 도심의 불빛들이 멀게 느껴져 보인다. 이 시간에 다리를 건너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예전엔 지금보다 조금 지난 시간엔 다리를 건너며 인사를 나누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사를 가고, 학교를 졸업하였는지? 간혹 자전거를 타고 생업에 나서는 아낙과 아들네의 생업을 돕기 위해 손자를 봐주기 위해 다리를 건너는 할머니만이 눈에 띈다.
다리 아래 가장자리가 얼음이 얼었고, 강 가운데선 물오리가 한가로이 헤엄을 치고 있다. 옛날 같으면 먹음직스럽다(?)고나 했을까. 겨울에도 쉽게 얼지 않는 강물인데 오늘 아침 기온이 매우 차다.
〔07 : 00〕
다리를 건너서면 앞을 막아서는 거대한 아파트 군락. 어두컴컴하고 거대한 장벽. 그 아파트 중 20% 가량이 불이 켜져 있다. 부엌과 화장실이 먼저 켜진다. 그 아파트 끝자락 사이 철길위로 저 멀리 붉으스레 태양이 솟구치고 있는 듯 온통 여명이 펼쳐져 있다. 그래도 아직은 빨간 신호등이 제일 선명하게 보이고 그 다음은 가로 등 불빛, 그리고 동녘의 여명이 그 다음이다.
지금은 학생들이 방학 중이라 눈에 띄지 않지만 이 시간쯤이면 도로양쪽엔 미래 보다나은 생을 위하여 현재를 희생하는 학생들이 시내버스를 타기위해 기다리는 모습들이 많이 눈에 뛰곤 하였다. 그 중에는 손거울을 보며 얼굴과 옷매무새를 다듬는 여중생과 공연히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여고생 등 여자 애들이 많다.
횡단보도를 건너서면 앞에는 최근에 새로 지은 커다란 교회가 있다. 부유하지 않은 주택가 한가운데 들어선 교회를 보면서 나는 가끔씩 저 교회를 보는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가질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건 그렇다 치고 지금의 우리는, 아니 세상이 다 매우 어려운 시점이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소리치 싶다. Quo Vadis Domine(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고...
골목길을 접어들기 전에 주유소가 있다. 그런데 이 주유소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이 주유소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있는데 주유소 내 청소는 물론 주변 도로까지 청소를 한다. 물론 이 주유소의 기름 값도 다른 데에 비하면 싸다. 언젠가 시청 홈페이지에 칭찬을 하고 싶었는데 칭찬코너엔 시청직원들만 대상이 되고 있어 그만두고 말았다.
안쪽 길로 돌아들면 이곳 일대는 오래된 시가지로서 철도 접도구역으로 묶여져 몇 십 년째 개발이 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를 지날 때면 가끔 그 잘생긴 장동건과 연기 잘하는 유오성이 나오는 영화 ‘친구’를 연상해 본다. 그 영화 전체적인 이해는 못하는 편이지만 가끔 명절에 부산엘 갔을 때의 범일동 거리를 생각해 낸다. 보림극장 주변과 철길너머 범일2동쪽은 아직도 오랜 전에 보았던 거리풍경이 그대로 남아있다. 영화 ‘친구“의 주된 촬영지도 이곳이다. 세 사람의 얼굴을 넣어 사진을 찍게 만들어진 조형물이며, 교통부로터리에서 범일2동으로 철길을 가로질러 넘어가는 구름다리 입구엔 아직도 옛날의 그 구둣방이며, 붕어빵을 파는 집들이 있고, 철길입구 구름다리 옆엔 아직도 복개가 안 된 하천이 남아있는데 영화 ’친구‘ 에선 배우 한 사람이 이 하천 시궁창에 떨어져 얼굴을 처박는 모습을 보면서 영화배우로 먹고 사는 것도 매우 힘 드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철길근처를 지나쳐 차가 다니는 도로를 나오면 쌀가게며, 폐업한 부식가게들이 나타난다. 이 곳 폐업한 가게에선 매일 퇴근길 지나칠 때 몇몇 중늙은이들이 모여 화투를 치고 있다. 그게 궁금하다. 100원짜리 아니면 1,000원짜리 판돈이라도 걸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지면 이마 때리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런데 이유야 어쨌든 내가 보기에는 거의 매일을 저러고들 있으니 너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의 일을 빨리 끝내고 저러는 걸까? 아니면 하루 종일 저러고들 있을까? 산에라도 좀 가고, 농장하는 친구 따라 산과 들판에라도 나가보면 어떨까? 괜스레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나면 또 걱정은 된다.
각지의 하수구에선 물소리가 제법이나 요란하다. 시원한 물소리가 아니라 생활의 결과물인 그 악취 나는 폐수 폐수 폐수...
이해하기 어려운 건 「이곳은 쓰레기를 버리는 장소가 아닙니다. 불법투기를 하면.... 」 하고 붙여놓은 동사무소의 안내판과 프랑카드는 있지만 쓰레기를 모우는 장소라고 표시된 곳은 하나도 안 보인다는 애기다. 그럼 대체 쓰레기는 어디에다?...
