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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방산] 바다와 육지 조망 두루 빼어난 통영 최고봉 안정사~벽방산~천개산~안정사 회귀 코스 3~4시간 소요 통영 산꾼들에게 한산대첩 축제 기간 중 찾아갈 만한 산을 물었을 때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벽방산과 미륵산을 자랑했다. 고민 끝에 해안과 내륙의 장점을 골고루 지닌 벽방산을 선택했다.
인근 해안 고을에서 가장 높은 산 장마전선이 남해안에서 여전히 오락가락 하다 잠시 잠잠한 틈을 타서 벽방산으로 향했다. 이번 산행엔 통영 시내에서 등산장비점 메아리산장을 운영하는 여울목산악회 김종진씨(49), 같은 산악회 유온순씨(44), 통영 한아름산악회 임희영씨(34)가 동행했다. 벽방산은 석가불이 미륵불이 나타나면 드린다는 바리때인 벽발(碧鉢)을 가섭존자(迦葉尊者)가 받쳐들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옛 기록엔 대부분 ‘벽발’로 기록되어 있는데, 언제부턴가 ‘벽방’이란 이름이 한자까지 얻어 현재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 산에 기댄 절집은 아직도 벽발산이라 부르고 있다. 벽방산의 매력은 만리창벽(萬里蒼壁), 옥지응암(玉池鷹岩), 은봉성석(隱鳳聖石), 인암망월(印岩望月), 가섭모종(迦葉暮鐘), 의상선대(義湘禪臺), 계족약수(鷄足藥水), 한산무송(寒山舞松) 이렇게 ‘안정사팔경’으로 불리는 명소가 산 곳곳에 펼쳐져 있다는 점이다. 산행은 일반적으로 안정사~가섭암~의상암~의상선대~정상~만리암터~안정치~은봉암~안정사 원점회귀로 이어지고, 그 산길은 대부분 안정사팔경을 둘러보며 돌아보게끔 연결되어 있다.
임도를 가로질러 나있는 산길 벽방산 주찰인 안정사는 내려오는 길에 살피기로 하고 가섭암으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의상암 직전까지 임도가 이어져 있는데, 산길은 임도 사이사이를 가로질러 나있다. 임도를 걷는 게 지루하면 산길로 들면 된다. 가섭암은 과거칠불(過去七佛) 가운데 여섯 번째 부처인 가섭존자를 모셔놓은 암자다. 이 암자에서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는 안정사팔경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절은 거의 폐허로 변해 있었다. 몇 년 전 태풍 매미 때 입은 상처라고 한다. 우리는 가섭암이 어서 빨리 복원되어 은은한 저녁 종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게 기원하고 길을 나섰다. 가섭암에서 임도 왼쪽으로 50m쯤 가니 골짜기를 타고 나 있는 의상암 가는 길이 보였다. 부드럽지만 약간 가파른 산길을 얼마쯤 오르니 문득 개 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염집 분위기도 조금 풍기는 의상암의 분위기는 제법 차분했다. 암자 오른쪽 바위 아래엔 맛있는 석간수가 솟았다.
의상암에서 벽방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뚜렷했다. 하지만 팔경에 속하는 의상선대를 보려면 의상암 뒤로 나 있는 희미한 길을 따라야 한다. 암자 뒤쪽 샛길을 따라 5분쯤 오르면 십여 길 낭떠러지가 솟구치고 그 아래 널따란 터가 보인다. 의상이 참선을 했다는 바위로서 의상대라고도 불리는 의상선대는 남해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 의상선대에서 급경사 오르막길을 따르면 잡목숲이 우거지고, 한쪽 편이 낭떠러지를 이룬 능선마루, 칼날바위들이 모여있는 암봉이다. 그러나 산길이 희미하고 급경사라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의상암에서 벽방산으로 직접 향한다. 우리는 일단 벽방산으로 가는 주능선에 올라선 다음 능선에서 산길을 빠져나와 암봉을 들렀다. 점심을 들며 조망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날씨가 문제였다. 원래 이곳은 정상에 뒤지지 않는 조망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무심한 짙은 안개의 방해로 바다는 조금도 뵈지 않았다. 그래도 반주로 더덕주 한 잔 곁들이니 마치 신선의 세계에라도 들어선 듯했다. 밥은 더없이 꿀맛이었다.
