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해 던지는 가시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삶을 이어가는 것이 고통스럽다. 돌파구가 없는 사방이 막힌 벽 안에 갇혀서 스스로의 삶을 끝내는 심정을 무엇으로도 비난할 이유는 없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그런 반면에 ‘꼭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하는 안타까움이 배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의 지나온 삶들이 너무나 안타깝기 때문이기도 하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 베르테르가 자살하는 걸로 끝이 나자 그 소설을 읽고 주인공 행적을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무수히 나타났다. 그것을 ‘베르테르의 효과’라고 불렀다. 최근 유명 배우들의 잇따른 자살 보도를 접한 사람들이 자살로 뒤따르는 일들이 나타나고 있다. 일견 신문에서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며 연일 자살 소식을 전하여 조장한 점도 있지만 그런 탈출 방법은 여러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이기주의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다가 순식간에 외면을 당하게 된 연예인들은 허무에 부닥치게 되고 그것을 감당해 낼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약함을 보여 준다.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는 오드리 헵번의 말년을 생각한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그녀는 봉사활동으로 자신의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것은 행운이었다. 흑인 고아들을 안고 활짝 웃고 있는 만년 소녀 헵번은 영화에서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행적이 세상을 위해 던지는 희생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연예인 중에는 왜 헵번과 같은 아름다운 말년은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헵번은 새로운 도전을 하여 성공하였으며 길을 제시해 주었다.
세상이 나를 압박하기 전에 내 스스로 세상을 향하여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으로 가는 진정한 삶의 항로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압박당하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일 뿐이다. 세상이 나를 공격하기 전에 내 스스로 세상을 향하여 칼날을 세우고 나아가는 일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모습일 것이다.
고슴도치
건드리지 마라
상처로 무장한 나를 건드리지 마라
마음 약해져 긴장을 늦추는 그날이 오면
그때는 가시를 세워 나의 심장을 찌르리라
세상을 찌르기 위해 가시를 세우다
때때로 나는 나의 가시에 찔려 피 흘린다
나의 길은 햇빛이 찾지 않는
어둠을 향해 뻗어있다
피로 얼룩진 그 길을
누구도 막으려 마라
내가 흘리는 나의 피는 다시 가시가 되어
세상을 겨누고 있다
가시는 나의 운명이다.
시집 『행복한 나뭇잎』중에서
천형처럼 온몸에 가시를 얹고 세상을 살아가는 고슴도치를 노래하고 있지만 시적화자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못해 처절하다. 가시는 상처 때문에 돋아난 것이며 세상을 행해 세운 바늘이 자신을 찔러 피를 흘리지만 그 피는 다시 가시가 되어 세상을 겨냥한다. 그래서 고슴도치가 가는 길은 피로 얼룩져 있고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어둠 속으로 나있다.
환율 인상과 주가 폭락으로 실물경제가 흔들리면서 삶이 피곤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고슴도치처럼 바늘을 세우고 가더라도 그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면서 길을 가야한다. 피 흘리는 운명일지라도 세상은 나를 위해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그러니 더 독한 마음으로 가시를 견고하게 세우고 세상 가운데로 걸어가야 한다. 이 시가 던지는 메시지는 그런 것이다.
윤상운 시인은 그동안 연가풍의 부드러운 시세계를 간직해 왔다. 그와는 별스런 데가 있는 이 작품은 세상을 많이 살아 본 역정이 묻어난다. 어렵고 힘 든 일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이렇게 가시돋힌 발언을 하기가 힘 든 것일 게다. 물론 스스로에게 다지는 각오이겠지만 삶의 중심에 서서 세상을 향해 발언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사랑과 그리움의 애절함, 가슴 아리게 하는 맑은 향을 지닌 시를 보여주는 윤상운 시인은 대전고를 나와 서울대 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연가」라는 탁월한 감수성으로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달빛 한 쌈에 전어 한 쌈』, 『배롱꽃 붉은 그 길』이 있고 <잉여촌> 동인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