아파트 앞 참기름과 부식가게는 일 년 내내 거의 문이 열려있다. 웬만한 추위에도 항상 문을 열어놓고 손님을 맞이할 태세다. 참 삶을 부지런하게 사는 본받을 사람들이다. 이발소엔 벌써부터 불이 켜져 있다. 원래 이발소엔 장거리 출타를 하거나 집안의 경사가 있을 때 새벽 일찍 머리를 손질하고 가려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요즘처럼 불경기엔 글쎄 그런 마음들이나 생기려나... 그러고 보니 작은 가게들이 먼저 깨어나 생업준비에 한창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신의 축복이 내려야 하는데 세상은 어차피 그렇지는 못한걸 보니 신도 직무를 유기하는 건지...아니면 누구들처럼 부자들 편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하시는 건지...
비교적 크고 잘나가는 점포들은 문을 열어놓는 시간이 짧으나 이발소며, 세탁소, 구멍가게 등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문을 열어 놓아도 먹고 살기가 매우 힘든 세상이다. 무조건 커야한다. 그래서 모두가 빛을 내서라도 규모를 크게~~(신자유주의 산물?) 그게 잘못되면 결국은 거품경제로 이어져 죽기 아니면 까무러친다는 결과가 되고 말겠지만... 이게 「적자생존의 법칙」이 아니라 「적자(작은 것)생존 곤란의 법칙」은 아닐런지...!/?
아파트를 지으려다만 공사장이 나타난다. 두어 차례 공사를 하려다 높게 울타리만 쳐놓고 마냥 기다리는 것이다. 글쎄 이 어려운 경제상황에 분양이 제대로 될까 괜히 염려스럽기도 했지만 분양을 해보았자 이곳의 땅 매입 가격에 건축비에다 이윤 등을 합하면 결국 분양가는 1,000만원을 넘어가겠지. 언젠가 택시기사의 말이 이곳에 살다 땅 팔고 간 사람들이 많은데 아무튼 땡잡았다고 하였다.
이 근처에선 한 아가씨가 항상 차를 기다리곤 한다. 차를 태워주는 남자가 회사직원일까? 아니면 애인일까? 어쨌든 고마운 일이다.
우리가 지금 겪는 어려움은 결국 지금껏 자기 분수를 안 지킨 결과로, 특히 많이 가진 사람들이 허례허식한 결과가 정작 어려운 사람들이 더 어렵게 살아가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할 땐 정말 서글프다.
횡단보도 옆에서면 이때쯤이면 장애인 청년을 만난다. 그 청년은 불법 스티커를 보면 무조건 떼고 만다. 무슨 심리일까? 또 한사람의 여자는 욕인지? 무슨 소린지? 고함을 지르고 다닌다. 그래도 아침시간에 지나는 걸 보면 무슨 생업이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사회에 장애인도 매우 흔한 편이다.
〔07 : 10〕
예전의 파출소는 지금은 지구대 소속으로 되어있는데 건물을 사용하는 건지 한 번도 사람을 보지 않은 것 같다. 근처엔 복권방이 있다. 나도 그냥 기분이 꿀꿀할 때 복권방을 지나치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두어 번 복권을 샀던 적이 있다. 복권 당첨은 고사하고 평생 500원짜리 공짜하나 건져본 적 없는 박복한 인생이라고 치부하고 그래도 그 한 주일동안에는 잠이 설레고 좋은 꿈 꾸어보려고 했지만 결과는 어김없이 “꽝”이었다. 그 옆의 열쇠 집 아저씨는 새벽부터 문을 연다. 매번 볼 때마다 꽤 부지런하다는 걸 느낀다. 근처 부엌 가구점과 그릇 집에는 밤새 조명 등을 켜 놓는다. 다 보다나은 생업을 위해서다.
가끔 추운 날씨에도 폐휴지를 수집하는 손수레를 끄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요즘은 경기불황으로 폐휴지 값도 내려 삶의 고통도 더하다던데...
사는 게 무척이나 어려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어린 아기가 태어나면 ‘축복’ 이라고들 하는데 인생사는 것 자체가 고행이라면 그게 과연 축복할 일인가? 생각도 들긴 하지만 흔히 하는 말처럼 ‘인생 뭐있나?’ 하는 듯이 살아보고, 가수 김국환씨의 ‘타타타’ 노래가사처럼 '맨손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이라도 건졌다'고 미친 듯이 만족해하며 살아도 볼일이다.
새로 생긴 커다란 치과병원 앞을 지난다. 치과병원이 돈을 잘 번단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만 살면 전부 문을 닫았을 텐데... 나는 어금니가 10년 주기로 아픈데 그래도 참고 또 참고해서 아직은 내 것으로 두고 있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고지식한 것인지 무지한 것인지를 모를 그놈의 성격 때문에... 한다는 소리가 사자나 호랑이는 이빨손질 안 해도 튼튼하기만 하다는 소리만 해대고...