김종진씨의 벽방산 예찬이다. 날씨가 안정되어 있는 8월엔 조망이 더 좋다는 말도 곁들였다. 정상에서 구름이 걷히기를 고대하며 벽방산 정상에서 고성으로 향하는 능선길을 3분쯤 내려섰다가 의외의 경관을 만났다. 크고 작은 돌탑들이 수십 기나 서있는 모습이 꽤 토속적이었지만, 원래 있던 게 아니라 한 5~6년 전부터 누군가 세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어슴푸레 산 아래 풍광이 보일 듯했지만, 곧 짙은 구름이 산정을 뒤덮었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고 일어섰다. 날씨만 좋았다면 조망이 빼어났을 것 같은 능선길을 따라 몇 분 걷자 왼쪽으로 길다란 나무다리가 나타났다. 산길이 가파르고 조금 위험한 너덜지대라 설치한 듯했다. 목교가 끝나는 지점은 푸른 기운이 가득한 산죽 군락지. 바람이 불 때마다 댓잎이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두 명의 여인은 나이도 잊고 잠시 소녀로 돌아간 듯 감탄사를 풀어놓는다. 맑은 정기가 물씬 풍기는 대나무밭 안쪽은 만리암터. 돌탑 몇 개 외롭지만 그 너머로 보이는 바위벽인 만리창벽과 어울려 제법 풍치가 좋았다. 만리암터에서 급경사를 30분쯤 내려서니 안정치 고갯마루다. 벽방산과 천개산 사이 안부인 이 고개는 예전 동쪽 안정리와 서쪽 완산리 주민들이 넘어 다니던 고개다. 은봉암은 안정치에서 임도를 따라도 되고, 능선을 타고 천개산 정상에 오른 다음 동쪽 사면길을 따라 내려서도 닿는다. 산길은 평탄했다.
은봉암 대웅전 처마 옆엔 마치 대장군의 칼을 세워놓은 듯한 바위가 서있다. 이 칼바위는 안정사팔경 중 하나인 은봉성석으로 일명 도석(道石)이라 일컬어진다. 옛날 벽방산엔 3개의 신비로운 바위가 있었는데, 첫 번째 것이 넘어지면서 해월선사가 나타났고, 두 번째 것이 쓰러지면서 종렬선사가 나타났다고 전한다. 그래서 이 바위가 무너지면 이번엔 어떤 선사가 나타날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성석이다. 그러나 성석은 중간에 가로로 금이 간 채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다. 대웅전 왼쪽에 있는 샘 역시 8경 중 하나인 계족약수. 맛난 샘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하산을 시작했다.
은봉암에서 안정사로 내려서는 산길은 암자 아래의 임도에서 계곡쪽으로 바로 나 있다. 널찍하고 평탄한 길을 20여 분 내려서면 드디어 처음에 들어설 때 지나쳤던 안정사. 신라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고찰답게 절집 주변으론 아름드리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다. 한겨울엔 소나무, 느티나무들이 모여 춤추듯 숲을 이루고 있다 하여 한림무송이라 일컬어진다. 역시 안정사팔경에 속한다. 허나 겨울 경치도 좋겠지만, 무더운 여름날의 ‘하산무송(夏山舞松)’도 빠지지 않았다. “오늘은 구름이 많아서 좋은 조망을 보지 못했지만, 8월엔 일기가 좋으니 언제든지 멋진 광경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산행길잡이 안정사~가섭암~의상암~벽방산~만리암터~안정치~천개산~은봉암~안정사 원점회귀산행은 걷는 시간만 3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쉬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4시간쯤 잡는 게 좋다. 산길은 가파른 구간도 있으나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면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다. # 숙박 # 별미 통영의 별미인 복어는 겨울 동안에 살집이 두둑하게 오르고 맛도 좋다. 하지만 한여름에도 속 푸는 데는 그만이다. 서호시장엔 복어로 소문난 식당이 많은데, 그중 어시장 골목 안쪽에 자리한 만성복집(055-645-2140)의 복어국이 시원하다. 밥상에 딸려 나오는 병어회, 전어내장젓, 호래기젓, 홍합조림 등 밑반찬도 깔끔하다. 졸복국 7,000원, 참복국 10,000원, 복수육은 3~4인분이 30,000원. 충무 김밥 # 교통 드라이브 코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동고성 나들목→77번 국도(통영 방면)→벽방초교→안정사 주차장. 동고성 나들목에서 5~10분 소요. △통영→14번 국도(고성 방면)→광도→77번 국도(마산 방면)→벽방초교→안정사 주차장. 통영에서 20여 분 소요. |