건너편 인력공사에 사무실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른 시간일까? 아니면 수요가 없어서 일까? 근처 간이역에도 밤에는 승객(손님)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근처엔 2개의 주유소가 있는데 하나는 국내기름 값이 내려도 개의치 않고(?) 그냥 제법 비싸보이게 요금을 받는 곳, 또 한 곳은 그래도 요금을 그때그때 조정해 가면서 손님을 유치하려고 하는 곳이 있다. 물론 정유회사는 다르다고는 하더라도 가격차가 많이 난다. 그런데 상식적으론 기름 값이 비싼 집은 장사가 거의 안 될 것 같아도 그럭저럭 되는 모양이다. 운전자가 평소 선호하는 메이커도 있겠지만, 기름 값을 자기 돈으로 안 지불하는 경우나 아무튼 그냥 단골로 이용하면 플러스알파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학교 앞 버스 승강장엔 다른 때보다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의 줄이 길다. 아마 시외버스들이 아직 도착할 시간이 이른 탓일 것이다. 요즘은 버스 승강장은 택시들이 점령(?)해서 택시 승강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다른 곳에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건너편 가계들은 대부분 아직 문을 안 열었다. 깃쉬 헤어(애교머리), 카멜레온 헤어샵 등 제법 재미있는 미용실 이름도 있다. 어쩌다 스트레스가 찰 때면 한번쯤, 그 것도 매우 드물게 가서 신체적 스트레스는 오르더라도 정신적 스트레스는 해소하고 하던 돼지 삼겹살집도 아직은 주인이 안 바뀌었는지 상호가 그대로다.
〔07 : 20〕
길가를 지나치며 바라다 보이는 아파트들은 아직 불이 켜지 않은 집이 많다. 대충 생각건대 같은 시간대라도 산자락에 있는 아파트에는 불이 일찍 켜지고 비교적 시내 중심가엔 늦게 켜진다. 아마도 산자락 아파트 사람들은 시내와 거리도 있지만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찍 생업을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아침 7시 전후를 기준으로 아파트 불이 켜지는 시간을 살펴보면 대략 산자락 20%, 중간지역 10%, 그리고 중심지역 5% 정도로서 시내 중심지역이고, 가격이 높으면(생활정도가 높으면) 늦게 일어난다는 결론이 나오네... 옛말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부지런한 사람이,,,.. .’ 하는 소리들은 죄다 헛소리이고 고학력, 고급기술을 가진 사람이 늦게 일어나도, 짧은 시간 일해도 잘 산다는 게 엄연한 진리이다. 그래서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고 보다 나은 생업을 위한 자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이 지독한 생존경쟁(예: 입시, 취업, 일상생업...)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고속버스 터미널은 요즘 같이 추운 날에 문을 열러 젖히고 공사를 한답시고 난리 부루스를 떤다. 예전에 버스타려 가면 추워도 그 냄새나는 연탄난로 하나 제대로 피워주지 않더니. 그런 설움으로 차 산 사람도 있을 만한데 이제야.... 속된말로 버스 지나고 뭐한다고 야단법석이다. 그래서 손님은 또 거의 안 보인다.
참 그리고 매번 느낀 것인데 택시들은 항상 왜 그 차 꽁무니를 횡단보도에 반쯤 걸치고 서있는 것인지? 사람들이 차에 결려 넘어지라는 속셈은 아닐 테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택시를 피해 횡단을 하는데 택시들이 다들 똑같은 짖거리를 하는 걸 보니 택시 회사에선 무슨 그럴듯한 판촉교육이라도 시키나 보다...다 사는 게 전쟁이다.
이런 저런 별 영양가 없는 생각에 추위도 잠시 잇고 직장을 들어서니 거의 모든 공간마다 불이 다 켜져 있다. 거리가 멀어 일찍 일어 난거냐고? 아니면 아예 잠도 안 잤냐고?(모르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면 오해할 뻔)
그래도 모두 열심히 일하고 특히 휴일엔 적은수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어도 별다른 탈도 없이 움직이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휴일에 근무한 직원들이 마냥 고맙기만 하기도 한다.
〔07 : 30〕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그 전엔 열쇠를 두 바퀴를 돌렸는데 요즘은 한번만 돌려도 된다. 공기가 탁하면서도 냉랭하다. 난방기를 켜고 커피를 한잔 타서 책상 앞에 앉는다. 정말 세상살이가 너무 팍팍하다. 3,000원짜리 백반 집과 소주와 담배 판매량이 증가 한다고 한다. 서민들은 갈수록 고개를 더 떨구고 있다. 모두가 다 이 어려운 터널을 벗어나야 할 텐데 큰일이다. 이러다 6-70년대 먹을 것은 많지 않아도 이웃 간의 정은 그래도 넘쳤던 풍요롭던 마음은 사라지고 차갑고 음울한 핵겨울에 점차 접어들지는 않을 런지...
살아야지! 발버둥을 쳐야지! 나는 오늘은 무엇을 생각하고 일은 어떻게 진행시킬까? 고민을 해본다. 정말 이 어려운 현실에 대처하기 위한 마음가짐은 제대로 가지고 있는지? 나의 삶, 생업에 좀 더 진실해지고 반성해야 하는 건 아닌지... 진정한 나의 생(生)과 업(業)을 위하여....(다소 서글픈 마음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